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브스 아웃>을 애거사 크리스티에 대한 덕심 가득한 예찬론이라 말한 이유가 따로 있진 않다. 고독하고 절묘한 추리의 영역보다도 사건 안에서 생성된 사람과 사람의 정치적 공생 관계에 대해서 묘사하는데 더 공을 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애거사 크리스티에 대한 예찬론과 별개로 블랑 탐정이 지나치게 뛰어나다는 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지만, 적어도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들보다도 훨씬 그녀의 소설과 흡사한 면모를 보여준다는 점을 부정하긴 어려울 것이다. 영화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 역시도 마찬가지다.
그럼 <나이브스 아웃: 어니언 글래스>에서 애거사 크리스티에 대한 예찬 말고 뭐가 남느냐고? 글쎄. 솔직히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에는 허점이 꽤 많이 있다. 그리고 적어도 영화의 주제만큼은 진중하고 디테일하게 서술하던 애거사 크리스티와 달리, 라이언 존슨은 그런 것조차 꽤나 익살스럽게 그려내는 탓에 영화가 한없이 가벼워지는 경향이 있다. 특히 '글래스 어니언'에 대해서 읊을 때에는 한 발자국 덜 딛었다는 느낌이 짙다. 무려 조수까지 붙어서 열심히 조사하고 다닌 것과는 달리 핵심적인 주제 서술이 빈약하는 것이다. 이게 연기의 탓인지 연출의 탓인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다만, 이 '모자람'은 라이언 존슨이 이런 유형의 익살스러운 영화를 만들 때에 거침없이 들어가는 재벌가에 대한 조롱이 특수하게 작용한 것일 수 있다. 맥거핀 캐릭터를 무려 둘이나 세워놓고 그 아래에 한 층의 속임수까지 더해진 2막이 시작될 때,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라이언 존슨은 재벌과 원수지간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조롱에 조롱을 얄팍하디 얄팍한 그들의 사상과 현실이란 입안에 처넣으며 깔깔대고 웃어제낀다. <블룸 형제 사기단>부터 이어진 라이언 존슨의 유구한 성향은 분명히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까지 이어졌고, 이는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통쾌함을 선사하는 기반임에 틀림이 없다.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은 장단점이 분명한 작품이지만, 그래도 흡입력 하나는 예술적이다. 생각 없이 틀었다가 2시간 20분에 달하는 장대한 시간이 지나갔다. 라이언 존슨의 영화를 보다가 이런 식으로 시간을 바이든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또 흡입 당했어."
라이언 존슨의 영화를 볼 때마다 같은 결론이 나온다. 오프닝부터 사람을 몰입하게 하는 데엔 신이 들린 것 같은 재능을 가지고 있다. 걸물은 걸물이다.
넷플릭스는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을 4K HDR로 서비스한다. 삼성 QLED라 돌비비전으로 보진 못 하고 HDR10으로 감상했는데, HDR 답지 않은 한계점을 지적해야 할 것 같다. 내 눈이 틀리지 않다면 가장 밝은 구간도 300nit를 넘지 않으며, 그 안에서 톤매핑을 해놓았는지 영상 전반이 다 우중충하다. 이와 같은 영상을 과거에 한 번 본 적이 있다. 바로 디즈니 플러스 <이터널스>의 HDR10 되시겠다. <이터널스>를 HDR10으로 감상한 적이 있는 분은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의 영상 성향을 미리 본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용자들의 기기를 고려해서 500nit 안에서 톤매핑하는 경우는 상당히 많이 있지만,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은 그런 경우가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차라리 그레이딩 오류라고 하는 쪽이 더 적합한 영상. 돌비비전으로 볼 수 없다면, SDR로 보는 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