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칙 따위는 있는 그대로 무시해버리는 주제에 세계관은 양자 영역까지 뻗어가는 영화 <앤트맨과 와스프>. 이 황당무계한 역설이야말로 영화의 정체성을 말해주며, 영화를 흥미진진하게 하는 요소다. 물리 법칙을 무시하면 액션을 마음대로 재정의할 수 있고, 양자 물리학은 언제나 미지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영화의 액션은 전반적으로 예측을 불허하며, 여기에 미니멀한 군상극 형태를 띠게 함으로써 전개 역시 예측할 수 없도록 했다. 아마 <앤트맨과 와스프>를 처음 감상하는 사람은 도저히 다음을 예측할 수가 없어서 빨려 드는 것처럼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앤트맨과 와스프>는 영리하기도 하다. 이런 유형의 작품은 자칫 늘어지는 구간을 길게 잡았다가 그저 지루한 영화가 될 수도 있다. 심지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작품들 중에선 드물게 작은 공간에서 가족적인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품이 아닌가. 가족 이야기, 휴머니즘 뭐 그런 요소를 싫어하는 사람에겐 악평을 얻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앤트맨과 와스프>는 영리하게 드라마 구간을 매우 짧게 잡았고, 그 짧은 구간마저 헛웃음 나오는 코미디를 곁들였다. 그래서 영화는 쉴 틈이 없이 몰아친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정신없이 달리고 나면 영화가 끝나 있을 것이다. 과거 내가 <앤트맨과 와스프>를 <앤트맨>보다 좋아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롤러코스터를 반복해서 타면 익숙해져서 재미를 느끼기 어렵다. <앤트맨과 와스프> 역시 그런 문제가 존재하며, 만약 이 영화를 재감상하고자 한다면 최대한 많은 걸 잊어버린 시기에 하길 권한다.
디즈니 플러스는 <앤트맨과 와스프>를 아이맥스 4K HDR로 서비스한다. 이에 대해 가볍게 살펴보자.
일단 슬프게도 <앤트맨과 와스프>는 아이맥스 시퀀스 자체가 다소 적은 편이다. 다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아이맥스와 마찬가지로 액션씬을 중심으로 아이맥스가 구성되어 있는데, <앤트맨과 와스프>는 액션씬의 비중이 아주 큰 편은 아니다. 게다가 촬영 당시 아이맥스를 거의 고려하지 않은 티가 역력해서 <앤트맨>의 비스타비전 화면비보다도 액션의 쾌감이 덜하다. 시네마스코프 화면비에서는 그렇게 멋져 보이던 와스프의 액션이 1.9:1 디지털 아이맥스 화면으로 보니까 그다지 멋지지 않다. 발차기를 할 때마다 어설프게 펼쳐진 다리가 아이맥스에선 더 눈에 띄며, 순수 100% 디지털 캐릭터로 만들어진 액션씬은 CG라는 걸 더 쉽게 눈치챌 수 있다. 이토록 아이맥스 화면비가 도리어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걸 보아 역시 연출에서 아이맥스를 그다지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
HDR 역시 미묘하다. 이에 대해서는 과거에도 한 번 언급한 적이 있는데, 테크니컬러가 손댄 영상치고는 굉장히 밋밋하다. 어쩌면 과도한 HDR 효과를 지양하는 거라 볼 수도 있겠지만, 양자 영역처럼 화려한 구간마저도 그 '과도함'을 지양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따라서 <앤트맨과 와스프>의 아이맥스나 HDR에 대해서 큰 기대는 안 하는 게 좋다. 특히 HDR은 더욱 그렇다. <앤트맨과 와스프>는 전반적으로 매우 밝은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연구소 내부 정도를 제외하면 HDR이 힘을 발휘하는 곳도 없다. 다소 창백하게 보정된 것까지 포함해서, 자칫 일부 구간은 ABL 기능이 작동해 오히려 어두워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QLED 디스플레이라면 밝기가 한 번에 반타작 나는 수준은 아니라서 눈치채기 어렵겠지만, OLED는 분명히 '어랏? 조금 어둡다?'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장면이 있을 거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