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우먼 1984를 보고 난 뒤 원더우먼을 보면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을 것이다. 패티 젠킨스가 두 편 모두 촬영 감독으로 매튜 젠슨을 데리고 찍었음에도 영상에 차이가 막심하다. 원더우먼의 촬영이 대단했다기보다 원더우먼 1984의 촬영이 형편없다는 쪽에 더 가깝겠다. 대체 '머선129'란 말이 튀어나오는 막대한 변화에 기가 찰 나름이다.
액션이야 말할 것도 없이 원더우먼이 훨씬 뛰어나다. 원더우먼과 원더우먼 1984의 스턴트 코디네이터가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겠지만, 원더우먼 1984의 스턴트 코디네이터가 딱히 모자란 이들도 아니다. 스타워즈 시리즈, 트랜스포머 시리즈,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등에서 이미 검증을 받은 베테랑들이다. 액션의 분량이 적을 뿐이라고 말하기엔 원더우먼 역시 액션 분량이 많은 편은 아니다. 이런 것들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오늘 원더우먼 n회차 감상을 마치고 약간의 의심에 사로잡혔다. 스티브 트레버라는 놀라운 캐릭터를 창조해내고 액션 연출 초보치곤 꽤 그럴싸한 결과물을 내어놓은 것 모두가 그저 요행이 아닐까하는 의심. 원더우먼이 꽤 괜찮은 촬영을 보여줬던 것도 그저 운이 좋았기 때문은 아닐까. 분명히 매튜 젠슨은 블록버스터에서 한가닥 한다고 말하기 어려운 촬영 감독이다.
과거 원더우먼의 액션을 본 뒤 '어설픈 잭 스나이더 스타일'이라 생각하게 된 이유를 알았다. 원더우먼은 액션씬의 분량에 비해 스턴트 코디네이터가 아주 많았고, 재촬영 분량은 아예 스턴트 코디네이터에게 촬영 감독을 맡기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액션씬은 다시 찍어 고치길 반복했다는 의미다. 또한, 스턴트 코디네이터가 마련한 팀의 무술 담당이 아닌, 새롭게 추가된 무술 감독들이 크레딧에 오르지 않은 채로 무술 안무를 짰다. 새롭게 추가된 무술 감독들은 왓치맨부터 저스티스 리그까지 잭 스나이더와 함께 작업해온 이들이다. 잭 스나이더가 액션에 관여하지 않았더라도 그와 10년 동안 함께한 무술 감독들이 참여했으니 어느 정도 색채가 섞일 수밖에 없지 않겠나.
패티 젠킨스는 원더우먼를 연출하고 영화와 잭 스나이더의 관련성을 스토리에 한정지었다. 그러나 액션에 스턴트 코디네이터의 영향력보다 잭 스나이더와 함께 일하던 무술 감독들의 영향력이 더 크다는 사실을 보아할 때 그건 그녀의 착각이 아니었나 싶다. 원더우먼 1984의 액션이 이를 증명한다. 그리고 패티 젠킨스 본인이 쓴 원더우먼 1984의 각본부터가 새로운 아이디어로 이어지지 못하는 고인물이다. 여전히 감정에 사로잡혀 현실 감각을 잃어버리는 원더우먼과 놀랍도록 판단력과 행동력이 뛰어난 스티브 트레버의 조합은 스티브 트레버를 억지로 되살려놓은 게 결국 전편의 관계성을 답습하기 위함이었나 싶을 만큼 한심하다.
어쨌든 이제 패티 젠킨스는 능력을 재차 검증받아야 하는 기로에 서있다. 3편까지 그녀에게 맡기기로 한 워너의 결정이 옳은 일인지 아닌지 두고 보자. 원더우먼 1984에 대한 이야기는 블루레이를 감상하고 다시 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