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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문3: 최후의 대결 (2015) 영춘권 vs 영춘권

즈라더 2021. 7. 9. 12:00

 그러니까 엽위신에겐 드라마 쪽 연출 재능이 정말 없다. 그의 모든 영화가 그래왔다. 오죽하면 드라마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1시간 30분으로 제작된 '도화선'이 그가 만든 영화 중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겠는가. 엽문3: 최후의 대결은 그걸 재차 드러내는 작품이다.


 엽문 시리즈는 1편부터 실제 역사와 거리가 있었다. 엽문이 일본 쪽과 대립각을 세운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 제국에 맞서려는 의도와는 거리가 먼데다 그가 홍콩으로 도망친 것은 공산당을 피해서였다. 그는 국민당과 연결되어 약간 활동한 적이 있기 때문에 공산당에게 숙청 당할까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엽문 시리즈에선 일본에 맞서다가 일본 제국을 피해 아내인 장영성과 함께 홍콩에 정착했다는 이야기가 되어있다. 실존 인물 장영성은 잠시 홍콩에 있었을 뿐, 다시 불산으로 돌아갔다가 국경이 막혀 엽문과 생이별한다. 따라서 2편부터는 완전한 픽션이다.


 자, 그렇게 2편이 완벽한 픽션으로 만들어졌다면, 이제 실제 사실은 무시하고 엽문을 독자적인 가상 인물로 삼아서 작품을 제작할 필요가 있다. 곽원갑이나 황비홍 등을 다룬 영화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엽문3: 최후의 대결은 엉뚱하게 실존 인물 장영성이 죽게 된 이유인 자궁암과, 엽문이 실제로 마주했던 '가짜 영춘권 논란'을 엮어서 교차하는 방식의 연출을 시도힌다. 둘 중의 하나만 다뤄도 드라마 연출에 재능이 없는 엽위신에겐 굉장히 버거운 일인데 그걸 같이 묶는다는 건 일본도를 들고 핵폭탄을 향해 돌진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당연하게도 처참한 결과물이 나왔다.


 처음 빌런으로 소개된 담요문의 역할을 엉뚱한 방식으로 얼렁뚱땅 정리하더니 엽문은 병에 걸린 아내를 케어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 와중에 장천지는 내가 진정한 영춘권 계승자라면서 시비를 건다. 이미 2편부터 실제와는 거리가 있는 스토리가 된 마당에 굳이 실제 사건을 가져다가 어설프게 짜깁기한 것이다. 


 걸림돌이 되는 건 역시나 연출. 엽위신의 연출은 영화 속에 펼쳐진 세 가지 사건들을 완전하게 따로 놀도록 했으며, 같은 공간 같은 상황에 처해있는 인물들이 대화를 나누는 게 아니라 선문답을 주고 받는 느낌이 들 만큼 섞어내질 못한다. 엽문과 장천지는 당당하게(?) 대결을 해놓고선 마치 아무런 관계가 아니라는 것처럼 서로 알아듣지도 못 할 소리를 꺼내며 대결을 마무리하는데 장항선 선생님의 명대사(!)가 떠오를 지경. 엽위신의 한계가 만들어낸 정신줄 놓은 공생이다.


 이와 같은 것들을 감안하고도 엽문3: 최후의 대결을 봐야 하는 이유라면 역시 영춘권 대 영춘권의 대결이 되겠다. 영화 내내 허술한 액션씬을 보여준 이유가 이 대결씬을 위해서가 아닌가 싶을 만큼 역대급 액션을 구성해놨다. 무술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극한까지 몰아부쳤다고 할 만하다. 솔직하게 이 장면을 최고의 화질로 보기 위해서 구매한 블루레이라고 고백해본다. 이제 이런 무술 영화 자체가 그저 B영화로만 소모되는 시대이므로 (조문탁이 황비홍으로 돌아왔는데, 깜짝 놀랄 만큼 완벽한 B영화더라.) 소중하고 또 소중한 명장면이 아닐 수 없다. 영춘권 대 영춘권과 그 즐거움을 더하려는 의도의 내러티브들이 담긴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영화다.


뱀다리) 실제 엽문이 다른 영춘권 사부들과 달리 일대종사라 불릴 수 있었던 이유는 영춘권의 확장성을 이해하고 개방적인 태도로 다른 무술을 접목시키도록 의도했기 때문이다. 엽문의 제자로 가장 유명한 황순량이나 이소룡은 그렇다쳐도 유명하지 않은 다른 제자들도 대체로 영춘권을 개량해서 각자 도장을 열었으며, 엽문은 그걸 전혀 막지 않았다고 한다. 이소룡의 절권도 수기에 영춘권의 흔적이 아주 짙게 배어있는 것만 봐도 엽문이 얼마나 개방적인 태도로 임했는지 알 수 있다. 이쯤되면 정통성 같은 건 사실 의미가 없다. 


뱀다리2) 엽문에겐 첩이 있었다. 북방 여인이라 불렸던 그 첩은 홍콩으로 들어올 수 없었던 장영성과 달리 죽을 때까지 엽문과 함께 보냈다. 왕가위 감독은 그 북방 여인에서 모티브를 얻어 '궁이'란 캐릭터를 만들어냈고, 장쯔이가 역할을 맡아 '일대종사'의 실질적인 주인공으로 활약한다. 두 사람은 말년을 아편에 취해서 살았다고 한다. 즉, 엽문 시리즈는 엽문의 흑역사라 할 수 있을 첩, 아편, 정치적 스탠스(국민당)를 쏙 빼고 영화를 만든 셈이다.

 

 이하 스크린샷은 엽문3: 최후의 대결 블루레이의 원본 사이즈 캡쳐.

 

특히 이 칼부림 장면은.... 대단하다는 말론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