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이젠 다큐멘터리가 되어버린 영화 피라냐 3D

즈라더 2020. 6. 30. 18:00

 오랜만에 알렉산드르 아야 감독의 <피라냐>를 봤다. 영화 참 깔끔하고 재미있게 잘 만들었다. 섹슈얼리즘이나 고어의 수위가 상상 이상이라서 이게 정상적으로 한국에 개봉했다는 점이 좀 신기하기도 하다. 블루레이로 보면 사지가 찢겨진 수십 구의 시체가 핏물에서 뒹굴고, 남녀의 성기가 수차례 드러난다. 


 <피라냐>가 공개되던 당시 한국엔 <아바타>가 공개된지 얼마 안 된 탓인지 제임스 카메론을 신처럼 떠받드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고, <피라냐>를 두고 제임스 카메론의 <피라나2>에 누를 끼치는 리메이크라는 엉뚱한 평가도 볼 수 있었다. 기괴한 일이다. 제임스 카메론 본인에게 악몽 같았을 <피라나2>는 '괴작'으로 인정받아 컬트가 되었을지언정 '잘 만든 영화'와는 어마어마하게 거리가 먼 얼빵한 작품이었으니까. 단순히 영화적 만듦새로 보면 <피라냐>가 <피리나2>보다 수십배는 나은 결과물이다. 제임스 카메론에겐 애증 가득할 작품인 <피라나2>건만 정말 영화를 보고 남긴 평가인지 의문이 들었던 기억도 난다.





 <피라냐>엔 다시 생각해볼 만한 클리셰가 등장한다. 이런 유형의 영화에선 항상 등장하는 '멍청한 대중' 클리셰. 물이 위험하니까 들어가지 마세요라고 외치니 오히려 '오우~ 위험하대~'하면서 물로 몸을 던지는 멍청이들이 결국 크리쳐에게 뜯겨 먹히는 대량학살 장면이 그것이다. 그런데 최근 미국의 꼴을 보니까 이 클리셰가 실은 드라마 요소가 아닌 극현실적 다큐멘터리가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 코로나19 위험하니까 하지 말라고 하는 것들을 오히려 일부러 하던 미국인들은 그 멍청함 탓에 엄청난 숫자가 사망했고, 지금 이 시점에도 트럼프의 지지자들은 '왜 그렇게 숨어야 하느냐?'라면서 일부러 코로나19에 걸리기를 강력하게 권한다. 


 코로나19가 퍼지기 시작한 시점도 극과 일치한다. '봄방학'.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미국 일부 지역의 '봄방학'이란 '젊은이들이 욕정에 사로잡혀 짐승으로 변하는 시간'으로 바꿔부를 수 있다. <피라냐>에서 계속 '봄방학'이란 시기를 강조하는 건 그런 이유다. (아예 <스프링 브레이커스>란 영화가 있는 것만 봐도 알 만하지 않나.) 코로나19가 미국에 전대미문의 타격을 주기 시작하던 시점이 역시 봄방학이었는데, <피라냐> 속 욕정에 미쳐버린 녀석들이 들어가지 말라고 간곡히 말하던 물에 알아서 뛰어들어 몰살당한 것처럼 실제 미국의 젊은이들은 해변과 술집, 호텔 등지에서 코로나19를 양념 삼아 봄방학의 광기를 풀어헤쳤다. 결과, 미국의 감염자는 100만 명을 넘어가버렸다.




 <피라냐>에서 혼자 죽을 수 없다는 것마냥 뛰쳐나가다가 모터로 사람들을 갈아버린 빌런은 미국이 아니라 일본에서 발생했다. 코로나19에 걸린 것을 알자 일부러 퍼트리려고 식당 투어를 다녔다던가? 참 재미있는 시국이다. <피라냐> 같은 가볍게 즐기라고 만들어진 영화에서조차 현실성을 발견하고 말다니. 이제 재난영화도 맘 편하겐 못 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