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마찬가지로 달라보이는 [배트맨 대 슈퍼맨]

몰루이지 2021. 4. 22. 12:00

 무릎을 탁.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의 초반부에 나오는 로이스 레인의 대사가 귀에 박혔기 때문이다. 자신으로 비롯된 사고에 죄책감을 느끼던 그녀는 클라크에게 대충 이러한 말을 한다.


 "날 사랑한다는 사실이 너(클라크)로 하여금 너로 있을 수 없게 할까 봐 두렵다."


 개봉 당시는 그냥 로이스 레인의 죄책감이 클라크에 대한 걱정으로 드러난 대사라고 생각했는데,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를 보고 나니 무릎을 탁! 로이스 레인이 슈퍼맨의 타락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단서가 아닌가.

 

배트맨!! 로이스 레인이 키라고!!!


 맨 오브 스틸부터 배트맨 대 슈퍼맨까지. 영화는 정서적으로 굉장히 불안하고 어린 슈퍼맨을 그린다. 애초에 정신적 지주나 다름없던 아버지 조나단 켄트가 어린 클라크 켄트에게 해준 조언들이 썩 쓸 만한 게 없었고, 결과적으론 도움조차 안 되었다. 이는 슈퍼맨을 정서적 빈곤에 시달리다가 엄마와 여자친구에게 의존하는 나약한 인물로 만들고 만다.


 배트맨 대 슈퍼맨은 렉스 루터가 배트맨, 슈퍼맨 두 히어로를 세뇌하는 과정을 그린다. 그런데 렉스 루터가 공을 들인 인물은 배트맨이지 슈퍼맨이 아니다. (배트맨이 이미 슈퍼맨에게 원한을 가진 상태였음에도) 수십 년 동안 범죄자와 싸워왔으나 변함이 없는 고담의 현실에 지쳐버린 그의 마음을 살살 긁는 고단한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완전히 자기 손아귀에 넣고 쥐락펴락하게 된 슈퍼맨과 달리 배트맨의 경우엔 그의 행동 범위를 예측하지 못하고 크립토나이트를 빼앗기기도 한다. 심지어 배트맨에게 걸었던 최면적 세뇌는 마사 한 방에 박살 난다.


 '뭐? 슈퍼맨에게 지구인 엄마가 있다고? 왜?'


 "오늘 밤의 마사는 죽지 않을 거야."


 반면 슈퍼맨은 얼마나 정서적으로 불안한지, 자신의 선한 마음조차도 왜곡해서 바라보는 대중의 모습을 보며 생겨난 피로함을 느낀다. 여기에 겹쳐 '그딴 거 알게 뭐야'라는 식으로 활동하는 배트맨을 보며 열등감을 갖게 되는, 그야말로 세뇌시키기 딱 좋은 상태가 되어간다. 결국엔 두 차례의 불길로 슈퍼맨의 멘탈은 아작 났고 슈퍼맨은 절망하다 자살을 하러 떠난다. 선하디 선한 마음을 가졌음엔 틀림이 없으나 정서 불안에 시달리는 데다 자존심과 열등감을 동시에 갖고 있어서 휘둘리기 딱 좋다는 얘기다. 

 

로이스 레인이 키라고 하는데 안 들은 결과


 영화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에서 부활한 슈퍼맨은 스테판울프를 고문한다. 한 번에 죽이는 아량 같은 건 생각조차 안 하는 모양이다. 아무리 악당이어도 생명인 데다 스테판울프가 저지른 악행은 대부분 그가 부활하기 전에 이루어졌다. 직접적인 원한도 없는 마당에 약한 상대를 그렇게 괴롭히다니, 부활하면서 새디스트 취향이라도 생긴 걸까.


 잘 보면 슈퍼맨이 일부러 스테판울프의 갑옷만 부숴놨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히트비전으로 뿔 하나를 손쉽게 잘라버릴 정도니 죽이고자 한다면 단 번에 찢어놓을 수도 있다는 얘기인데, 그럼에도 갑옷만 부쉈다. 이는 리거들에게 '복수해라!'라며 기회를 준 것이다. 그리고 그 의도에 부응한 아쿠아맨이 갑옷이 부서진 가슴 부위에 트라이던트를 꽂아 넣었고, 원더우먼은 역시 목의 갑옷이 사라진 걸 보고 스테판울프를 참수한다. 


 맨 오브 스틸 -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감독판 -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 이렇게 세 작품을 통해 슈퍼맨이 얼마나 불안한 존재인지 완전하게 빌드업해놨다. 이제 저스티스 리그2만 나오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