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흑협] 이 졸작에 담긴 독특한 추억

즈라더 2021. 3. 11. 06:00

 이연걸의 열혈한 팬이었던 꼬맹이 시절. 하굣길의 비디오 가게에 붙은 흑협 포스터를 보고 '드디어 이연걸 신작이 나왔구나'라며 달려서 흑협 비디오를 빌렸다. 그런데 하필 그날 집의 비디오 플레이어가 고장이 났지 뭔가. 방법을 골똘히 생각하다가 달려간 곳이 사촌 동생의 집이었다.


 TV 앞에 사촌 동생, 친동생과 함께 앉아 흑협을 보고 있는데, 조금 많이 당황했다. 생각보다 잔인하고 생각보다 야하다. 모여 앉아 비디오를 보고 있던 우리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외삼촌은 영화의 정체(?)를 깨닫고 깜짝 놀라 비디오를 끄더니 용돈을 주며 나가서 다른 거 하며 놀라고 말했다. 당시엔 외삼촌이 왜 저렇게 호들갑을 떠시는지 이해를 하지 못 했다.

 


 아주 긴시간이 흘러 2020년대에 접어든 지금, 나는 당시 외삼촌이 왜 그렇게 당황했는지 확실하게 알았다. 일단 흑협은 15세 관람가다. 꼬맹이들이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심지어 사촌 동생은 유치원생이었다) 그리고 이걸 내게 빌려준 비디오 가게 아저씨에게 문제가 있지 않나 싶을 정도로 잔인하다. 갈라진 목에서 솟구치는 피의 궤적이 고스란히 나오고 심장에 박힌 폭탄을 제거하는 장면이 있으며, T팬티를 입은 여성과 황추생의 짤막한 성관계 장면도 있다. 몇몇 신체 훼손씬은 어둡지 않았다면 얄짤없이 19금 때려 박을 수준이다. 이연걸 영화라는 얘기에 내버려 뒀던 외삼촌으로선 엄청난 배신감을 느꼈을 수도 있겠다.


 흑협은 그냥 못만든 홍콩 액션 영화의 전형이다. 이 영화에서 건질 수 있는 건 원피스 차림으로 뛰어다니는 막문위의 귀여움과 여타 홍콩 액션과 다르게 개싸움처럼 처절한 클라이막스 액션씬 정도. 겨우 이런 작품 보자고 외삼촌을 놀라게 했나 싶어서 조금 웃음도 나왔다. 


그저 추억에 취해 끄적끄적.

 

아, 흑협은 블루레이 화질도 디비디 수준이니 주의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