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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55

원더우먼 1984 (2020) 액션을 포기하고 욱여넣은 훈계질

영화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은 세련되어야 한다. 억지로 욱여넣으면 촌스러워 보이고 거부감을 일으키게 마련이다. 특히 페미니즘이 섞인 휴머니즘이라면 요새 같은 시기에 얼마나 거부감이 심하겠는가. 원더우먼 1984는 그걸 몰랐다. 촌스럽다는 말은 때론 익숙하다는 말과 비슷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원더우먼 1984는 굳이 1984년을 배경으로 할 이유가 없는 영화다. 영화는 마치 80년대 TV 방송이나 해볼 법한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촌스럽게 메시지를 욱여넣는데, 그래서 이런 변명을 하고 싶은 것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해보았다. '80년대 영상 문화의 오마쥬를 겸했기 때문에 이렇게 촌스러운 스토리가 되었습니다. 사실, 이건 촌스러운 게 아니라 익숙한 거라고요.' 진짜로 이런 생각을 했다면 그야말로 비겁한 변명이..

원더우먼 (2017) 이제 매우 의심스러운 결과물

원더우먼 1984를 보고 난 뒤 원더우먼을 보면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을 것이다. 패티 젠킨스가 두 편 모두 촬영 감독으로 매튜 젠슨을 데리고 찍었음에도 영상에 차이가 막심하다. 원더우먼의 촬영이 대단했다기보다 원더우먼 1984의 촬영이 형편없다는 쪽에 더 가깝겠다. 대체 '머선129'란 말이 튀어나오는 막대한 변화에 기가 찰 나름이다. 액션이야 말할 것도 없이 원더우먼이 훨씬 뛰어나다. 원더우먼과 원더우먼 1984의 스턴트 코디네이터가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겠지만, 원더우먼 1984의 스턴트 코디네이터가 딱히 모자란 이들도 아니다. 스타워즈 시리즈, 트랜스포머 시리즈,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등에서 이미 검증을 받은 베테랑들이다. 액션의 분량이 적을 뿐이라고 말하기엔 원더우먼 역시 액션 분량이 많은 편..

영화/리뷰 2021.05.01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아이언맨은 '거짓말쟁이'라고 했을까?

저스티스 리그 스나이더컷에 들어간 온갖 오역을 보다 보니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어이없는 번역이 떠올라 피식 웃었다. 영화 초반에 토니 스타크는 스티브 로저스의 꽉 막힌 사고방식을 비난하며 이렇게 말한다. "거짓말쟁이" 절대 틀린 번역은 아니다. 사전적으로 거짓말쟁이가 맞다. 애초에 해당 대사를 어떻게 번역하든 lie라는 어원에 집중하는 이상 그 뉘앙스를 살릴 수 없다. 그러나 분명히 영화 속에서 토니 스타크의 대사는 단순히 '왜 거짓말했냐?'라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거짓말이란 사전적 의미를 넘어선 내용을 내포하고 있다. 지나치게 원론적인 스티브 로저스의 태도, 그리고 큰 것을 위해 작은 것을 희생하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 태도에 대해 비난했는데 그걸 거짓말이라는 사전적 의미로 번역한다고? 생각해보시..

넷플릭스 [모술] 이라크에 던져진 듯한 현장감

영화 속 세계로 보는 이를 휙 던져버리는 연출 방식은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리는데, 이는 영상으로 나열된 내러티브를 읽기가 대단히 어렵기 때문이다. 한 번 감상으로 모든 걸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단연컨데 없다고 장담할 수 있고, 이런 유형의 연출을 주로 하고 있는 마이클 만은 쇠퇴기에 접어들었다는 부당한 악평과 함께 대중으로부터 멀어졌다. 다만, 이러한 연출 기법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면 어떨까? 그것도 세상에 널리 알려진 지옥의 중동이 배경인 실화라면. 모술이 바로 그런 영화다. 사실, 모술의 연출 방식이 마이클 만의 그것처럼 무작정 던져놓는 식은 아니다. 그저 최후의 반전을 위해서 말을 아낀다 쪽에 가깝고, 주인공의 위치 자체가 감상자를 대변하는 역할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 친절한 측면도 있다. ..

영화/리뷰 2021.04.27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파이널컷, 다채로운 액션의 혼종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파이널 컷. 존재도 몰랐던 딸, 폐기된 정부 요원, 복수심으로 쫓아오는 킬러. 어쩌면 홍콩이나 유럽 등에서 빈번하게 볼 수 있었던 액션 스릴러의 기본 사항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지만, 그 클리셰들을 적당히 잘 섞어내는데 성공은 했다. 특히 피곤에 푹 절여진 듯한 황정민의 비주얼이 참 인상 깊고, 일본 양키 스타일의 킬러로 변신한 이정재도 그럴싸하게 어울렸다. 아쉬운 점이라면 이정재가 맡은 킬러 '레이'에 대한 스토리텔링이 지나치게 부족하다는 것과 그로 인해 건너 뛰는 장면이 많다는 점 정도려나. 재일교포 싸이코패스 킬러로 꽤 괜찮게 시작하는 레이의 기반은 '추적'의 과정을 끊임없이 건너뛰다 보니 존재감이 희미해지고 결국 '최종 장애물' 이상의 기능을 하지 ..

마찬가지로 달라보이는 [배트맨 대 슈퍼맨]

무릎을 탁.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의 초반부에 나오는 로이스 레인의 대사가 귀에 박혔기 때문이다. 자신으로 비롯된 사고에 죄책감을 느끼던 그녀는 클라크에게 대충 이러한 말을 한다. "날 사랑한다는 사실이 너(클라크)로 하여금 너로 있을 수 없게 할까 봐 두렵다." 개봉 당시는 그냥 로이스 레인의 죄책감이 클라크에 대한 걱정으로 드러난 대사라고 생각했는데,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를 보고 나니 무릎을 탁! 로이스 레인이 슈퍼맨의 타락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단서가 아닌가. 맨 오브 스틸부터 배트맨 대 슈퍼맨까지. 영화는 정서적으로 굉장히 불안하고 어린 슈퍼맨을 그린다. 애초에 정신적 지주나 다름없던 아버지 조나단 켄트가 어린 클라크 켄트에게 해준 조언들이 썩 쓸 만한 게 없었고, 결과..

영화/리뷰 2021.04.22

잭 스나이더의 첫 디지털 영화 [아미 오브 더 데드]

그러고 보니 잭 스나이더는 내 기준에서 '마스터피스'라 부를 법한 히어로 영화를 세 편이나 만들었다. 1. 왓치맨 감독판 2. 배트맨 대 슈퍼맨 감독판 3.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 그러나 이 영화들 중에서 잭 스나이더가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전부 다 진행한 영화는 하나도 없다. 온갖 간섭을 겪으며 싸워서 얻어낸 결과물이란 얘기다. 개인적으로 잭 스나이더의 영화 중에서 가장 완전판(?)을 보고 싶은 건 써커펀치다. 확장판으로 상당히 괜찮은 작품이 되었지만, 잭 스나이더는 확장판마저도 자신이 담고 싶은 걸 전부 담지 못 한 결과물이라 하더라. 본인이 기획하고 각본까지 쓴 써커펀치조차 본인의 의도대로 할 수 없었다니, 뭐라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참고로 극장판은 창녀촌 시퀀스를 모호하게 보이도록 난..

저스티스 리그 스나이더컷 이후 또 다르게 보이는 맨 오브 스틸

나름 장대한(?) 계획을 세웠다. 맨 오브 스틸부터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 리그를 연달아 달리고 아쿠아맨과 원더우먼까지 감상하는 기획. 이게 뭐가 장대하냐고 물을 수 있는데, 전부 다 합쳐서 14시간에 달하는 대장정이다. 겨우 다섯 편으로 14시간이라니 새삼 DC 쪽 영화가 길다는 걸 느꼈다. 일단 그 첫걸음으로 맨 오브 스틸을 봤다. 배트맨 대 슈퍼맨 이후에 다시 본 맨 오브 스틸은 분명히 다른 영화였다. 배트맨 대 슈퍼맨은 맨 오브 스틸에서 거대한 재난처럼 느껴지던 크립톤인 대결의 반작용을 그대로 다룬 영화다. 재난에서 살아남아 PTSD를 겪는 이들이 영웅이 된 슈퍼맨을 보며 어떤 감정을 느끼는 지 배트맨을 통해서 알려주는 영화.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조나단 켄트가 어린 클락에게 해왔던 ..

영화 [인랑] 근사하게 그려진 원작의 정서

지금은 재패니메이션 전성기의 마지막 주자로 인정받고 있지만, 공개 당시만 해도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분리되어 치열하게 대립하던 애니메이션 인랑은 한국에서 실사화되었음에도 똑같은 상황과 마주했다. 다만 호불호와 별개로 김지운 감독의 강단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원작의 정서를 그대로 가져온 강단. 거기에 평범한 조명조차 네온사인처럼 보이도록 연출함으로써 사이버펑크 분위기를 낸 영상 접근법. 이병헌과 최민식을 데리고 고어 스릴러를 만들었던 그 강단이 인랑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본래 원작 애니메이션이 '똥철학'이란 말을 들었을 만큼 난해했던 걸 떠올리면 그래도 실사판 인랑은 비교적 쉽다고 할 만하다. 초반부 다소 복잡하게 펼쳐진 정치 세력의 싸움은 그저 배경이 될 뿐이고, 중반부턴 인물 개인의 감정에 집..

넷플릭스 [낙원의 밤] 인터뷰 사진 고화질 및 언론 시사회 반응

전여빈, 엄태구, 차승원 주연의 낙원의 밤이 넷플릭스로 넘어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조금 슬펐었는데, 지금에 와선 차라리 잘 되었단 생각도 든다. 지금 한참 빈센조로 매력을 발산하고 있는 전여빈은 연기에 대해 아주 약간 호불호가 갈리는 반응을 얻고 있는데, 사실 그녀는 지독한 상황에 처해있는 여성을 연기할 때 자기 매력을 제대로 전달하는 배우다. 이 작품으로 국내외 넷플릭스 시청자들에게 어떤 배우인지 확실하게 어필할 수 있을 거라 본다. 며칠 전에 있었던 언론 시사회에 다녀온 동료의 말에 따르면, 낙원의 밤은 기존 박훈정 감독 특유의 오락적 색채가 짙은 영화와 다른 경향을 띠는 느와르라고 한다. 영화의 정서는 2010년대의 한국영화에 있지 않으며, 최근 무뢰한으로 부활 조짐을 보였던 이창동식 느와르에 ..

영화 [용문비갑] 저평가된 속편

신용문객잔이 좋은 평가를 얻었음에도 호금전을 배신했다는 불명예를 얻어 시달려야 했던 서극이 다시금 이 이야기를 끌고 올라오는 데엔 20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20년이 지난 2011년, 서극은 용문비갑이란 이름의 속편을 대단히 야심차게 자신의 개성을 한껏 몰아넣어서 연출해 내놓았다. 그러나 본인의 야심과 달리 여러 측면에서 혹평을 면치 못했고, 이야기가 사실상 닫힌 결말이었기에 다시 명예 회복을 시도하려면 상당히 고민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론 용문비갑은 굉장히 저평가된 작품이라 생각한다. 이 영화의 단점이라고 한다면, 훌륭한 액션 디자인을 망쳐놓은 CG 퀄리티. 헐리우드의 90년대 CG에도 미치지 못하는 한심한 퀄리티가 영화의 여러 요소를 지저분하게 소화한 것이다. 물론, CG 역시도 연출의..

2021년에 다시 보는 영화 [신용문객잔]

서극은 여러 의미에서 자신을 증명하고 싶었다. 소오강호 촬영 당시에 있었던 불화로 호금전 본인이 중도하차했지만, 어쨌든 소오강호는 호금전의 영향력이 지배적인 '객잔' 시리즈의 하나로 완성되었고, 서극은 소오강호로 얻은 것이라곤 하나도 없이 호금전의 영향력을 떨쳐버리려는 듯 동방불패를 제작했다. 동방불패의 성공 직후엔 호금전 감독을 엿 먹이려는 의도라도 있었는지 신용문객잔을 만들어서 화제를 모았다. 서극 본인은 호금전을 존경한다느니 뭐라느니 하지만, 적어도 그의 행보에선 존경심 비슷한 걸 찾기가 몹시 어렵다. 신용문객잔은 정말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한다. 양가휘, 임청하, 견자단, 장만옥. 솔직히 실패하기도 쉽지 않은 캐스팅. 게다가 영화 자체도 당시 기준으론 썩 괜찮게 만들었다. 초고수도 기습 앞에선 의미..

[황혼에서 새벽까지] 쿠엔틴과 로버트의 B급 덕력 테스트

초기 쿠엔틴 타란티노가 본인의 색채를 진하게 묻혀서 B급 정서를 소화해내는 감독이었다면, 로버트 로드리게즈는 그냥 날 것 그대로의 B영화를 만들었다. 엘 마리아치 트릴로지는 그나마 폼이라도 잘 잡았지, 황혼에서 새벽까지는 그야말로 극장에서 팝콘 던지며 보는, 그라인드 하우스 전용 영화에 가깝다. 그 누구도 황혼에서 새벽까지를 걸작이니 잘 만들었다느니 하는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평가는 영화의 의도에 어울리지 않는다. 황혼에서 새벽까지의 매력이라면 쿠엔틴 타란티노가 쓴 각본 특유의 '아가리 파이팅'과 완벽한 B영화를 추구한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연출 아래에서, 조지 클루니나 하비 케이틀, 줄리엣 루이스, 셀마 헤이엑과 같은 배우들이 진지하게 연기한다는 점이다. 주인공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기만 하는 ..

잭 스나이더의 필모그래피는 테렌스 맬릭으로 구성되었다

테렌스 맬릭의 영화에 익숙하고 눈썰미 있는 분이라면 눈치 채셨겠지만, 맨 오브 스틸은 '테렌스 맬릭이 슈퍼맨을 만든다면?'이라는 전제가 숨겨져 있지 않을까 싶을 만큼 대놓고 테렌스 맬릭의 연출을 쫓았습니다. 어느 정도냐면 테렌스 맬릭의 영향력이 가장 많이 담긴 장면으로 꼬마 클락이 뛰노는 장면을 꼽곤하는데, 이 장면은 촬영 감독이 아니라 잭 스나이더 본인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핸드헬드로 찍은 장면입니다. 이런 경향은 이미 왓치맨 때부터 있었습니다. 각종 상징과 단서를 영상 속에 펼쳐놓고 관객에게 '너희가 알아내라'라는 연출 성격은 누가 봐도 테렌스 맬릭 혹은 스탠리 큐브릭의 영향이었죠. 잭 스나이더는 인터뷰 등을 통해 자신의 영화를 두고 '내 의도대로 찍지 못 했더라도 이야기는 대체로 완벽하다'는 스탠스..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 스나이더컷은 마스터피스다

벌써 17년이나 이어온 잭 스나이더의 필모그래피를 쭈욱 훑어온 사람이라면, 그의 영화가 어떤 성향을 지니는지 알 리라 본다. 그는 테렌스 멜릭과 스탠리 큐브릭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은 감독으로, 비록 영상의 스타일링은 다르지만, 스토리텔링 기법은 작품을 거듭할수록 두 거장의 영향력이 짙어졌다. 즉, 잭 스나이더는 내러티브를 영상으로 풀어낸다. 일반적으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를 영상 내러티브로 만드는데 심취하면 어떤 영화가 나오느냐. 잭 스나이더의 친구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로 예를 들자면, 덩케르크와 테넷이 나온다. 자칫 잘못하면 내러티브가 사라진 영화처럼 여겨질 수 있다는 얘기다. 잭 스나이더는 왓치맨부터 배트맨 대 슈퍼맨까지 모두 영상으로 내러티브를 서술하는 바람에 '스토리가 없는 영화감독'이라는..

영화/리뷰 2021.03.20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 스나이더컷에 다크사이드의 오메가빔!

1. 이제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 공개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정말 길고 긴 기다림이었다. 솔직히 이게 가능할 거라 생각을 못 했는데, 기어코 이 기적을 만들어낸 캠페인 총대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다. 2. 그간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는 '전설 속에나 존재', '이솝 우화와 같은 것' 등의 방식으로 조롱받기 일쑤였다. 한국에선 '누구도 볼 수 없는 일본 국가대표 1군과 같은 스나이더 컷'이라며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해왔다. 이건 워너 브라더스의 엠바고와 자신을 희망 고문하고 싶지 않았던 잭 스나이더가 직접적으로 '있음'이라고 말하지 않았던 탓이다. 그러나 결국, 5시간이 넘는 촬영본이 있음이 알려지고 그로부터 1년 4개월이 지난 지금, 우리는 드디어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를 직접 확..

[흑협] 이 졸작에 담긴 독특한 추억

이연걸의 열혈한 팬이었던 꼬맹이 시절. 하굣길의 비디오 가게에 붙은 흑협 포스터를 보고 '드디어 이연걸 신작이 나왔구나'라며 달려서 흑협 비디오를 빌렸다. 그런데 하필 그날 집의 비디오 플레이어가 고장이 났지 뭔가. 방법을 골똘히 생각하다가 달려간 곳이 사촌 동생의 집이었다. TV 앞에 사촌 동생, 친동생과 함께 앉아 흑협을 보고 있는데, 조금 많이 당황했다. 생각보다 잔인하고 생각보다 야하다. 모여 앉아 비디오를 보고 있던 우리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외삼촌은 영화의 정체(?)를 깨닫고 깜짝 놀라 비디오를 끄더니 용돈을 주며 나가서 다른 거 하며 놀라고 말했다. 당시엔 외삼촌이 왜 저렇게 호들갑을 떠시는지 이해를 하지 못 했다. 아주 긴시간이 흘러 2020년대에 접어든 지금, 나는 당시 외삼촌이 왜 그렇게..

영화/리뷰 2021.03.11

넷플릭스 [승리호]가 대박을 터트린 이유

한국 최초의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한국 최초의 SF라는 말은 틀렸다. 한국도 SF는 꽤 있어.) 타이틀을 들고 화려하게 공개된 승리호는 엄밀히 말해 '최초'니 하는 수식어와 별개로 가볍게 즐기기 적합한 영화임에 틀림이 없다. 스케일이 대단히 크다고 할 순 없지만, 나름대로 구색은 갖췄고, 우주 시퀀스의 널뛰기 편집으로 스릴이 감소하는 문제는 'K스타일' 카메라 구도와 핸드헬드로 적당히 덮었다. 전 세계에서 스페이스 오페라를 멀쩡하게 제작해내는 나라가 거의 없는 상황이니 이 정도면 나름 말끔하게 내놓은 셈이다. 솔직히 200억으로 이걸 어떻게 만들었나 싶을 지경. 한국도 이젠 200억으론 승리호 정도 규모의 영화를 만들 수 없다. 아마 VFX나 캐스팅 관련해서 여러 비용 절감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승리..

영화/리뷰 2021.03.05

잭 스나이더는 [맨 오브 스틸]이 온전한 본인의 영화라 밝혔다

뇌피셜. 섣부르게 추측으로 모든 걸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 최근 내가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는 뇌피셜은 잭 스나이더에 관한 것이다. 난 그간 잭 스나이더가 완전히 자기가 바라는 대로 완성한 영화가 있다면 왓치맨 감독판일 거라 생각했다. 그야말로 마스터피스. 완벽에 가까웠던 그 인생작이 아니면 뭐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잭 스나이더는 왓치맨 감독판조차 자신의 의견대로 100% 찍지 못 한 작품이라 말하고 있다. 그리고 난 맨 오브 스틸을 잭 스나이더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의견이 압도적으로 반영된 영화라 생각했다. 그러나 잭 스나이더 감독은 맨 오브 스틸이 본인의 헐리우드 필모그래피에서 유일하게 원하는 대로 찍은 영화였다고 말했다. 난 엄청난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스토리에..

[시신령] 포스터와 영춘회의 심월 션위에, 넷플릭스 개봉?

아, 모르겠다. 결국 저우쉰과 천쿤은 이런 쪽으로 돌아와서 만날 수밖에 없는 건가. 화피와 화피2로도 이미 충분히 해봤다고 생각하는데. 천쿤과 저우쉰의 저 포스터 분위기는 분명히 익숙한 그것이라 서글프다. 시신령 예고편을 보니 최근 중국의 선협물 중에선 드물게도 진지하고 VFX 퀄리티도 뛰어난 작품인 듯해서 그나마 다행. 천쿤과 저우쉰, 왕려곤의 팬인 데다 호감을 가지고 있는 심월(沈月, 션위에), 왕자선도 나오니 무조건 보기는 할 것 같다. 시신령의 홍보 행사 영춘회의 사진이 두 장 올라와서 포스터와 함께 첨부해본다. 물론 심월의 사진이다. 그런데 1차 예고편에서 심월은 얼굴이 한 번도 안 나온다. 하기사 출연진이 지나치게 화려하다. 다른 곳에 가선 주연을 맡을 배우(왕려곤, 진위정, 심월은 명백한 주..

[양과 늑대의 사랑과 살인] 재해석의 영역마저 유치하게

살인마를 사랑해버린 히키코모리 남성의 이야기를 다뤘다길래 흥미를 뒀었던 양과 늑대의 사랑과 살인. 예고편의 톤만 봐도 절대 내가 기대했던 그런 그림은 나오지 않을 거란 걸 알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착하고 저렴하다. 'SP 드라마로 만들기엔 수위가 높아서 어쩔 수 없이 영화로 만들었습니다'라고 말하는 전형적인 만화 원작의 일본 영화라 보면 되겠다. 애초에 첫 살인 장면부터가 한 편의 무용을 하듯 현란한 몸동작을 뽐내니 이건 대놓고 '나 만화에요'라고 말하는 꼴이라 혹시나하는 마음까지 접어뒀다. 너무 착하고 심심해서 (솟구치는 핏물마저 CG다) 잠이 스르륵 온다. 그런데 어차피 후쿠하라 하루카가 그 귀여운 비주얼과 성우 목소리로 살인마를 연기한다길래 궁금해서 본 거라 부담 없어서 되려 좋은 점도 있..

영화/리뷰 2021.02.16

영화 [백두산] 수지 빼고 남는 게 없었다

영화 백두산 블루레이를 봤다. 영화 속 하정우 캐릭터 못지 않게 얼빵한 수준의 영화다. 합리성은 시작부터 끝까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이야기는 짤막한 재난씬에 살이라도 붙여보려 억지로 짜맞춘 것에 불과하다. 다이제스트 스타일의 편집 스피드는 엉망진창인 시나리오를 감추려는 변명처럼 보인다. 백두산 폭발이라는, 올해 바로 찾아와도 이상하지 않을 현실적 재난을 가져왔음에도 영화 안에 현실성이라곤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를 재감상하는 얼빠진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지 않을 뿐이지, 지금 백두산을 재감상하고 제대로 정리한다면, 난 이 영화의 모든 요소를 전부 부정할 수 있다. 솔직해지자. 백두산은 백두산 폭발이라는 화제적 요소에 착안해서 지진과 폭발의 VFX를 열심히 보여주고 싶어했던 제작자에 의해 재창조..

영화 테넷, 고정된 시간이 크리에이터에게 주는 영향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로 스토리텔링 기법을 바꿨다. 기존 그의 지나치게 설명에 집착하는 스토리텔링은 관객으로 하여금 '이건 픽션입니다'라고 인식시키는 수준에 도달해있었고, 극의 몰입에 다소 방해가 되는 단점이었다. 거장이라 불리기 위해서 가야 하는 마지막 단계가 필요했는데, 로 그걸 해낸 것이다. 대사가 아닌 영상으로, 가타부타 할 것 없이 관객을 영화의 세상 안에 집어던지는 스토리텔링의 '마지막 단계'에 분명히 도달한게 다. 이는 마이클 만 감독처럼 극단적인 수준까지 밀어붙이는 사람이 있을 만큼, 거장이라 불리는 감독들은 모두 깨달아 익히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대사가 아닌 영상을 중심으로 스토리텔링하는 연출이 설명을 반드시 필요로 하는 '시간 여행'과 관계된다면 어떨까? 이 바로 그런 영화다. 운명..

나이트메어 2010, 영혼 없는 악플 같은 영화

루니 마라가 데이빗 핀처와 만나기 전에 찍은 호러 영화 은 정말 속이 편안한 리메이크다. 꿈을 소재로 기괴한 상상력을 펼쳐냈던 원작과 달리 개성이 함몰된 채, 빈약한 등장인물 구성과 대놓고 설명을 해대는 스토리텔링까지 더해져 특별할 게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일취월장한 21세기의 기술로 신비롭고 괴랄한 꿈의 공포를 그려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먹힐 텐데, 감독의 연출엔 그럴 여력이 없어보인다. 긴 상영시간을 요구하는 내용을 (크레딧 제외하고) 1시간 25분 가량에 우겨넣는데 역량을 너무 소모했다. 극과 아무런 관계 없는 오마쥬가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 역시 바쁘게 달려야 할 영화에 악영향을 끼쳤다. 접고 접어 짓이겨서 1시간 25분에 우겨넣은 이야기는 딱히 '흠'이라고 할 부분은 없지만, 극으로서 작용..

영화/리뷰 2020.12.24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프레임 밖에서 일으키는 기적

글쎄. 는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독립영화 혹은 피칠갑 B영화와는 거리가 멀다. 저예산을 커버하기 위한 수단을 강구했다기보다 있는 그대로 돌진했다. 대신 가져다 놓은 게 '아이디어'. 영화의 3중 구성은 일본 저예산 코미디 영화의 전형을 독특한 느낌이 나도록 연결했고, 후반부 리드미컬한 코미디는 치밀하게 연구한 티가 역력한 스릴러로 재해석할 수 있다. 저예산 심야 TV용 좀비 드라마 정도에서 그친다면 좋겠는데, 이걸 생방송 롱테이크로 찍는다라. 영화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조건이 성사되어가는 과정을 관객 앞에 내어놓기 이전에 '완성본'을 먼저 다이렉트로 보여준다. 이런 방식을 취하는 순간, 이제 그 드라마의 프리 프로덕션과 촬영(이자 포스트 프로덕션)은 완전히 '퍼즐 짜맞추기'가 된다. 또한, 작품과 메이킹..

쇼크웨이브2에 니니와 유덕화가 커플로 나오는 모양

코로나19로 오랜 기간 포스트 프로덕션을 거쳐 이제야 개봉하는 의 스틸 사진이 올라왔다. 아마 중국어를 잘 알거나 이 영화 혹은 니니(倪妮, 예니)와 유덕화(刘德华, 류더화)의 팬이라면 이미 알고 있었겠지만, 난 이 스틸 사진을 보고 나서야 알았다. 확신은 할 수 없으나 유덕화와 니니가 커플로 나오는 모양이다. 어째 제작 발표회에서 두 사람의 케미가 묘하더라니 커플 연기를 해서 그랬던 모양. 음. 두 사람의 실제 나이 차이가 27살인데 이게 가능하다는 게 조금 놀랍다고 해야 하나. 스틸 사진만 보면 메이크업 덕분인지 심하게 위화감이 들지는 않는다만, 팩트가 있는 이상 당혹스러운 건 도리가 없다. 유덕화 형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아래로 포스터와 스틸 사진.

에너미 앳 더 게이트, 클래시컬 전쟁 영화의 마지막 주자

, 와 함께 2차 세계대전을 다룬 대중문화의 '레퍼런스'가 된 . 이후 수도 없이 많은 2차 세계대전 게임, 영화, 드라마 등에서 오마쥬되었으며, 특히 스나이퍼를 다루는 작품이면 를 참고하지 않은 경우가 거의 없다. 그 정도로 매력적인 영화지만, 뜻밖에도 이 영화는 스티븐 스필버그 제작의 두 작품과는 상당히 궤를 달리한다. 조금 과감하게 말하자면 훨씬 올드하다. 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은 전쟁 영화의 패러다임을 바꾼 작품이 여럿 나온 시기다. 특히 2차 세계대전은 , 현대전은 으로 총격씬의 기술이 완성되었다. 전쟁의 한복판에 밀어넣고 서라운드 채널을 각기 다른 화기로 매워버리는 퍼포먼스는 이전에 본 적이 없는 '신기술'에 해당했다. 그저 모노 사운드로 덮어버리던 과거의 영화들과는 궤를 달리한다. ..

영화 고지전, 거부할 수 없는 한국 전쟁의 모순

신인 감독의 패기와 한계가 고스란히 노출된 전쟁영화 . 건너뛰는 요소가 지나치게 많고 편집이 난잡하다는 점 등 다양한 단점이 보이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건 연극적인 연출과 대사다. 조금 더 정확하게, 작위적이라는 표현이 조금 더 어울릴 법한 의 스토리텔링은 상당히 큰 장애물이다. 그러나 의 '모순'엔 그런 신인 감독의 한계를 깨버릴 힘이 있다. 년단위로 교착되어 양군의 시체로 단층을 만들어 쌓은 고지전은 기껏 해봐야 몇 킬로미터 정도 되는 거리를 위해 수십만 명의 인력을 갈아 넣은 전대미문의 전투였다. 단순히 비슷한 자리에서 참호전만 몇 개월해도 적아 구분이 안 된다고 하는 마당에 년 단위로 그만큼 사람을 갈아 넣었으면 적아가 아닌 '(서로를 죽여야 하는)동료'로 인식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은..

영화/리뷰 2020.11.23

애드 아스트라, 그렇게 진정한 아버지가 된다

본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담겨 있다. 의 지향점은 분명히 와는 다르다. 가 각종 장르가 다양하게 포함된 종합 선물에 가까운 반면, 는 싸이코 스릴러(공포 영화를 의미함이 아니다)라는 한 가지 장르에 매달리며, 스릴을 불러오기 위한 도구로 '우주'를 가져다 쓴 덕에 거대하다. 영화가 느긋하다는 이유로 를 예술 영화처럼 받아들이는 사람도 보이지만, , , 등의 여러 우주 영화들이 지나치게 빠르게 달려서 그럴 뿐, 가 특별하게 느린 건 아니다. 로이(브래드 피트 분)의 여정에 달에서 벌어지는 카체이싱, 화성의 카운트다운 시퀀스까지 밀어넣으며 오락성을 분배하고 있다. 크레딧을 제외하면 2시간도 안 되는 영화기에 꽤 촘촘하게 들어간 정상적인 속도의 영화라 생각한다. 우주 다큐멘터리가 떠오르는 OST 쪽이 그런 인상..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물량 공세를 위한 무리수들

를 보고 리뷰를 적지 못 한 것에 대해 나 자신도 이해가 안 갔다. 게다가 블루레이 스페셜 피처를 보고 나면 할 이야기가 생길 거라 말한 적이 있음에도 블루레이가 출시되고 구매한지 한참 지나도록 감상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 방치하다가 간신히 최근 감상했다. 다행히 스페셜 피처를 보기 전에 본편 만으로도 할 얘기가 생겼음에 기뻐해본다. 다만, 이 포스팅은 영화 자체에 대한 리뷰라기보단 왜 내가 이 영화에 몰입하지 못 했느냐에 대한 고민이다. 세상에 둘도 없는 쓰레기 같은 작품조차도 할 말이 생기게 마련이고, 난 그런 작품을 수도 없이 많이 감상해서 리뷰를 남겨왔다. 누군가가 '아니, 이딴 작품을 보고 리뷰를 굳이 왜 남기느냐'라고 의문을 가질 만큼. 그런 내가 어떻게 같이 할 말이 한가득해야 마땅한 영화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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