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넷플릭스 정이 (2023) 앞과 뒤가 다른 연상호 감독의 스탠스

즈라더 2023. 1. 24. 01:38

정이 한국판 포스터

 

 제작비의 한계 때문일까. <정이>는 조금 게으른 편이다. 연상호 감독 프로필, 필모그래피를 통틀어서 펼쳐진 각본 스타일이나 연출 스타일을 고려할 때 <정이>는 분명히 더 멀리 나갔어야 하는 작품임에도 그렇지 않았다. 


 <정이>는 초반부 연상호 감독의 작품이 대체로 그런 것처럼 배배 꼬인 인간상을 한껏 뿌려놓는다. 애초에 딸이 어머니를 실험한다는 '일반적인 설정'과 까마득히 먼 설정을 밑바탕에 깔아 뒀다는 점에서 이미 연상호답다. 게다가 연상호는 그간 많은 SF 영화에서 언급했어야 마땅함에도 언급되지 않은 걸 건드린다. 인간의 뇌를 복제할 수 있게 되는 것과 영생이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것. 그저 자신의 복제품일 뿐이지, 자신이 영생을 누리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 복제를 통한 '영생'마저도 A타입부터 C타입으로 계급이 분류된다는 점도 역시나 연상호답다. 


 그러나 연상호 감독의 인간성을 실험하는 듯한 상상력은 보이지 않는 장벽에 막히기라도 한 듯 클라이맥스 직전에 딱 멈춘다. 심지어 주인공인 서현의 행동 여력에는 분명히 복제품인 정이를 오리지널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으며, 자신의 어릴 적 기억에 대한 속풀이마저 원하고 있다. 그렇게 <정이>는 장대하게 늘어놓은 세계관을 갑자기 리셋하고 배배 꼬였던 인간상을 평범하게 돌려놓은 뒤, 화려한 액션으로 넘어간다. 난 이 전개에 꽤나 반대하는 편이다.


 더 멀리, 더 많이. 전반부의 시니컬함을 끝까지 끌고 갔어야 하는 영화다. 그러나 <정이>는 모태가 되었을 여러 SF 영화의 일반론에 근거하여 마지막장을 무난함으로 도배하며 마무리된다. 서두에 제작비의 한계를 언급한 것은 플레잉타임 1분 1초가 전부 제작비인 SF 장르기 때문에 각본에도 자체 검열이 들어간 것 아닐까 하는 추측 때문이다.

 

정이 외국판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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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작비는 연출에도 한계를 만들어놨다. 많은 사람이 200억으로 이 정도 SF를 만들었다는 것에 감탄하는 모양인데, 어두운 장면이 극단적으로 많은 데다 해상력이 떨어지거나 프레임이 떨어지는 장면도 많은 걸 보아 딱 제작비 수준의 영화다. 할리우드 영화에 익숙한 사람이나 실제 미국에서 거주하며 각종 SF 영화에 익숙해져 있을 사람들에게 있어서 <정이>는 저예산으로 그럭저럭 세련되게 만든 영화 그 이상이 되지 못할 것이다. 클라이맥스의 액션씬의 작은 규모과 짧은 분량은 자칫 영화가 아닌 <환상특급>의 에피소드 중 하나 정도로 인식하게 할 가능성마저 있다. 규모의 미학으로 따진다면 <승리호>에도 한참 뒤처지는 수준.


 <정이>는 중심이 되어야 할 서현 역할의 강수연이 작품 퀄리티를 다소 깎아먹은 경향도 있다. 걷는 것마저 어색한 강수연의 연기는 누가 봐도 크로마키 앞에서 연기하는 게 어색한 배우의 일면이었다. 또한 극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구어체 스타일의 연기가 작품에 대한 몰입을 깨놓는다. 아무래도 SF 영화에 강수연 배우를 캐스팅한 건 실수로 결론이 난 것 같다.


 혹평에 가까운 이야기를 늘어놓았지만, <정이>는 그럭저럭 잘 매듭 해놓은 SF 영화다. 가볍게 즐기기 딱 좋은, 넷플릭스 재질의 영화. 망작이라는 얘기를 듣는 <반도>나 <괴이>에도 깃들어 있던 사회에 대한 분노가 <정이>에선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아쉽지만, 그 덕분에 설날에 적당히 즐기기 좋은 오락 영화로 탄생한 것도 사실이다. 클라이맥스의 액션은 스케일과 분량이 아쉽기는 해도 액션 그 자체는 나쁘지 않은 편이며, 신파 요소도 매우 적으므로 부담스럽지 않다. (신파를 지적한 평론가들은 반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 정도의 멜로드라마로 무슨 신파를 운운하나.)


 참고로 넷플릭스는 <정이>를 4K HDR로 제공하고 있는데, 어설픈 VFX를 감추기 위해서인지 영상 전반이 굉장히 어두운 편에 속한다. 모공 속 모낭충까지 보일 법한 쨍함을 기대한다면 아주 많이 실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