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가 이제 자사의 구독자들이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 깨달은 느낌이다. <익스트랙션>과 <올드 가드>가 그 예시일 것이다. 돈을 잔뜩 썼다는 느낌의 영화를 만들기보단 적절한 배우들과 괜찮은 시나리오를 가져다 1) 현장감 있는 총격씬, 2) 타격감과 잔혹함을 두루 갖춘 액션씬, 3) 고통에 힘겨워하는 주인공 4) 어렵지 않은 반전 등을 섞는 게 더 효과적이라 본 모양이다.
영화 <케이트>는 앞서 말한 <익스트랙션>과 <올드 가드>가 공유하는 세 가지 요소를 고스란히 이어받은 영화다. 특히 주인공이 겪는 고통은 앞선 두 영화보다 훨씬 강렬해서 '과연 주인공이 결말에 어떻게 될까?'하는 마음을 불러일으켜 끝까지 보게 한다.
이전 넷플릭스표 영화들과 차별화되는 <케이트>만의 개성이라고 한다면, 오로지 주인공인 케이트의 시선으로만 이야기를 전개하는 덕에 따라가기 쉽다는 점이다. 본래 이런 유형의 영화는 배경 설명을 위해서라도 여러 인물의 입장을 서술하게 마련인데, 반전이 펼쳐지는 순간까지 (꼭 필요한 인서트 컷을 제외하고) 오로지 케이트의 시선만 따라간다. 꽤 영리한 선택. 시나리오의 헛점을 그저 '케이트가 그곳을 가지 않았으니까' 혹은 '케이트가 물어보지 않았으니까', '케이트가 굳이 말하지 않았으니까' 등으로 적당히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헛점 같은 게 의미가 없는 영화다. 심지어 엔딩마저도 케이트의 시선에서 끝. 에필로그조차 없다.
<케이트>는 액션을 책임진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의 액션 소화 능력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영화다. 아프게 타격하는 걸 중심으로 하는 <케이트>의 액션 성향에 맞춰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 역시 격투씬을 주로 소화했는데, 상체 움직임이 매우 뛰어나 손을 이용한 격투나 총기 파지 자세 등이 아주 인상 깊다. 다만 하체가 상체를 따라주지 못해서 뛰어다니는 장면이나 킥 동작이 어설퍼 액션에 약간의 악영향을 주고 있다. 하체의 움직임이 좋지 않다는 지적은 <제미니 맨> 당시에도 있었으니 태생적 한계라고 봐야 할 듯하다.
좋아하는 사람에겐 걸작 수준의 칭송을 받는 <아토믹 블론드>를 언급하며 <케이트>를 홍보했던 게 기억나는데, 엄밀히 말해 이 영화엔 <아토믹 블론드>의 시대를 풀어내는 독특한 스탠스도, 총격씬과 격투씬의 현실감도 없다. 로맨틱하던 특유의 영상 감성 역시 찾아볼 수 없으며, '일본에서 활동하는 킬러'라는 낙서장에 꽤나 휘갈겼을 과거의 와패니즘 트렌드를 그대로 답습하는 영화다. 게다가 액션 측면으로만 보자면 <아토믹 블론드>보다 <노바디> 쪽에 더 가까우니 참고하시길.
스무스하게 들어가서 스무스하게 나올 수 있는 영화다. 다른 작품을 보려다가 잘못 눌러서 보게 된 영화인데, 딱히 중단하고 다른 작품을 볼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목에 잘 넘어간다. 잘 만든 영화라 평할 순 없지만, 가벼운 듯 가볍지 않게 유혈이 낭자하는 넷플릭스표 영화를 보고 싶은 분에겐 꽤 적당한 결과물이라 하겠다. 실제로 정말 오랫동안 넷플릭스 영화 부분 세계 1위를 찍다가 내려왔고, 올해 넷플릭스 영화 랭킹 10위 안에 들어갈 것으로 예측하고 있을 정도로 성공했다.
그리고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에게 드디어 대표작이 생겼다. <파이널 데스티네이션3>로부터 15년 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