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의미에서 보자면 <토르 4: 러브 앤 썬더>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2>와 비슷하다. 전편인 <토르 3: 라그나로크>가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스타일을 상당히 죽인 결과물, 그러니까 특정 프로젝트 안에 타이카 와이티티를 맞춘 스타일이었다면, <토르 4: 러브 앤 썬더>는 명백하게 타이카 와이티티가 주도한 영화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조조 래빗>과 <뱀파이어에 관한 아주 특별한 다큐멘터리>에서 보여준 장르 비틀기, 풍자를 넘어선 조롱, 즉흥적 개그 등이 가득 들어가 있다는 얘기다. 완벽한 제임스 건 스타일이었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2>와 흡사하지 않은가.
이 사실을 고려하면 개봉 당시 엄청난 혹평에 시달린 것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히어로 영화라기보다 은근히 드라마에 강점이 있는 풍자극에 가깝다. 토르의 시원시원한 액션을 보고 싶은 사람들, 그리고 다양한 장르로 제작되는 디즈니 플러스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작품들로 인해 '히어로의 화끈한 액션' 자체에 상당히 목이 메말라 있었을 팬들에게 어필이 될 리가 없다. (디즈니 플러스의 마블이 다양한 장르로 제작된다는 것에 불만은 없다. 다만 지금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기대치에 걸맞은 액션을 보여주는 작품이 희귀한 상태인 건 분명한 사실이다.) 심지어 <토르 4: 러브 앤 썬더>로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이 조롱해버린 대상은 '신'이다. 이런 경향이야 <토르 3: 라그나로크> 때부터 보였지만, 이번에는 선을 한참 넘어서서 '차라리 욕을 해'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가 되었다.
주인공인 토르보다 빌런을 맡은 고르, 사이드킥을 맡은 제인 포스터가 더 매력적으로 그려진 것은 단순히 두 배우의 압도적인 연기력 때문만은 아니다. 두 사람이 촌철살인의 연기력으로 영화에 힘을 보탠 건 틀림이 없지만, 그 이전에 각본 차원에서도 두 캐릭터에 집중했다. 잊으면 안 되는 게, 토르 역시 조롱의 대상인 신의 일원이다. 이미 오딘이라는 압도적 존재가 있었던 세계관에서 굳이 제우스를 비롯한 강력한 신들까지 잔뜩 데려와 조롱성 코미디로 일관한 마당에 토르라고 특별대우를 해줄 리가 없지 않은가. 영화의 구조를 살펴보시라. 얼간이 같은 신들에게 고르와 제인 포스터가 '세상에 전능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너희가 해야 하는 일을 우리 인간이 가르쳐주마'라며 설교를 하고 있다. 주인공인 토르는 그저 가이드 역할을 할 뿐이다.
타이카 와이티티 베리 머치. 그야말로 그의 영화다. 본인은 조금 더 영화를 길게 만들고 싶었던 것 같긴 한데, 뭐 어쨌든 토르 프랜차이즈의 힘을 빌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해버린 감독에게 경이를 담아 위로를 건네본다. 아, 그렇다고 잘 빠진 영화라는 얘긴 아니니 오해 마시길.
디즈니 플러스는 <토르 4: 러브 앤 썬더>를 4K HDR 아이맥스로 서비스하고 있다.
먼저 HDR 효과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면, 밝은 배경의 장면이 꽤 많은 것과 상반되게 영상이 전반적으로 어두운 편에 속한다. 밝은 장면조차 어두운데 어두운 장면은 어떻겠나. 너무 어두워서 혹시 <이터널스>처럼 HDR 그레이딩에 실패한 케이스가 아닌가 싶을 때마저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터널스>와 다르게 빛이 필요한 곳에선 강력하게 존재감을 드러낸다는 것. 예를 들어서 토르나 제우스의 번개가 그렇다. <토르 3: 라그나로크> 당시에도 느낀 건데,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은 타격 중심의 액션을 만들지 않는다. 순간적인 이미지에 치중하는 경향이 짙으며, 이는 <토르 4: 러브 앤 썬더>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어두운 영상 탓에 디테일한 액션의 합이 안 보인다고 꼭 불쾌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클라이맥스에선 토르와 마이티 토르가 발산하는 푸른색 번개, 제우스의 힘을 부여받은 이들의 강렬한 노란색 번개가 화면 가득 뿌려지며 눈을 부시게끔 한다. 전반적으로 어두운 영상이 이 번개 빛의 향연과 강렬한 대비를 이루어 눈이 즐겁다. 물론, 이러한 HDR 영상 성향이 의도된 것인지 알 수 없으므로 마냥 긍정할 순 없겠다. 액션의 합이 구체적으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 건 분명한 단점이기도 하고.
<토르 4: 러브 앤 썬더>는 아이맥스도 미묘하다. 마치 보여주기 싫어하는 가방 안을 억지로 봤는데 안에 아무것도 없을 때와 흡사한 감각이다. 그저 휑할 뿐이다. 아예 디지털 아이맥스 카메라를 가져다가 찍은 영화임에도 아이맥스 분량이 많지 않다는 사실까지 포함해서 이게 정말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의도대로 연출된 화면비인지 의문이다. 심지어 그냥 아이맥스 카메라로 찍은 정도가 아니라 한 장면을 제외하곤 전부 다 디지털 아이맥스 카메라로 찍었다. 전부 아이맥스 화면비로 나오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경우라고 할까. 그럼에도 뭔가 휑하다.
결국, HDR도 아이맥스도 미묘하다는 얘기가 된다. 설마 흥행에 실패한 작품이라고 영상을 대충 만들어서 업로드한 건 아니겠지? 그러고 보니 명백한 HDR 그레이딩 실수였던, 그리고 아직도 그게 고쳐지지 않고 있는 <이터널스> 역시 흥행에 실패한 영화다. 개봉 당시에 아이맥스 상영관에선 어땠는지, 돌비 상영관에선 어땠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