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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문2 (2010) 과하면 없는 것만도 못하다던가

즈라더 2021. 6. 3. 00:00

 영국산 사이코패스와 엽문의 대결. 엽문2의 하이라이트는 이 엉뚱한 대결으로 근사하게 흘러갈 뻔했던 이야기를 엉망으로 만든다. 


 전반부 엽문2의 핵심은 '갈등'에 있었다. 전작인 엽문이 갈등 요소를 엽문의 압도적인 실력과 '일본 뿌리기'로 배제해버리는 바람에 조금 허무했던 것과 달리 엽문2는 엽문과 홍콩에 자리잡고 있던 다른 사부들이 갈등을 일으키는, 블랙코미디가 배제된 '사부: 영춘권 마스터'를 떠올릴 수 있을 영화가 될 뻔했다. 그러나 영화는 조금씩 밑밥을 뿌려두던 영국 권투 챔피언과 홍진남의 결투로 급반전을 이룬다. 게다가 챔피언(을 비롯한 주변 영국인들)이 완벽한 사이코패스라서 홍콩영화에서 자주 봤던 국수주의적 전개와도 차별화된다. 과하다는 얘기다.


 영춘권과 홍가권은 홍콩을 중심으로 퍼진 대표적인 무술로, 심지어 그 뿌리도 같다고(당연히 영춘권 쪽과 홍가권 쪽 둘 중의 하나는 완벽한 거짓말을 하고 있다. 뿌리가 같다고 하기엔 너무 다른 무술이라.) 알려졌기 때문에 두 무술 사부의 대결로 영화를 끌고 갔어야 맞다. 어디에선 홍금보가, 어디에선 견자단이 엽문2의 영국 대 중국의 구도를 정말 싫어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소문이 사실이라면 영국 척살이라는 국수주의적 영화를 많이 찍어온 홍콩의 대배우들도 질색하는 전개였다는 얘기다. 영춘권 대 홍가권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다행히 엽문3가 엽문의 정통성을 의심하던 홍콩의 다른 영춘권 사부들과 엽문의 갈등에서 모티브를 얻어. 장천지 대 엽문의 대결 구도를 만들어낸다. 이 이야기는 엽문3 블루레이를 보고 다시 이야기하기로.)

 

 결국 홍가권의 사부인 홍진남과 챔피언의 경기는 홍진남의 패배로 끝난다. 사실, 영화 속 참혹한 인권 경시로 인한 그 결과는 외신에서도 대대적으로 보도 되어야 마땅한 수준이다. 그러나 챔피언의 사이코패스적 태도는 경기가 끝나고 나서도 이어졌으며, 과하고 비현실적이다. 영국의 권투 챔피언이 준비도 되지 않은 중국 무술가를 그런 꼴로 만들고 사이코패스처럼 비웃었다면 영국의 식민지 처우에 대한 비난이 유럽 전역에 퍼졌을 것이고 사고를 친 인물이 '챔피언'이란 걸 고려해볼 때 타이틀을 박탈당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무리수라는 것이다. 설사 인종차별주의자라고 해도 저런 사고를 쳐놓고 넘어갈 순 없거든. 엽문 시리즈가 실제 엽문의 인생과 완벽하게 다르다곤 해도 어쨌든 '현실'을 배경을 하고 있으니 어느 정도의 리얼리티는 있어야 하지 않느냐하는 생각이다.

 


 엽문2는 당연히 엽문에 의해 사이코패스 영국인 챔피언이 패배하고, 사이코패스 영국인 심판, 사이코패스 경찰 간부들이 차례로 몰락하며 끝난다. 스포일러라고 할 것도 없이 예상했던 그대로의 이야기. 엽문과 홍진남의 갈등처럼 결말을 알 수 없었을 기가 막힌 아이템을 포기하고 극단적 사이코패스들을 내세운 국수주의적 전개를 택함으로써 작품성을 날려버렸다. 


 그래도 다행인 건 엽위신 감독의 액션 연출이 살아있었다는 점. 엽위신은 특정 공간에서 벌어지는 액션에 대단히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감독이다. 그게 링과 같이 좁고 반동력이 있는 공간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전반적으로 나이브했던 엽문2의 액션은 엽문과 챔피언이 링 위에 서는 순간부터 완전히 달라지고, 엽위신은 기다렸다는 듯 액션 연출의 마법을 부린다. 적어도 클라이막스를 장식한 마지막 경기 장면 만큼은 이제 홍콩에서도 보기 어려운 클라스다.


 노바에서 정식으로 출시한 엽문2 블루레이의 화질은 홍콩판과 대동소이하다. 전편이 북미판과 홍콩판 사이에 색조의 차이가 있었던 것과 달리 엽문2는 거의 모든 나라가 같은 색과 질을 보이므로 홍콩이나 북미의 소스를 가지고 작업했을 한국 역시 당연히 비슷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홍콩판과 북미판이 그랬던 것처럼 매우 훌륭한 화질을 보여준다. 35mm 필름에서 2K로 끌어낼 수 있는 최대치의 해상력이다. 필름 촬영 특유의 조명 관용도가 객석으로 그림자를 깔아주는 마지막 경기 장면만 하더라도 그 스무스한 계조에 감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충도의 멋진 촬영을 블루레이가 샤프하게 담아냈다고 생각한다.

 

 이하 스크린샷은 엽문2 정발판 블루레이의 원본 사이즈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