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기생수 파트1, 원작에게 잔혹한 압축 파라노마

즈라더 2020. 10. 1. 16:32

 <기생수 파트1>을 보고 처음 리뷰를 남긴 게 일본판 블루레이를 본 뒤였고, 일본판 블루레이를 구매했던 게 2015년이었나 2016년이었나. 그로부터 겨우 5년. 그럼에도 내 머리에 남아 있는 것이라곤 후카츠 에리의 나이를 거스르는 미모 하나뿐이었으니 사실상, 작품 내적으론 인상에 남는 게 하나도 없었던 셈이다. 영화 자체는 꽤 재미있게 봤다는 느낌이 드는 데도 남은 게 없다는 건 <기생수 파트1> 역시 전형적인 일본의 망가 실사화였을 가능성을 의미한다. 한국판 블루레이를 구매한 김에 다시 보니 이 가능성이 현실로 돌변해 한 발 다가왔다.


 '변화'와 '살아간다'는 주제를 가지고 격렬하게 풀어헤친 원작 망가 <기생수>는 마스터피스다. 아니메가 그런 것처럼 망가 역시 70~90년대의 작품이 가장 격렬했는데, 이후 <드래곤볼>이나 <슬램덩크>, <바람의 검심> 등으로 대변되는 소년 만화의 시대가 열리는 바람에 그 유산을 상당부분 잃어버리고 말았다. 지금 망가나 아니메가 점차 프랑스(사실상 일본 대중문화의 식민지나 다름 없는 곳이었다)에서조차 점유율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아 역시 긍정적인 변화는 아니란 생각이 든다. <기생수>는 70~80년대를 풍미했던 나가이 고, 키시로 유키토의 뒤를 잇는, 얼마 되지 않을 생존자 같은 작품이었고, (동료라고 해봐야 <베르세르크> 정도) 그런 작품을 영화화하는 건 당연히 쉽지 않은 작업이다.

 


 <기생수 파트1>를 두고 그냥 재미있게 볼 만한 영화 정도로 판단한 건 원작에서 인간의 본질과 현실을 꼬집는 각종 요소가 상당히 제거되어있기 때문이다. 파트1, 파트2를 합쳐 4시간조차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장대한 이야기를 담아야 했던 터라 필연적인 변화가 있었는데, 이는 작가주의적 변주가 아닌 실사화 과정의 압축에 가깝다. 게다가 원작에서 '모성애' 하나만 남겨둔 채 꽤나 오락적인 구성으로 압축했다. 각본부터가 가벼운 즐길 거리 이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뜻밖에 이야기일 수 있는데, 위와 같은 불만이 있음에도 난 <기생수 파트1>의 각본 퀄리티가 괜찮다고 생각한다. 일본 영화계는 썩다 못해서 똥과 오줌이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녹아내린 오물이다. 그런 오물 안에서 고군분투한 각본가들에게 주어져야 하는 평가는 '고생했어'지 '개새끼야'가 아니란 의미다. 냉정하게 따져봤을 때 <기생수 파트1>의 각본은 인문학적 고찰을 버린 대신, '준수한 오락성' 자격증을 취득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 자격증 꽤 얻기 어려운 편이다. <블리치>나 <테라포마스>, <도쿄 구울>, <강철의 연금술사>처럼 자격증을 취득하긴 커녕 값비싼 쓰레기가 되어 헛웃음을 준 작품이 암흑물질처럼 우주를 채워넣고 있는 마당이다.


 따라서 이 각본만 잘 살려내는 연출을 해주면 적어도 훌륭한 액션 영화로라도 남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연출이 그걸 충분히 해내지 못해서 당혹스럽다. 오른쪽이를 지나치게 내세우는 연기 지도부터가 엉뚱하다. <기생수> 아니메처럼 '오른쪽이'를 모에화하려는 의도였던 것 같은데, 아무리 그래도 시종일관 오른팔을 들고 다니는 주인공의 행동은 너무하지 않았나. 설정으로 따져보면 '오른쪽이의 존재를 숨긴다'라는 명제가 뿌리부터 흔들린다. 항상 오른팔을 들고 있는 건 누가 봐도 수상하니까. 오른쪽이를 귀여운 소년처럼 연기한 아베 사다오의 목소리 연기 역시 매우 마음에 안 든다. 부정할 수 없는 살인병기인 기생 생물조차 모에화하는 일본 대중문화 업계의 엉뚱함에 할 말을 잃었는데, 웃기는 건 또 이게 대박을 쳐서 당시 관련 굿즈가 불티 나게 팔렸다는 사실. 

 


 물론, 원작 만화에서도 오른쪽이는 마지막권에 이르러 엄청난 전율을 주는 캐릭터다. 실질적인 주인공인 데다 인간의 비합리성마저도 점차 이해하며 존중해주는 그 젠틀함이란 보통 매력이 아니다. 따라서 오른쪽이의 모에화까지는 이를 악물고 이해해보겠다. 그러나 기생 생물의 '속성'을 변화시킨 건 도저히 이해, 아니 용납 못 하겠다. 기생 생물이 싸울 때 내는 소리는 쇳소리어야 한다. 아니, 쇳소리는 아니더라도 채찍 소리는 분명히 아닐 것이다. <기생수 파트1>, <기생수 파트2>의 기생 생물은 전투를 벌일 때 촤악, 찰싹과 같은 채찍 소리를 낸다. 속도감이 매우 부족한 데다 액션 분량이 짧다는 점까지 더하고 나니, 영화는 그저 그런 촉수물이 되고 만다. 철저하게 오락성을 위해서 재구성한 각본인데, 그 오락성을 살려낼 만한 액션이 나오질 않은 것이다. <기생수 파트1>에서 유일하게 '이거지!'라고 생각한 장면은 맹렬히 날아간 화살이 기생생물을 뚫고 벽에 꽂히는 장면 하나뿐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기생수 파트1>은 '적당히 즐길 만한 액션 영화' 정도로 그쳤다. 추천은 한다. 그러나 원작의 수준에 도달하는 각색도, 매혹적인 변주도 없으니 큰 기대는 접어두도록 하자. 후카츠 에리의 팬이 아니라면 배우 보는 즐거움도 없다. 소메타니 쇼타와 하시모토 아이는 필모그래피를 통틀어서 최악의 연기를 뽐내므로 두 배우의 팬은 오히려 안 보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