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스크린샷 67

영화 퓨리 (2014) 무생물에 부여한 전쟁의 실체

에서 사용하는 무기는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의 중간 즈음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래서 을 보는 내내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가 땡겼었는데, 어느 걸 볼까 고민하다가 오랜만에 를 봤다. 개인적으로 를 상당히 좋아하는데, 시선이 독특하기 때문이다. 일단 액션의 대부분이 밀실에서 이루어진다. 탱크 안이라는 아늑하다면 아늑한 공간에서 벗어나지 않는 전투씬은 스케일이 작아서 황량할 뻔한 영상에 '전쟁'을 채워주는 놀라운 재주를 뽐낸다. 또한, 마치 거대한 로봇들의 전투라도 되는 마냥 공격 하나하나가 묵직한 탱크는 야전에서 보병들이 총알 앞에 노출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스릴을 안겨주는데, 티거 탱크와의 전투 장면이 그 대표적인 예시다. 일반적으로 세계대전을 다루는 전쟁 영화에서 탱크는 무생물처럼 나타나..

왓치맨 얼티밋 컷 (2009) 이 정도로 잘 만들면 말이 필요 없다

아끼고 아끼던 왓치맨 얼티밋 컷 블루레이를 감상. 오래 전에 감상했던 것과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펜데믹을 겪으며 혼란스런 세상을 직접 목격하고 있어서일까. 예전엔 이미 감독판만으로도 앞으로 다시 나올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를 압도적 걸작이라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단편 애니메이션인 검은 수송선을 굳이 넣어서 호흡을 끊을 필요가 있었나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오늘 또 감상하니 '혼란', '모호' 등으로 대변되는 전개와 집단적 최면에 걸리게 하는 도덕적 분열의 결말에 도달하는 왓치맨이 검은 수송선과 얼마나 어울리는 지 알기 쉽게 적절히 편집되어 들어간 것 같다. 이건 원작도 마찬가지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려나. 왓치맨 감독판이던 얼티밋 컷이든 걸작임엔 변함이 없다. 이 정도로 훌륭하면 무언가에 대한 ..

나이브스 아웃 (2019) 영화판에서 탄생한 애거사 크리스티의 후예

걸작의 첫 번째 징조. 뛰어난 배우들이 조연으로 들어가길 자처한다. 두 번째 징조. 그런 작품의 감독이 부정적 의미의 논란에 섰던 감독이다. 나이브스 아웃은 딱 이 징조를 다 가지고 있었다. 라이언 존슨 감독이 대단히 뛰어난 감독임엔 틀림이 없지만, 분명히 전작인 라스트 제다이가 작품성과 별개로 수없이 많은 헤이터를 양성해냈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그런데 그렇게 누군가에겐 걸작 중의 걸작으로, 누군가에겐 할리우드 역사상 최악의 졸작으로 언급되는 작품을 만들어낸 감독의 차기작에 연기파 괴물들이 몰려갔다. 그냥 몰려간 게 아니라 크리스 에반스는 본인이 MCU에 나와서 받은 개런티보다도 제작비가 적은 영화에 조연으로 들어갔다. 아마 많은 사람이 '대체 어떤 영화가 나왔길래 저러지?'란 생각으로 영화를 보러 ..

저스티스 리그 스나이더 컷 블루레이, 클래식에 대한 예우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 일명 스나이더 컷 블루레이 감상 완료. 1. VOD의 조악한 화질과 음질로 느꼈던 감흥과 블루레이를 보고 느끼는 감흥이 같을 리가. 아, 잭 스나이더 이 천재적인 괴짜 감독 같으니라고. 중간에 소변이 마려운데 조금만 더 보고 화장실 가자는 생각을 하다가 소변이 마렵다는 걸 잊어버렸다. 바싹 긴장하고 영화를 보다가 몸을 살짝 뒤틀었더니 뒤늦게 변의가 밀려오더라. 기겁해서 화장실로 달려갔다. 2. 개인적으로 잭 스나이더는 이제 영화 연출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클래식에 대한 예우도 갖춰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오락성 하나는 기가 막혔지만 클래식에 대한 예우도, 기승전결의 미학도 모호하기만 했던 데뷔 시절 새벽의 저주나 300과 달리 저스티스 리그 스나이더 컷과 아미 오브 더 데..

영화 사바하 (2019) 매우 성공적인 미스테리 스릴러

사바하는 장재현 감독의 전작인 검은 사제들과 달리 색채가 옅다. 조금 더 디테일하게 설명해보자면, 구마를 깊게 파고 들어가는 검은 사제들과 달리 사바하는 개신교, 불교 소재로 밑밥만 깔아 두고 실제론 오컬트 파헤치기에 주력하고 있는, 사실상 미스터리 추리 스릴러에 가깝다는 얘기다. 모호하게 퓨전을 추구한 탓에 어느 쪽이든 색채가 옅다고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게 사바하의 장점이기도 하다. 사바하는 신앙심을 잃고 칼럼니스트 겸 종교 탐정으로 먹고 사는 목사의 시선으로 사이비 종교를 파고 들어가다가 '진짜'를 만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물론, 목사는 '시선'이 되어줄 순 있어도 당사자가 될 수는 없는 법. (괴상한 이능력 배틀물이 되기 십상이다.) 덕분에 굉장히 독한 영화의 사건들을 속이 편하게 볼 ..

엽문3: 최후의 대결 (2015) 영춘권 vs 영춘권

그러니까 엽위신에겐 드라마 쪽 연출 재능이 정말 없다. 그의 모든 영화가 그래왔다. 오죽하면 드라마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1시간 30분으로 제작된 '도화선'이 그가 만든 영화 중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겠는가. 엽문3: 최후의 대결은 그걸 재차 드러내는 작품이다. 엽문 시리즈는 1편부터 실제 역사와 거리가 있었다. 엽문이 일본 쪽과 대립각을 세운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 제국에 맞서려는 의도와는 거리가 먼데다 그가 홍콩으로 도망친 것은 공산당을 피해서였다. 그는 국민당과 연결되어 약간 활동한 적이 있기 때문에 공산당에게 숙청 당할까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엽문 시리즈에선 일본에 맞서다가 일본 제국을 피해 아내인 장영성과 함께 홍콩에 정착했다는 이야기가 되어있다. 실존 인물 장영성은 잠시 홍콩에 있었을..

황비홍 2 - 남아당자강 (1992) 액션으로 펼친 세련된 정치적 스탠스

황비홍 2 - 남아당자강은 여러 측면에서 세련된 영화다. 구시대적 개그를 덜어내고 내용에 정치적 디테일을 추가한 뒤 나머지는 그대로 다시 만들어도 될 만큼 세련되게 '중국뽕'을 담아뒀다. 최근 조문탁의 황비홍이 완전히 단순무식 국수주의로 무장하고 부활했던데, 황비홍 2 -남아당자강이 30년 전에 이뤄낸 것에 떠올리면 한심할 따름이다. 백련교도의 난과 신해혁명의 전조를 관통하는 정치적 스탠스, 황비홍의 놀라운 무술 실력에 놀라기보다 황비홍에게 경련을 일으켜가며 돌격하는 백련교도들에 놀라서 절망하는 육호동의 표정 등은 분명히 당시에도 보기 어려운 구성과 연출이었다. 중국과 대만이 동시에 사랑을 보내는 쑨원의 존재감은 이 영화에서도 번뜩이는데, 아마 우리가 김구를 대하는 태도와 비슷하지 않나 싶다. 그런데 아..

황비홍 - 천하무인 (1991) 발전된 기술의 복원력이란

디비디 시절부터 홍콩 영화는 '저화질'의 대명사였다. 1년에 수백 편의 영화를 쏟아내던 그 시절의 홍콩은 진공과 용액 처리를 통한 네거티브 필름 보관이라는 개념 자체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으며, 남아 있는 필름도 네거티브나 포지티브는커녕 극장에 배급된 최초 상영본이 최선이었다. 덕분에 HD 리마스터링과 같은 화려한 이름을 달고 나온 디비디들조차 조악한 화질을 자랑했다. 그러나 그런 경향이 2010년대 중반부터 바뀌었다. 4K 시대가 시작되고 필름을 디지털로 트랜스퍼할 때 들어가는 기술이 매우 발달했으며, 어디선가 썩어가던 필름조차 네거티브로 복원한 것처럼 깔끔하게 만들어지는 경우가 꽤 보인다. 이런 기술의 힘을 빌려 복원한 홍콩 영화들은 최신 영화 못지않은 화질을 자랑하기도 하는데, 황비홍 - 천하무인이 ..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 (2018) 처절한 시대 비판

본래 3편이 나오면 다시 보려고 사뒀던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 블루레이인데, 아무래도 3편이 사실상 무산된 듯해서 얼른 봤다. 파괴적인 설정이다.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는 사실상 미국 정치권을 겨냥해서 할 수 있는 최대치까지 밀어붙였다. 영화는 카르텔이 우회적인 방법으로 중동의 폭탄 테러범을 고용해 미국에 폭탄 테러를 일으킨다는 충격적 장면으로 시작한다. 카르텔이 미국을 공격해서 무슨 의미가 있느냐. 911 사태 이후, 코카인의 수요는 늘어나는데 국경 보안이 강화되어 공급이 부족해지는 바람에 코카인 가격이 폭등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같은 이익을 누리려고 한다는 구조다. 911 사태 당시엔 멕시코 카르텔이 미국 시장을 장악한 상태가 아니었지만, 지금은 반독점 상태. 또한, 미국 시민들이 코카인 밀..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 (2019) 경이에 찬 괴수들의 지옥도

얼마 전 개봉한 고질라 vs. 콩에 대한 극단적 호평들을 보면서 난 홀로 갸우뚱했다. 솔직히 어느 쪽이 내 취향이었느냐 묻는다면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 쪽이었기 때문. 이 영화의 인간 파트가 굉장히 민폐스러웠던 것도 사실이고, 허술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인간 파트를 통째로 포기하면 안 되는 것 아닐까. 콩: 스컬 아일랜드와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의 인간 파트가 실패했다고 해서 그걸 포기해버리고 고질라와 킹콩의 싸움에만 집중하는 건 솔직히 내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거대 괴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아예 인간 파트를 빼고 괴수만 나와야 한다는 주장이 틀렸다는 건 아니지만, 다채롭게 꾸며낼 영화가 되려면 꽤나 지양해야 할 태도다. 퍼시픽 림을 떠올려보시라. 이 영화가 로봇과 괴수의 싸움에만 ..

영화 젠틀맨 (2020) 미국, 영국, 러시아 그리고 아일랜드

가이 리치는 아직 살아있다. 영화 젠틀맨을 보고 먼저 떠올린 문장이다. 언젠 죽었느냐고 물을 수 있는데, 그의 개성이 미세하게 묻어나던 알라딘을 보고 나면 죽은 거 아닌가 걱정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킹 아서와 맨 프롬 엉클이 실패하고 모든 걸 놔버린 게 아닌가 해서 바싹 긴장했었다. 다행히 가이 리치는 젠틀맨을 연출함으로써 알라딘은 그저 일종의 일탈이었다고 고백한다. (알라딘이 재미없는 작품이란 얘기는 절대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시길) 젠틀맨은 그야말로 가이 리치의 진수를 보여주는 영화다. 그러니까, 셜록 홈즈, 맨 프롬 엉클, 킹 아서처럼 막대한 제작비를 가지고 한껏 펼쳐낼 수 있는 조건이 아닌, 저예산으로 영국에서 연기파 배우들을 데려다 날카롭게 찍은 범죄 스릴러. 익살스럽고 엉뚱하며 코믹하면서도 잔..

다크나이트, 테넷 등 블루레이의 아이맥스 시퀀스

오랜만에 다크나이트를 보고 나니 이 영화의 아이맥스 시퀀스에 대해 실망감이 조금 생겨났다. 경이로운 체험이었던 당시와 다르게 이제 아이맥스로 촬영한 영화가 꽤 많아졌고, 디지털 촬영기기의 발전으로 고화질에 익숙해졌기 때문인 듯하다. 게다가 자세히 살펴보면 다크나이트 블루레이는 아이맥스 시퀀스에도 샤픈 필터를 먹여놨다. 블루레이가 나온 당시엔 분명히 아이맥스 시퀀스와 35mm 시퀀스의 화질 차이를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35mm에만 샤픈 필터를 먹였다는 얘길 많이 했었는데, 이후 아이맥스로 촬영한 영화들과 그 블루레이가 잔뜩 나오면서 비교 대상이 생겼고,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배트맨 대 슈퍼맨, 테넷, 원더우먼 1984 등과 비교하면 확실하게 체감할 수 있다. 혹시나 해서 말해두는데, 아리의 디지털 아이맥..

버즈 오브 프레이, 이젠 평론가 믿으면 큰일 난다

평론가들을 마냥 믿는 게 좋지 않다는 건 알지만, 이건 좀 쇼킹하다. 버즈 오브 프레이를 첫 감상했던 당시에 실망한 건 그저 내가 컨디션이 아주 안 좋았기 때문이려니 했다. 평론가들이 이토록 호평한다면 그럭저럭 볼 만한 구석이 있다는 얘기가 있음에도 내가 놓쳤다는 뜻일 수 있으니 할리 퀸에 대한 의리(?)로 다시 감상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블루레이를 구매해 두 번째 감상을 시도한 것이다. 부제에 할리 퀸이 들어간 걸 보면 알 수 있듯이 '버즈 오브 프레이'라는 자경단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할리퀸과 엮었기 때문에 버즈 오브 프레이인데, 버즈 오브 프레이의 구성원들은 이렇다 할 갈등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완벽하게 따로 놀며, 할리퀸 역시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갈등은커녕 얼굴조차 클라이맥스에 들..

원더우먼 1984 (2020) 액션을 포기하고 욱여넣은 훈계질

영화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은 세련되어야 한다. 억지로 욱여넣으면 촌스러워 보이고 거부감을 일으키게 마련이다. 특히 페미니즘이 섞인 휴머니즘이라면 요새 같은 시기에 얼마나 거부감이 심하겠는가. 원더우먼 1984는 그걸 몰랐다. 촌스럽다는 말은 때론 익숙하다는 말과 비슷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원더우먼 1984는 굳이 1984년을 배경으로 할 이유가 없는 영화다. 영화는 마치 80년대 TV 방송이나 해볼 법한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촌스럽게 메시지를 욱여넣는데, 그래서 이런 변명을 하고 싶은 것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해보았다. '80년대 영상 문화의 오마쥬를 겸했기 때문에 이렇게 촌스러운 스토리가 되었습니다. 사실, 이건 촌스러운 게 아니라 익숙한 거라고요.' 진짜로 이런 생각을 했다면 그야말로 비겁한 변명이..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파이널컷, 다채로운 액션의 혼종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파이널 컷. 존재도 몰랐던 딸, 폐기된 정부 요원, 복수심으로 쫓아오는 킬러. 어쩌면 홍콩이나 유럽 등에서 빈번하게 볼 수 있었던 액션 스릴러의 기본 사항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지만, 그 클리셰들을 적당히 잘 섞어내는데 성공은 했다. 특히 피곤에 푹 절여진 듯한 황정민의 비주얼이 참 인상 깊고, 일본 양키 스타일의 킬러로 변신한 이정재도 그럴싸하게 어울렸다. 아쉬운 점이라면 이정재가 맡은 킬러 '레이'에 대한 스토리텔링이 지나치게 부족하다는 것과 그로 인해 건너 뛰는 장면이 많다는 점 정도려나. 재일교포 싸이코패스 킬러로 꽤 괜찮게 시작하는 레이의 기반은 '추적'의 과정을 끊임없이 건너뛰다 보니 존재감이 희미해지고 결국 '최종 장애물' 이상의 기능을 하지 ..

영화 [인랑] 근사하게 그려진 원작의 정서

지금은 재패니메이션 전성기의 마지막 주자로 인정받고 있지만, 공개 당시만 해도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분리되어 치열하게 대립하던 애니메이션 인랑은 한국에서 실사화되었음에도 똑같은 상황과 마주했다. 다만 호불호와 별개로 김지운 감독의 강단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원작의 정서를 그대로 가져온 강단. 거기에 평범한 조명조차 네온사인처럼 보이도록 연출함으로써 사이버펑크 분위기를 낸 영상 접근법. 이병헌과 최민식을 데리고 고어 스릴러를 만들었던 그 강단이 인랑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본래 원작 애니메이션이 '똥철학'이란 말을 들었을 만큼 난해했던 걸 떠올리면 그래도 실사판 인랑은 비교적 쉽다고 할 만하다. 초반부 다소 복잡하게 펼쳐진 정치 세력의 싸움은 그저 배경이 될 뿐이고, 중반부턴 인물 개인의 감정에 집..

2021년에 다시 보는 영화 [신용문객잔]

서극은 여러 의미에서 자신을 증명하고 싶었다. 소오강호 촬영 당시에 있었던 불화로 호금전 본인이 중도하차했지만, 어쨌든 소오강호는 호금전의 영향력이 지배적인 '객잔' 시리즈의 하나로 완성되었고, 서극은 소오강호로 얻은 것이라곤 하나도 없이 호금전의 영향력을 떨쳐버리려는 듯 동방불패를 제작했다. 동방불패의 성공 직후엔 호금전 감독을 엿 먹이려는 의도라도 있었는지 신용문객잔을 만들어서 화제를 모았다. 서극 본인은 호금전을 존경한다느니 뭐라느니 하지만, 적어도 그의 행보에선 존경심 비슷한 걸 찾기가 몹시 어렵다. 신용문객잔은 정말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한다. 양가휘, 임청하, 견자단, 장만옥. 솔직히 실패하기도 쉽지 않은 캐스팅. 게다가 영화 자체도 당시 기준으론 썩 괜찮게 만들었다. 초고수도 기습 앞에선 의미..

[황혼에서 새벽까지] 쿠엔틴과 로버트의 B급 덕력 테스트

초기 쿠엔틴 타란티노가 본인의 색채를 진하게 묻혀서 B급 정서를 소화해내는 감독이었다면, 로버트 로드리게즈는 그냥 날 것 그대로의 B영화를 만들었다. 엘 마리아치 트릴로지는 그나마 폼이라도 잘 잡았지, 황혼에서 새벽까지는 그야말로 극장에서 팝콘 던지며 보는, 그라인드 하우스 전용 영화에 가깝다. 그 누구도 황혼에서 새벽까지를 걸작이니 잘 만들었다느니 하는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평가는 영화의 의도에 어울리지 않는다. 황혼에서 새벽까지의 매력이라면 쿠엔틴 타란티노가 쓴 각본 특유의 '아가리 파이팅'과 완벽한 B영화를 추구한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연출 아래에서, 조지 클루니나 하비 케이틀, 줄리엣 루이스, 셀마 헤이엑과 같은 배우들이 진지하게 연기한다는 점이다. 주인공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기만 하는 ..

영화 [백두산] 수지 빼고 남는 게 없었다

영화 백두산 블루레이를 봤다. 영화 속 하정우 캐릭터 못지 않게 얼빵한 수준의 영화다. 합리성은 시작부터 끝까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이야기는 짤막한 재난씬에 살이라도 붙여보려 억지로 짜맞춘 것에 불과하다. 다이제스트 스타일의 편집 스피드는 엉망진창인 시나리오를 감추려는 변명처럼 보인다. 백두산 폭발이라는, 올해 바로 찾아와도 이상하지 않을 현실적 재난을 가져왔음에도 영화 안에 현실성이라곤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를 재감상하는 얼빠진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지 않을 뿐이지, 지금 백두산을 재감상하고 제대로 정리한다면, 난 이 영화의 모든 요소를 전부 부정할 수 있다. 솔직해지자. 백두산은 백두산 폭발이라는 화제적 요소에 착안해서 지진과 폭발의 VFX를 열심히 보여주고 싶어했던 제작자에 의해 재창조..

영화 테넷, 고정된 시간이 크리에이터에게 주는 영향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로 스토리텔링 기법을 바꿨다. 기존 그의 지나치게 설명에 집착하는 스토리텔링은 관객으로 하여금 '이건 픽션입니다'라고 인식시키는 수준에 도달해있었고, 극의 몰입에 다소 방해가 되는 단점이었다. 거장이라 불리기 위해서 가야 하는 마지막 단계가 필요했는데, 로 그걸 해낸 것이다. 대사가 아닌 영상으로, 가타부타 할 것 없이 관객을 영화의 세상 안에 집어던지는 스토리텔링의 '마지막 단계'에 분명히 도달한게 다. 이는 마이클 만 감독처럼 극단적인 수준까지 밀어붙이는 사람이 있을 만큼, 거장이라 불리는 감독들은 모두 깨달아 익히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대사가 아닌 영상을 중심으로 스토리텔링하는 연출이 설명을 반드시 필요로 하는 '시간 여행'과 관계된다면 어떨까? 이 바로 그런 영화다. 운명..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프레임 밖에서 일으키는 기적

글쎄. 는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독립영화 혹은 피칠갑 B영화와는 거리가 멀다. 저예산을 커버하기 위한 수단을 강구했다기보다 있는 그대로 돌진했다. 대신 가져다 놓은 게 '아이디어'. 영화의 3중 구성은 일본 저예산 코미디 영화의 전형을 독특한 느낌이 나도록 연결했고, 후반부 리드미컬한 코미디는 치밀하게 연구한 티가 역력한 스릴러로 재해석할 수 있다. 저예산 심야 TV용 좀비 드라마 정도에서 그친다면 좋겠는데, 이걸 생방송 롱테이크로 찍는다라. 영화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조건이 성사되어가는 과정을 관객 앞에 내어놓기 이전에 '완성본'을 먼저 다이렉트로 보여준다. 이런 방식을 취하는 순간, 이제 그 드라마의 프리 프로덕션과 촬영(이자 포스트 프로덕션)은 완전히 '퍼즐 짜맞추기'가 된다. 또한, 작품과 메이킹..

에너미 앳 더 게이트, 클래시컬 전쟁 영화의 마지막 주자

, 와 함께 2차 세계대전을 다룬 대중문화의 '레퍼런스'가 된 . 이후 수도 없이 많은 2차 세계대전 게임, 영화, 드라마 등에서 오마쥬되었으며, 특히 스나이퍼를 다루는 작품이면 를 참고하지 않은 경우가 거의 없다. 그 정도로 매력적인 영화지만, 뜻밖에도 이 영화는 스티븐 스필버그 제작의 두 작품과는 상당히 궤를 달리한다. 조금 과감하게 말하자면 훨씬 올드하다. 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은 전쟁 영화의 패러다임을 바꾼 작품이 여럿 나온 시기다. 특히 2차 세계대전은 , 현대전은 으로 총격씬의 기술이 완성되었다. 전쟁의 한복판에 밀어넣고 서라운드 채널을 각기 다른 화기로 매워버리는 퍼포먼스는 이전에 본 적이 없는 '신기술'에 해당했다. 그저 모노 사운드로 덮어버리던 과거의 영화들과는 궤를 달리한다. ..

애드 아스트라, 그렇게 진정한 아버지가 된다

본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담겨 있다. 의 지향점은 분명히 와는 다르다. 가 각종 장르가 다양하게 포함된 종합 선물에 가까운 반면, 는 싸이코 스릴러(공포 영화를 의미함이 아니다)라는 한 가지 장르에 매달리며, 스릴을 불러오기 위한 도구로 '우주'를 가져다 쓴 덕에 거대하다. 영화가 느긋하다는 이유로 를 예술 영화처럼 받아들이는 사람도 보이지만, , , 등의 여러 우주 영화들이 지나치게 빠르게 달려서 그럴 뿐, 가 특별하게 느린 건 아니다. 로이(브래드 피트 분)의 여정에 달에서 벌어지는 카체이싱, 화성의 카운트다운 시퀀스까지 밀어넣으며 오락성을 분배하고 있다. 크레딧을 제외하면 2시간도 안 되는 영화기에 꽤 촘촘하게 들어간 정상적인 속도의 영화라 생각한다. 우주 다큐멘터리가 떠오르는 OST 쪽이 그런 인상..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물량 공세를 위한 무리수들

를 보고 리뷰를 적지 못 한 것에 대해 나 자신도 이해가 안 갔다. 게다가 블루레이 스페셜 피처를 보고 나면 할 이야기가 생길 거라 말한 적이 있음에도 블루레이가 출시되고 구매한지 한참 지나도록 감상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 방치하다가 간신히 최근 감상했다. 다행히 스페셜 피처를 보기 전에 본편 만으로도 할 얘기가 생겼음에 기뻐해본다. 다만, 이 포스팅은 영화 자체에 대한 리뷰라기보단 왜 내가 이 영화에 몰입하지 못 했느냐에 대한 고민이다. 세상에 둘도 없는 쓰레기 같은 작품조차도 할 말이 생기게 마련이고, 난 그런 작품을 수도 없이 많이 감상해서 리뷰를 남겨왔다. 누군가가 '아니, 이딴 작품을 보고 리뷰를 굳이 왜 남기느냐'라고 의문을 가질 만큼. 그런 내가 어떻게 같이 할 말이 한가득해야 마땅한 영화를 ..

영화 악인전 The Gangster, The Cop, The Devil

사이코패스, 사이코패스에 의한 연쇄 살인을 의심하고 있는 경찰, 피해자이자 유일한 목격자인 조직 폭력배 두목. 영화 은 꼴통 소리 듣는 경찰과 조직 폭력배 두목이 함께 힘을 합쳐서 사이코패스를 잡는다는 동상이몽 이야기를 담았다. 이라는 제목보다는 영어 제목이 조금 더 영화를 잘 표현해주고 있는 것 같다. . 영화는 느낌보다 길이가 짧다. 크레딧을 제외하면 약 1시간 40분. 상당히 복잡한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마무리 단계에 가서 지나치게 많은 걸 생략한 탓으로 보인다. 조직 폭력배 두목이 사이코패스를 잡으려는 이유가 되는 '사업 관계'가 먼저 생략되었다. 조폭 두목은 단순한 복수심으로 개입한 게 아니라, 사업에 방해되는 요소들을 제거하는 도구로 선택했다는 설정이다. 따라서 이 사업의 결과가 간략한 뉴스 ..

블러드 샷, 토니 스콧의 흔적이 느껴진다

오늘 그리웠던 토니 스콧의 흔적을 발견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토니 스콧과 마이클 베이의 정확히 중간 지점에 있는 감독을 발견했다. 의 데이브 윌슨이다. 은 최상급 킬링타임 액션 영화다. 누구에게도 질 것 같지 않은 빈 디젤의 캐릭터를 그대로 살려내서 명멸하는 과거와 투쟁하고 미지의 미래에 발을 옮기는 액션을 담았다. 철저한 개연성의 영화는 아니지만, 이는 각 캐릭터의 과거를 완전하게 생략했기 때문으로, 이 부분을 가볍게 건너뛸 수 있다면, 경이로운 VFX 활용의 액션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의 영상 색조는 분명히 토니 스콧과 마이클 베이의 그것인 한편, 차분한 무드로 드라마를 담아 역할의 감정을 끌어내는 방식은 토니 스콧을 닮았는데, 특히 빌런과의 마지막 대결(?)에서 넘쳐나는 감정을 하나도 잃지 ..

영화 할로윈 2018, 이 형은 그냥 죽입니다

잠이 엄청 오는데 영화를 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억지로라도 보지 않으면, 집에 쌓여있는 블루레이와 넷플릭스, 웨이브의 영화, 드라마를 다 소화할 수가 없다. 예전처럼 작품을 보고 글을 쓰는 것만으로 돈을 벌 수 없다 보니 점점 영화 보는 빈도가 줄어들어서 블루레이들을 감당할 수가 없더라. 어차피 반쯤 의무감으로 봐도 결국 보면 재미있으니까 그냥 억지로 보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이번에 고른 작품은 . 깜짝 놀라게 하는 장면도 있으니까 잠도 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다. 효과는 없었다. 은 잠을 확 깰 정도로 놀라게 하는 장면은 없다. 어쩌면 1편인 의 분위기를 계승했다고 할 법도 한데, 어마어마한 괴력으로 말 한마디 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순수악' 유키카..가 아니라 마이클 마이어스의, 고..

영화 데스 위시, 놓쳐버린 모순의 힘

일라이 로스가 감독하고 조 카나한이 각본을 썼으며 브루스 윌리스가 주연을 맡은 는 분명히 크레딧에 흐르는 묵직한 이름들 만큼의 결과물은 아니다. 일라이 로스와 조 카나한의 공통된 특징이라고 한다면 치열한 스릴감일 텐데, 의 사건들은 치열함이 거의 보이지 않고, 주인공의 직업인 '의사'가 지닐 수 있는 현실적인 한계도 뛰어넘지 않는다. 무엇보다 아쉬운 점은 영화의 주제인 '모순'이 후반에 흐지부지 된다는 사실이다. 서로 총구를 겨눠 부상을 입은 경찰과 범죄자를 모두 치료할 수밖에 없는 모순된 태도의 의사는 이윽고 자신의 손을 사람을 살리는 것뿐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것에도 사용하게 된다. 이는 미국이 총을 사용하는 이유와 같다. 경찰력이 구석구석 닿을 수 없는 넓은 땅의 미국은 범죄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

영화 곡성 블루레이, 이봐 당신 왜 방관하고 있지?

길고 긴 기다림 끝에 나온 블루레이를 봤다. 나온 지 조금 됐는데도 이제야 감상한 건 나홍진 감독의 컨펌 과정에 의문이 워낙 많아서 뿔이 난 탓이다. 아시다시피 블루레이는 완성도를 위해서 출시일이 늦춰졌음에도(제작사가 판권을 잃기 직전에 출시되었다.) 다소 평범한 결과물이 되었다. 심지어 그 중요한 코멘터리에선 '너무 오래돼서 기억 안 난다'는 이야기가 빈번하게 나온다. 실망스러울 수밖에. 자, 이제 그런 외적인 실망스러움은 접어두고 영화 이야기를 해보자. 아래로 의 스포일러가 담겨 있다. 은 내용을 따라가기 그렇게 어렵지 않은 영화다. 그저 해석해볼 필요가 있는 부분, 그러니까 감독이 명확하게 답을 그려놓지 않은 부분이 있을 뿐이다. 누가 선이고 악인지 비교적 명확하게 정리한 뒤, '뭣이 중헌디?'를 ..

영화 레디 오어 낫, 사마라 위빙 고유의 폭발력

최근 '투쟁'에 최적화된 여배우가 대세의 급물살을 타고 떠올랐다. 사마라 위빙이다. 거대한 눈과 억세 보이는 하관으로 상대를 쏘아보며 얼어붙게 만드는 그녀는 선역이든 악역이든 간에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한다. 도 그런 그녀의 특징이 잘 살아있는 영화다. 영화는 '사냥' 컨셉을 오컬트와 부합해 사마라 위빙을 투쟁으로 몰고 간다. 핏빛에 얼룩진 그녀의 투쟁은 '결혼'이란 지옥(!)에 맞물려 그럴싸하게 흘러가는데, 결혼 생활을 하며 마주할 온갖 난관을 살인의 형태로 엮어놓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영화는 꽤나 격렬하게 비혼주의를 권장하는 꼴이 된다. 다만, 의 장르에 오컬트가 섞여 있다는 점이 마이너스 요소다. 사마라 위빙의 투쟁은 후반부로 갈수록 리얼리즘을 뒤집어쓰면서 고작 '버티기' 이상이 되지..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