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 스나이더컷은 마스터피스다

즈라더 2021. 3. 20. 06:00

 벌써 17년이나 이어온 잭 스나이더의 필모그래피를 쭈욱 훑어온 사람이라면, 그의 영화가 어떤 성향을 지니는지 알 리라 본다. 그는 테렌스 멜릭과 스탠리 큐브릭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은 감독으로, 비록 영상의 스타일링은 다르지만, 스토리텔링 기법은 작품을 거듭할수록 두 거장의 영향력이 짙어졌다. 즉, 잭 스나이더는 내러티브를 영상으로 풀어낸다. 

 

그래... 이게 조커지...
재촬영 분량에서 유독 홀쭉해진 앰버 허드... 가슴이 아프다


 일반적으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를 영상 내러티브로 만드는데 심취하면 어떤 영화가 나오느냐. 잭 스나이더의 친구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로 예를 들자면, 덩케르크와 테넷이 나온다. 자칫 잘못하면 내러티브가 사라진 영화처럼 여겨질 수 있다는 얘기다. 잭 스나이더는 왓치맨부터 배트맨 대 슈퍼맨까지 모두 영상으로 내러티브를 서술하는 바람에 '스토리가 없는 영화감독'이라는 말도 안 되는 누명을 쓰고 살아야 했다. 그래서일까? 잭 스나이더가 저스티스 리그(이하 스나이더컷)에선 스타일을 바꿨다. 평범하게.


 영상으로 내러티브의 상당부분을 정리해서 누군가로 하여금 '영상인지 텍스트인지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하게끔 했던 잭 스나이더의 전작들과 달리 저스티스 리그 스나이더컷은 매우 친절하다. 최대한 대사로 설명할 것들을 설명했고, 상징들을 직접적으로 비추는 등 잭 스나이더 답지 않게 쉽게 꾸몄다. 언제나 캐릭터에 모호함을 부여하던 철학적인 대사들은 여전하지만, 이전엔 철학의 '끝맺음'이 흐지부지되거나 지나치게 깊은 철학을 담는 바람에 고민하다가 이야기를 놓치게 마련(이를 두고 실력도 안 되면서 개똥철학이나 늘어놓는다며 비난을 받아왔다)이었는데, 저스티스 리그 스나이더컷에 나오는 철학은 정말 쉽고 또 쉽다. 따라서 잭 스나이더의 이전 작품들처럼 영화의 내용을 따라가기 어렵다고 느끼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마존 전사들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배우인데 아무래도 이번이 마지막인 모양

 

 한편, 액션에서 만큼은 대다수에게 호평을 얻어온 잭 스나이더답게 저스티스 리그 스나이더컷에서도 액션이 빛을 발한다. 분명히 조스 웨던이 내놓은 2017년 저스티스 리그와 같은 장면임에도 그걸 편집으로 다루는 방식에서 잭 스나이더는 차원을 달리한다. 게다가 조스 웨던의 판본에 들어가지 않은 액션씬의 분량이 당연하게도 어마어마하다. 단순히 파라데몬을 죽인 숫자만 보자면 배트맨이 가장 많기 때문에 2017년 조스 웨던 판본에서 아무 생각 없이 자살 돌진만 하는 바보였던 배트맨이 이번엔 나름대로 기술을 갖춘 히어로로서 활약했다고 볼 수 있다.

 

겁나게 죽인다


 거의 4시간에 육박하는 장대한 분량의 영화가 단 한 순간도 호흡이 흐트러지지 않는다는 점만 봐도 저스티스 리그 스나이더컷은 대성공이다. 타이트하게 조였다면 3시간 40분 정도까지는 줄일 수 있었을 테고,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확장판이 극장에서 재상영되어 성공하는 근래의 사례를 보아할 때 극장 개봉도 가능했을 거라 본다. 즉, 워너 브라더스는 왓치맨에 이어 히어로물 역사에 길이 남을 걸작을 만들어놓고선 자기들 손으로 뻥 차 버릴 뻔했던 것이다.


 워너 브라더스의 멍청함이 어느 정도인지는 흥행성적만 봐도 대충 감이 오고도 남는다. 되새겨보자. 맨 오브 스틸은 흥행 평타를 쳤다. 배트맨 대 슈퍼맨도 흥행 평타를 쳤다. 원더우먼은 흥행 대박을 쳤다. 망작이라 듣던 수어사이드 스쿼드도 상당히 크게 성공했다. 아쿠아맨도 대박을 쳤다. 잭 스나이더가 설정을 확립하고 프로듀서로 판을 깔아준 DCEU 영화들 중엔 실패한 영화가 없다. 그런데 왜 딸이 세상을 떠나고 고통받던 잭 스나이더를 압박해서 프로젝트를 포기하게 했느냔 말이다. 아이언맨2의 혹평, 퍼스트 어벤져와 토르: 천둥의 신이 간신히 평타를 치며 위험하다는 얘길 들었던 마블은 그런 상황에서도 뚝심있게 끝까지 밀어준 끝에 어벤져스로 초대박을 터트릴 수 있었다. 저스티스 리그 스나이더컷이 이제야, 그것도 불완전한 VFX(영화 전반에 걸쳐서 CG 퀄리티가 잭 스나이더의 영화답지 않게 매우 아쉬웠다)와 함께 탄생한 것은 전부 워너의 아둔함 때문이다.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는 슈퍼맨만 있으면 모든 걸 해낼 수 있다는 내용이 아니다. 그의 심볼 역시 피로 얼룩졌다.


 참고로 저스티스 리그 스나이더컷의 에필로그에 나오는 악몽씬은 재촬영으로 추가된 것들이다. VFX 퀄리티가 심각하게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지만, 배우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컷이 대부분이라 크게 문제는 되지 않을 거라 본다. 급하게 찍어서 영화에 포함시킨 장면임에도 배우의 연기를 다루는 잭 스나이더의 능력이 빛을 발한다. 자레드 레토의 조커 연기는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봤던 그 연기와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섬뜩하고 고통스러운 조커의 등장에 그저 감탄사만 내뱉었다. 또한, 메라 역시 아쿠아맨의 메라보다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 속 메라가 훨씬 아름답다. (앰버 허드 뽀에바)

 

뱀다리)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시길. 꽤 많이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