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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55

넷플릭스 정이 (2023) 앞과 뒤가 다른 연상호 감독의 스탠스

제작비의 한계 때문일까. 는 조금 게으른 편이다. 연상호 감독 프로필, 필모그래피를 통틀어서 펼쳐진 각본 스타일이나 연출 스타일을 고려할 때 는 분명히 더 멀리 나갔어야 하는 작품임에도 그렇지 않았다. 는 초반부 연상호 감독의 작품이 대체로 그런 것처럼 배배 꼬인 인간상을 한껏 뿌려놓는다. 애초에 딸이 어머니를 실험한다는 '일반적인 설정'과 까마득히 먼 설정을 밑바탕에 깔아 뒀다는 점에서 이미 연상호답다. 게다가 연상호는 그간 많은 SF 영화에서 언급했어야 마땅함에도 언급되지 않은 걸 건드린다. 인간의 뇌를 복제할 수 있게 되는 것과 영생이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것. 그저 자신의 복제품일 뿐이지, 자신이 영생을 누리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 복제를 통한 '영생'마저도 A타입부터 ..

영화/리뷰 2023.01.24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 (2022) 재벌이 참 싫은 라이언 존슨

을 애거사 크리스티에 대한 덕심 가득한 예찬론이라 말한 이유가 따로 있진 않다. 고독하고 절묘한 추리의 영역보다도 사건 안에서 생성된 사람과 사람의 정치적 공생 관계에 대해서 묘사하는데 더 공을 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애거사 크리스티에 대한 예찬론과 별개로 블랑 탐정이 지나치게 뛰어나다는 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지만, 적어도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들보다도 훨씬 그녀의 소설과 흡사한 면모를 보여준다는 점을 부정하긴 어려울 것이다. 영화 역시도 마찬가지다. 그럼 에서 애거사 크리스티에 대한 예찬 말고 뭐가 남느냐고? 글쎄. 솔직히 에는 허점이 꽤 많이 있다. 그리고 적어도 영화의 주제만큼은 진중하고 디테일하게 서술하던 애거사 크리스티와 달리, 라이언 존슨은 그런 것조차 꽤나 익..

영화/리뷰 2023.01.10

스타워즈 오리지널 트릴로지, 디즈니 플러스의 4K HDR 리뷰

2000년 즈음에 아직 꼬꼬마였던 내가 가지고 있던 디비디 중에 이 있었다. 그 디비디를 디비디와 함께 수백 번을 본 것 같은데, 영화가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가지고 있는 디비디가 몇 개 되지 않아서다. 당시만 하더라도 난 이전에 나왔던 4~6편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런 내가 시리즈에 열광하기 시작했던 건 를 보고 나서였다. 극장에서 보고 감탄사를 얼마나 내뱉었는지 모른다. 거기에 때마침 스타워즈 오리지널 트릴로지의 리마스터링 디비디가 나왔었고, 한참 디비디 구매와 감상에 푹 빠져 있었던 나는 냅다 구매해 끝도 없이 봤다. 놀라운 화질과 음질로 재탄생한 (그리고 일부 고해상도 애니메이팅 특수효과를 굳이 저해상도 CG로 바꿔서 나온) 오리지널 트릴로지 디비디는 순식간에 내 보물이 되었고, 난 이 시..

영화/리뷰 2022.11.19

블랙 위도우 (2021) 디즈니 플러스 4K HDR 아이맥스 리뷰

는 킬링타임으론 손색이 없는 영화다. 액션의 분량도 많고 그 퀄리티도 상당히 좋은 편. 비록 메인 빌런인 것처럼 알려진 태스크마스터와의 액션이 매우 적었다는 점, 블랙 위도우와 태스크마스터의 듀얼 분량마저도 매우 적었다는 점이 아쉽고, 클라이맥스 액션씬의 완급조절이 엉망이라 공허감을 느끼게 한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될 수 있겠지만, 이런 요소들이 를 킬링타임조차 안 되는 영화로 만들진 않는다. 사실, 가 비판을 받는 이유는 따로 있다. 블랙 위도우에겐 가족이 있었다. 주인공인 나타샤 로마노프의 입을 빌려 '두 개의 가족'이라고 말하지만, 어쨌든 가족이 있었다. 이는 에서 스티브 로저스가 말한 "가족이 있지. 우리."라는 감동적 대사를 코미디의 일환으로 만들어버린다. 심지어 그 대사를 하는 와중에 곁에 있었..

영화/리뷰 2022.11.14

토르 4: 러브 앤 썬더 (2022) 디즈니 플러스 아이맥스 4K HDR 리뷰

특정 의미에서 보자면 는 와 비슷하다. 전편인 가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스타일을 상당히 죽인 결과물, 그러니까 특정 프로젝트 안에 타이카 와이티티를 맞춘 스타일이었다면, 는 명백하게 타이카 와이티티가 주도한 영화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과 에서 보여준 장르 비틀기, 풍자를 넘어선 조롱, 즉흥적 개그 등이 가득 들어가 있다는 얘기다. 완벽한 제임스 건 스타일이었던 와 흡사하지 않은가. 이 사실을 고려하면 개봉 당시 엄청난 혹평에 시달린 것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히어로 영화라기보다 은근히 드라마에 강점이 있는 풍자극에 가깝다. 토르의 시원시원한 액션을 보고 싶은 사람들, 그리고 다양한 장르로 제작되는 디즈니 플러스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작품들로 인해 '히어로의 화끈한 액션' 자체에 상당히 목이 메말라..

영화/리뷰 2022.11.07

어벤져스 4: 엔드게임 (2019) 아이맥스 4K HDR 리뷰

은 그런 영화다. 어린 시절 왜인지 모르지만 아빠가 집에 돌아오실 때마다 기분이 좋아져서 발라당 뒤집어질 때 같은 영화. 이뤄지지 않은 첫사랑 상대에게 짓궂은 장난을 치던 당시의 감각을 맛보게 하는 영화. 분명히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되지만 볼 때마다 설레게 되는 영화. 은 팬서비스로 가득 찬 영화다. 놀라웠던 초반을 딛고 일어선 어벤져스가 '타임 하이스트'로 해냈던 건 시작부터 끝까지 팬서비스뿐이었으며, 이는 이 영화를 비판할 수 있는 정당한 이유가 된다. 이런 반쪽짜리 영화를 두고 보통 '썩었다'라고 평하며 다시 거들떠도 안 보는 게 나란 인간이지만, 은 차마 그럴 수가 없다. 클라이맥스 액션씬부터 에필로그에 걸쳐서 이어지는 액션과 드라마의 훌륭함 때문이다. 에필로그까지 전부 보고 나면 장대한 TV 시..

영화/리뷰 2022.11.01

앤트맨과 와스프 (2018) 디즈니 플러스 4K HDR 아이맥스 리뷰

법칙 따위는 있는 그대로 무시해버리는 주제에 세계관은 양자 영역까지 뻗어가는 영화 . 이 황당무계한 역설이야말로 영화의 정체성을 말해주며, 영화를 흥미진진하게 하는 요소다. 물리 법칙을 무시하면 액션을 마음대로 재정의할 수 있고, 양자 물리학은 언제나 미지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영화의 액션은 전반적으로 예측을 불허하며, 여기에 미니멀한 군상극 형태를 띠게 함으로써 전개 역시 예측할 수 없도록 했다. 아마 를 처음 감상하는 사람은 도저히 다음을 예측할 수가 없어서 빨려 드는 것처럼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는 영리하기도 하다. 이런 유형의 작품은 자칫 늘어지는 구간을 길게 잡았다가 그저 지루한 영화가 될 수도 있다. 심지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작품들 중에선 드물게 작은 공간에서 가족적인 이..

영화/리뷰 2022.10.29

디즈니 플러스에만 마블 영화의 아이맥스를 넣어준 이유

디즈니 플러스를 뒤적이다가 살짝 짜증이 났다. 이전 포스팅에서 말한 것처럼 최신작인 도 디즈니 플러스엔 아이맥스 버전으로 올라와있다. 반면, 의 블루레이에는 아이맥스 버전이 들어가 있지 않다. 난 바로 얼마 전에 블루레이를 구매했고, 아직 감상조차 하지 않았다. 속이 터질 수밖에. 디즈니 플러스가 들어올 줄 몰랐던 것도 아니니 자신을 탓하라는 말은 마시라. 디즈니 플러스라고 해도 같은 스펙 안에서 1:1 비교를 하면 블루레이, 4K 블루레이가 압도적으로 뛰어난 화질과 음질을 보여준다. 또한, 그간 디즈니 플러스엔 아이맥스 버전이 없었다. 한국에 출시하면서 아이맥스를 넣은 것이다. 당시엔 애플티비를 구매할 예정도 없었기 때문에 디즈니 플러스를 4K로 볼 방법조차 없었다. 한국 오픈에 맞춰서 아이맥스를 공개..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2015) 오랜만에 보고 끄적끄적

오랜만에 를 감상. 1. 사소한 헛점 같은 건 보이지도 않게 하는 필사적 질주. 볼 때마다 놀라곤 하는데, 필요한 것들만 몰아넣고 쉬어가는 타임조차 주지 않는 기가 막힌 편집 덕이다. 아날로그 기법을 많이 사용해 찍은 영화라, 다양한 종류의 카메라를 사방에 배치해두고 찍어야 했을 터. 이야기가 이어지도록 완성시키는 편집 과정은 미칠듯한 노가다의 향연이었을 것이다. 정말 놀라운 영화다. 2. 영화의 평가라는 건 잠깐 쉬어가는 타임이 꾸준히 있어야 조금이나마 정리가 되는 법이다. 그러나 엔 쉬어가는 타임이 아예 없고, 눈을 떼서는 안 되는 장면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평론가들은 꽤나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보통 평론가들은 메모장과 팬을 앞에 두고 영화를 보는 중간 중간 글을 적기 때문에 영화가 끝나는 시점이 되..

영화/리뷰 2021.11.14

영화 케이트 (2021) 넷플릭스가 가장 잘하는 것

넷플릭스가 이제 자사의 구독자들이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 깨달은 느낌이다. 과 가 그 예시일 것이다. 돈을 잔뜩 썼다는 느낌의 영화를 만들기보단 적절한 배우들과 괜찮은 시나리오를 가져다 1) 현장감 있는 총격씬, 2) 타격감과 잔혹함을 두루 갖춘 액션씬, 3) 고통에 힘겨워하는 주인공 4) 어렵지 않은 반전 등을 섞는 게 더 효과적이라 본 모양이다. 영화 는 앞서 말한 과 가 공유하는 세 가지 요소를 고스란히 이어받은 영화다. 특히 주인공이 겪는 고통은 앞선 두 영화보다 훨씬 강렬해서 '과연 주인공이 결말에 어떻게 될까?'하는 마음을 불러일으켜 끝까지 보게 한다. 이전 넷플릭스표 영화들과 차별화되는 만의 개성이라고 한다면, 오로지 주인공인 케이트의 시선으로만 이야기를 전개하는 덕에 따라가기 쉽다는 점이다..

영화/리뷰 2021.10.19

'더 배트맨' 예고편, 방탄 배트맨의 우격다짐

공식 예고편이 공개되었다. 솔직히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매력적이다. 1. 자조적이고 담담한 분위기, 빛을 활용하는 방식은 마치 드니 빌뇌브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시네마 스코프 화면임에도 배트맨의 전신이 잦게 등장하는 건 로버트 패틴슨의 슬림함을 강조하기 위함인가. 2. 약간 섬찟한 팝 음악과 내레이션, 슬로우 모션 활용은 잭 스나이더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잭 스나이더는 예고편을 보고 "어썸"이란 메시지를 남겼고, 맷 리브스 감독은 "내게 있어서 굉장히 의미 있는 칭찬"이라며 고마워했다. 3. 배트맨의 슈트는 언제나 방탄이었다. 그러나 그 기능(?)을 어느 정도라도 활용한 작품은 정도가 전부였는데, 은 아예 노골적으로 방탄 기능을 활용한다. 사실 이게 맞는 방식이긴하다. 언제까지 총을 들고 돌진해서 ..

영화 퓨리 (2014) 무생물에 부여한 전쟁의 실체

에서 사용하는 무기는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의 중간 즈음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래서 을 보는 내내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가 땡겼었는데, 어느 걸 볼까 고민하다가 오랜만에 를 봤다. 개인적으로 를 상당히 좋아하는데, 시선이 독특하기 때문이다. 일단 액션의 대부분이 밀실에서 이루어진다. 탱크 안이라는 아늑하다면 아늑한 공간에서 벗어나지 않는 전투씬은 스케일이 작아서 황량할 뻔한 영상에 '전쟁'을 채워주는 놀라운 재주를 뽐낸다. 또한, 마치 거대한 로봇들의 전투라도 되는 마냥 공격 하나하나가 묵직한 탱크는 야전에서 보병들이 총알 앞에 노출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스릴을 안겨주는데, 티거 탱크와의 전투 장면이 그 대표적인 예시다. 일반적으로 세계대전을 다루는 전쟁 영화에서 탱크는 무생물처럼 나타나..

왓치맨 얼티밋 컷 (2009) 이 정도로 잘 만들면 말이 필요 없다

아끼고 아끼던 왓치맨 얼티밋 컷 블루레이를 감상. 오래 전에 감상했던 것과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펜데믹을 겪으며 혼란스런 세상을 직접 목격하고 있어서일까. 예전엔 이미 감독판만으로도 앞으로 다시 나올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를 압도적 걸작이라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단편 애니메이션인 검은 수송선을 굳이 넣어서 호흡을 끊을 필요가 있었나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오늘 또 감상하니 '혼란', '모호' 등으로 대변되는 전개와 집단적 최면에 걸리게 하는 도덕적 분열의 결말에 도달하는 왓치맨이 검은 수송선과 얼마나 어울리는 지 알기 쉽게 적절히 편집되어 들어간 것 같다. 이건 원작도 마찬가지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려나. 왓치맨 감독판이던 얼티밋 컷이든 걸작임엔 변함이 없다. 이 정도로 훌륭하면 무언가에 대한 ..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2019) 가장 화려한 스파이디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블루레이가 2019년 말에 나왔으니까 아마 마지막 감상도 그 즈음. 엄청 오래 전인 것처럼 느껴졌는데, 2년도 안 됐다니 신기하다. 하기사 그 사이에 코로나니 뭐니 난리도 아니었으니. 잘 만든 영화다. 1편인 스파이더맨: 홈커밍이 액션이고 뭐고 전부 엉망진창으로 연출해놓곤 특별출연에 가까운 아이언맨의 보조와 마이클 키튼의 카리스마로 대충 떼운 것과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 스파이더맨: 홈커밍의 주변 인물 구조가 이미 앞서서 나왔던 다른 세계관의 스파이더맨과 딱히 다르지 않았다면,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은 학생들, 선생님들이 독특한 구조로 얽히고 설켜 만담에 가깝도록 티키타카가 연결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정신없이 몰아치는 아가리 파이트에 크고 작은 액션을 섞어서 영화 내내 유쾌..

영화/리뷰 2021.08.16

바람의 검심이 우익 영화라고? 그럴리가 있나

바람의 검심: 전설의 최후에는 원작엔 없던 이토 히로부미를 등장시켜서 얼빵한 정치인으로 그려놨다. 바람의 검심 최종장: 더 비기닝의 가츠라 코고로우의 입에서 자신이 요시다 쇼인의 후계자임을 명백히하는 대사가 나오고, 유키시로 토모에는 큰 것을 위해 작은 것을 거리낌 없이 해치우는 게 과연 옳은 일이냐고 묻는다. 당연히도 영화의 연출은 유키시로 토모에에게 상당히 손을 들어준다. 솔직히 이 정도면 오오토모 케이시 감독의 성향이 꽤 노골적으로 드러난 게 아닌가 싶다. 참고로 가츠라 코고로우 역할을 맡은 타카하시 잇세이는 '스파이의 아내'에서 일본 제국의 만행을 까발리는 역할을 맡은 바 있다. 원작 만화를 그린 와츠키 노부히로 역시 일본 제국을 애둘러 비판하는 문구를 만화에 넣은 적이 있다. 지금도 같은 생각인..

나이브스 아웃 (2019) 영화판에서 탄생한 애거사 크리스티의 후예

걸작의 첫 번째 징조. 뛰어난 배우들이 조연으로 들어가길 자처한다. 두 번째 징조. 그런 작품의 감독이 부정적 의미의 논란에 섰던 감독이다. 나이브스 아웃은 딱 이 징조를 다 가지고 있었다. 라이언 존슨 감독이 대단히 뛰어난 감독임엔 틀림이 없지만, 분명히 전작인 라스트 제다이가 작품성과 별개로 수없이 많은 헤이터를 양성해냈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그런데 그렇게 누군가에겐 걸작 중의 걸작으로, 누군가에겐 할리우드 역사상 최악의 졸작으로 언급되는 작품을 만들어낸 감독의 차기작에 연기파 괴물들이 몰려갔다. 그냥 몰려간 게 아니라 크리스 에반스는 본인이 MCU에 나와서 받은 개런티보다도 제작비가 적은 영화에 조연으로 들어갔다. 아마 많은 사람이 '대체 어떤 영화가 나왔길래 저러지?'란 생각으로 영화를 보러 ..

영화 블랙 위도우 (2021) 액션에 대한 성의가 없다

블랙 위도우는 딱히 할 말이 많지 않은 영화다. 이미 결론이 정해져 있는 이야기인 데다 뛰어난 배우를 잔뜩 데려와선 최악의 방식으로 소모하는 주제에 액션은 기가 찰 정도로 형편없다. 액션의 질이 낮은 대신 액션의 양이 많기에 캡틴 마블처럼 엉망진창인 영화가 되진 않았지만, 어쨌든 가볍게 즐길 거리 이상을 해주지 못한다. 블랙 위도우엔 스탠드 얼론 시리즈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을 무언가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본 시리즈,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 007 시리즈를 짜깁기한 전개 방식에 고민 따윈 어디에도 없는 코미디가 집중력을 저해시킨다. 영화의 결정적 반전은 사전 작업이 극단적일 만큼 빈약해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게다가 영화 속 가족 놀음은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스티브 로저스가 호숫가에서 던진 슬픈 ..

영화/리뷰 2021.08.05

바람의 검심 최종장: 더 비기닝 (2021) 기대를 초월하는 수작

총 다섯 편. 그중의 네 편을 감상. 4편이었던 바람의 검심 최종장: 더 파이널에 절망감을 감출 수 없었던 터라 다섯 번째 작품인 바람의 검심 최종장: 더 비기닝에 대한 기대치는 이보다 더 아래로 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떨어져 있었다. 그냥 보지 말까 하는 생각마저 했을 정도. 고민 끝에 결국 마지막 편까지 쭉 보기는 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넷플릭스를 켜고 감상했는데, 재생하고 30분 만에 머릿속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떠올랐다. "잠깐만, 이건 예상 밖인데?" 일본이 가장 잘하는 걸 가장 좋은 소재를 가져다가 만든 결과가 바람의 검심 최종장: 더 비기닝이다. 전국시대나 막부말을 배경으로 만든 시대극은 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일본의 대표적인 콘텐츠였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약 50년에 걸쳐서 거..

영화/리뷰 2021.08.02

영화 어카운턴트 (2016) 시원하게 울려 퍼지는 격발음

투모로우 워를 보고 답답한 마음에 미칠 지경이었다. 예고편과 클립들만 보고 시원한 총격 음향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지만, 영화의 총격 음향은 비비탄 총을 쏘는 것 같은 수준이었고, 폭발 장면의 음향은 폭죽놀이보다 못하게 느껴졌다. 대부분이 군대를 다녀오는 한국 남자에게 이런 식의 총격 음향은 거의 고문이다. 실제 총소리가 어떤지 알기 때문이다. 이 답답함을 이겨낼 영화를 찾다가, 마침 다시 보려고 꺼내뒀던 어카운턴트 블루레이가 눈에 띄었다. 시원하게 쭉쭉 뻗는 액션 영화는 아니다. 액션이 적은 편은 아니지만, 드라마 쪽에 치중된 (사람을 거리낌 없이 살벌하게 죽여대도 가족 영화라구욧) 성향이라 사람에 따라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장면에 기승전결 없이 '결'만 남겨두는 최근 액..

영화/리뷰 2021.07.29

아미 오브 더 데드: 도둑들 예고편, 아미 오브 더 데드: 라스 베가스 관련 정보

넷플릭스는 예정대로 이 세계관을 크게 펼칠 예정인 모양이다. 이미 촬영에 들어간 TV 시리즈 아미 오브 더 데드: 라스 베가스도 있고, 속편에 잭 스나이더가 돌아온다는 기사도 올라왔었다. 그리고 아미 오브 씨프의 티저 예고편이 공개되었다. 흥미롭게도 아미 오브 씨프의 감독이 주인공을 맡은 마치아스다. 이미 아마존 오리지널 독일 드라마를 연출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는 또한 아미 오브 씨프의 프로듀서로도 참여했다. 음악은 정키XL이 그대로 맡지만, 잭 스나이더는 원안과 제작에만 참여하고 이른바 말하는 '잭 스나이더 사단'은 스턴트부터 DI까지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대신 아미 오브 더 데드: 라스 베가스는 잭 스나이더가 적극 협조하는 쪽이다. 크리에이터인 제이 올리비아의 보조로 들어간 모양인 데다 일부 에..

투모로우 워 (2021) 마이클 베이에 대한 헌사

스타 로드 형님이 나온다고 하는데 의리가 있지 안 볼 순 없지 않은가. 그래서 봤다. 투모로우 워. 생각보다는 신선한 영화다. 현재에서 미래로 이동해 미래에 일어난 전쟁을 막는다는 설정이 신선하기가 쉽지 않은데, 그 과정을 서술하는 방식이 신선했다. 단순무식(?)하게 질주한 덕이다. 타임 패러독스니 에일리언들의 생명학적 접근이니 하는 디테일을 아주 적당하게 대충 둘러대고 넘어간다. 결과는 나와있으나 그걸 굳이 설명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애초에 이 영화를 어마어마한 무언가로 만들 생각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인 듯하고, 이는 나름대로 먹혀든다. 이것저것 현실감을 생각하지 말고 대충 보라는 메시지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그런 제작 의도(?) 그대로 투모로우 워는 가볍게 즐길 거리다. 다만 그 이상, 그 이..

영화/리뷰 2021.07.22

바람의 검심 최종장: 더 파이널 (2021) 그저 한심할 따름

퓨리 블루레이를 볼까 고민하다가 문득 바람의 검심이 떠올랐다. 4편과 5편을 한꺼번에 몰아서 보려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어차피 연결되는 내용도 아니라고 해서 그냥 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바람의 검심 최종장: 더 파이널은 기대 이하다. 영화는 여러 드라마 요소를 산발적으로 풀어놓을 뿐이며, 감상자가 몰입할 여지를 깔끔하게 차단한다. 영화의 호흡이 매우 느린 데도 몰입이 쉽지 않은 이유는 스토리텔링에 심각한 허점이 있기 때문이다. 바람의 검심 최종장: 더 파이널은 장면마다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시작'과 '끝'이 제대로 서술되지 않은 채 엉성하게 끝나는 것들이 대다수인 영화다. 예를 들어보자면 사가라 사노스케가 메구미에게 히무라 켄신의 흉터에 대해 물어보는 장면이 있겠다. 배경은 심각한 자상과 화상 ..

영화/리뷰 2021.07.18

저스티스 리그 스나이더 컷 블루레이, 클래식에 대한 예우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 일명 스나이더 컷 블루레이 감상 완료. 1. VOD의 조악한 화질과 음질로 느꼈던 감흥과 블루레이를 보고 느끼는 감흥이 같을 리가. 아, 잭 스나이더 이 천재적인 괴짜 감독 같으니라고. 중간에 소변이 마려운데 조금만 더 보고 화장실 가자는 생각을 하다가 소변이 마렵다는 걸 잊어버렸다. 바싹 긴장하고 영화를 보다가 몸을 살짝 뒤틀었더니 뒤늦게 변의가 밀려오더라. 기겁해서 화장실로 달려갔다. 2. 개인적으로 잭 스나이더는 이제 영화 연출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클래식에 대한 예우도 갖춰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오락성 하나는 기가 막혔지만 클래식에 대한 예우도, 기승전결의 미학도 모호하기만 했던 데뷔 시절 새벽의 저주나 300과 달리 저스티스 리그 스나이더 컷과 아미 오브 더 데..

영화 사바하 (2019) 매우 성공적인 미스테리 스릴러

사바하는 장재현 감독의 전작인 검은 사제들과 달리 색채가 옅다. 조금 더 디테일하게 설명해보자면, 구마를 깊게 파고 들어가는 검은 사제들과 달리 사바하는 개신교, 불교 소재로 밑밥만 깔아 두고 실제론 오컬트 파헤치기에 주력하고 있는, 사실상 미스터리 추리 스릴러에 가깝다는 얘기다. 모호하게 퓨전을 추구한 탓에 어느 쪽이든 색채가 옅다고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게 사바하의 장점이기도 하다. 사바하는 신앙심을 잃고 칼럼니스트 겸 종교 탐정으로 먹고 사는 목사의 시선으로 사이비 종교를 파고 들어가다가 '진짜'를 만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물론, 목사는 '시선'이 되어줄 순 있어도 당사자가 될 수는 없는 법. (괴상한 이능력 배틀물이 되기 십상이다.) 덕분에 굉장히 독한 영화의 사건들을 속이 편하게 볼 ..

엽문3: 최후의 대결 (2015) 영춘권 vs 영춘권

그러니까 엽위신에겐 드라마 쪽 연출 재능이 정말 없다. 그의 모든 영화가 그래왔다. 오죽하면 드라마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1시간 30분으로 제작된 '도화선'이 그가 만든 영화 중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겠는가. 엽문3: 최후의 대결은 그걸 재차 드러내는 작품이다. 엽문 시리즈는 1편부터 실제 역사와 거리가 있었다. 엽문이 일본 쪽과 대립각을 세운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 제국에 맞서려는 의도와는 거리가 먼데다 그가 홍콩으로 도망친 것은 공산당을 피해서였다. 그는 국민당과 연결되어 약간 활동한 적이 있기 때문에 공산당에게 숙청 당할까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엽문 시리즈에선 일본에 맞서다가 일본 제국을 피해 아내인 장영성과 함께 홍콩에 정착했다는 이야기가 되어있다. 실존 인물 장영성은 잠시 홍콩에 있었을..

황비홍 2 - 남아당자강 (1992) 액션으로 펼친 세련된 정치적 스탠스

황비홍 2 - 남아당자강은 여러 측면에서 세련된 영화다. 구시대적 개그를 덜어내고 내용에 정치적 디테일을 추가한 뒤 나머지는 그대로 다시 만들어도 될 만큼 세련되게 '중국뽕'을 담아뒀다. 최근 조문탁의 황비홍이 완전히 단순무식 국수주의로 무장하고 부활했던데, 황비홍 2 -남아당자강이 30년 전에 이뤄낸 것에 떠올리면 한심할 따름이다. 백련교도의 난과 신해혁명의 전조를 관통하는 정치적 스탠스, 황비홍의 놀라운 무술 실력에 놀라기보다 황비홍에게 경련을 일으켜가며 돌격하는 백련교도들에 놀라서 절망하는 육호동의 표정 등은 분명히 당시에도 보기 어려운 구성과 연출이었다. 중국과 대만이 동시에 사랑을 보내는 쑨원의 존재감은 이 영화에서도 번뜩이는데, 아마 우리가 김구를 대하는 태도와 비슷하지 않나 싶다. 그런데 아..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2009) 주객 전도, 아가리 파이트

뭘 볼까 고민하다가 대충 아무거나 집어들었더니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블루레이가 잡혔다. 그러고 보니 거의 7년을 안 본 영화다. 혹은 봤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렸거나. 쿠엔틴 타란티노도 가만 보면 주객이 전도되는 경향이 있다. 이게 작업 기간이 길고 각본 수정을 끝없이 하는 감독들의 공통점인데, 처음 기획할 때의 방향성과 몇 년에 걸쳐 각본을 수정하면서 생긴 방향성이 일치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의 경우 제목만 보면 '바스터즈'의 이야기여야 하지만, 실제론 멜라니 로랑이 맡은 쇼샨나의 이야기나 다름이 없다. 주인공인 브래드 피트는 역할의 중요성과 별개로 분량만 보면 한스 대령을 맡은 크리스토프 왈츠와 비슷한 정도다. 참고로 이러한 주객 전도는 왕가위의 영화에서도 매..

영화/리뷰 2021.07.04

캐시트럭 (2021) 가이 리치는 언제나 익숙한 방식으로

회색을 검은색으로 바꿔놓고 배트윙이라 칭한 것처럼, 영화 캐시트럭은 가이 리치가 자신의 스타일을 유지한 채 겉옷만 바꾼 영화다. 시간대를 오가는 연출 방식이나 하이스트에 범죄 느와르를 결합한 장르적 구성 등 이야기 자체는 가이 리치가 항상 해오던 것 그대로. 그의 팬이라면 익숙한 감각이다. 다만 바꿔놓은 색깔이 아주 짙어서 깜짝 놀랐다. 캐시트럭은 가이 리치 특유의 익살스러운 개그, 현실을 초월한 것 같은 캐릭터 등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흔적조차 보이질 않는다. 영화는 시종일관 무겁게 흘러가고, 영화의 액션은 현실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맨몸 액션으로 일약 스타가 된 제이슨 스타뎀을 썼음에도 이 영화에 격투씬은 거의 없다. 대신 들어간 것은 FBI 상부 요원과 비밀리에 협력 관계를 맺고 있..

영화/리뷰 2021.07.02

황비홍 - 천하무인 (1991) 발전된 기술의 복원력이란

디비디 시절부터 홍콩 영화는 '저화질'의 대명사였다. 1년에 수백 편의 영화를 쏟아내던 그 시절의 홍콩은 진공과 용액 처리를 통한 네거티브 필름 보관이라는 개념 자체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으며, 남아 있는 필름도 네거티브나 포지티브는커녕 극장에 배급된 최초 상영본이 최선이었다. 덕분에 HD 리마스터링과 같은 화려한 이름을 달고 나온 디비디들조차 조악한 화질을 자랑했다. 그러나 그런 경향이 2010년대 중반부터 바뀌었다. 4K 시대가 시작되고 필름을 디지털로 트랜스퍼할 때 들어가는 기술이 매우 발달했으며, 어디선가 썩어가던 필름조차 네거티브로 복원한 것처럼 깔끔하게 만들어지는 경우가 꽤 보인다. 이런 기술의 힘을 빌려 복원한 홍콩 영화들은 최신 영화 못지않은 화질을 자랑하기도 하는데, 황비홍 - 천하무인이 ..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2021) 윈드 리버는 운이 아니었다

카르텔, 사막, 설산. 테일러 쉐리던이 몰입해있는 것들은 인간의 손을 벗어난 어떤 존재고, 이들은 단순히 인간의 손을 벗어나는 걸 넘어 극의 중심에서 전개를 좌지우지한다. 영화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은 산불이다. 어떻게 해도 막을 수 없는 압도적인 공포. (카르텔이 이 안에 들어가 있다는 게 더 무섭지만서도) 시카리오 시리즈로 인상적인 각본을 써내려간 테일러 쉐리던은 직접 감독을 맡은 윈드 리버의 설산에 이어서 산불을 이용해 능수능란하게 극을 조작한다. 이미 빌런인 프로페셔널 킬러가 있음에도 강렬한 기세로 몰아치는 불길은 자신이 최후의 빌런임을 자신했다. 테일러 쉐리던이 자연, 그러니까 이 영화의 경우 불을 품어낸 산을 대하는 태도는 다음 대사에서도 알 수 있다. "난 정말 여기가 싫어." "여기도..

영화/리뷰 2021.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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