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영화 255

영화 아이 엠 어 히어로, 개헌하면 일본은 이렇게 쎄다고

소년 망가 원작의 액션 영화가 모조리 엉망은 아니다. '코스프레'에 주력할 필요가 없는 유형의 영화는 뜻밖의 퀄리티를 보일 때가 있는데, 비주얼 측면에서 원작이 얽매이지 않는 만큼 연출 전반에 걸쳐서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하는 제작자의 심리가 작용한 듯도 하다. 가 바로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과거 블루레이를 보고 적었던 리뷰를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문구가 들어있었다. 일본도 하면 되잖아. 이번에 또 감상하고 나서도 같은 생각이다. 재능이나 기술이 없는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걸 할 수 없도록 하는 어떠한 제한이 지금의 일본 영화 업계를 만들어냈다. 는 좀비 영화가 가져야 할 모든 것을 가지고 있고, 인상 깊은 순간을 여럿 만들어낸다. 영화의 괴이한 좀비 VFX는 유럽조차 한 수 접고 들어가야 할 만큼 ..

영화/리뷰 2020.11.03

영화 악인전 The Gangster, The Cop, The Devil

사이코패스, 사이코패스에 의한 연쇄 살인을 의심하고 있는 경찰, 피해자이자 유일한 목격자인 조직 폭력배 두목. 영화 은 꼴통 소리 듣는 경찰과 조직 폭력배 두목이 함께 힘을 합쳐서 사이코패스를 잡는다는 동상이몽 이야기를 담았다. 이라는 제목보다는 영어 제목이 조금 더 영화를 잘 표현해주고 있는 것 같다. . 영화는 느낌보다 길이가 짧다. 크레딧을 제외하면 약 1시간 40분. 상당히 복잡한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마무리 단계에 가서 지나치게 많은 걸 생략한 탓으로 보인다. 조직 폭력배 두목이 사이코패스를 잡으려는 이유가 되는 '사업 관계'가 먼저 생략되었다. 조폭 두목은 단순한 복수심으로 개입한 게 아니라, 사업에 방해되는 요소들을 제거하는 도구로 선택했다는 설정이다. 따라서 이 사업의 결과가 간략한 뉴스 ..

넷플릭스 프로젝트 파워, 갈팡질팡 배우 낭비

넷플릭스가 제작한 영화들도 제작비에 따른 '체급'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나 과 같이 정말 스트리밍 서비스의 그것이 맞나 싶을 정도의 제작비가 들어간 영화가 있고, , 처럼 1억 불 이하의 제작비로 만든 오락 영화가 있다. 최근 넷플릭스가 주력으로 하는 쪽은 5천만 불 이상, 1억 불 이하의 액션 영화인 모양이고, 가 이 체급의 영화다. 약을 먹을 경우 딱 5분 동안만 초능력이 생긴다는 설정의 는 그 약으로 희생되고 있는 일반인들과 약의 원천이 되는 소녀를 구출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으로 조셉 고든 레빗과 제이미 폭스를 캐스팅해서 의 샤를리즈 테론, 의 크리스 헴스워스처럼 구색을 갖췄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져봤을 때 이 영화는 도미닉 피시백 원탑의 영화로, 조셉 고든 레빗, 제이미 폭스는 그녀..

영화/리뷰 2020.10.22

기생수 파트2, 영화화가 아닌 그저 실사화

아주 깔끔한 영화 . 좋은 의미의 깔끔함이 아니다. 에서 담지 못 했던 것들을 억지로 우겨넣느라고 평행편집을 이용해 단순히 나열했다. 원작의 에피소드들을 축약한 거라 다행히 산발적이진 않으나, 굳이 좋게 봐줄 이유도 없다. 는 그저 나열하다가 중요한 부분을 건너뛴다. 예를 들어 시청이 기생수들에게 잠식당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이나 신이치가 숨어있는 장소에 사토미가 나타나야 하는 이유 등에서 치명적인 공백이 있다. 시청의 기생수들이야 원작을 읽은 사람들은 적당히 디테일을 채워넣을 수 있다고 치지만, 히토미가 굳이 그 위험한 곳까지 가서 신이치와 정사를 나누는 건 황당한 억지다. 비주얼에선 절반은 긍정, 절반은 부정이다. 일단 전편부터 그렇지만, 원작에 비해서 액션의 비중이 끔찍할 정도로 적다. 기생 생..

영화/리뷰 2020.10.07

기생수 파트1, 원작에게 잔혹한 압축 파라노마

을 보고 처음 리뷰를 남긴 게 일본판 블루레이를 본 뒤였고, 일본판 블루레이를 구매했던 게 2015년이었나 2016년이었나. 그로부터 겨우 5년. 그럼에도 내 머리에 남아 있는 것이라곤 후카츠 에리의 나이를 거스르는 미모 하나뿐이었으니 사실상, 작품 내적으론 인상에 남는 게 하나도 없었던 셈이다. 영화 자체는 꽤 재미있게 봤다는 느낌이 드는 데도 남은 게 없다는 건 역시 전형적인 일본의 망가 실사화였을 가능성을 의미한다. 한국판 블루레이를 구매한 김에 다시 보니 이 가능성이 현실로 돌변해 한 발 다가왔다. '변화'와 '살아간다'는 주제를 가지고 격렬하게 풀어헤친 원작 망가 는 마스터피스다. 아니메가 그런 것처럼 망가 역시 70~90년대의 작품이 가장 격렬했는데, 이후 이나 , 등으로 대변되는 소년 만화의..

영화/리뷰 2020.10.01

넷플릭스 올드 가드, 액받이 무녀가 되는 게 두려운 불멸자들

시대착오적인 불멸자들과 문명인들의 적절한 조화가 돋보이는 영화 . 샤를리즈 테론이 그녀 영화 중에서 가장 멋진 비주얼로 나오는 영화기도 하다. 사방팔방에 카메라가 있는 정보화 시대인 데다 과거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규모의 대학살이 일상다반사처럼 일어나는 현대에 기껏 몇명 되지도 않는 불멸자들이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심지어 신체적 불멸이 아니라 '재생'하는 자들이다. 는 이 불멸자들을 대하는 문명인들의 올바른(!) 자세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문명인. 공동체를 이용해 편리를 추구하고 발전을 도모한다. 그러나 문명이 유지되기 위해선 반드시 누군가는 희생되어야 한다. 과거에는 그 희생양이 왕이었다. 가뭄이 들고, 전쟁에서 패하고, 문명을 효율적으로 이끄는데 실패하면 왕은 희생양이 되어 반란을 맞이하거나..

영화/리뷰 2020.09.25

블러드 샷, 토니 스콧의 흔적이 느껴진다

오늘 그리웠던 토니 스콧의 흔적을 발견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토니 스콧과 마이클 베이의 정확히 중간 지점에 있는 감독을 발견했다. 의 데이브 윌슨이다. 은 최상급 킬링타임 액션 영화다. 누구에게도 질 것 같지 않은 빈 디젤의 캐릭터를 그대로 살려내서 명멸하는 과거와 투쟁하고 미지의 미래에 발을 옮기는 액션을 담았다. 철저한 개연성의 영화는 아니지만, 이는 각 캐릭터의 과거를 완전하게 생략했기 때문으로, 이 부분을 가볍게 건너뛸 수 있다면, 경이로운 VFX 활용의 액션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의 영상 색조는 분명히 토니 스콧과 마이클 베이의 그것인 한편, 차분한 무드로 드라마를 담아 역할의 감정을 끌어내는 방식은 토니 스콧을 닮았는데, 특히 빌런과의 마지막 대결(?)에서 넘쳐나는 감정을 하나도 잃지 ..

영화 할로윈 2018, 이 형은 그냥 죽입니다

잠이 엄청 오는데 영화를 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억지로라도 보지 않으면, 집에 쌓여있는 블루레이와 넷플릭스, 웨이브의 영화, 드라마를 다 소화할 수가 없다. 예전처럼 작품을 보고 글을 쓰는 것만으로 돈을 벌 수 없다 보니 점점 영화 보는 빈도가 줄어들어서 블루레이들을 감당할 수가 없더라. 어차피 반쯤 의무감으로 봐도 결국 보면 재미있으니까 그냥 억지로 보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이번에 고른 작품은 . 깜짝 놀라게 하는 장면도 있으니까 잠도 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다. 효과는 없었다. 은 잠을 확 깰 정도로 놀라게 하는 장면은 없다. 어쩌면 1편인 의 분위기를 계승했다고 할 법도 한데, 어마어마한 괴력으로 말 한마디 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순수악' 유키카..가 아니라 마이클 마이어스의, 고..

영화 데스 위시, 놓쳐버린 모순의 힘

일라이 로스가 감독하고 조 카나한이 각본을 썼으며 브루스 윌리스가 주연을 맡은 는 분명히 크레딧에 흐르는 묵직한 이름들 만큼의 결과물은 아니다. 일라이 로스와 조 카나한의 공통된 특징이라고 한다면 치열한 스릴감일 텐데, 의 사건들은 치열함이 거의 보이지 않고, 주인공의 직업인 '의사'가 지닐 수 있는 현실적인 한계도 뛰어넘지 않는다. 무엇보다 아쉬운 점은 영화의 주제인 '모순'이 후반에 흐지부지 된다는 사실이다. 서로 총구를 겨눠 부상을 입은 경찰과 범죄자를 모두 치료할 수밖에 없는 모순된 태도의 의사는 이윽고 자신의 손을 사람을 살리는 것뿐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것에도 사용하게 된다. 이는 미국이 총을 사용하는 이유와 같다. 경찰력이 구석구석 닿을 수 없는 넓은 땅의 미국은 범죄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

영화 곡성 블루레이, 이봐 당신 왜 방관하고 있지?

길고 긴 기다림 끝에 나온 블루레이를 봤다. 나온 지 조금 됐는데도 이제야 감상한 건 나홍진 감독의 컨펌 과정에 의문이 워낙 많아서 뿔이 난 탓이다. 아시다시피 블루레이는 완성도를 위해서 출시일이 늦춰졌음에도(제작사가 판권을 잃기 직전에 출시되었다.) 다소 평범한 결과물이 되었다. 심지어 그 중요한 코멘터리에선 '너무 오래돼서 기억 안 난다'는 이야기가 빈번하게 나온다. 실망스러울 수밖에. 자, 이제 그런 외적인 실망스러움은 접어두고 영화 이야기를 해보자. 아래로 의 스포일러가 담겨 있다. 은 내용을 따라가기 그렇게 어렵지 않은 영화다. 그저 해석해볼 필요가 있는 부분, 그러니까 감독이 명확하게 답을 그려놓지 않은 부분이 있을 뿐이다. 누가 선이고 악인지 비교적 명확하게 정리한 뒤, '뭣이 중헌디?'를 ..

영화 레디 오어 낫, 사마라 위빙 고유의 폭발력

최근 '투쟁'에 최적화된 여배우가 대세의 급물살을 타고 떠올랐다. 사마라 위빙이다. 거대한 눈과 억세 보이는 하관으로 상대를 쏘아보며 얼어붙게 만드는 그녀는 선역이든 악역이든 간에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한다. 도 그런 그녀의 특징이 잘 살아있는 영화다. 영화는 '사냥' 컨셉을 오컬트와 부합해 사마라 위빙을 투쟁으로 몰고 간다. 핏빛에 얼룩진 그녀의 투쟁은 '결혼'이란 지옥(!)에 맞물려 그럴싸하게 흘러가는데, 결혼 생활을 하며 마주할 온갖 난관을 살인의 형태로 엮어놓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영화는 꽤나 격렬하게 비혼주의를 권장하는 꼴이 된다. 다만, 의 장르에 오컬트가 섞여 있다는 점이 마이너스 요소다. 사마라 위빙의 투쟁은 후반부로 갈수록 리얼리즘을 뒤집어쓰면서 고작 '버티기' 이상이 되지..

나쁜 녀석들 포에버, 끝 혹은 새로운 시작

끝일까, 새로운 시작일까. 는 흥미진진한 요소가 포진해있는 영화다. 혹시나 오해할까 봐 미리 말해두는데, 흥미진진하다고 했지 긍정적이라고 안 했다. 이래저래 할 이야기가 참 많이 떠오르는 영화란 얘기다. 는 꽤나 엉성하고 밋밋한 액션 영화다. 엉성하기론 전작들도 마찬가지라 말할 수 있겠지만, 는 과정을 듬성듬성 건너뛰는 마이클 베이의 연출 방식이 문제였을 뿐, 에피소드들의 얽힘에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는 에피소드들이 모조리 분리되어 따로 놀고, 치열해야 마땅한 수사 과정은 맥이 빠진다. 수사에 힘을 들여야 하는 타이밍에 AMMO라는 새로운 팀을 서술하느라 정신이 없다. 마이애미 한복판에 멕시코 카르텔이 헬리콥터를 타고 나타났음에도 아무도 그걸 쫓지 않는다는 괴상한 생략 방식엔 한탄을 했다. 두 편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언젠가 완전한 버전을 볼 수 있을까

갑자기 필 받아서 블루레이를 봤다. 새로 구매한 타이틀이 잔뜩 밀려있는데, 이미 몇번이고 감상한 타이틀을 또 보고 앉아 있다니 나란 놈은. 경쾌한 영화다. 손익분기를 넘겼으니 만주 웨스턴의 부활이 되지 않을까했지만, 역시나 작은 시장에서 장르 편식도 심한 한국인의 입맛에 맞추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애초에 만주 웨스턴이란 장르 자체가 헐리우드 서부극의 영향을 받아서 만들어진 거니 굳이 부활시킬 필요가 없다 여겼는지도. 이 칸 영화제에서 상영되었을 당시 만주 벌판을 질주하는 하이라이트에 대해 외국인들이 하나 같이 했던 말이 있다. 겨우 200억 밖에 안 되는 제작비로 어떻게 저런 멋진 장면을 찍었느냐는 것. 충분히 이해가 간다. 편집의 힘을 빌려 억지로 이어붙인 컷이나 건너 뛰는 컷이 있지만, 그걸 감안..

영화/리뷰 2020.08.31

저스티스 리그 스나이더컷의 1.33:1 화면비를 이해해보자

최근 DC 팬돔이 열리고 , 이른바 '스나이더 컷'의 예고편이 공개되면서 화제가 된 게 바로 화면비다. 의 화면비는 1.33:1. 일반적인 상식과 꽤 거리가 있는 화면비인데, 1.78:1(16:9)인 TV로 보면 좌우에 검은색 레터박스가 들어가게 된다. 이에 대해서 잭 스나이더는 대충 이렇게 말했다. "위아래를 크롭하지 않은 거예요." 우리가 최근 많이 보는 화면비는 2.39:1 시네마스코프. 요새 모니터로 자주 나오는 21:9 화면비가 2.39:1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아마 스마트폰도 비슷한 화면비가 있었던 거로 기억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TV는 1.78:1으로 1.85:1 비스타비전 화면비와 흡사하다. 잭 스나이더 감독은 오리지널 필름의 위아래를 잘라서 2.39:1, 1.85:1을 만들..

나쁜 녀석들2, 아직 마이클 베이에게 질리지 않던 시절

를 보려다가 내용이 온전하게 기억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본지 그리 오래된 것 같지 않은데 대체 왜일까 싶어서 꺼내 들었다. 디비디 시절부터 수도 없이 했던 재탕을 또 한 것이다. 는 마이클 베이 특유의 나쁜 버릇이 나오기 시작한 영화다. 화장실 유머를 곁들여서 넣을 수 있는 모든 에피소드를 쑤셔 넣는 버릇. 이 버릇 덕분에 마이클 베이의 이후 작품들은 상당한 널뛰기가 진행되었다. 쑤셔 넣은 것들이 잘 맞아떨어지면 수작, 그렇지 않으면 졸작. 상당히 극단적이다. 는 잘 맞아떨어진 수작에 해당한다. 성공했으니까 버릇이 된 거라고 보면 적절할 것 같다. 그런 덕에 영화의 액션은 버디무비가 보여줄 수 있는 규모를 훌쩍 뛰어넘는다. 네 차례의 총격씬은 다른 영화였으면 하이라이트로 치부했을 수준인 데다 클라이..

영화/리뷰 2020.08.27

영화 안나, 모두가 안나를 사랑한다

약 1년 만에 를 감상. 이번 감상은 블루레이라서 조금 더 몰입해서 볼 수 있었다. 지난번에 쓴 단평에서도 언급한 바지만, 의 특징은 역시 낭만이다. 이는 , 에서도 느낀 건데, 크리에이터들에겐 그 살벌한 냉전마저도 이제 낭만의 일종이 된 모양이다. 당연하다. 당시 대중문화는 'Cold War'가 지닌 중의적 의미 그대로 차가운 시대였음에도 놀랍도록 강렬하고 우아했으며 낭만적이었다. 싸이코패스와 정신병자들의 살육전, 착취가 난무하고 '정상적인 사람'이 거의 없었다던 서부 개척 시대를 미국과 이탈리아가 어떻게 다뤘는지 되새겨보시라. 그런 시기를 겪고, 배운 크리에이터들이 냉전마저도 낭만적으로 새겨내는 것은 그리 이상하지 않다. 그래도 뤽 베송 감독은 그 시기를 직접 겪어낸 세대 답게 냉전의 한복판에 안나를..

혼돈의 도시, 영화 베를린

꽤 꼼꼼하게 기억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오랜만에 본 은 내 기억과 달랐다. 사람의 기억력이라는 게 그런 모양이다. 영화의 편린만을 기억하고, 그 편린조차 시간이 흐르면서 잊히는. 그런 주제에 영화를 다 기억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분명히 을 재미있게 봤고, 극장과 블루레이에 걸쳐 반복 감상을 거듭했음에도 오늘 보면서 '이런 내용이었나..'라고 중얼거렸다. 은 북한의 정권 교체 과정에 벌어진 정쟁이 (전 세계의 첩보 집단이 모조리 존재한다는) 베를린에서 카오스를 일으킨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류승완 감독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치열하게 대립한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는 베를린에 직접 가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베를린에서 류승완 감독이 느낀 혼란이 영화 전반에 걸쳐서 담겨있는 셈이다. 그런데 그는 영화의 ..

영화/리뷰 2020.08.19

영화 헌트, 다 잊어버리고 스트레스나 풉시다

근래 B영화와 공포영화 쪽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블룸하우스의 패기 넘치는 영화 . 특정 이유로 사람들을 모아놓고 사냥한다는 점에서 도 살짝 떠오를 것이고, 따라서 살벌하고 처절한 사투가 벌어질 거로 기대할 수 있지만, 는 그런 유형의 영화와 거리가 꽤 멀다. 영화의 설정은 일종의 맥거핀 비슷한 거로 생각하는 게 목적에 부합해보인다. 네임밸류가 있는 배우를 데려다가 페이크 주연을 맡긴 것부터 시작해서 초짜티가 팍팍 나는 관리자(!)들까지 무엇 하나 그런 처절함과 거리가 한참 멀다. 그렇다고 인터넷 악플이 일으킨 나비효과라거나 믿었던 진실에 배반당한 사람의 좌절 같은 부분을 끄집어내 비판하는 영화도 아니다. 영화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그저 엉성하게 PC에 함몰된 엘리트들과 프로파간다와 음모론에 낚여서 허둥..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사죄와 추억의 편린

자꾸 (실력이 아닌) 정신적 퇴행을 거듭하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최신작 . 최근 그의 작품에선 60~80년대에 대한 집착이 느껴지는데, 이번엔 자신이 사랑하고 또 사랑했던 할리우드 그 자체에 집착했다. 분명히 퇴행이 맞고 또한 일종의 사과이기도 하다. 전성기를 마무리하고 하락세를 탄 어느 할리우드 스타의 재기 과정을 다룬다는 뻔하디 뻔한 이야기일 거라 생각할 수 있다. (사실, 꼭 틀린 것도 아니고) 그러나 내 생각에 쿠엔틴 타란티노는 각본을 쓰는 어느 시점엔가에 찰스 맨슨 사건을 그저 가쉽으로 소비했던 본인을 떠올렸고 사과 의욕을 견딜 수 없게 된 모양이다. 영화는 오프닝부터 쿠엔틴 타란티노의 작품적 자아가 분열되었음을 말한다. 영화배우 닉과 그의 더블 스턴트맨 클리프로. 두 캐릭터의 발전 방향은 ..

늑대의 후예들, 프랑스판 19금 무협 호러

20년 전에 봤던 은 잔인하고 야한 고딕 호러였는데, 지금에 와서 보니까 그렇게 수위가 높지 않다. 20년 전의 난 생각보다 순진(?)했던 모양이다. 게다가 쓸데없이(?) 액션의 비중이 크다. 은 프랑스가 꽤 작정하고 만들어낸 영화다. 근세를 배경으로 하는 고딕 호러는 유럽풍과 헐리우드풍으로 갈리곤 했는데, 프랑스에서 만들어낸 영화임에도 헐리우드의 그것을 따라했다. 헐리우드 쫓기에 급급한 영국의 영화를 비아냥거렸던 시기가 있었을 만큼 자존심이 강했던 프랑스 영화계가 무릎을 굽히고 상업성을 추구한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나왔던 헐리우드의 고딕 호러와 비교해보면 꽤 흥미진진한 요소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딱 잘라 말해 이 잘만든 영화는 아니다. 이 영화에는 추리, 탐색과 같은 소재에 걸맞은 행동이 결여되..

정말 형편없는 바람의 검심: 전설의 최후편

말인데, 정말 형편없는 영화다. 훌륭했던 전편과 비교하는 탓이기도 하지만, 애초에 이 영화는 전편과 분리해서 볼 수 없는 영화이므로 잘라 말해 시리즈의 2, 3편이 통째로 몰락한 것과 같다. 의 결말은 각 인물들을 흩어놓는 거였다. 그럼 속편인 은 그 인물들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어떻게 움직여서 결론에 치닫느냐가 관건일 텐데, 이 영화의 등장인물 중 제대로 된 과정을 거쳐서 움직이는 인물은 히무라 켄신 단 한 사람이고, 나머지는 얼기설기 짜맞추기에 희생당해 허무하게 목적의 의미를 잃어버린다. 그나마 주인공 답게 자리를 굳건히 지키던 히무라 켄신도 우스꽝스러운 억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시시오 마코토는 양동 작전을 써가면서 출정을 감추고 도쿄만에 기습을 가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여기서 끝이..

영화/리뷰 2020.07.25

바람의 검심: 교토 대화재편 기대 이상의 준수함

은 준수한 결과물이다. 원작에서 필요한 것만 정확하게 넣었고, 악조건 속에서 내러티브도 꽤 집중해서 실었다. 중간에 끊기는 영화라곤해도 클라이막스는 존재해야 했기에 억지로 이어붙인 면이 없진 않지만, 이 영화 자체로만 보면 극적인 허용으로 이해해줄 수 있다. (물론, 3편인 을 보고 나면 '대체 뭘 위한 클라이막스였나'란 생각이 들게 될 것이다.) 감정과잉으로 일관된 코믹스 원작 일본영화의 연기 스타일이나,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 할까' 싶은 코스프레 등 여러 단점을 잊게 해줄 의 또다른 장점은 VFX 퀄리티다. 일단 세트장부터 상당한 공을 들였고, CG 캐릭터보다 엑스트라를 더 고용함으로써 어색함을 줄였다. 여타 코믹스 원작의 일본영화는 스케일이 커질 수록 실사영화의 VFX라기보다 3D 애니메이션으로 ..

영화/리뷰 2020.07.20

영화 바람의 검심을 지금 와서 보자면

추억편과 인벌편이 영화화되었고 코로나19 탓에 개봉만 못 하고 있다는 소식에 괜히 필받아서 또(!) 블루레이를 감상했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은 영화다. 속편인 이 대단히 뛰어난 작품인 걸 생각하면 여러모로 아쉽다. 은 유치한 대사나 배우들의 과장된 연기 등 코믹스 원작의 일본영화에서 볼 수 있는 실수는 죄다 저지르고 있다. 등장인물의 몹시 코믹스스러운 헤어나 의상 상태까지 포함해서, 엄밀히 말해 은 대체로 다른 코믹스 원작의 일본영화보다 나은 게 없다. 무엇보다 '잘생김' 말곤 연기하지 않은 사토 타케루가 문제다. 당시 그에겐 잘생긴 얼굴로 찌릿하게 째려봐주는 것 말고는 잘하는 연기가 없었다. 심지어 액션을 소화할 때 몸의 움직임도 이상해서 동작이 대단히 난잡해보인다. 이렇게 은..

영화/리뷰 2020.07.17

영화 루시, 차원의 끝을 보고자 한 뤽 베송

영화 는 차원에 대한 이야기다. '새로운 차원을 만들어냈다'와 같은 기괴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학자들이 연구하고 또 연구하는 '시간'과 '공간'에 대해 뤽 베송 나름대로의 이미지를 펼쳐내는 영화란 의미다. 우리의 존재가 시간에서 비롯되었고, 시간은 연속적이지 않다는 개념. 즉, 가 펼쳐내는 이야기는 철학, 물리학, 수학 측면에서 수도 없이 연구된 만큼, 닳고 닳은 소재다. 과거와 미래는 이미 정해져있다. 시공간을 초월한 상위 차원에선 모든 게 고정된 것처럼 보이게 되며,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당연히 이에 대해 부정과 긍정을 반복하는 연구가 이어졌고, '수학적으로 완벽한 사이비 종교' 소리마저 듣는 초끈이론은 시공간 개념에 대해 궁금해하는 감독들의 뒤통수를 강하게 후려갈겼다. 그래서 뤽 베송이 를 만든..

영화/리뷰 2020.07.15

영화 엽문 외전, 장진에 꽂힌 견자단

90년대에 라는 영화가 있었다. 원제는 . 시리즈가 메가히트를 기록하면서 프리퀄 형식으로 만들었는데, 이후 '소년 황비홍'을 빼버리고 가 아예 시리즈화될 정도로 인기를 누린 작품이다. 갑자기 왜 이야기를 하느냐면 이 와 비슷한 성향의 영화기 때문이다. 비슷하다고 해서 이 만큼 괜찮은 영화란 건 아니다. 그냥 비슷하다는 얘기. 가 황비홍의 후광으로 나온 것처럼 은 시리즈의 성공으로 나온 스핀오프다. 여성 우슈 대회 우승자인 증사민에 꽂힌 홍콩이 급하게 기획한 처럼 를 통해 장진에게 꽂힌 견자단이 급하게 기획한 영화가 이다. 의 무술감독이었던 원화평이 를 감독한 것처럼 의 무술감독인 원화평이 의 감독을 맡은 점도 닮은 점. 다른 점이 있다면 나름 인물 구조와 스토리라인에 신경을 썼고, 캐스팅도 화려하다는 점..

영화/리뷰 2020.07.08

영화 아키라, 여전히 차원이 다른 클라스의 재패니메이션

시큰둥할 거라 믿었다. 의 파격적인 스토리와 황당할 정도로 매혹적이고 장대한 이미지는 분명히 경이로운 것이었으나, 찬란한 후배들이 경이를 평범으로 만드는데 일조했으리라 여겼다. 이는 '카피약'과 마찬가지로 오리지널을 익숙한 것으로 바꿔놓게 마련이다. 그러나 내 생각이 틀렸던 모양이다. 아니면 그 정도로 의 차원이 달랐거나. 는 진화론의 극단적인 사례다. 많은 사람이 '진화'를 '변화'로 여기곤 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진화란 생존과 번식이며, 환경에 적응한 게 아니라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DNA가 살아남은 결과물이다. 는 '우주'의 팽창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시점, 지구인이 가질 수 있는 진화의 끝자락을 이야기하고,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그 끝자락에서야 지닐 수 있는 능력을 일찍 가지게 된 사람을 다..

이젠 다큐멘터리가 되어버린 영화 피라냐 3D

오랜만에 알렉산드르 아야 감독의 를 봤다. 영화 참 깔끔하고 재미있게 잘 만들었다. 섹슈얼리즘이나 고어의 수위가 상상 이상이라서 이게 정상적으로 한국에 개봉했다는 점이 좀 신기하기도 하다. 블루레이로 보면 사지가 찢겨진 수십 구의 시체가 핏물에서 뒹굴고, 남녀의 성기가 수차례 드러난다. 가 공개되던 당시 한국엔 가 공개된지 얼마 안 된 탓인지 제임스 카메론을 신처럼 떠받드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고, 를 두고 제임스 카메론의 에 누를 끼치는 리메이크라는 엉뚱한 평가도 볼 수 있었다. 기괴한 일이다. 제임스 카메론 본인에게 악몽 같았을 는 '괴작'으로 인정받아 컬트가 되었을지언정 '잘 만든 영화'와는 어마어마하게 거리가 먼 얼빵한 작품이었으니까. 단순히 영화적 만듦새로 보면 가 보다 수십배는 나은 결과물이..

영화/리뷰 2020.06.30

역시 경이로운 폭력의 미학, 영화 도화선

매번 을 볼 때마다 언급했던 거지만, 참 야만적으로 잘 만든 영화다. 필요한 것들만 딱 갖춰놓고 무자비한 폭력을 쏟아놓는다. 생각해보면 맨 처음 을 리뷰했던 글의 제목을 참 잘 지었던 것 같다. '경이로운 폭력의 예술' 꼭 필요한 것들을 제외하면 전부 가지치기. 예를 들어 베트남 삼인방이 삼합회 보스들을 처리할 때 응당 있어야 하는 과정이 모조리 생략되고 삼합회 보스들은 얼빵하게도 혼자서 느긋하게 다니다가 하나씩 제거된다. 마형사가 현장에 복귀하는 과정 역시 깔끔하게 생략되었고, 용의자를 죽인 마형사를 방치할 수밖에 없는 무언가 역시 생략되었다. 아예 배제한 게 아니라 '아마도'라는 첨언이 필요할 단서 정도는 남겨두어서 극이 지나치게 앙상하게 되는 걸 막긴 했지만, 의 이러한 전개 방식은 분명히 과감한 ..

영화/리뷰 2020.06.27

18년 동안 무기를 전부 뺏긴 이퀼리브리엄

대체 얼마 만에 을 본 건지 모르겠다. 디비디 시절에 보고 안 봤나? 그럼 블루레이는 그저 내 블루레이랙에서 먼지를 쌓아두고 있었다는 얘긴데, 그건 꽤나 끔찍한 이야기라서 믿고 싶지 않다. 보긴 봤겠지. 기억이 안 나는 것일 뿐. 그러니까 아득한 기억의 너머에서 을 끄집어내보면 '스타일리쉬하다'는 감상이 제일 먼저 끌려나온다. 그런데 오늘 감상한 은 분명히 스타일리쉬함과는 거리가 아주 멀었다. 저예산의 한계를 어떻게든 깨려고 조명과 편집의 트릭을 잘 이용한 게 저화질의 그 시기엔 먹혔던 모양이다. 지금의 기준에서 보자면 의 스타일은 '쌈마이'에 가깝다. 특히 의 테마곡 활용 방식은 이제 일본의 3D OVA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다. (반대로 말하면 일본 OVA 업계가 의 2002년부터 지금까지 17..

영화를 뛰어넘은 무술 안무, 영화 살파랑

어차피 이 그리 만듦새가 좋지 않다는 건 주지의 사실. 역설의 힘을 끌어가는 능력이 부족한 영화다. 어쩌면 로 잠깐 불어닥쳤던 중국 느와르 열풍에 편승하려다가 기획이 늦춰지는 바람에 견자단을 투입해서 액션 중심으로 재편한 영화란 주장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은 얼렁뚱땅 넘어가는 부분이 많고, 견자단의 액션에 촛점이 맞춰져있다. 은 영화 자체가 아닌, 견자단과 오경의 골목 대결씬이 '마스터피스'로 인정받은 덕에 기형적인 호평을 얻는 영화다. 그러한 이유로 을 굳이 블루레이로 볼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디비디로 수십 번을 본 영화인 데다 견자단과 오경의 대결 장면은 유튜브를 이용해 HD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내 판단이 틀렸다. 블루레이의 화질은 매우 안 좋은 편이지만, 디비디 정도야 아득하게 뛰어넘..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