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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68

영화 브이아이피 (2017) 그릇된 집단지성의 희생양

박훈정은 악마를 보았다와 부당거래의 각본가로 시네필 사이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비록 두 영화 모두 각본이 상당히 각색되긴 했지만, 싸이코패스 살인마에 얽힌 어느 개인 혹은 집단의 다툼을 그린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악마를 보았다의 '울면서 웃는' 서글픈 엔딩으로 명성을 떨쳤다. 그런 박훈정이 각본가로서가 아닌, 감독으로서 싸이코패스 살인마와 그에 얽혀 엉망진창이 되어가는 이들을 그려냈으니 바로 브이아이피다. 브이아이피는 저평가된 영화다. 개봉 당시엔 래디컬 페미니즘 열풍이 불어닥치고 있었는데, 살인의 대상이 된 여성을 지나치게 희롱한다는 이유로 엄청난 공격을 받았다. (수입사가 윈드리버의 겁탈 장면을 편집해서 개봉한 걸 칭찬하던 시기다. 끔찍한 검열의 기억.) 싸이코패스가 악랄한 짓을 하는 걸 보여줘서 불..

영화/리뷰 2021.05.12

콩: 스컬 아일랜드 (2017) 메타포에 희생된 것들의 집합

오랜만에 몬스터 유니버스에 불이 붙어서 콩: 스컬 아일랜드를 봤다. 정확히 말하자면 고질라 VS. 콩을 보고 전작들이 기억이 안 나서 재탕한 거다. 재탕 안 하면 쓸 거리가 기시감 말곤 떠오르지 않는 작품이었던지라. 엄밀하게 말해서 콩: 스컬 아일랜드는 성공적이라 하기 어렵다. 아마 괴수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인간들의 역할을 약하게 한 것을 굉장히 반갑게 여길 수 있겠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인간이 아예 안 나온다면 모를까, 나온 이상 어느 정도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고질라 2014가 이 부분은 잘했다. 주인공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냈고, 마지막엔 고질라와의 교감에도 성공했다. 콩: 스컬 아일랜드는 인간들의 비중이 막대함에도 극에 결정적 영향을 주지 않고, 그저 메타포를 위해서만 작용..

영화/리뷰 2021.05.08

원더우먼 1984 (2020) 액션을 포기하고 욱여넣은 훈계질

영화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은 세련되어야 한다. 억지로 욱여넣으면 촌스러워 보이고 거부감을 일으키게 마련이다. 특히 페미니즘이 섞인 휴머니즘이라면 요새 같은 시기에 얼마나 거부감이 심하겠는가. 원더우먼 1984는 그걸 몰랐다. 촌스럽다는 말은 때론 익숙하다는 말과 비슷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원더우먼 1984는 굳이 1984년을 배경으로 할 이유가 없는 영화다. 영화는 마치 80년대 TV 방송이나 해볼 법한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촌스럽게 메시지를 욱여넣는데, 그래서 이런 변명을 하고 싶은 것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해보았다. '80년대 영상 문화의 오마쥬를 겸했기 때문에 이렇게 촌스러운 스토리가 되었습니다. 사실, 이건 촌스러운 게 아니라 익숙한 거라고요.' 진짜로 이런 생각을 했다면 그야말로 비겁한 변명이..

원더우먼 (2017) 이제 매우 의심스러운 결과물

원더우먼 1984를 보고 난 뒤 원더우먼을 보면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을 것이다. 패티 젠킨스가 두 편 모두 촬영 감독으로 매튜 젠슨을 데리고 찍었음에도 영상에 차이가 막심하다. 원더우먼의 촬영이 대단했다기보다 원더우먼 1984의 촬영이 형편없다는 쪽에 더 가깝겠다. 대체 '머선129'란 말이 튀어나오는 막대한 변화에 기가 찰 나름이다. 액션이야 말할 것도 없이 원더우먼이 훨씬 뛰어나다. 원더우먼과 원더우먼 1984의 스턴트 코디네이터가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겠지만, 원더우먼 1984의 스턴트 코디네이터가 딱히 모자란 이들도 아니다. 스타워즈 시리즈, 트랜스포머 시리즈,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등에서 이미 검증을 받은 베테랑들이다. 액션의 분량이 적을 뿐이라고 말하기엔 원더우먼 역시 액션 분량이 많은 편..

영화/리뷰 2021.05.01

넷플릭스 [모술] 이라크에 던져진 듯한 현장감

영화 속 세계로 보는 이를 휙 던져버리는 연출 방식은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리는데, 이는 영상으로 나열된 내러티브를 읽기가 대단히 어렵기 때문이다. 한 번 감상으로 모든 걸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단연컨데 없다고 장담할 수 있고, 이런 유형의 연출을 주로 하고 있는 마이클 만은 쇠퇴기에 접어들었다는 부당한 악평과 함께 대중으로부터 멀어졌다. 다만, 이러한 연출 기법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면 어떨까? 그것도 세상에 널리 알려진 지옥의 중동이 배경인 실화라면. 모술이 바로 그런 영화다. 사실, 모술의 연출 방식이 마이클 만의 그것처럼 무작정 던져놓는 식은 아니다. 그저 최후의 반전을 위해서 말을 아낀다 쪽에 가깝고, 주인공의 위치 자체가 감상자를 대변하는 역할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 친절한 측면도 있다. ..

영화/리뷰 2021.04.27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파이널컷, 다채로운 액션의 혼종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파이널 컷. 존재도 몰랐던 딸, 폐기된 정부 요원, 복수심으로 쫓아오는 킬러. 어쩌면 홍콩이나 유럽 등에서 빈번하게 볼 수 있었던 액션 스릴러의 기본 사항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지만, 그 클리셰들을 적당히 잘 섞어내는데 성공은 했다. 특히 피곤에 푹 절여진 듯한 황정민의 비주얼이 참 인상 깊고, 일본 양키 스타일의 킬러로 변신한 이정재도 그럴싸하게 어울렸다. 아쉬운 점이라면 이정재가 맡은 킬러 '레이'에 대한 스토리텔링이 지나치게 부족하다는 것과 그로 인해 건너 뛰는 장면이 많다는 점 정도려나. 재일교포 싸이코패스 킬러로 꽤 괜찮게 시작하는 레이의 기반은 '추적'의 과정을 끊임없이 건너뛰다 보니 존재감이 희미해지고 결국 '최종 장애물' 이상의 기능을 하지 ..

마찬가지로 달라보이는 [배트맨 대 슈퍼맨]

무릎을 탁.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의 초반부에 나오는 로이스 레인의 대사가 귀에 박혔기 때문이다. 자신으로 비롯된 사고에 죄책감을 느끼던 그녀는 클라크에게 대충 이러한 말을 한다. "날 사랑한다는 사실이 너(클라크)로 하여금 너로 있을 수 없게 할까 봐 두렵다." 개봉 당시는 그냥 로이스 레인의 죄책감이 클라크에 대한 걱정으로 드러난 대사라고 생각했는데,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를 보고 나니 무릎을 탁! 로이스 레인이 슈퍼맨의 타락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단서가 아닌가. 맨 오브 스틸부터 배트맨 대 슈퍼맨까지. 영화는 정서적으로 굉장히 불안하고 어린 슈퍼맨을 그린다. 애초에 정신적 지주나 다름없던 아버지 조나단 켄트가 어린 클라크 켄트에게 해준 조언들이 썩 쓸 만한 게 없었고, 결과..

영화/리뷰 2021.04.22

영화 [인랑] 근사하게 그려진 원작의 정서

지금은 재패니메이션 전성기의 마지막 주자로 인정받고 있지만, 공개 당시만 해도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분리되어 치열하게 대립하던 애니메이션 인랑은 한국에서 실사화되었음에도 똑같은 상황과 마주했다. 다만 호불호와 별개로 김지운 감독의 강단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원작의 정서를 그대로 가져온 강단. 거기에 평범한 조명조차 네온사인처럼 보이도록 연출함으로써 사이버펑크 분위기를 낸 영상 접근법. 이병헌과 최민식을 데리고 고어 스릴러를 만들었던 그 강단이 인랑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본래 원작 애니메이션이 '똥철학'이란 말을 들었을 만큼 난해했던 걸 떠올리면 그래도 실사판 인랑은 비교적 쉽다고 할 만하다. 초반부 다소 복잡하게 펼쳐진 정치 세력의 싸움은 그저 배경이 될 뿐이고, 중반부턴 인물 개인의 감정에 집..

영화 [용문비갑] 저평가된 속편

신용문객잔이 좋은 평가를 얻었음에도 호금전을 배신했다는 불명예를 얻어 시달려야 했던 서극이 다시금 이 이야기를 끌고 올라오는 데엔 20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20년이 지난 2011년, 서극은 용문비갑이란 이름의 속편을 대단히 야심차게 자신의 개성을 한껏 몰아넣어서 연출해 내놓았다. 그러나 본인의 야심과 달리 여러 측면에서 혹평을 면치 못했고, 이야기가 사실상 닫힌 결말이었기에 다시 명예 회복을 시도하려면 상당히 고민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론 용문비갑은 굉장히 저평가된 작품이라 생각한다. 이 영화의 단점이라고 한다면, 훌륭한 액션 디자인을 망쳐놓은 CG 퀄리티. 헐리우드의 90년대 CG에도 미치지 못하는 한심한 퀄리티가 영화의 여러 요소를 지저분하게 소화한 것이다. 물론, CG 역시도 연출의..

2021년에 다시 보는 영화 [신용문객잔]

서극은 여러 의미에서 자신을 증명하고 싶었다. 소오강호 촬영 당시에 있었던 불화로 호금전 본인이 중도하차했지만, 어쨌든 소오강호는 호금전의 영향력이 지배적인 '객잔' 시리즈의 하나로 완성되었고, 서극은 소오강호로 얻은 것이라곤 하나도 없이 호금전의 영향력을 떨쳐버리려는 듯 동방불패를 제작했다. 동방불패의 성공 직후엔 호금전 감독을 엿 먹이려는 의도라도 있었는지 신용문객잔을 만들어서 화제를 모았다. 서극 본인은 호금전을 존경한다느니 뭐라느니 하지만, 적어도 그의 행보에선 존경심 비슷한 걸 찾기가 몹시 어렵다. 신용문객잔은 정말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한다. 양가휘, 임청하, 견자단, 장만옥. 솔직히 실패하기도 쉽지 않은 캐스팅. 게다가 영화 자체도 당시 기준으론 썩 괜찮게 만들었다. 초고수도 기습 앞에선 의미..

[황혼에서 새벽까지] 쿠엔틴과 로버트의 B급 덕력 테스트

초기 쿠엔틴 타란티노가 본인의 색채를 진하게 묻혀서 B급 정서를 소화해내는 감독이었다면, 로버트 로드리게즈는 그냥 날 것 그대로의 B영화를 만들었다. 엘 마리아치 트릴로지는 그나마 폼이라도 잘 잡았지, 황혼에서 새벽까지는 그야말로 극장에서 팝콘 던지며 보는, 그라인드 하우스 전용 영화에 가깝다. 그 누구도 황혼에서 새벽까지를 걸작이니 잘 만들었다느니 하는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평가는 영화의 의도에 어울리지 않는다. 황혼에서 새벽까지의 매력이라면 쿠엔틴 타란티노가 쓴 각본 특유의 '아가리 파이팅'과 완벽한 B영화를 추구한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연출 아래에서, 조지 클루니나 하비 케이틀, 줄리엣 루이스, 셀마 헤이엑과 같은 배우들이 진지하게 연기한다는 점이다. 주인공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기만 하는 ..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 스나이더컷은 마스터피스다

벌써 17년이나 이어온 잭 스나이더의 필모그래피를 쭈욱 훑어온 사람이라면, 그의 영화가 어떤 성향을 지니는지 알 리라 본다. 그는 테렌스 멜릭과 스탠리 큐브릭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은 감독으로, 비록 영상의 스타일링은 다르지만, 스토리텔링 기법은 작품을 거듭할수록 두 거장의 영향력이 짙어졌다. 즉, 잭 스나이더는 내러티브를 영상으로 풀어낸다. 일반적으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를 영상 내러티브로 만드는데 심취하면 어떤 영화가 나오느냐. 잭 스나이더의 친구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로 예를 들자면, 덩케르크와 테넷이 나온다. 자칫 잘못하면 내러티브가 사라진 영화처럼 여겨질 수 있다는 얘기다. 잭 스나이더는 왓치맨부터 배트맨 대 슈퍼맨까지 모두 영상으로 내러티브를 서술하는 바람에 '스토리가 없는 영화감독'이라는..

영화/리뷰 2021.03.20

[흑협] 이 졸작에 담긴 독특한 추억

이연걸의 열혈한 팬이었던 꼬맹이 시절. 하굣길의 비디오 가게에 붙은 흑협 포스터를 보고 '드디어 이연걸 신작이 나왔구나'라며 달려서 흑협 비디오를 빌렸다. 그런데 하필 그날 집의 비디오 플레이어가 고장이 났지 뭔가. 방법을 골똘히 생각하다가 달려간 곳이 사촌 동생의 집이었다. TV 앞에 사촌 동생, 친동생과 함께 앉아 흑협을 보고 있는데, 조금 많이 당황했다. 생각보다 잔인하고 생각보다 야하다. 모여 앉아 비디오를 보고 있던 우리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외삼촌은 영화의 정체(?)를 깨닫고 깜짝 놀라 비디오를 끄더니 용돈을 주며 나가서 다른 거 하며 놀라고 말했다. 당시엔 외삼촌이 왜 저렇게 호들갑을 떠시는지 이해를 하지 못 했다. 아주 긴시간이 흘러 2020년대에 접어든 지금, 나는 당시 외삼촌이 왜 그렇게..

영화/리뷰 2021.03.11

[양과 늑대의 사랑과 살인] 재해석의 영역마저 유치하게

살인마를 사랑해버린 히키코모리 남성의 이야기를 다뤘다길래 흥미를 뒀었던 양과 늑대의 사랑과 살인. 예고편의 톤만 봐도 절대 내가 기대했던 그런 그림은 나오지 않을 거란 걸 알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착하고 저렴하다. 'SP 드라마로 만들기엔 수위가 높아서 어쩔 수 없이 영화로 만들었습니다'라고 말하는 전형적인 만화 원작의 일본 영화라 보면 되겠다. 애초에 첫 살인 장면부터가 한 편의 무용을 하듯 현란한 몸동작을 뽐내니 이건 대놓고 '나 만화에요'라고 말하는 꼴이라 혹시나하는 마음까지 접어뒀다. 너무 착하고 심심해서 (솟구치는 핏물마저 CG다) 잠이 스르륵 온다. 그런데 어차피 후쿠하라 하루카가 그 귀여운 비주얼과 성우 목소리로 살인마를 연기한다길래 궁금해서 본 거라 부담 없어서 되려 좋은 점도 있..

영화/리뷰 2021.02.16

영화 테넷, 고정된 시간이 크리에이터에게 주는 영향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로 스토리텔링 기법을 바꿨다. 기존 그의 지나치게 설명에 집착하는 스토리텔링은 관객으로 하여금 '이건 픽션입니다'라고 인식시키는 수준에 도달해있었고, 극의 몰입에 다소 방해가 되는 단점이었다. 거장이라 불리기 위해서 가야 하는 마지막 단계가 필요했는데, 로 그걸 해낸 것이다. 대사가 아닌 영상으로, 가타부타 할 것 없이 관객을 영화의 세상 안에 집어던지는 스토리텔링의 '마지막 단계'에 분명히 도달한게 다. 이는 마이클 만 감독처럼 극단적인 수준까지 밀어붙이는 사람이 있을 만큼, 거장이라 불리는 감독들은 모두 깨달아 익히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대사가 아닌 영상을 중심으로 스토리텔링하는 연출이 설명을 반드시 필요로 하는 '시간 여행'과 관계된다면 어떨까? 이 바로 그런 영화다. 운명..

나이트메어 2010, 영혼 없는 악플 같은 영화

루니 마라가 데이빗 핀처와 만나기 전에 찍은 호러 영화 은 정말 속이 편안한 리메이크다. 꿈을 소재로 기괴한 상상력을 펼쳐냈던 원작과 달리 개성이 함몰된 채, 빈약한 등장인물 구성과 대놓고 설명을 해대는 스토리텔링까지 더해져 특별할 게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일취월장한 21세기의 기술로 신비롭고 괴랄한 꿈의 공포를 그려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먹힐 텐데, 감독의 연출엔 그럴 여력이 없어보인다. 긴 상영시간을 요구하는 내용을 (크레딧 제외하고) 1시간 25분 가량에 우겨넣는데 역량을 너무 소모했다. 극과 아무런 관계 없는 오마쥬가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 역시 바쁘게 달려야 할 영화에 악영향을 끼쳤다. 접고 접어 짓이겨서 1시간 25분에 우겨넣은 이야기는 딱히 '흠'이라고 할 부분은 없지만, 극으로서 작용..

영화/리뷰 2020.12.24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프레임 밖에서 일으키는 기적

글쎄. 는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독립영화 혹은 피칠갑 B영화와는 거리가 멀다. 저예산을 커버하기 위한 수단을 강구했다기보다 있는 그대로 돌진했다. 대신 가져다 놓은 게 '아이디어'. 영화의 3중 구성은 일본 저예산 코미디 영화의 전형을 독특한 느낌이 나도록 연결했고, 후반부 리드미컬한 코미디는 치밀하게 연구한 티가 역력한 스릴러로 재해석할 수 있다. 저예산 심야 TV용 좀비 드라마 정도에서 그친다면 좋겠는데, 이걸 생방송 롱테이크로 찍는다라. 영화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조건이 성사되어가는 과정을 관객 앞에 내어놓기 이전에 '완성본'을 먼저 다이렉트로 보여준다. 이런 방식을 취하는 순간, 이제 그 드라마의 프리 프로덕션과 촬영(이자 포스트 프로덕션)은 완전히 '퍼즐 짜맞추기'가 된다. 또한, 작품과 메이킹..

에너미 앳 더 게이트, 클래시컬 전쟁 영화의 마지막 주자

, 와 함께 2차 세계대전을 다룬 대중문화의 '레퍼런스'가 된 . 이후 수도 없이 많은 2차 세계대전 게임, 영화, 드라마 등에서 오마쥬되었으며, 특히 스나이퍼를 다루는 작품이면 를 참고하지 않은 경우가 거의 없다. 그 정도로 매력적인 영화지만, 뜻밖에도 이 영화는 스티븐 스필버그 제작의 두 작품과는 상당히 궤를 달리한다. 조금 과감하게 말하자면 훨씬 올드하다. 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은 전쟁 영화의 패러다임을 바꾼 작품이 여럿 나온 시기다. 특히 2차 세계대전은 , 현대전은 으로 총격씬의 기술이 완성되었다. 전쟁의 한복판에 밀어넣고 서라운드 채널을 각기 다른 화기로 매워버리는 퍼포먼스는 이전에 본 적이 없는 '신기술'에 해당했다. 그저 모노 사운드로 덮어버리던 과거의 영화들과는 궤를 달리한다. ..

영화 고지전, 거부할 수 없는 한국 전쟁의 모순

신인 감독의 패기와 한계가 고스란히 노출된 전쟁영화 . 건너뛰는 요소가 지나치게 많고 편집이 난잡하다는 점 등 다양한 단점이 보이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건 연극적인 연출과 대사다. 조금 더 정확하게, 작위적이라는 표현이 조금 더 어울릴 법한 의 스토리텔링은 상당히 큰 장애물이다. 그러나 의 '모순'엔 그런 신인 감독의 한계를 깨버릴 힘이 있다. 년단위로 교착되어 양군의 시체로 단층을 만들어 쌓은 고지전은 기껏 해봐야 몇 킬로미터 정도 되는 거리를 위해 수십만 명의 인력을 갈아 넣은 전대미문의 전투였다. 단순히 비슷한 자리에서 참호전만 몇 개월해도 적아 구분이 안 된다고 하는 마당에 년 단위로 그만큼 사람을 갈아 넣었으면 적아가 아닌 '(서로를 죽여야 하는)동료'로 인식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은..

영화/리뷰 2020.11.23

애드 아스트라, 그렇게 진정한 아버지가 된다

본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담겨 있다. 의 지향점은 분명히 와는 다르다. 가 각종 장르가 다양하게 포함된 종합 선물에 가까운 반면, 는 싸이코 스릴러(공포 영화를 의미함이 아니다)라는 한 가지 장르에 매달리며, 스릴을 불러오기 위한 도구로 '우주'를 가져다 쓴 덕에 거대하다. 영화가 느긋하다는 이유로 를 예술 영화처럼 받아들이는 사람도 보이지만, , , 등의 여러 우주 영화들이 지나치게 빠르게 달려서 그럴 뿐, 가 특별하게 느린 건 아니다. 로이(브래드 피트 분)의 여정에 달에서 벌어지는 카체이싱, 화성의 카운트다운 시퀀스까지 밀어넣으며 오락성을 분배하고 있다. 크레딧을 제외하면 2시간도 안 되는 영화기에 꽤 촘촘하게 들어간 정상적인 속도의 영화라 생각한다. 우주 다큐멘터리가 떠오르는 OST 쪽이 그런 인상..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물량 공세를 위한 무리수들

를 보고 리뷰를 적지 못 한 것에 대해 나 자신도 이해가 안 갔다. 게다가 블루레이 스페셜 피처를 보고 나면 할 이야기가 생길 거라 말한 적이 있음에도 블루레이가 출시되고 구매한지 한참 지나도록 감상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 방치하다가 간신히 최근 감상했다. 다행히 스페셜 피처를 보기 전에 본편 만으로도 할 얘기가 생겼음에 기뻐해본다. 다만, 이 포스팅은 영화 자체에 대한 리뷰라기보단 왜 내가 이 영화에 몰입하지 못 했느냐에 대한 고민이다. 세상에 둘도 없는 쓰레기 같은 작품조차도 할 말이 생기게 마련이고, 난 그런 작품을 수도 없이 많이 감상해서 리뷰를 남겨왔다. 누군가가 '아니, 이딴 작품을 보고 리뷰를 굳이 왜 남기느냐'라고 의문을 가질 만큼. 그런 내가 어떻게 같이 할 말이 한가득해야 마땅한 영화를 ..

영화 악인전 The Gangster, The Cop, The Devil

사이코패스, 사이코패스에 의한 연쇄 살인을 의심하고 있는 경찰, 피해자이자 유일한 목격자인 조직 폭력배 두목. 영화 은 꼴통 소리 듣는 경찰과 조직 폭력배 두목이 함께 힘을 합쳐서 사이코패스를 잡는다는 동상이몽 이야기를 담았다. 이라는 제목보다는 영어 제목이 조금 더 영화를 잘 표현해주고 있는 것 같다. . 영화는 느낌보다 길이가 짧다. 크레딧을 제외하면 약 1시간 40분. 상당히 복잡한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마무리 단계에 가서 지나치게 많은 걸 생략한 탓으로 보인다. 조직 폭력배 두목이 사이코패스를 잡으려는 이유가 되는 '사업 관계'가 먼저 생략되었다. 조폭 두목은 단순한 복수심으로 개입한 게 아니라, 사업에 방해되는 요소들을 제거하는 도구로 선택했다는 설정이다. 따라서 이 사업의 결과가 간략한 뉴스 ..

넷플릭스 프로젝트 파워, 갈팡질팡 배우 낭비

넷플릭스가 제작한 영화들도 제작비에 따른 '체급'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나 과 같이 정말 스트리밍 서비스의 그것이 맞나 싶을 정도의 제작비가 들어간 영화가 있고, , 처럼 1억 불 이하의 제작비로 만든 오락 영화가 있다. 최근 넷플릭스가 주력으로 하는 쪽은 5천만 불 이상, 1억 불 이하의 액션 영화인 모양이고, 가 이 체급의 영화다. 약을 먹을 경우 딱 5분 동안만 초능력이 생긴다는 설정의 는 그 약으로 희생되고 있는 일반인들과 약의 원천이 되는 소녀를 구출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으로 조셉 고든 레빗과 제이미 폭스를 캐스팅해서 의 샤를리즈 테론, 의 크리스 헴스워스처럼 구색을 갖췄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져봤을 때 이 영화는 도미닉 피시백 원탑의 영화로, 조셉 고든 레빗, 제이미 폭스는 그녀..

영화/리뷰 2020.10.22

기생수 파트2, 영화화가 아닌 그저 실사화

아주 깔끔한 영화 . 좋은 의미의 깔끔함이 아니다. 에서 담지 못 했던 것들을 억지로 우겨넣느라고 평행편집을 이용해 단순히 나열했다. 원작의 에피소드들을 축약한 거라 다행히 산발적이진 않으나, 굳이 좋게 봐줄 이유도 없다. 는 그저 나열하다가 중요한 부분을 건너뛴다. 예를 들어 시청이 기생수들에게 잠식당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이나 신이치가 숨어있는 장소에 사토미가 나타나야 하는 이유 등에서 치명적인 공백이 있다. 시청의 기생수들이야 원작을 읽은 사람들은 적당히 디테일을 채워넣을 수 있다고 치지만, 히토미가 굳이 그 위험한 곳까지 가서 신이치와 정사를 나누는 건 황당한 억지다. 비주얼에선 절반은 긍정, 절반은 부정이다. 일단 전편부터 그렇지만, 원작에 비해서 액션의 비중이 끔찍할 정도로 적다. 기생 생..

영화/리뷰 2020.10.07

기생수 파트1, 원작에게 잔혹한 압축 파라노마

을 보고 처음 리뷰를 남긴 게 일본판 블루레이를 본 뒤였고, 일본판 블루레이를 구매했던 게 2015년이었나 2016년이었나. 그로부터 겨우 5년. 그럼에도 내 머리에 남아 있는 것이라곤 후카츠 에리의 나이를 거스르는 미모 하나뿐이었으니 사실상, 작품 내적으론 인상에 남는 게 하나도 없었던 셈이다. 영화 자체는 꽤 재미있게 봤다는 느낌이 드는 데도 남은 게 없다는 건 역시 전형적인 일본의 망가 실사화였을 가능성을 의미한다. 한국판 블루레이를 구매한 김에 다시 보니 이 가능성이 현실로 돌변해 한 발 다가왔다. '변화'와 '살아간다'는 주제를 가지고 격렬하게 풀어헤친 원작 망가 는 마스터피스다. 아니메가 그런 것처럼 망가 역시 70~90년대의 작품이 가장 격렬했는데, 이후 이나 , 등으로 대변되는 소년 만화의..

영화/리뷰 2020.10.01

넷플릭스 올드 가드, 액받이 무녀가 되는 게 두려운 불멸자들

시대착오적인 불멸자들과 문명인들의 적절한 조화가 돋보이는 영화 . 샤를리즈 테론이 그녀 영화 중에서 가장 멋진 비주얼로 나오는 영화기도 하다. 사방팔방에 카메라가 있는 정보화 시대인 데다 과거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규모의 대학살이 일상다반사처럼 일어나는 현대에 기껏 몇명 되지도 않는 불멸자들이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심지어 신체적 불멸이 아니라 '재생'하는 자들이다. 는 이 불멸자들을 대하는 문명인들의 올바른(!) 자세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문명인. 공동체를 이용해 편리를 추구하고 발전을 도모한다. 그러나 문명이 유지되기 위해선 반드시 누군가는 희생되어야 한다. 과거에는 그 희생양이 왕이었다. 가뭄이 들고, 전쟁에서 패하고, 문명을 효율적으로 이끄는데 실패하면 왕은 희생양이 되어 반란을 맞이하거나..

영화/리뷰 2020.09.25

영화 할로윈 2018, 이 형은 그냥 죽입니다

잠이 엄청 오는데 영화를 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억지로라도 보지 않으면, 집에 쌓여있는 블루레이와 넷플릭스, 웨이브의 영화, 드라마를 다 소화할 수가 없다. 예전처럼 작품을 보고 글을 쓰는 것만으로 돈을 벌 수 없다 보니 점점 영화 보는 빈도가 줄어들어서 블루레이들을 감당할 수가 없더라. 어차피 반쯤 의무감으로 봐도 결국 보면 재미있으니까 그냥 억지로 보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이번에 고른 작품은 . 깜짝 놀라게 하는 장면도 있으니까 잠도 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다. 효과는 없었다. 은 잠을 확 깰 정도로 놀라게 하는 장면은 없다. 어쩌면 1편인 의 분위기를 계승했다고 할 법도 한데, 어마어마한 괴력으로 말 한마디 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순수악' 유키카..가 아니라 마이클 마이어스의, 고..

영화 데스 위시, 놓쳐버린 모순의 힘

일라이 로스가 감독하고 조 카나한이 각본을 썼으며 브루스 윌리스가 주연을 맡은 는 분명히 크레딧에 흐르는 묵직한 이름들 만큼의 결과물은 아니다. 일라이 로스와 조 카나한의 공통된 특징이라고 한다면 치열한 스릴감일 텐데, 의 사건들은 치열함이 거의 보이지 않고, 주인공의 직업인 '의사'가 지닐 수 있는 현실적인 한계도 뛰어넘지 않는다. 무엇보다 아쉬운 점은 영화의 주제인 '모순'이 후반에 흐지부지 된다는 사실이다. 서로 총구를 겨눠 부상을 입은 경찰과 범죄자를 모두 치료할 수밖에 없는 모순된 태도의 의사는 이윽고 자신의 손을 사람을 살리는 것뿐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것에도 사용하게 된다. 이는 미국이 총을 사용하는 이유와 같다. 경찰력이 구석구석 닿을 수 없는 넓은 땅의 미국은 범죄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

영화 곡성 블루레이, 이봐 당신 왜 방관하고 있지?

길고 긴 기다림 끝에 나온 블루레이를 봤다. 나온 지 조금 됐는데도 이제야 감상한 건 나홍진 감독의 컨펌 과정에 의문이 워낙 많아서 뿔이 난 탓이다. 아시다시피 블루레이는 완성도를 위해서 출시일이 늦춰졌음에도(제작사가 판권을 잃기 직전에 출시되었다.) 다소 평범한 결과물이 되었다. 심지어 그 중요한 코멘터리에선 '너무 오래돼서 기억 안 난다'는 이야기가 빈번하게 나온다. 실망스러울 수밖에. 자, 이제 그런 외적인 실망스러움은 접어두고 영화 이야기를 해보자. 아래로 의 스포일러가 담겨 있다. 은 내용을 따라가기 그렇게 어렵지 않은 영화다. 그저 해석해볼 필요가 있는 부분, 그러니까 감독이 명확하게 답을 그려놓지 않은 부분이 있을 뿐이다. 누가 선이고 악인지 비교적 명확하게 정리한 뒤, '뭣이 중헌디?'를 ..

영화 레디 오어 낫, 사마라 위빙 고유의 폭발력

최근 '투쟁'에 최적화된 여배우가 대세의 급물살을 타고 떠올랐다. 사마라 위빙이다. 거대한 눈과 억세 보이는 하관으로 상대를 쏘아보며 얼어붙게 만드는 그녀는 선역이든 악역이든 간에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한다. 도 그런 그녀의 특징이 잘 살아있는 영화다. 영화는 '사냥' 컨셉을 오컬트와 부합해 사마라 위빙을 투쟁으로 몰고 간다. 핏빛에 얼룩진 그녀의 투쟁은 '결혼'이란 지옥(!)에 맞물려 그럴싸하게 흘러가는데, 결혼 생활을 하며 마주할 온갖 난관을 살인의 형태로 엮어놓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영화는 꽤나 격렬하게 비혼주의를 권장하는 꼴이 된다. 다만, 의 장르에 오컬트가 섞여 있다는 점이 마이너스 요소다. 사마라 위빙의 투쟁은 후반부로 갈수록 리얼리즘을 뒤집어쓰면서 고작 '버티기' 이상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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