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2021) 윈드 리버는 운이 아니었다

즈라더 2021. 6. 24. 18:00

 카르텔, 사막, 설산. 테일러 쉐리던이 몰입해있는 것들은 인간의 손을 벗어난 어떤 존재고, 이들은 단순히 인간의 손을 벗어나는 걸 넘어 극의 중심에서 전개를 좌지우지한다. 영화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은 산불이다. 


 어떻게 해도 막을 수 없는 압도적인 공포. (카르텔이 이 안에 들어가 있다는 게 더 무섭지만서도) 시카리오 시리즈로 인상적인 각본을 써내려간 테일러 쉐리던은 직접 감독을 맡은 윈드 리버의 설산에 이어서 산불을 이용해 능수능란하게 극을 조작한다. 이미 빌런인 프로페셔널 킬러가 있음에도 강렬한 기세로 몰아치는 불길은 자신이 최후의 빌런임을 자신했다.


 테일러 쉐리던이 자연, 그러니까 이 영화의 경우 불을 품어낸 산을 대하는 태도는 다음 대사에서도 알 수 있다.


 "난 정말 여기가 싫어."


 "여기도 네가 싫대."


 이와 같은 태도는 이미 설산을 그려낸 윈드 리버에서도 설산을 살아 있는 것처럼 대함으로써 드러낸 바가 있다. 이러한 절대 권력의 존재는 선과 악을 구분하지 않고, 손에 닿는 것은 모조리 집어삼키거나 정신적 나락에 떨어트린다. 

 

이번 작품에서도 개고생하는 존 번설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에 딱히 구멍은 없다. 테일러 쉐리던이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외의 모든 작품에서 드러낸 휴머니즘이 듬뿍 담기는 바람에 실망한 사람도 있을 테지만, 상황을 최대한 합리적이고 냉정하게 몰아가는 킬러들을 그려넣어 숨겨둔 비수처럼 활용했다는 점에 주목해보시라. 후반부부터 시작되는 서스펜스는 그러한 킬러들의 인간적인(혹은 현실적인) 존재감 덕분에 큰 불만이 생기지 않는다. 단, 영화가 대단히 짧다는 점과 테일러 쉐리던 답지 않게 특정 공간을 지나칠 정도로 반복해서 이용한다는 점은 분명히 이상하긴 하다.


 본래 테일러 쉐리던의 각본은 공간을 상당히 넓게 잡는 게 보통이다. 워싱턴부터 텍사스, 후아레즈, 보고타, 멕시코 시티에 걸친 시카리오 시리즈는 물론이고, 설산이라는 한정된 장소의 윈드 리버나, 사막의 로스트 인 더스트 역시 그 대자연 안에서 상황을 반전시키는 공간이 반드시 나오고 영화는 제작비 대비 상당히 방대한 공간을 다루어왔다. 그러나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은 그렇지 않다. 딱 잘라 말해서, 스쳐지나가는 범죄 스릴러 취급 당하기 십상인 공간 활용이다.


 대체 왜 이렇게 된 건지 정보를 살펴보니까 원작 소설이 존재하는 모양이다. 원작자는 영화의 각본에도 참여했으며, 워너 브라더스는 테일러 쉐리던이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의 각본을 다소 모호하게 처리한 경험이 불안했던 건지 블러드 다이아몬드를 마스터피스로 각색한 찰스 리빗을 불러다 함께 각본을 쓰도록 했다.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에서 테일러 쉐리던 특유의 미국 사회가 지닌 부조리를 비판하는 요소가 희미해진 것을 비롯해 앞서 말한 공간의 문제 등은 혼자서 온전히 각본을 쓸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한다.


 재미있는 영화다. 기대 만큼은 아니어도 꽤나 물오른 테일러 쉐리던의 연출 실력도 확인할 수 있다. 적어도 윈드 리버가 '운'은 아니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영화니 한 번 정도 감상해보시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