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아쿠아맨 (2018) 어쩌면 스나이더버스의 최대 걸림돌

즈라더 2021. 6. 19. 00:00

 아쿠아맨을 다시 재감상하고 드디어 DC 대장정(!)을 완료.


 새삼 느끼는 건데, 만약 스나이더버스가 기적적으로 시작된다면(아미 오브 더 데드에 대한 대중의 반응이 불호 쪽에 쏠리면서 워너 브라더스가 의기양양해진 데다 잭 스나이더 역시 이미 차기작 각본을 쓰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리는 걸 보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제일 문제가 되는 건 원더우먼이 아니라 아쿠아맨이다. 캐릭터의 성격이 달라도 너무 다르기 때문.


 잭 스나이더는 아틀란티스를 고도의 기술을 가지고 있으되 지상 세계와 교류가 부족해서 고상한 분위기를 띠는 문명을 구상했던 것 같다. 그래서 갑옷을 고전적으로 묘사했고, 벌코는 머리를 풀어헤쳤으며, 메라는 영국식 악센트를 쓴다. 그러나 스나이더버스가 캔슬된 뒤 재설정한 아쿠아맨의 아틀란티스는 지구 공동설을 기반으로 아주 가볍게 그려졌으며, 악센트도 노멀하게 갔다. 사실, 이는 세계관을 급하게 재정립하느라 연구가 부족했던 탓일 수도 있다. 아틀란티스라는 고대 문명이 지상과의 교류가 없이 독자적으로 살아왔다면, 영국식 악센트를 쓰는 게 어울리긴 하니까.

 

조스티스 리그의 이 장면에선 뜬금없이 락음악이 흘러나온다. 캐릭터가 아예 다르다는 얘기다.


 주인공인 아서 커리의 성격도 다르다. 아쿠아맨의 아서 커리는 원더우먼의 올가미에 묶여 나약한 모습을 다 드러내고, 뭐 하나 하는 것 없이 씩씩대기만 하던 조스티스 리그의 아서 커리를 계승한다. 이것 역시 실수라고 봐야 하는데, 아서 커리의 그런 나약한 설정 때문에 메라가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지게 되었다. 즉, 주인공이 바뀌어버린 것. 원더우먼의 진짜 주인공이 스티브 트레버인 것처럼 아쿠아맨의 진짜 주인공은 메라다. 제임스 완 감독은 조스티스 리그가 아닌,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에서 여러 트라우마를 가지고 음울함을 뽐내던 고독한 아서 커리를 계승했어야 했다. 물론, 당시 제임스 완 감독은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를 보지 못해 참고할 수 없었을 테고, 잭 스나이더 역시 조스티스 리그를 보지 않았으니(지금도 안 봤다던가?) 조언을 해줄 수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아쿠아맨은 극단적이라 할 만큼 가벼운 영화가 되고 말았다. 아서 커리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고독함이 제대로 드러나질 않는다. 차라리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에서 'There is a kingdom' 음악과 함께 바다를 노려보는 아서 커리의 모습이 그 고독함을 잘 드러냈다는 생각이다. 바다에 익숙하지만 바닷속 왕국에는 분노하는 그의 고독한 인생. 바닷물이 사방에 뿌려지는 와중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바다를 노려보며 분노하던 아서 커리의 모습을 아쿠아맨에선 볼 수 없다.

 


 딱히 제임스 완이 잘못했다는 건 아니다. 잭 스나이더가 하차한 뒤 조스티스 리그가 완성되었고, 그걸 바탕으로 워너 브라더스는 DC 확장 유니버스를 전부 가볍고 코믹하게 만들기로 작정한 상태였으니까. 그런 바탕에서 만들어진 걸 고려하면 애초에 그에게 선택권이 별로 없었을 터, 오히려 엄청 잘 만들어냈다고 봐야 한다. 저스티스 리그가 조스티스 리그로 뒤엎어지는 와중에 아쿠아맨도 뒤엎어졌을 테니 보통 고생한 게 아닐 거라 본다. 그래도 제임스 완은 액션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챙겨 담아서 아쉬움을 상쇄했다. 이 정도의 액션을 챙겨줄 수 있는 감독을 요샌 보기가 참 어렵다. 특유의 촬영 구도 전환이 굉장히 매력적이고, 무엇보다 멋이 없다는 이유로 영화판에서 웬만해선 찾을 수 없는 트라이던트 액션을 잘 다뤄줘서 마음에 든다. 웅장한 스케일이야 말할 것도 없고.


 허술하고 유치한 스토리텔링에 대해선 그냥 그러려니 한다. 그게 바로 워너 브라더스가 원하는 스토리텔링일 테니까. 


뱀다리) 메라 역을 맡은 앰버 허드는 저스티스 리그의 의상이 불편하다고 돌려서 디스 한 적이 있다. 몸을 굽힐 수가 없다던가. 반면 아쿠아맨의 의상은 너무 편안해서 파자마처럼 입을 수 있다면서 칭찬했다. 아틀란티스산 레깅스의 위엄이다. 2편에서도 저 레깅스를 볼 수 있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