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블루레이 본편 정보

영화 안나, 모두가 안나를 사랑한다

즈라더 2020. 8. 24. 00:00

 약 1년 만에 <안나>를 감상. 이번 감상은 블루레이라서 조금 더 몰입해서 볼 수 있었다. 


 지난번에 쓴 단평에서도 언급한 바지만, <안나>의 특징은 역시 낭만이다. 이는 <아토믹 블론드>, <맨 프롬 엉클>에서도 느낀 건데, 크리에이터들에겐 그 살벌한 냉전마저도 이제 낭만의 일종이 된 모양이다. 당연하다. 당시 대중문화는 'Cold War'가 지닌 중의적 의미 그대로 차가운 시대였음에도 놀랍도록 강렬하고 우아했으며 낭만적이었다. 싸이코패스와 정신병자들의 살육전, 착취가 난무하고 '정상적인 사람'이 거의 없었다던 서부 개척 시대를 미국과 이탈리아가 어떻게 다뤘는지 되새겨보시라. 그런 시기를 겪고, 배운 크리에이터들이 냉전마저도 낭만적으로 새겨내는 것은 그리 이상하지 않다.


 그래도 뤽 베송 감독은 그 시기를 직접 겪어낸 세대 답게 냉전의 한복판에 안나를 놓아두고 잔혹한 접근법을 시도했는데, 하필(?) 사샤 루스라는 배우에게 취해서 그 잔혹함이 낭만에 덮혀버렸다. 어쩌면 앞서 언급한 영화들과 차별화된 무언가를 (예를 들어 <레옹>이나 <루시> 같은) 보여줄 수 있을 법했지만, 배우에 대한 감동을 지나치게 드러낸 것이다. 단, 뤽 베송 감독은 오히려 이 낭만적인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도 모른다. 왜냐면 작품 속 인물 모두가 사샤 루스, 그러니까 안나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뤽 베송의 감정이 캐릭터에 고스란히 스며들었다는 얘기다. 


 영화에서 한 순간에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진 안나를 건져올린 남자는 비록 쓰레기였어도 그녀를 창녀촌에서 벗어날 수 있게 했다는 사실 자체엔 변함이 없다. 그리고 쓰레기 같은 남자는 위기의 순간에서도 안나와 함께 도망칠 생각을 한다. 안나를 버리고 혼자 도망친다는 감각 자체가 없는 듯하다. 이는 사건의 시작이자 영화 속 등장인물의 공통된 목적이다. 다시 말하지만,


 모두가 안나를 사랑한다.


 안나를 픽업한 뒤 자유를 약속했음에도 결과적으로 그녀를 보내줄 수 없었던 알렉스. 안나에게 자유를 제안하면서도 본인이 직접 구출하겠다며 자유를 속박하는 레너드. 안나의 마음이 완전히 떠났다는 걸 뻔히 알면서 줄곧 기다릴 뿐인 모드. 모두가 안나가 다치길 원하지 않으면서 정작 그녀가 원하는 자유를 주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마치 뤽 베송이 사샤 루스에게 느낀 감정을 등장인물들에 투영한 것만 같다.


 결국, 그녀에게 자유를 주는 건 '엄마'다. (어쩌면 엄마에게 잘하라는 게 영화의 주제일지도 모르겠다.) 엄마 역시 안나를 사랑했지만, 그녀가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도록 도운 뒤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을 이렇게 표현한다.


 "썅년."


 즉, <안나>는 안나성애자들의 이야기인 셈이다. 마지막에 알렉스와 레너드의 절망에 빠진 표정이 그걸 말해준다. 세상이 멸망한다고 해도 그런 표정은 안 나올 거다. 아마 배우 본체(?)도 사샤 루스에게 꽤나 빠졌던 모양이다.


 한편, <안나> 블루레이 화질에 대해 짤막하게 언급해보자면, 놀랍도록 샤프한 영상과 아쉬운 암부 계조 정도가 되겠다. 영화는 2.39:1 화면비를 완벽하게 활용하는 드문 영화인데, 잘 살아난 시네마스코프 영상이 칼 같은 샤프함으로 펼쳐지는 덕에 시각적 쾌감이 장난아니다. <안나>는 되도록이면 블루레이로 보자.

 

 이하 스크린샷은 <안나> 한국판 블루레이의 원본 사이즈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