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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랑] 근사하게 그려진 원작의 정서

즈라더 2021. 4. 13. 12:00

 지금은 재패니메이션 전성기의 마지막 주자로 인정받고 있지만, 공개 당시만 해도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분리되어 치열하게 대립하던 애니메이션 인랑은 한국에서 실사화되었음에도 똑같은 상황과 마주했다. 다만 호불호와 별개로 김지운 감독의 강단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원작의 정서를 그대로 가져온 강단. 거기에 평범한 조명조차 네온사인처럼 보이도록 연출함으로써 사이버펑크 분위기를 낸 영상 접근법. 이병헌과 최민식을 데리고 고어 스릴러를 만들었던 그 강단이 인랑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본래 원작 애니메이션이 '똥철학'이란 말을 들었을 만큼 난해했던 걸 떠올리면 그래도 실사판 인랑은 비교적 쉽다고 할 만하다. 초반부 다소 복잡하게 펼쳐진 정치 세력의 싸움은 그저 배경이 될 뿐이고, 중반부턴 인물 개인의 감정에 집중하므로 설사 일부 요소를 놓쳤더라도 큰 걸 놓쳤다는 생각은 안 해도 된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인랑을 지독한 로맨스라고 할 수도 있겠고, 뭔가 거창한 걸 보여줄 듯하더니 용두사미처럼 끝나버린 영화로 판단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어떻든 간에 영화가 만들어낸 근미래 풍경이 아주 근사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을 거라 장담한다.


 개인적으론 결론의 어중간함이 다소 아쉽다. 원작 애니메이션의 결말은 꽤나 충격적이고 불쾌한 수준이므로 이를 그대로 따라갈 순 없더라도 뭔가 하나만큼은 확실한 핏빛 결단이 내려지길 기대했었다. 그러나 영화는 기대와는 다소 다른 포지션을 취했다. 김지운 감독이 어떤 의도로 결론을 그려냈는지야 코멘터리를 들어보면 알겠지만, 영화 내내 원작의 정서를 따라가다가 갑작스레 유턴을 한 기분이라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물론, 그 결론이 만들어낸 엔딩에는 나름대로 찬성한다. 영화 내내 취급이 잔혹하기만 했던 어느 인물이 불쌍해서라도.


 따지고 보자면 인랑의 심장은 한효주가 맡은 이윤희다. 혼란스러운 시대상이나 고통스러워하는 개인의 갈등 모두 이윤희로부터 발산된다. 심지어 주인공인 임중경의 심경마저도 이윤희를 거쳐서 표현되기에 중요한 역할이라 할 수 있고, 한효주는 이를 아주 멋지게 소화해냈다. 크롭된 것으로 보이는 일부 대담한 장면은 한효주가 자신을 완전히 내던져서 연기했다는 걸 알려준다. (개인적으론 원작의 분위기가 물씬 풍겨서 만족스러웠지만) 인랑을 두고 '심장만큼은 살아있는 영화'라고 평해도 될 것 같다.


 참고로 김지운 감독의 고질적인 문제점인 대사 전달력이 인랑에선 완전히 극대화되었다. 자막을 켜고 보는 걸 권한다. 다행히 블루레이의 화질은 기가 막히게 좋다. 디지털 촬영의 장점을 극대화한 암부 묘사가 제일 마음에 든다. 어두운 장면이 많은 영화이므로 계조가 중요했는데, 이것 역시 큰 문제가 발생하는 장면은 없다. 

 

 이하 스크린샷은 인랑 정발판 블루레이 원본 사이즈 캡쳐. 

 

새삼 근사한 그림이다
총격씬 사운드가 정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