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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용문비갑] 저평가된 속편

즈라더 2021. 4. 7. 06:00

 신용문객잔이 좋은 평가를 얻었음에도 호금전을 배신했다는 불명예를 얻어 시달려야 했던 서극이 다시금 이 이야기를 끌고 올라오는 데엔 20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20년이 지난 2011년, 서극은 용문비갑이란 이름의 속편을 대단히 야심차게 자신의 개성을 한껏 몰아넣어서 연출해 내놓았다. 그러나 본인의 야심과 달리 여러 측면에서 혹평을 면치 못했고, 이야기가 사실상 닫힌 결말이었기에 다시 명예 회복을 시도하려면 상당히 고민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론 용문비갑은 굉장히 저평가된 작품이라 생각한다. 이 영화의 단점이라고 한다면, 훌륭한 액션 디자인을 망쳐놓은 CG 퀄리티. 헐리우드의 90년대 CG에도 미치지 못하는 한심한 퀄리티가 영화의 여러 요소를 지저분하게 소화한 것이다. 물론, CG 역시도 연출의 영역이므로 서극의 책임이 아예 없다고 하긴 어렵겠다. VFX 업체에게 돈을 제대로 주지 않은 결과물일 게 뻔하니 제작비를 초과하는 각본을 쓴 서극에게 문제가 있는 게 당연하다. 제작비를 조달하는 프로듀서 역시 서극이 담당했기 때문에 이마저도 서극의 탓이다. 음, 역시 결론은 서극이 서극했다고 해야 하려나.

 

천쿤은 한결 같이 연기를 잘한다


 용문비갑은 동창의 환관들을 쓸고 다니는 조회안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동창의 추적으로부터 꼭꼭 숨어야 했던 전작의 조회안(전작의 주회안)은 어디에도 없고 동료들과 함께 동창의 고수들을 싹 쓸어버린 덕분에 동창의 환관들이 절간으로 도망쳐 숨어버렸다는 전개다. 이런 동창을 대신해서 전면에 나선 게 서창으로, 메인 빌런인 서창의 우두머리 우화전이 천쿤의 대단한 연기력을 통해 카리스마를 뽐낸다. 


 신용문객잔과 달라진 건 조회안의 행동 방식만이 아니다. 전작에서 동창의 2인자와 맞서서 우세를 점하는 수준에 그쳤던 조회안은 용문비갑에선 동창의 마지막 남은 고수를 검조차 뽑을 수 없게 일방적으로 몰아붙인다. 메인 빌런인 우화전을 상대할 땐, 쉽사리 이길 수 없는 적이라는 판단이 드는 순간 작전상 후퇴를 한 뒤 우화전이 가진 독특한 무기를 상대할 방법을 연구한다. 객잔에서 지략으로 우화전의 군대를 쓸어버리는 전개를 보고 있노라면 이리저리 휘둘리기만하던 전작의 그 조회안이 맞나 싶을 지경. 사실, 능력이 상향된 인물은 조회안만이 아닌데, 암기를 사용하는 능력이 뛰어났을 뿐, 아주 뛰어난 고수가 아니었던 능안추(전작의 금양옥)가 용문비갑에선 조회안과 우화전 다음으로 뛰어난 고수로 표현된다. 사용하는 병기도 검이다.

 

 서극은 용문비갑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걸 전부 했다. 고전 무협의 '협의'를 고스란히 이식해놓았고, 긴장감 넘치는 객잔 시퀀스로 자존심 회복을 꾀했다. 서극의 칼과 칠검에 나왔던 독특한 무기들이 재차 등장하는 데다 21세기 서극 영화의 시그니쳐가 되어버린 어드벤쳐 요소도 듬뿍 담겼다. 그저 이것들을 묶어줄 CG가 지나치게 한심했을 뿐이지, 이야기의 '보따리' 자체는 꽤나 즐거운 것들로 채워져있었다. 그래서 용문비갑은 내게 볼수록 매력적인 영화다.


 한편, BK를 통해서 나온 용문비갑 한국판 블루레이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오프닝 OST가 스피커를 울릴 때, 왼쪽 리어 스피커의 음량이 갑자기 작아지는 오류가 발견되고, 영상은 블랙레벨 조절에 실패해서 하얗게 떠있다. 너무 이상하다 싶어 홍콩판 블루레이를 꺼내서 비교해보고 깨달은 것들이다. 홍콩판의 영상에 자막만 입혀서 그대로 출시했을 거라 생각한 내가 바보다. 역시 의심스러운 회사의 블루레이는 사면 안 되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