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라이 로스가 감독하고 조 카나한이 각본을 썼으며 브루스 윌리스가 주연을 맡은 <데스 위시>는 분명히 크레딧에 흐르는 묵직한 이름들 만큼의 결과물은 아니다. 일라이 로스와 조 카나한의 공통된 특징이라고 한다면 치열한 스릴감일 텐데, <데스 위시>의 사건들은 치열함이 거의 보이지 않고, 주인공의 직업인 '의사'가 지닐 수 있는 현실적인 한계도 뛰어넘지 않는다.
무엇보다 아쉬운 점은 영화의 주제인 '모순'이 후반에 흐지부지 된다는 사실이다. 서로 총구를 겨눠 부상을 입은 경찰과 범죄자를 모두 치료할 수밖에 없는 모순된 태도의 의사는 이윽고 자신의 손을 사람을 살리는 것뿐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것에도 사용하게 된다. 이는 미국이 총을 사용하는 이유와 같다. 경찰력이 구석구석 닿을 수 없는 넓은 땅의 미국은 범죄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총기가 필요해졌지만, 동시에 총기는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서도 사용된다. 어느 도구가 같은 사건을 두고 완전히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는 모순. 어차피 전쟁에선 서로가 총구를 겨누지 않느냐는 주장은 이 경우엔 총기가 '일반인이 서로 간의 거리를 측정하는 도구'가 되어버린다는 점에서 각하할 수 있다.
<데스 위시>는 이러한 모순을 후반에 들어 포기한다. 치열함이 배제된 가벼운 액션과 지나치게 손쉬운 범죄 행위 등 여러 측면에서 평이한 마당에 영화의 주제를 파고 드는 노력도 부족하니 무난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다만, <데스 위시>엔 몇가지 체크해야 할 요소가 있다. 일단, 우리의 브루스 윌리스 형님은 여전히 몸 놀림이 살아있다. 주저 없이 몸을 날리는 장면이나 쓰레기통을 타고 울타리를 넘어갈 때의 민첩함은 20대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 또한, 카밀라 모로네의 사랑스런 자태는 영화 초반에 '곧 나락으로 떨어질 행복한 가정'을 완벽하게 하는 요소였다. 신인 배우일 수록 특정 부분에 힘이 잔뜩 들어가게 마련인데, 그런 게 보이지 않는 걸 보아 앞으로 크게 될 배우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데스 위시>는 일라이 로스가 '주류'에 들어올 각오가 되어있음을 보인 영화다. 실제로 그는 <데스 위시> 전후를 기점으로 이전의 참혹한 영화들과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아래로 <데스 위시> 한국판 블루레이의 원본 사이즈 캡쳐. 화질은 모난 곳 없이 괜찮은 편이지만, 최근 쏟아져나오는 극한 샤프니스의 영상들과 비교하면 다소 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