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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키라, 여전히 차원이 다른 클라스의 재패니메이션

즈라더 2020. 7. 3. 12:00

 시큰둥할 거라 믿었다. <아키라>의 파격적인 스토리와 황당할 정도로 매혹적이고 장대한 이미지는 분명히 경이로운 것이었으나, 찬란한 후배들이 경이를 평범으로 만드는데 일조했으리라 여겼다. 이는 '카피약'과 마찬가지로 오리지널을 익숙한 것으로 바꿔놓게 마련이다. 그러나 내 생각이 틀렸던 모양이다. 아니면 그 정도로 <아키라>의 차원이 달랐거나.


 <아키라>는 진화론의 극단적인 사례다. 많은 사람이 '진화'를 '변화'로 여기곤 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진화란 생존과 번식이며, 환경에 적응한 게 아니라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DNA가 살아남은 결과물이다. <아키라>는 '우주'의 팽창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시점, 지구인이 가질 수 있는 진화의 끝자락을 이야기하고,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그 끝자락에서야 지닐 수 있는 능력을 일찍 가지게 된 사람을 다루었다. 그게 바로 '아키라'다. 또한, 영화는 이미 아키라가 시공을 초월했음을 알리며 이를 '우주의 시작과 같다'고 말한다. 지금 우리가 4차원이라 부르게 될 가장 강력한 후보인 '시공간'을 이미 1988년 일본의 애니메이션이 건드린 것이다. 이는 경이일 수밖에 없다.


 '그가 죽었나?'


 라는 질문에 카네다는 '글쎄..'라는 식으로 얼버무린다. 3차원의 '구'는 2차원의 사람에게 그저 '원'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2차원에서 구는 그저 원일 뿐이므로 원 밖에 모르는 사람에게 구를 설명하라고 해봤자 설명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이 모호함을 이미 1988년에 다뤘다는 것. 전세계가 충격받을 수밖에. 


 그렇게 세계를 전율하게 한 <아키라>의 패기 가득한 재패니메이션의 시도는 <신세기 에반게리온 EOE> 이후 점차 사라져갔다. 마지막 주자라 할 수 있을 곤 사토시 감독이 타계한 이후엔 시도조차 없어졌다. 지금의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는 그런 시도를 소화할 재력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제작비 조달을 위해 넷플릭스와 계약한 미야자키 하야오를 봐도 알 수 있을 테고, <데빌맨>이란 위대한 고전을 날림 작화로 만들어야 했던 <데빌맨: 크라이 베이비>로도 알 수 있다. 프레임 드랍의 3D 애니메이션이 되고 만 <베르세르크>도 같은 맥락이다. 


 누군가 말하더라. <아키라>는 원작 만화가 훨씬 디테일하고 훌륭하다고. 그래서 원작 만화를 안 보고 있다. 난 극장판 애니메이션만의 모호함과 아키라의 존재 방식이 좋다.


 이하 스크린샷은 <아키라> 한국판 블루레이의 원본 사이즈 캡쳐다. 누르면 커진다. 화질이 썩 좋은 편은 아니지만, 연식을 고려한다면 이해할 수 있다. 참고로 4K 블루레이가 외국에 나왔다. 화질이 개선됐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