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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티스 리그 스나이더컷 이후 또 다르게 보이는 맨 오브 스틸

즈라더 2021. 4. 15. 00:00

 나름 장대한(?) 계획을 세웠다. 맨 오브 스틸부터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 리그를 연달아 달리고 아쿠아맨과 원더우먼까지 감상하는 기획. 이게 뭐가 장대하냐고 물을 수 있는데, 전부 다 합쳐서 14시간에 달하는 대장정이다. 겨우 다섯 편으로 14시간이라니 새삼 DC 쪽 영화가 길다는 걸 느꼈다. 일단 그 첫걸음으로 맨 오브 스틸을 봤다.


 배트맨 대 슈퍼맨 이후에 다시 본 맨 오브 스틸은 분명히 다른 영화였다. 배트맨 대 슈퍼맨은 맨 오브 스틸에서 거대한 재난처럼 느껴지던 크립톤인 대결의 반작용을 그대로 다룬 영화다. 재난에서 살아남아 PTSD를 겪는 이들이 영웅이 된 슈퍼맨을 보며 어떤 감정을 느끼는 지 배트맨을 통해서 알려주는 영화.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조나단 켄트가 어린 클락에게 해왔던 충고는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는 걸 알려주는 영화란 의미다. 맨 오브 스틸의 이야기가 배트맨 대 슈퍼맨에 와서 완성된 것은 이미 이 시점에 잭 스나이더의 머리에는 큰 그림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 그러니까 스나이더컷을 보고 나면 맨 오브 스틸은 또 다른 포지션을 취하게 된다. 물론, 배트맨 대 슈퍼맨도 마찬가지. 

 

 아래로는 맨 오브 스틸부터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까지 전부 스포.

 

크립톤의 기술력이 다크사이드보다 모자라보이진 않는다


 스나이더컷에서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며 저스티스 리거와 스테판울프를 박살 내던 슈퍼맨은 분명히 '영웅' 슈퍼맨과는 거리가 있는 편이다.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 배트맨이 꾸준히 묻던 '만약 슈퍼맨이 악으로 돌아선다면?'이란 질문의 대답이 나온 것이다. 응애 시절 다크사이드의 전쟁 때처럼 올림푸스 올드갓과 그린랜턴까지 힘을 합친다면 모를까, 슈퍼맨이라는 전대미문의 재앙을 막을 상대가 어디에도 없다는 얘기. 굳이 리거들이 슈퍼맨 한 사람에게 완벽히 박살 나는 장면을 넣은 이유가 바로 악이 된 슈퍼맨의 공포를 표현하기 위해서라고 본다.


 배트맨 대 슈퍼맨 개봉 당시에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배트맨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임팩트가 엄청났던 원더우먼 덕분에 '원더우먼이면 슈퍼맨을 어느 정도 상대할 수 있었겠구만'하는 추측도 한몫을 했고. 그러나 잭 스나이더는 그게 아니라고 말한다. 슈퍼맨을 막을 방법은 마더박스와 같은 우주적 무기 혹은 반생명방정식뿐이었다. (다크사이드가 스나이더컷의 시점에서 어느 정도로 강한지는 묘사되지 않았으므로 차치해두자.)


 잭 스나이더가 맨 오브 스틸에 막대한 인명피해가 일어나는 과정을 디테일하게 묘사한 건 감상자로 하여금 슈퍼맨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하려함일 것이다. 되새겨보면 PG등급 영화치곤 파격적인 장면이 여럿 나왔다. 시민들이 무너지는 건물과 폭발하는 비행체들을 피해 도망치는 장면은 분명히 재난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연출법으로 구성되었다. 테라포밍 장면에서 하늘에 떠오르는 건 사물만이 아니라 사람도 포함되어있었다. 비명을 지르며 하늘로 올라갔다가 중력보다 강하게 바닥에 내리 꽂히는 수많은 생명체들은 섬뜩함을 느끼기에 충분한 잔혹함이다.

 

아주 짧은 장면이었지만 원더우먼, 원더우먼1984 출연 분량을 다 합쳐도 이게 더 멋졌다. 되살려라 워너.
전성기의 올림푸스 올드갓이면 슈퍼맨과 싸워볼 만할지도


 맨 오브 스틸의 테라포밍만 보자면 꽤 흥미진진한 이야기도 떠올릴 수 있다. 묘사된 바에 따르면 크립톤인은 수도 없이 많은 행성을 테라포밍했다고 나온다. 그리고 그들이 그 행성의 생명체를 안중에 뒀을 것 같진 않다. 또한, 오프닝에 나온 크립톤의 기술력은 다크사이드 세력의 기술보다 훨씬 뛰어나 보인다. 그러니까 다크사이드가 하고 있는 걸 크립톤인들도 했다는 얘기다. 연혁(?)을 따져보면 크립톤 쪽이 다크사이드보다 훨씬 먼저였을 지도 모르겠다. 크립톤은 침공받는 행성에 있어서 이미 악당이었다는 얘기. 왠지 마블의 아스가르드가 떠오르기도 한다.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에서 명쾌하게 결론이 나지 않은 요소들은 (나올 가능성이 거의 없는)그 속편에서 정체를 드러낼 것이다. 총 5부작으로 구성될 예정이었다던 슈퍼맨 시리즈는 잭 스나이더의 큰 그림 아래에서 차곡차곡 내러티브를 쌓아가고 있었다. 오늘 맨 오브 스틸을 또 보고 확신했다. 


 그러고 보니 슈퍼맨 시리즈는 작품 사이의 시간 간격이 상당히 타이트하다. 맨 오브 스틸의 클라이막스가 배트맨 대 슈퍼맨의 오프닝을 장식하고, 저스티스 리그 로이스가 임신한 것을 보아할 때 배트맨 대 슈퍼맨과 저스티스 리그는 거의 하나의 작품이라고 봐도 될 만큼 바로 이어진다는 걸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