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그리웠던 토니 스콧의 흔적을 발견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토니 스콧과 마이클 베이의 정확히 중간 지점에 있는 감독을 발견했다. <블러드 샷>의 데이브 윌슨이다.
<블러드 샷>은 최상급 킬링타임 액션 영화다. 누구에게도 질 것 같지 않은 빈 디젤의 캐릭터를 그대로 살려내서 명멸하는 과거와 투쟁하고 미지의 미래에 발을 옮기는 액션을 담았다. 철저한 개연성의 영화는 아니지만, 이는 각 캐릭터의 과거를 완전하게 생략했기 때문으로, 이 부분을 가볍게 건너뛸 수 있다면, 경이로운 VFX 활용의 액션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블러드 샷>의 영상 색조는 분명히 토니 스콧과 마이클 베이의 그것인 한편, 차분한 무드로 드라마를 담아 역할의 감정을 끌어내는 방식은 토니 스콧을 닮았는데, 특히 빌런과의 마지막 대결(?)에서 넘쳐나는 감정을 하나도 잃지 않겠다는 듯 공을 들인 초고속 촬영과 부감샷은 데이브 윌슨이 토니 스콧의 영향을 받았다고 분명하게 알려준다. 중반에 나오는 체이싱 장면은 아예 대놓고 토니 스콧 스타일이다.
또한, 강화 인간들과의 (8할이 VFX인) 격투 시퀀스에서 보게 될 롤러코스터 액션은 구도부터가 아예 마이클 베이 판박이다. 굳이 차이를 찾아보자면, 마이클 베이보다 흐름에 더 신경을 썼다는 것과 제작비의 한계인지 장면의 길이가 짧다는 것 정도일까. 인물의 감정이 혼란스러울 때, 얕은 심도로 얼굴을 비틀어 촬영하며 포커스를 모호한 곳에 두는 마이클 베이 특유의 연출 역시 빈번하게 드러난다. 극을 마무리하는 방식 역시 마이클 베이 스타일이다.
어쩌면 우리는 새로운 비주얼리스트를 발견한 건지도 모른다. 데이브 윌슨이란 이름을 기억해두자.
참고로 그는 그저 토니 스콧이나 마이클 베이의 아류로 남을 감독은 아닌 것 같다. VFX를 다루는 방식이 경이로울 정도로 스타일리쉬하다 싶더니만 3D 애니메이션, 영화의 VFX 디렉터 혹은 크루로 일해온 전문가. 이미 여러 대작 게임의 시네마틱 오프닝, 브릿지, 트레일러 등을 감독한 경험이 있고, <러브, 데스 + 로봇>의 한 에피소드를 감독하기도 했다.
스턴트 코디네이터들이 감독을 맡아 액션의 한 획을 그은 <존 윅> 시리즈처럼 <블러드 샷>의 역시 VFX, 시네마틱 CG 애니메이션의 프로듀서가 감독을 맡아 VFX 활용의 한 획을 그은 셈. 비슷한 사례를 또 하나 들자면, 기계 공학과 건축학을 공부한 조셉 코신스키가 <트론: 새로운 시작>, <오블리비언>으로 웅장한 비주얼을 만들어낸 것도 있겠다. 분명히 자신만의 무기를 가진 감독이다.
이하 스크린샷은 <블러드 샷> 한국판 블루레이의 원본 사이즈 캡쳐. 아나몰픽 렌즈의 왜곡 현상과 흐려짐 탓에 완전히 또렷한 화면을 볼 순 없지만, DXL 8K 소스와 4K DI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영상이다. 단, 터널씬과 일부 VFX 시퀀스에서 방대한 정보량을 소화하지 못 하는 바람에 미세한 블록 노이즈가 발생하는 점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