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블루레이 본편 정보

애드 아스트라, 그렇게 진정한 아버지가 된다

즈라더 2020. 11. 12. 18:00

 본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담겨 있다.


 <애드 아스트라>의 지향점은 분명히 <인터스텔라>와는 다르다. <인터스텔라>가 각종 장르가 다양하게 포함된 종합 선물에 가까운 반면, <애드 아스트라>는 싸이코 스릴러(공포 영화를 의미함이 아니다)라는 한 가지 장르에 매달리며, 스릴을 불러오기 위한 도구로 '우주'를 가져다 쓴 덕에 거대하다.


 영화가 느긋하다는 이유로 <애드 아스트라>를 예술 영화처럼 받아들이는 사람도 보이지만, <그래비티>, <마션>, <인터스텔라> 등의 여러 우주 영화들이 지나치게 빠르게 달려서 그럴 뿐, <애드 아스트라>가 특별하게 느린 건 아니다. 로이(브래드 피트 분)의 여정에 달에서 벌어지는 카체이싱, 화성의 카운트다운 시퀀스까지 밀어넣으며 오락성을 분배하고 있다. 크레딧을 제외하면 2시간도 안 되는 영화기에 꽤 촘촘하게 들어간 정상적인 속도의 영화라 생각한다. 우주 다큐멘터리가 떠오르는 OST 쪽이 그런 인상을 줬던 것 아닐까.


 <애드 아스트라>의 하이라이트는 아버지를 잃은 후 감정의 표면에 강력한 갑옷을 만들어버린 로이가 점차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위해 비튼 것은 바로 유전자. 모든 것을 벗어낸 로이가 아버지에게 손을 내밀자, 다른 선원에게 했던 것처럼 반발하고 분노하며 폭력을 행사한 게 아니라 어쩔 도리가 없이 손을 내밀어야 했던 클리포드(토미 리 존스)의 모습은 그야말로 유전자의 공포다. 인간은 영원히 살 수 없기에 자신의 복제품(자손)을 남겨서 영원을 추구한다던가. 로이라는 복제품이 젊음, 압도적인 재능을 한껏 뽐낸 뒤 '그럼에도 사랑한다'며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클리포드는 어쩔 도리가 없이 이끌려가버렸다. 자신의 임무가 전부 끝났음을 깨닫고.


 로이의 아버지인 클리포드가 지구로부터 도망친 것은 꿈을 꾸는 현역, 젊고 어린 자신의 강렬한 에너지가 영원하길 바랐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현실을 부정한 채 수십 년을 살다가 결국엔 '아버지'가 되어버리고 말았으니 그런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우주의 저편, 정말로 어이없을 만큼 섬뜩한 어둠 속으로 날아가던 클리포드의 형태는 오금이 저리고 괄약근에 무리가 가는 공포였다. 


 로이 외의 인물이 모두 사라지고 갈등 요소가 배제된 후반부. 영화는 우주가 얼마나 장대하고 무서운 존재인지 확실하게 보여준다. 태양으로부터 점차 멀어져 해왕성으로 날아가는 로이는 <인터스텔라>의 팀원들이 웜홀로 다가가는 것과 다른 개념을 지니고 있다. 미지를 향한 탐험이 아니라 집에서 45억 킬로미터나 떨어진 막다른 곳. 그리고 그곳에서 한 번 실수라도 하면 아무도 가본 적 없는 태양계 밖으로 날아가고 만다는 섬뜩함. <애드 아스트라>는 이런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공포를 밑바탕에 깔고 가기 때문에 모든 장면에서 스릴이 느껴진다. 감독이 정말 영리했다. 태양빛을 거의 받을 수 없다는 점을 이용해서 푸르스름한 해왕성을 그저 죽은 행성처럼 그려냈다는 것에서 무엇을 노렸는지 확신할 수 있다.


 우주라는 미지의 공포 속에서 아버지가 되어 사라지는 DNA에 담긴 의무를 저버린 클리포드는 이상과 목적을 혼돈하고 자기합리화에 빠져서 현실을 부정한다. 자신의 현실 부정이 태양계 전체에 끔찍한 재난을 낳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골방에 가까운 우주선 안에 갇힌 채, 모든 사건들이 그저 평범한 선체의 고장이라도 된 것마냥 가볍게 "고치려고 하는데 잘 안 돼서..."라고 한다. 이를 듣고 실망감과 낯섬에 당혹해있는 로이는 그에게 말한다.

 

 집으로 가요. 아빠.


 그렇게 아빠가 무너졌다. 그렇게 아들은 자신의 감정에 입혔던 갑옷을 벗어내고 아빠가 될 준비를 마쳤다. 


 왠지 브래드 피트가 자신의 아이들에게 보내는 사죄처럼 느껴지는 영화다.

 

 이하 스크린샷은 <애드 아스트라> 한국판 블루레이의 원본 사이즈 캡쳐. 지금 시대엔 드물게도 35mm 필름으로 촬영한 영화이며 2K DI로 피니쉬했다. 필름 그레인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데다 대비값을 과도하게 높이는 컨셉과 거리가 매우 있는 영상이기 때문에 좋은 화질이라고 해도 그리 와닿지 않을 것이다. 아나몰픽 렌즈로 인한 왜곡 현상 역시 고려사항. 

 

꼭 지옥의 행성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