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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우먼 1984 (2020) 액션을 포기하고 욱여넣은 훈계질

즈라더 2021. 5. 3. 18:00

 영화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은 세련되어야 한다. 억지로 욱여넣으면 촌스러워 보이고 거부감을 일으키게 마련이다. 특히 페미니즘이 섞인 휴머니즘이라면 요새 같은 시기에 얼마나 거부감이 심하겠는가. 원더우먼 1984는 그걸 몰랐다. 


 촌스럽다는 말은 때론 익숙하다는 말과 비슷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원더우먼 1984는 굳이 1984년을 배경으로 할 이유가 없는 영화다. 영화는 마치 80년대 TV 방송이나 해볼 법한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촌스럽게 메시지를 욱여넣는데, 그래서 이런 변명을 하고 싶은 것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해보았다. 


 '80년대 영상 문화의 오마쥬를 겸했기 때문에 이렇게 촌스러운 스토리가 되었습니다. 사실, 이건 촌스러운 게 아니라 익숙한 거라고요.'


 진짜로 이런 생각을 했다면 그야말로 비겁한 변명이다.

 

피흘리는 원더우먼을 볼 수 있는 드문 기회(?)다


당신처럼 멋지고 섹시하며 힘과 재력까지 갖춘 신이 되고 싶어.
- 그건 네가 아니야. 넌 너 자체로 아름다워.


당신은 누릴 수 있는 걸 다 누려봤으니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야.
- 믿어. 넌 너로서 완벽해. 


난 원하는 걸 가지고 싶어.
- 그렇게 함으로써 잃게 되는 건? 그러지 마. 너 역시 누군가에겐 워너비일 거야.

 

코미디의 여왕이라 불리는 크리스틴 위그를 데려다가 어울리지 않는 역할을 맡겼다.. 너드를 연기하기엔 너무 매력적이거든. 


 원더우먼 1984는 이러한 것들을 올드갓이 남겨놓은 유산, 인류 멸망과 같은 막대한 조건을 걸고 풀어놓는다. 영화는 무려 1시간이 넘도록 이 메시지를 위한 빌드업만 잔뜩 해놓는다. 극에 긴장감이라곤 하나도 없으며, 리미트가 풀려 미쳐버린 캐릭터를 환상적으로 펼쳐낸 페드로 파스칼의 연기가 홀로 순기능을 하며 재미를 만들어낼 뿐이다. 결국, 클라이맥스에 이르러서 원더우먼 1984는 페드로 파스칼의 1인 연극에 가까운 형태가 되고 만다. 


 물론, 이러한 (건방진) 계도 영화라고 해도 일단은 장르가 액션이므로 액션을 잘 만들면 괜찮을 수 있다. 그러나 원더우먼 당시에도 잭 스나이더와 함께해왔던 스턴트 팀이 투입되었을 만큼 액션에 감각이 없는 페티 젠킨스는 이번엔 기어이 자신의 부족한 실력을 증명해버렸다. 유치찬란함으로 손발이 오그라들게 하는 CW 유니버스를 고려해볼 때, 어쩌면 여기에 제프 존스라는 DC의 빌런이 영향력을 끼쳤을 수도 있겠다. 뭐, 어차피 제프 존스는 페티 젠킨스와 함께 이 영화의 각본을 썼기 때문에 책임을 피할 순 없을 것이다. 

 


 씨알도 안 먹힌다. 80년대여도 '지랄하고 자빠졌네' 소리가 절로 나올 이상향을 읊조리는 원더우먼은 기껏 조금 늘어난 갤 가돗의 연기력을 힘빠지게 소비한다. 영화 몬스터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그 매서운 감독도 헐리우드의 돈맛을 보니 세상이 마냥 평화롭게 보이나 보다. 이 영화에서 얻을 수 있는 건 의도적으로 '모든 여성의 이상'에 알맞게 꾸며진 갤 가돗의 비주얼뿐이다. 


 참고로 이 영화가 스나이더버스와 어긋났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충 적당히 둘러대면 그만일 것들이다. 원더우먼이 하늘을 나는 장면도 슈퍼맨처럼 하늘을 나는 게 아니라 점프력과 올가미를 이용해 높이 올라간 뒤 윙슈트를 입은 것처럼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정도의 어긋남은 MCU에도 산재해있다. 중요한 건 스나이더버스가 정말로 작업에 들어갈 수 있느냐 없느냐지 이런 사소한 문제들은 해결할 수 있다.

 

뱀다리) 배트맨 대 슈퍼맨의 OST가 잔뜩 나온다. 쉽게 말해서 한스 짐머가 태업했다. 심지어 장황한 만큼 지루한 원더우먼의 '설득' 장면에 들어간 OST는 배트맨의 비극을 다룰 때 나오던 Beautiful Lie다. 왜 원더우먼에게 배트맨 테마를 준 건지 모르겠다.

 

 아래 스크린샷은 원더우먼 1984 정발판 블루레이 원본 사이즈 캡쳐. 아이맥스 시퀀스와 65mm 필름 시퀀스를 다량 담고 있고, 35mm 필름 시퀀스도 대단히 훌륭한 화질이다. 아이맥스, 65mm 필름, 디지털 아이맥스 촬영 분량은 1.90:1 화면비로 제작되었다. 디지털 영화가 99%인 지금 영화계에서 몇 되지 않는 필름 영화이므로 이참에 필름 영화의 영상이 어떤지 한 번 살펴보시길.

 

이분의 솔로 영화가 필요하다
메인 빌런과의 전투 역시 어찌나 싱겁던지
미안하지만 뒤의 날개는 CG로 만들어야 했다. 수트를 감당 못해서 뒤뚱거리는 원더우먼이라니....
이게 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