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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헌트, 다 잊어버리고 스트레스나 풉시다

즈라더 2020. 8. 16. 00:00

 근래 B영화와 공포영화 쪽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블룸하우스의 패기 넘치는 영화 <헌트>.


 특정 이유로 사람들을 모아놓고 사냥한다는 점에서 <배틀로얄>도 살짝 떠오를 것이고, 따라서 살벌하고 처절한 사투가 벌어질 거로 기대할 수 있지만, <헌트>는 그런 유형의 영화와 거리가 꽤 멀다. 영화의 설정은 일종의 맥거핀 비슷한 거로 생각하는 게 목적에 부합해보인다. 네임밸류가 있는 배우를 데려다가 페이크 주연을 맡긴 것부터 시작해서 초짜티가 팍팍 나는 관리자(!)들까지 무엇 하나 그런 처절함과 거리가 한참 멀다. 


 그렇다고 인터넷 악플이 일으킨 나비효과라거나 믿었던 진실에 배반당한 사람의 좌절 같은 부분을 끄집어내 비판하는 영화도 아니다. 영화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그저 엉성하게 PC에 함몰된 엘리트들과 프로파간다와 음모론에 낚여서 허둥대는 일반인인데, 그들을 매우 얼빵하게 그림으로써 그것들이 그저 '소재'에 불과하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잠깐 생각하고 옆으로 치워둔 뒤에 영화의 코믹한 살육씬이나 격투씬을 즐기라는 것이다. 그게 B영화니까.

 

 <헌트>에 어떠한 해석을 덧붙이고자 한다면 정치 사회 측면에서 온갖 이론과 주장이 뒤섞여, 속된 말로 혼파망이 벌어지는 현대 사회의 엉뚱함과 유치함을 풍자했다는 쪽으로 해보자. 군인 출신인 주인공의 대사에는 뜻밖의 통찰력이 있다. 그녀는 '그딴 거에 지쳐버려서 스트레스 좀 풀겠다'라는 식의 막무가내적 사고방식으로 끝까지 간다. 이는 영화의 제작 의도와도 꽤 괜찮게 어울린다. 정리하자면,


 'X같은 세상 같은 거 지긋지긋하니까 다 치워버리고 이 영화 볼 때만큼은 잊어버려라.'


 같은 스탠스다. 영화는 주인공을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초월자'에 가깝도록 그려냄으로써 목적을 달성한다. 사상이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다는 듯, 무언가 '이유'를 만들지 않고선 못 견뎌하는 지식인들을 그저 '귀찮은 존재' 취급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그야말로 B영화의 본질을 얘기하는 듯하다.


 <헌트>의 의도는 거의 성공했다. 클라이막스 격투씬이 조금 더 자연스럽게 연출되었더라면 거의가 아닌 완벽한 성공이었을 것이다.

 

 이하 스크린샷은 <헌트> 블루레이 원본 사이즈 캡쳐. 최신작 답게 적당히 좋은 화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