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블루레이 본편 정보

영화 곡성 블루레이, 이봐 당신 왜 방관하고 있지?

몰루이지 2020. 9. 15. 12:00

 길고 긴 기다림 끝에 나온 <곡성> 블루레이를 봤다. 나온 지 조금 됐는데도 이제야 감상한 건 나홍진 감독의 <곡성> 컨펌 과정에 의문이 워낙 많아서 뿔이 난 탓이다. 아시다시피 <곡성> 블루레이는 완성도를 위해서 출시일이 늦춰졌음에도(제작사가 판권을 잃기 직전에 출시되었다.) 다소 평범한 결과물이 되었다. 심지어 그 중요한 코멘터리에선 '너무 오래돼서 기억 안 난다'는 이야기가 빈번하게 나온다. 실망스러울 수밖에. 


 자, 이제 그런 외적인 실망스러움은 접어두고 영화 이야기를 해보자. 아래로 <곡성>의 스포일러가 담겨 있다.


 <곡성>은 내용을 따라가기 그렇게 어렵지 않은 영화다. 그저 해석해볼 필요가 있는 부분, 그러니까 감독이 명확하게 답을 그려놓지 않은 부분이 있을 뿐이다. 누가 선이고 악인지 비교적 명확하게 정리한 뒤, '뭣이 중헌디?'를 마지막에 열거한다. 이는 영화의 오프닝에 나온 누가복음 구절과 같이 '나는 나다. 넌 너의 입맛에 맞게 왜곡해서 보고 있을 뿐이다.'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선, 악, 조력자, 피해자 등이 비슷한 유형의 오컬트 스릴러보다 훨씬 명확한 영화고, 그 과정을 약간의 비틀어서 감상자를 낚은 것에 불과하다. 


 그렇게 명확한 관계도에 난 나홍진 감독의 깊은 분노를 느꼈다. 


 세상에 악이 만연한다. 그런데 그 악들을 프로파일링해보니 대체로 계기가 있더란 말이다. 살인마들은 선천적 사이코패스일 수도 있지만, 후천적 사이코패스일 수도 있다. 오히려 선천적 사이코패스들은 이후 가정교육을 통해 정상적인 사람처럼 살아갈 수 있는 반면, 후천적 사이코패스는 일종의 '스위치'가 눌리고 그 트라우마가 정신을 지배한 뒤 살인마로 돌변하더란 말이다. '악'은 분명히 존재하고 그게 본인이 바라던 바가 아닌 경우가 있는데, 그렇다면 신은 그렇게 한 사람을 악의 구렁텅이로 끌고 간 '외부적 요소'를 왜 방치하는가. 이건 신의 존재를 긍정하던 부정하든 간에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본 의문일 테고, 나홍진 감독은 그냥 생각하는 것을 넘어 영화 전체를 들고 신에게 물어본 것이다.


 이봐 신, 너는 왜 우리에게 시련을 주고 방관하지? 


 <곡성>에서 천우희가 맡은 무명의 카리스마는 상상을 초월한다. 능력 역시 마찬가지. 쿠니무라 준이 맡은 일본인은 무명이 나타나자 온몸에 고통을 느끼며 기절한다. 연출 상 페이크가 있어서 마치 무명이 도망치는 것처럼 꾸며진 짤막한 추격씬도 결말을 보면 오히려 일본인이 도망쳤다는 걸 알 수 있다. 황정민이 맡은 일광은 무명을 보자마자 토혈을 쏟아내며 '사탄 혹은 예수'와의 협력을 포기하고 필사적으로 도망친다. 그러니까 무명은 마음만 먹으면 사태를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곡성>의 결말은 더 분노가 치밀어오르게 꾸며졌다. 일본인과 일광이 본색을 드러내는 동안 무명은 그저 곽도원이 연기한 종구만을 구하려 하고 있었다. 종구가 무명의 말을 들었을 경우 신의 배려로 정신까지 챙겨서 살아났을 수 있겠지만, 그의 가족들이 죽는 것엔 변함이 없다는 얘기다. 천우희는 본인의 능력이 아니라 종구의 가족을 희생시킴으로써 일본인과 일광을 몰아내려고 했으며, 이는 종구에게 곧 또 다른 '시련'이 됨을 의미한다. 어떻게든 가족을 지키려던 종구 개인에겐 무명이나 일본인이나 모두 악당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곡성>은 거대한 질문이다. 


 세상을 이렇게 만들어놓은 너. 왜 우리에게 시련을 주지?


 세상의 악이 결국, 사탄의 꾀임이라면 그 책임은 신에게 있지 않을까?

 
 우리가 네 장난감이냐?


 뭐, 이런 얘기다. 물론, 곡성에 담긴 감독의 생각들이 이렇게 단순하진 않을 것이다. 그저 그중에 제일 커 보이는 생각을 끄적여봤다. 


 그나저나 새삼 참 잘 만들어진 영화다. 사전정보 없이 봉준호 감독 다음으로 한국인 누군가가 오스카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는 소식이 들리면, 난 분명히 '혹시 나홍진 아닐까?'하고 생각할 것이다.

 

 이하 스크린샷은 <곡성> 블루레이의 원본 사이즈 캡쳐. 외국판보다 다소 밝다는 점이 문제가 되었었는데, 그리 크게 신경 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블랙 레벨 조절에 실패한 다른 타이틀과는 조금 궤를 달리한다고 해야 할까. 암부 영역의 계조에 사소한 문제가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 같은 민감한 사람들이나 지적할 문제이므로 오히려 이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간 집단 사격 맞을 수 있으므로 입을 다물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