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들을 마냥 믿는 게 좋지 않다는 건 알지만, 이건 좀 쇼킹하다.
버즈 오브 프레이를 첫 감상했던 당시에 실망한 건 그저 내가 컨디션이 아주 안 좋았기 때문이려니 했다. 평론가들이 이토록 호평한다면 그럭저럭 볼 만한 구석이 있다는 얘기가 있음에도 내가 놓쳤다는 뜻일 수 있으니 할리 퀸에 대한 의리(?)로 다시 감상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블루레이를 구매해 두 번째 감상을 시도한 것이다.
부제에 할리 퀸이 들어간 걸 보면 알 수 있듯이 '버즈 오브 프레이'라는 자경단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할리퀸과 엮었기 때문에 버즈 오브 프레이인데, 버즈 오브 프레이의 구성원들은 이렇다 할 갈등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완벽하게 따로 놀며, 할리퀸 역시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갈등은커녕 얼굴조차 클라이맥스에 들어서야 보게 되는 사이도 있는 탓에 제목이 버즈 오브 프레이임에도 내용은 할리퀸이 되어버렸다. 할리퀸의 스탠드얼론 작품이란 의미다.
버즈 오브 프레이에서 배우들은 아무짝에 쓸데 없는 대사를 날리며 한껏 소모된다. 영화학 교과서에 '배우를 엉망진창으로 소모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반드시 집어넣어야 한다고 주장해본다. 다른 배우도 아니고 마고 로비, 엘리자베스 윈스테드, 이완 맥그리거조차 자기 매력을 발산할 수 없었다면, 그건 명백하게 감독의 연출 부족이다.
적당한 타격감은 있어도 절묘함, 화려함, 규모 모두 다 엉망진창인 액션은 버즈 오브 프레이가 얼마나 절망적인 영화인지 뚜렷하게 드러내는 증거다. 클라이맥스 액션은 80년대에 나왔어도 고개를 갸우뚱했을 만큼 기괴한데, 짧게 컷을 끊어가는 액션조차 연출할 줄 모르는 감독이 (누군가는 반드시 말렸어야 할) 롱테이크 액션을 구성해놨다.
무엇보다 영화의 배경이 정말 '갓댐 시티'가 맞긴 한지 모르겠단 말이다. 갓댐 시티의 경찰서가 총 한 방 제대로 쏴보지 못하고 탈탈 털린 것조차 어이없는 마당에 악당들은 어쩜 저리도 착한지 저곳으로 이사 가서 살고 싶을 지경이다.
길게 늘어놓고 보니까 이 리뷰 자체도 영화에 걸맞지 않는 것 같다. 버즈 오브 프레이란 영화는 장문의 리뷰로 비판받을 자격조차 없다. 버즈 오브 프레이에 비하면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영원불멸의 마스터피스. 이따위 영화에 평론가의 집단지성이 내놓은 점수가 로튼 토마토 78%, 메타 크리틱 60점이라고? 양심이고 나발이고 다 팽개쳐놓은 거냐, 아니면 몇몇 평론가의 여론몰이에 끌려다닌 거냐. 차라리 리얼을 10번 더 보겠다. 홉스 앤 쇼에 로튼 토마토 67%, 메타 크리틱 60점이 주어진 걸 떠올려보자. 디즈니만 PC에 미친 게 아니라 평론가들도 PC에 미쳐버린 게 아닐까 싶다.
이하 스크린샷은 버즈 오브 프레이(할리퀸의 황홀한 해방)의 정발판 블루레이 원본 사이즈 캡쳐. 화질이 엄청나게 좋다. 아리 알렉사의 필름 라이크함을 이용해 진짜 필름 촬영처럼 컨버팅했으며, 아나몰픽 렌즈로 인한 광각 왜곡도 이 타이틀의 해상력에 심한 악영향을 끼치진 않았다. VFX 씬의 밴딩 현상도 최대한 억제되었으며, 실제와 CG로 만든 스모그들조차 깔끔히 표현해내는 편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