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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물량 공세를 위한 무리수들

즈라더 2020. 11. 6. 18:00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를 보고 리뷰를 적지 못 한 것에 대해 나 자신도 이해가 안 갔다. 게다가 블루레이 스페셜 피처를 보고 나면 할 이야기가 생길 거라 말한 적이 있음에도 블루레이가 출시되고 구매한지 한참 지나도록 감상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 방치하다가 간신히 최근 감상했다. 다행히 스페셜 피처를 보기 전에 본편 만으로도 할 얘기가 생겼음에 기뻐해본다. 


 다만, 이 포스팅은 영화 자체에 대한 리뷰라기보단 왜 내가 이 영화에 몰입하지 못 했느냐에 대한 고민이다.


 세상에 둘도 없는 쓰레기 같은 작품조차도 할 말이 생기게 마련이고, 난 그런 작품을 수도 없이 많이 감상해서 리뷰를 남겨왔다. 누군가가 '아니, 이딴 작품을 보고 리뷰를 굳이 왜 남기느냐'라고 의문을 가질 만큼. 그런 내가 어떻게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같이 할 말이 한가득해야 마땅한 영화를 두고 글을 쓸 수 없었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영화의 오프닝이 너무 황당했기 때문이다.


 SF 판타지 영화를 두고 현실성을 따지는 건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는 시리즈물이므로 적어도 7편 전후로 언급된 내용 만큼은 지켜져야 한다. 어떤 영화든 도구로 이용될 현실성은 한계치를 가지고 그 한계치를 바탕으로 극을 꾸려가게 마련이다. 이 영화는 오프닝에서 그 한계치를 엉뚱하게 부숴버렸다. 바로 팰퍼틴이 몰래 모아온 스타 디스트로이어의 존재가 그렇게 했다.


 시리즈를 적당히라도 봐온 사람은 알겠지만, 스타워즈 세계관에도 분명히 '물자'와 '인력'이라는 게 존재한다. 간단한 예로 <스타워즈 에피소드2: 클론의 습격>과 <스타워즈 에피소드3: 시스의 복수>에 주요 종족으로 등장하는 '클론'을 들 수 있다. 클론 군대의 존재는 감출래야 감출 수 없었고 그렇게 세상에 드러난 클론은 공화국에 승리와 멸망을 함께 안겨준다. 이렇게 중요한 클론이 이후 시리즈에서 등장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효율성이다. 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들어갔기 때문에 모병과 세뇌를 거치는 게 훨씬 낫다는 결론이었다. 


 다른 사례로, 오리지널 트릴로지를 관통하는 핵심 무기 '데스 스타'가 있다. 한 번의 공격으로 행성 하나를 부술 수 있는 이 무서운 병기는 강력한 만큼 막대한 인력, 비용, 시간이 들어갔고 물자 조달이 쉽지 않아 무리를 해야 했다.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에 등장하는 스타킬러 베이스는 퍼스트 오더에 물자 조달의 유리를 위해서 행성을 개조하는 식으로 만들어졌다. 스타킬러 베이스의 베이스가 된 행성 자체가 에너지의 근원인 크리스탈의 생산지다. 그냥 즉석에서 가공해 사용하도록 효율성을 중시한 것이다. 이것만 봐도 스타워즈 시리즈가 물자와 인력 측면에선 어느 정도 현실성을 지켰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는 아예 오프닝에서 그 현실성을 깼다.


 오프닝을 보면 '몰래' 만들어온 스타 디스트로이어가 엄청나게 등장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스타 디스트로이어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물자가 들어갈지 상상해보시라. 오프닝에 나온 스타 디스트로이어의 숫자는 아직 제국이 건재하던 시절, 엔도 전투에 등장한 숫자와 비슷한 규모였다. 게다가 이번 스타 디스트로이어는 무려 데스 스타가 지녔던 행성 파괴 무기를 기본으로 장착하고 있다. 이게 가능하려면 공화국 중심이든 그 변방이든 간에 상상을 초월하는 숫자의 물자가 이동해야 한다. 그리고 그 물자의 이동을 공화국과 퍼스트 오더가 몰랐다는 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땅에 파묻혀서 재기를 노리던 팰퍼틴이 은하의 미개척지를 완전 정복이라도 했다면 모를까, 그런 서술은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시작 부분부터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에 몰입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전작의 혹평에서 벗어나기 위해 물량 공세를 준비한 모양이지만, 너무 선을 많이 넘어갔다. 


 어쨌든 이렇게 깨져버린 '현실성'을 무시한 채 다시 본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는 가볍게 즐길 만한 영화였다. 비록 전작인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가 활짝 열어놓은 세계관을 대부분 닫아버리는 바람에 전작에 호평을 내린 이들에겐 굉장히 황당한 영화일 테지만, 그게 아닌 사람이라면 그냥 저냥 즐길 만한 영화일 것이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수정주의 골수팬들이야 이미 마음을 놓았을 테고.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일반인들에겐 약간 올드한 블록버스터로 나름 가치가 있지 않을까. 솔직히 이 시리즈를 두고 객관적 시선으로 바라보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라서 확신은 못 하겠다. 게다가 난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를 대단히 훌륭한 작품으로 여기는 쪽이다.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의 클라이막스엔 반가운 얼굴, 목소리가 잔뜩 나온다. 흰머리가 가득한 노인이 되어 등장한 웨지 안틸레스의 모습을 보고 문득 내 나이를 느꼈다. 생각해보면 20년 단위로 3편씩 제작된 스타워즈가 9편까지 나왔으니 어마어마한 시간이 흐른 것이다. 산만함의 극치를 달리는 이 영화를 보며 눈물이 찔끔 난 이유는 이 세월을 피부로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하 스크린샷은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한국판 블루레이 원본 사이즈 캡쳐. 얼마 남지 않은 필름의 장점을 아주 잘 살린 훌륭한 화질이다. 흠 잡을 곳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