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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68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 (2022) 재벌이 참 싫은 라이언 존슨

을 애거사 크리스티에 대한 덕심 가득한 예찬론이라 말한 이유가 따로 있진 않다. 고독하고 절묘한 추리의 영역보다도 사건 안에서 생성된 사람과 사람의 정치적 공생 관계에 대해서 묘사하는데 더 공을 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애거사 크리스티에 대한 예찬론과 별개로 블랑 탐정이 지나치게 뛰어나다는 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지만, 적어도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들보다도 훨씬 그녀의 소설과 흡사한 면모를 보여준다는 점을 부정하긴 어려울 것이다. 영화 역시도 마찬가지다. 그럼 에서 애거사 크리스티에 대한 예찬 말고 뭐가 남느냐고? 글쎄. 솔직히 에는 허점이 꽤 많이 있다. 그리고 적어도 영화의 주제만큼은 진중하고 디테일하게 서술하던 애거사 크리스티와 달리, 라이언 존슨은 그런 것조차 꽤나 익..

영화/리뷰 2023.01.10

블랙 위도우 (2021) 디즈니 플러스 4K HDR 아이맥스 리뷰

는 킬링타임으론 손색이 없는 영화다. 액션의 분량도 많고 그 퀄리티도 상당히 좋은 편. 비록 메인 빌런인 것처럼 알려진 태스크마스터와의 액션이 매우 적었다는 점, 블랙 위도우와 태스크마스터의 듀얼 분량마저도 매우 적었다는 점이 아쉽고, 클라이맥스 액션씬의 완급조절이 엉망이라 공허감을 느끼게 한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될 수 있겠지만, 이런 요소들이 를 킬링타임조차 안 되는 영화로 만들진 않는다. 사실, 가 비판을 받는 이유는 따로 있다. 블랙 위도우에겐 가족이 있었다. 주인공인 나타샤 로마노프의 입을 빌려 '두 개의 가족'이라고 말하지만, 어쨌든 가족이 있었다. 이는 에서 스티브 로저스가 말한 "가족이 있지. 우리."라는 감동적 대사를 코미디의 일환으로 만들어버린다. 심지어 그 대사를 하는 와중에 곁에 있었..

영화/리뷰 2022.11.14

토르 4: 러브 앤 썬더 (2022) 디즈니 플러스 아이맥스 4K HDR 리뷰

특정 의미에서 보자면 는 와 비슷하다. 전편인 가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스타일을 상당히 죽인 결과물, 그러니까 특정 프로젝트 안에 타이카 와이티티를 맞춘 스타일이었다면, 는 명백하게 타이카 와이티티가 주도한 영화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과 에서 보여준 장르 비틀기, 풍자를 넘어선 조롱, 즉흥적 개그 등이 가득 들어가 있다는 얘기다. 완벽한 제임스 건 스타일이었던 와 흡사하지 않은가. 이 사실을 고려하면 개봉 당시 엄청난 혹평에 시달린 것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히어로 영화라기보다 은근히 드라마에 강점이 있는 풍자극에 가깝다. 토르의 시원시원한 액션을 보고 싶은 사람들, 그리고 다양한 장르로 제작되는 디즈니 플러스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작품들로 인해 '히어로의 화끈한 액션' 자체에 상당히 목이 메말라..

영화/리뷰 2022.11.07

영화 퓨리 (2014) 무생물에 부여한 전쟁의 실체

에서 사용하는 무기는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의 중간 즈음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래서 을 보는 내내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가 땡겼었는데, 어느 걸 볼까 고민하다가 오랜만에 를 봤다. 개인적으로 를 상당히 좋아하는데, 시선이 독특하기 때문이다. 일단 액션의 대부분이 밀실에서 이루어진다. 탱크 안이라는 아늑하다면 아늑한 공간에서 벗어나지 않는 전투씬은 스케일이 작아서 황량할 뻔한 영상에 '전쟁'을 채워주는 놀라운 재주를 뽐낸다. 또한, 마치 거대한 로봇들의 전투라도 되는 마냥 공격 하나하나가 묵직한 탱크는 야전에서 보병들이 총알 앞에 노출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스릴을 안겨주는데, 티거 탱크와의 전투 장면이 그 대표적인 예시다. 일반적으로 세계대전을 다루는 전쟁 영화에서 탱크는 무생물처럼 나타나..

왓치맨 얼티밋 컷 (2009) 이 정도로 잘 만들면 말이 필요 없다

아끼고 아끼던 왓치맨 얼티밋 컷 블루레이를 감상. 오래 전에 감상했던 것과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펜데믹을 겪으며 혼란스런 세상을 직접 목격하고 있어서일까. 예전엔 이미 감독판만으로도 앞으로 다시 나올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를 압도적 걸작이라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단편 애니메이션인 검은 수송선을 굳이 넣어서 호흡을 끊을 필요가 있었나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오늘 또 감상하니 '혼란', '모호' 등으로 대변되는 전개와 집단적 최면에 걸리게 하는 도덕적 분열의 결말에 도달하는 왓치맨이 검은 수송선과 얼마나 어울리는 지 알기 쉽게 적절히 편집되어 들어간 것 같다. 이건 원작도 마찬가지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려나. 왓치맨 감독판이던 얼티밋 컷이든 걸작임엔 변함이 없다. 이 정도로 훌륭하면 무언가에 대한 ..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2019) 가장 화려한 스파이디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블루레이가 2019년 말에 나왔으니까 아마 마지막 감상도 그 즈음. 엄청 오래 전인 것처럼 느껴졌는데, 2년도 안 됐다니 신기하다. 하기사 그 사이에 코로나니 뭐니 난리도 아니었으니. 잘 만든 영화다. 1편인 스파이더맨: 홈커밍이 액션이고 뭐고 전부 엉망진창으로 연출해놓곤 특별출연에 가까운 아이언맨의 보조와 마이클 키튼의 카리스마로 대충 떼운 것과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 스파이더맨: 홈커밍의 주변 인물 구조가 이미 앞서서 나왔던 다른 세계관의 스파이더맨과 딱히 다르지 않았다면,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은 학생들, 선생님들이 독특한 구조로 얽히고 설켜 만담에 가깝도록 티키타카가 연결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정신없이 몰아치는 아가리 파이트에 크고 작은 액션을 섞어서 영화 내내 유쾌..

영화/리뷰 2021.08.16

나이브스 아웃 (2019) 영화판에서 탄생한 애거사 크리스티의 후예

걸작의 첫 번째 징조. 뛰어난 배우들이 조연으로 들어가길 자처한다. 두 번째 징조. 그런 작품의 감독이 부정적 의미의 논란에 섰던 감독이다. 나이브스 아웃은 딱 이 징조를 다 가지고 있었다. 라이언 존슨 감독이 대단히 뛰어난 감독임엔 틀림이 없지만, 분명히 전작인 라스트 제다이가 작품성과 별개로 수없이 많은 헤이터를 양성해냈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그런데 그렇게 누군가에겐 걸작 중의 걸작으로, 누군가에겐 할리우드 역사상 최악의 졸작으로 언급되는 작품을 만들어낸 감독의 차기작에 연기파 괴물들이 몰려갔다. 그냥 몰려간 게 아니라 크리스 에반스는 본인이 MCU에 나와서 받은 개런티보다도 제작비가 적은 영화에 조연으로 들어갔다. 아마 많은 사람이 '대체 어떤 영화가 나왔길래 저러지?'란 생각으로 영화를 보러 ..

영화 블랙 위도우 (2021) 액션에 대한 성의가 없다

블랙 위도우는 딱히 할 말이 많지 않은 영화다. 이미 결론이 정해져 있는 이야기인 데다 뛰어난 배우를 잔뜩 데려와선 최악의 방식으로 소모하는 주제에 액션은 기가 찰 정도로 형편없다. 액션의 질이 낮은 대신 액션의 양이 많기에 캡틴 마블처럼 엉망진창인 영화가 되진 않았지만, 어쨌든 가볍게 즐길 거리 이상을 해주지 못한다. 블랙 위도우엔 스탠드 얼론 시리즈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을 무언가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본 시리즈,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 007 시리즈를 짜깁기한 전개 방식에 고민 따윈 어디에도 없는 코미디가 집중력을 저해시킨다. 영화의 결정적 반전은 사전 작업이 극단적일 만큼 빈약해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게다가 영화 속 가족 놀음은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스티브 로저스가 호숫가에서 던진 슬픈 ..

영화/리뷰 2021.08.05

바람의 검심 최종장: 더 비기닝 (2021) 기대를 초월하는 수작

총 다섯 편. 그중의 네 편을 감상. 4편이었던 바람의 검심 최종장: 더 파이널에 절망감을 감출 수 없었던 터라 다섯 번째 작품인 바람의 검심 최종장: 더 비기닝에 대한 기대치는 이보다 더 아래로 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떨어져 있었다. 그냥 보지 말까 하는 생각마저 했을 정도. 고민 끝에 결국 마지막 편까지 쭉 보기는 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넷플릭스를 켜고 감상했는데, 재생하고 30분 만에 머릿속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떠올랐다. "잠깐만, 이건 예상 밖인데?" 일본이 가장 잘하는 걸 가장 좋은 소재를 가져다가 만든 결과가 바람의 검심 최종장: 더 비기닝이다. 전국시대나 막부말을 배경으로 만든 시대극은 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일본의 대표적인 콘텐츠였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약 50년에 걸쳐서 거..

영화/리뷰 2021.08.02

영화 어카운턴트 (2016) 시원하게 울려 퍼지는 격발음

투모로우 워를 보고 답답한 마음에 미칠 지경이었다. 예고편과 클립들만 보고 시원한 총격 음향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지만, 영화의 총격 음향은 비비탄 총을 쏘는 것 같은 수준이었고, 폭발 장면의 음향은 폭죽놀이보다 못하게 느껴졌다. 대부분이 군대를 다녀오는 한국 남자에게 이런 식의 총격 음향은 거의 고문이다. 실제 총소리가 어떤지 알기 때문이다. 이 답답함을 이겨낼 영화를 찾다가, 마침 다시 보려고 꺼내뒀던 어카운턴트 블루레이가 눈에 띄었다. 시원하게 쭉쭉 뻗는 액션 영화는 아니다. 액션이 적은 편은 아니지만, 드라마 쪽에 치중된 (사람을 거리낌 없이 살벌하게 죽여대도 가족 영화라구욧) 성향이라 사람에 따라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장면에 기승전결 없이 '결'만 남겨두는 최근 액..

영화/리뷰 2021.07.29

투모로우 워 (2021) 마이클 베이에 대한 헌사

스타 로드 형님이 나온다고 하는데 의리가 있지 안 볼 순 없지 않은가. 그래서 봤다. 투모로우 워. 생각보다는 신선한 영화다. 현재에서 미래로 이동해 미래에 일어난 전쟁을 막는다는 설정이 신선하기가 쉽지 않은데, 그 과정을 서술하는 방식이 신선했다. 단순무식(?)하게 질주한 덕이다. 타임 패러독스니 에일리언들의 생명학적 접근이니 하는 디테일을 아주 적당하게 대충 둘러대고 넘어간다. 결과는 나와있으나 그걸 굳이 설명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애초에 이 영화를 어마어마한 무언가로 만들 생각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인 듯하고, 이는 나름대로 먹혀든다. 이것저것 현실감을 생각하지 말고 대충 보라는 메시지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그런 제작 의도(?) 그대로 투모로우 워는 가볍게 즐길 거리다. 다만 그 이상, 그 이..

영화/리뷰 2021.07.22

바람의 검심 최종장: 더 파이널 (2021) 그저 한심할 따름

퓨리 블루레이를 볼까 고민하다가 문득 바람의 검심이 떠올랐다. 4편과 5편을 한꺼번에 몰아서 보려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어차피 연결되는 내용도 아니라고 해서 그냥 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바람의 검심 최종장: 더 파이널은 기대 이하다. 영화는 여러 드라마 요소를 산발적으로 풀어놓을 뿐이며, 감상자가 몰입할 여지를 깔끔하게 차단한다. 영화의 호흡이 매우 느린 데도 몰입이 쉽지 않은 이유는 스토리텔링에 심각한 허점이 있기 때문이다. 바람의 검심 최종장: 더 파이널은 장면마다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시작'과 '끝'이 제대로 서술되지 않은 채 엉성하게 끝나는 것들이 대다수인 영화다. 예를 들어보자면 사가라 사노스케가 메구미에게 히무라 켄신의 흉터에 대해 물어보는 장면이 있겠다. 배경은 심각한 자상과 화상 ..

영화/리뷰 2021.07.18

저스티스 리그 스나이더 컷 블루레이, 클래식에 대한 예우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 일명 스나이더 컷 블루레이 감상 완료. 1. VOD의 조악한 화질과 음질로 느꼈던 감흥과 블루레이를 보고 느끼는 감흥이 같을 리가. 아, 잭 스나이더 이 천재적인 괴짜 감독 같으니라고. 중간에 소변이 마려운데 조금만 더 보고 화장실 가자는 생각을 하다가 소변이 마렵다는 걸 잊어버렸다. 바싹 긴장하고 영화를 보다가 몸을 살짝 뒤틀었더니 뒤늦게 변의가 밀려오더라. 기겁해서 화장실로 달려갔다. 2. 개인적으로 잭 스나이더는 이제 영화 연출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클래식에 대한 예우도 갖춰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오락성 하나는 기가 막혔지만 클래식에 대한 예우도, 기승전결의 미학도 모호하기만 했던 데뷔 시절 새벽의 저주나 300과 달리 저스티스 리그 스나이더 컷과 아미 오브 더 데..

영화 사바하 (2019) 매우 성공적인 미스테리 스릴러

사바하는 장재현 감독의 전작인 검은 사제들과 달리 색채가 옅다. 조금 더 디테일하게 설명해보자면, 구마를 깊게 파고 들어가는 검은 사제들과 달리 사바하는 개신교, 불교 소재로 밑밥만 깔아 두고 실제론 오컬트 파헤치기에 주력하고 있는, 사실상 미스터리 추리 스릴러에 가깝다는 얘기다. 모호하게 퓨전을 추구한 탓에 어느 쪽이든 색채가 옅다고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게 사바하의 장점이기도 하다. 사바하는 신앙심을 잃고 칼럼니스트 겸 종교 탐정으로 먹고 사는 목사의 시선으로 사이비 종교를 파고 들어가다가 '진짜'를 만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물론, 목사는 '시선'이 되어줄 순 있어도 당사자가 될 수는 없는 법. (괴상한 이능력 배틀물이 되기 십상이다.) 덕분에 굉장히 독한 영화의 사건들을 속이 편하게 볼 ..

엽문3: 최후의 대결 (2015) 영춘권 vs 영춘권

그러니까 엽위신에겐 드라마 쪽 연출 재능이 정말 없다. 그의 모든 영화가 그래왔다. 오죽하면 드라마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1시간 30분으로 제작된 '도화선'이 그가 만든 영화 중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겠는가. 엽문3: 최후의 대결은 그걸 재차 드러내는 작품이다. 엽문 시리즈는 1편부터 실제 역사와 거리가 있었다. 엽문이 일본 쪽과 대립각을 세운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 제국에 맞서려는 의도와는 거리가 먼데다 그가 홍콩으로 도망친 것은 공산당을 피해서였다. 그는 국민당과 연결되어 약간 활동한 적이 있기 때문에 공산당에게 숙청 당할까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엽문 시리즈에선 일본에 맞서다가 일본 제국을 피해 아내인 장영성과 함께 홍콩에 정착했다는 이야기가 되어있다. 실존 인물 장영성은 잠시 홍콩에 있었을..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2009) 주객 전도, 아가리 파이트

뭘 볼까 고민하다가 대충 아무거나 집어들었더니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블루레이가 잡혔다. 그러고 보니 거의 7년을 안 본 영화다. 혹은 봤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렸거나. 쿠엔틴 타란티노도 가만 보면 주객이 전도되는 경향이 있다. 이게 작업 기간이 길고 각본 수정을 끝없이 하는 감독들의 공통점인데, 처음 기획할 때의 방향성과 몇 년에 걸쳐 각본을 수정하면서 생긴 방향성이 일치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의 경우 제목만 보면 '바스터즈'의 이야기여야 하지만, 실제론 멜라니 로랑이 맡은 쇼샨나의 이야기나 다름이 없다. 주인공인 브래드 피트는 역할의 중요성과 별개로 분량만 보면 한스 대령을 맡은 크리스토프 왈츠와 비슷한 정도다. 참고로 이러한 주객 전도는 왕가위의 영화에서도 매..

영화/리뷰 2021.07.04

캐시트럭 (2021) 가이 리치는 언제나 익숙한 방식으로

회색을 검은색으로 바꿔놓고 배트윙이라 칭한 것처럼, 영화 캐시트럭은 가이 리치가 자신의 스타일을 유지한 채 겉옷만 바꾼 영화다. 시간대를 오가는 연출 방식이나 하이스트에 범죄 느와르를 결합한 장르적 구성 등 이야기 자체는 가이 리치가 항상 해오던 것 그대로. 그의 팬이라면 익숙한 감각이다. 다만 바꿔놓은 색깔이 아주 짙어서 깜짝 놀랐다. 캐시트럭은 가이 리치 특유의 익살스러운 개그, 현실을 초월한 것 같은 캐릭터 등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흔적조차 보이질 않는다. 영화는 시종일관 무겁게 흘러가고, 영화의 액션은 현실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맨몸 액션으로 일약 스타가 된 제이슨 스타뎀을 썼음에도 이 영화에 격투씬은 거의 없다. 대신 들어간 것은 FBI 상부 요원과 비밀리에 협력 관계를 맺고 있..

영화/리뷰 2021.07.02

황비홍 - 천하무인 (1991) 발전된 기술의 복원력이란

디비디 시절부터 홍콩 영화는 '저화질'의 대명사였다. 1년에 수백 편의 영화를 쏟아내던 그 시절의 홍콩은 진공과 용액 처리를 통한 네거티브 필름 보관이라는 개념 자체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으며, 남아 있는 필름도 네거티브나 포지티브는커녕 극장에 배급된 최초 상영본이 최선이었다. 덕분에 HD 리마스터링과 같은 화려한 이름을 달고 나온 디비디들조차 조악한 화질을 자랑했다. 그러나 그런 경향이 2010년대 중반부터 바뀌었다. 4K 시대가 시작되고 필름을 디지털로 트랜스퍼할 때 들어가는 기술이 매우 발달했으며, 어디선가 썩어가던 필름조차 네거티브로 복원한 것처럼 깔끔하게 만들어지는 경우가 꽤 보인다. 이런 기술의 힘을 빌려 복원한 홍콩 영화들은 최신 영화 못지않은 화질을 자랑하기도 하는데, 황비홍 - 천하무인이 ..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2021) 윈드 리버는 운이 아니었다

카르텔, 사막, 설산. 테일러 쉐리던이 몰입해있는 것들은 인간의 손을 벗어난 어떤 존재고, 이들은 단순히 인간의 손을 벗어나는 걸 넘어 극의 중심에서 전개를 좌지우지한다. 영화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은 산불이다. 어떻게 해도 막을 수 없는 압도적인 공포. (카르텔이 이 안에 들어가 있다는 게 더 무섭지만서도) 시카리오 시리즈로 인상적인 각본을 써내려간 테일러 쉐리던은 직접 감독을 맡은 윈드 리버의 설산에 이어서 산불을 이용해 능수능란하게 극을 조작한다. 이미 빌런인 프로페셔널 킬러가 있음에도 강렬한 기세로 몰아치는 불길은 자신이 최후의 빌런임을 자신했다. 테일러 쉐리던이 자연, 그러니까 이 영화의 경우 불을 품어낸 산을 대하는 태도는 다음 대사에서도 알 수 있다. "난 정말 여기가 싫어." "여기도..

영화/리뷰 2021.06.24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 (2018) 처절한 시대 비판

본래 3편이 나오면 다시 보려고 사뒀던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 블루레이인데, 아무래도 3편이 사실상 무산된 듯해서 얼른 봤다. 파괴적인 설정이다.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는 사실상 미국 정치권을 겨냥해서 할 수 있는 최대치까지 밀어붙였다. 영화는 카르텔이 우회적인 방법으로 중동의 폭탄 테러범을 고용해 미국에 폭탄 테러를 일으킨다는 충격적 장면으로 시작한다. 카르텔이 미국을 공격해서 무슨 의미가 있느냐. 911 사태 이후, 코카인의 수요는 늘어나는데 국경 보안이 강화되어 공급이 부족해지는 바람에 코카인 가격이 폭등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같은 이익을 누리려고 한다는 구조다. 911 사태 당시엔 멕시코 카르텔이 미국 시장을 장악한 상태가 아니었지만, 지금은 반독점 상태. 또한, 미국 시민들이 코카인 밀..

아쿠아맨 (2018) 어쩌면 스나이더버스의 최대 걸림돌

아쿠아맨을 다시 재감상하고 드디어 DC 대장정(!)을 완료. 새삼 느끼는 건데, 만약 스나이더버스가 기적적으로 시작된다면(아미 오브 더 데드에 대한 대중의 반응이 불호 쪽에 쏠리면서 워너 브라더스가 의기양양해진 데다 잭 스나이더 역시 이미 차기작 각본을 쓰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리는 걸 보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제일 문제가 되는 건 원더우먼이 아니라 아쿠아맨이다. 캐릭터의 성격이 달라도 너무 다르기 때문. 잭 스나이더는 아틀란티스를 고도의 기술을 가지고 있으되 지상 세계와 교류가 부족해서 고상한 분위기를 띠는 문명을 구상했던 것 같다. 그래서 갑옷을 고전적으로 묘사했고, 벌코는 머리를 풀어헤쳤으며, 메라는 영국식 악센트를 쓴다. 그러나 스나이더버스가 캔슬된 뒤 재설정한 아쿠아맨의 아틀란티스는 지..

영화/리뷰 2021.06.19

영화 노바디 (2021) 누구도 아닌 사람들에게 바치는 액션

올해 개봉한 헐리우드 액션 영화 중에서 그나마 좀 괜찮다는 평을 얻은 영화를 고르라면 노바디가 먼저 떠오른다. 액션이 조금 아쉬웠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래도 노익장을 과시하는 밥 오덴커크의 연기나 다른 참신한 요소로 덮어둘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유형(?)의 영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엄밀히 말해 노바디에 참신함은 아예 없다. 완벽한 잡탕찌개기 때문이다. 레드로 시작해서 더 이퀄라이저를 거치더니 존 윅이 되었다가 잭 리처를 거쳐 더 이퀄라이저로 마무리되는 영화다. 너무 익숙하고 또 익숙해서 헛웃음이 나오는 재미의 영화라고 해야 맞다. 이 영화의 설정이나 액션이 참신하다고 말하는 평론가는 정말 아주 많이 반성해야 한다. 클라이막스에 사용된 무기(?) 중 하나는 유튜브에 유압 프레스로 검색..

영화/리뷰 2021.06.14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 (2019) 경이에 찬 괴수들의 지옥도

얼마 전 개봉한 고질라 vs. 콩에 대한 극단적 호평들을 보면서 난 홀로 갸우뚱했다. 솔직히 어느 쪽이 내 취향이었느냐 묻는다면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 쪽이었기 때문. 이 영화의 인간 파트가 굉장히 민폐스러웠던 것도 사실이고, 허술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인간 파트를 통째로 포기하면 안 되는 것 아닐까. 콩: 스컬 아일랜드와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의 인간 파트가 실패했다고 해서 그걸 포기해버리고 고질라와 킹콩의 싸움에만 집중하는 건 솔직히 내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거대 괴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아예 인간 파트를 빼고 괴수만 나와야 한다는 주장이 틀렸다는 건 아니지만, 다채롭게 꾸며낼 영화가 되려면 꽤나 지양해야 할 태도다. 퍼시픽 림을 떠올려보시라. 이 영화가 로봇과 괴수의 싸움에만 ..

영화 젠틀맨 (2020) 미국, 영국, 러시아 그리고 아일랜드

가이 리치는 아직 살아있다. 영화 젠틀맨을 보고 먼저 떠올린 문장이다. 언젠 죽었느냐고 물을 수 있는데, 그의 개성이 미세하게 묻어나던 알라딘을 보고 나면 죽은 거 아닌가 걱정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킹 아서와 맨 프롬 엉클이 실패하고 모든 걸 놔버린 게 아닌가 해서 바싹 긴장했었다. 다행히 가이 리치는 젠틀맨을 연출함으로써 알라딘은 그저 일종의 일탈이었다고 고백한다. (알라딘이 재미없는 작품이란 얘기는 절대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시길) 젠틀맨은 그야말로 가이 리치의 진수를 보여주는 영화다. 그러니까, 셜록 홈즈, 맨 프롬 엉클, 킹 아서처럼 막대한 제작비를 가지고 한껏 펼쳐낼 수 있는 조건이 아닌, 저예산으로 영국에서 연기파 배우들을 데려다 날카롭게 찍은 범죄 스릴러. 익살스럽고 엉뚱하며 코믹하면서도 잔..

영화 리스타트 (2021) 왜 보스 레벨이 아닐까

영화 리스타트는 의문 부호가 잔뜩 떠오르는 작품이다. 일단, 먼저 떠오르는 의문은 '왜 제목이 리스타트인가'다. 영화는 노골적으로 구세대 게임의 공략을 스토리에 차용한 작품이고, 따라서 원제인 '보스 레벨'이 더 작품에 어울린다. 꼭 제목을 바꿔야 했다면 '최종 보스'나 '마지막 스테이지'와 같은 게임에 써볼 만한 용어를 쓰는 게 더 나았을 것이다. 나라면 '투 비 컨티뉴'라고 지었을 것이다. 영화 자체는 즐길 만하다. 게임이 컨셉인 만큼 여러 아이템이 사방에 배치되어, 죽었다 살아나기를 반복하다가 아이템의 존재를 깨달아 새로운 공략법을 찾아낸다. 미스테리가 풀리는 과정이 짜릿하진 않지만, 부성애를 섞어서 나름 감동적으로 엮어냈다. 다소 벙찌는 엔딩이 아쉽긴한데, 이 정도면 킬링타임으로 나쁘진 않다. 자..

영화/리뷰 2021.06.08

모범시민 (2009) 바닷물 같은 영화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범시민 감독판 블루레이를 다시 꺼내봤다. 아, 답답하다. 패기 넘치고 스릴 넘치게 구성된 전반부와 엉성하고 힘이 빠지는 후반부. 모범시민의 영화적 완성도는 극과 극을 달린다. 스파이들조차 존경하는 컨설턴트가 짜 놓았다는 트랩의 수준이 참담한 수준이라는 게 제일 문제. 10년 동안 법률 공부도 상당히 했다는 설정도 전개에 그다지 써먹질 않은 탓에 머리를 굴려볼 구석조차 별로 없다. 심지어는 메인 빌런이 정의롭기라도 한 것처럼 엔딩의 한 축을 장식하고 있으니 기가 찰 따름. 사실, 이건 이미 모범시민을 여러 차례 감상한 뒤라 명백하게 기억하고 있는 바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계속 보게 되는 이유는 압도적인 전반부 때문. 자비 따윈 어디에도 없는 다크 히어로 그 자체의 주인공이 특정 조건..

영화/리뷰 2021.06.05

엽문2 (2010) 과하면 없는 것만도 못하다던가

영국산 사이코패스와 엽문의 대결. 엽문2의 하이라이트는 이 엉뚱한 대결으로 근사하게 흘러갈 뻔했던 이야기를 엉망으로 만든다. 전반부 엽문2의 핵심은 '갈등'에 있었다. 전작인 엽문이 갈등 요소를 엽문의 압도적인 실력과 '일본 뿌리기'로 배제해버리는 바람에 조금 허무했던 것과 달리 엽문2는 엽문과 홍콩에 자리잡고 있던 다른 사부들이 갈등을 일으키는, 블랙코미디가 배제된 '사부: 영춘권 마스터'를 떠올릴 수 있을 영화가 될 뻔했다. 그러나 영화는 조금씩 밑밥을 뿌려두던 영국 권투 챔피언과 홍진남의 결투로 급반전을 이룬다. 게다가 챔피언(을 비롯한 주변 영국인들)이 완벽한 사이코패스라서 홍콩영화에서 자주 봤던 국수주의적 전개와도 차별화된다. 과하다는 얘기다. 영춘권과 홍가권은 홍콩을 중심으로 퍼진 대표적인 무..

아미 오브 더 데드, 또 다시 저평가되는 잭 스나이더

아미 오브 더 데드를 드디어 봤다. 그간 온갖 반응이 쏟아져나왔는데, 워낙 호불호가 갈리는 바람에 어느 한 쪽의 분위기에 쏠리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천천히 봤다.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솔직히 그간 잭 스나이더의 영화들과 달리 리뷰의 내용이 길어질 것 같지도 않고. 아래로는 아미 오브 더 데드의 강력한 스포일러가 담겨 있으므로 주의. 잭 스나이더의 영화에 대해 호불호가 갈리는 이유가 뭘까? 스토리텔링 기법이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잭 스나이더는 스토리텔링을 영상으로 한다. 영상을 텍스트 삼아서 내러티브를 써내려간다는 의미다. 잭 스나이더 스타일 스토리텔링의 아주 쉬운 사례, 혹은 이미 많이 알려진 사례를 보자면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 두 히어로가 대결할 때 배트맨이 슈퍼맨의 공격을 너무 손쉽게 막아..

영화/리뷰 2021.05.28

버즈 오브 프레이, 이젠 평론가 믿으면 큰일 난다

평론가들을 마냥 믿는 게 좋지 않다는 건 알지만, 이건 좀 쇼킹하다. 버즈 오브 프레이를 첫 감상했던 당시에 실망한 건 그저 내가 컨디션이 아주 안 좋았기 때문이려니 했다. 평론가들이 이토록 호평한다면 그럭저럭 볼 만한 구석이 있다는 얘기가 있음에도 내가 놓쳤다는 뜻일 수 있으니 할리 퀸에 대한 의리(?)로 다시 감상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블루레이를 구매해 두 번째 감상을 시도한 것이다. 부제에 할리 퀸이 들어간 걸 보면 알 수 있듯이 '버즈 오브 프레이'라는 자경단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할리퀸과 엮었기 때문에 버즈 오브 프레이인데, 버즈 오브 프레이의 구성원들은 이렇다 할 갈등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완벽하게 따로 놀며, 할리퀸 역시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갈등은커녕 얼굴조차 클라이맥스에 들..

킬러의 보디가드 (2017) 예쁘고 화려하고 가볍다

뭘 보고 잘까 고민만 거듭하다가 이러다 아무것도 못 보고 자게 생겼구나 싶어서 냅다 아무거나 집은 영화가 킬러의 보디가드. 최근 킬러의 와이프의 보디가드, 그러니까 킬러의 보디가드2 아니 킬러들의 보디가드.... 뭐가 됐던 그 예고편이 공개되고 나서부터 다시 감상하려고 각 잡던 타이틀이다. 마침 잘 됐다 싶었다. 영화는 유럽의 아리따운 자태를 마냥 예쁘게 펼쳐낸다. 암스테르담 액션을 비롯 일부 장면에 사용된 레드 에픽 드래곤은 꽤나 노골적으로 '유럽에 관광오세요'라고 말하는 듯하다. 아리 알렉사 XT 촬영분의 아나몰픽 렌즈 왜곡에 의한 화질 저하가 레드 에픽 드래곤의 놀라운 색농도, 선예도와 극단적으로 비교되기 때문에 금방 눈에 띄는 편이다. 레드 에픽 드래곤이 사용된 장면은 대부분 유럽의 관광지를 비추..

영화/리뷰 2021.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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