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아미 오브 더 데드, 또 다시 저평가되는 잭 스나이더

즈라더 2021. 5. 28. 20:27

 아미 오브 더 데드를 드디어 봤다. 그간 온갖 반응이 쏟아져나왔는데, 워낙 호불호가 갈리는 바람에 어느 한 쪽의 분위기에 쏠리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천천히 봤다.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솔직히 그간 잭 스나이더의 영화들과 달리 리뷰의 내용이 길어질 것 같지도 않고.

 아래로는 아미 오브 더 데드의 강력한 스포일러가 담겨 있으므로 주의.

 


 잭 스나이더의 영화에 대해 호불호가 갈리는 이유가 뭘까? 스토리텔링 기법이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잭 스나이더는 스토리텔링을 영상으로 한다. 영상을 텍스트 삼아서 내러티브를 써내려간다는 의미다. 

 잭 스나이더 스타일 스토리텔링의 아주 쉬운 사례, 혹은 이미 많이 알려진 사례를 보자면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 두 히어로가 대결할 때 배트맨이 슈퍼맨의 공격을 너무 손쉽게 막아낸다는 점이 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배트맨이기에 슈퍼맨 따위는 그냥 막아내지라는 생각을 하기엔 슈퍼맨은 크립톤의 정예군과 싸운 경험이 있다. 크립토나이트로 약해진 것과 공격 자체를 막아내는 것과는 관계가 없으므로 이 부분에 대해 꽤나 싸잡혀서 욕을 먹었는데, 이건 배트맨이 슈퍼맨의 공격 패턴을 분석했기 때문이다. 영화의 중간 무렵, 배트맨이 슈퍼맨과 조드의 전투를 화면에 반복적으로 띄워놓는 장면이 나온다. 즉, 해당 장면의 '내러티브'는 영상에 서술되어 있던 것이다. 그의 스토리텔링 기법은 언제나 이렇다. 

 여기서 더 문제(?)가 되는 건 잭 스나이더의 태도다. 그는 언제나 이런 스탠스를 취한다.

 "나는 영상으로 모든 내러티브를 준비해뒀어. 너희가 못 봤다고 그게 없는 게 되진 않아."

 이를 두고 잭 스나이더의 팬들은 당연히 옹호한다.

 "반복해서 감상해서라도 영상 내러티브를 읽어내봐. 신세계가 펼쳐진다니까?"

 이에 대해 잭 스나이더의 헤이터들은 기가 막혀한다.

 "이게 무슨 예술 영화도 아니고 가볍게 즐길 액션 영화에서 그딴 스토리텔링을 한다고 누가 알아줘? 건방진 감독. 영화계에서 사라져라."

 

 애초에 어느 한 쪽이 틀렸다고 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이 논쟁에 대해선 넘어가자. 지금은 아미 오브 더 데드에도 이런 스토리텔링이 담겼느냐가 중요하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써커 펀치 때처럼 심한 정도는 아니어도 방식이 사라지진 않았다.

 

 

 한 가지 지적을 해두고자 한다. 아미 오브 더 데드의 설정, 그러니까 외계인이 섞인(혹은 만든) 좀비, 정부의 과도한 대응, 지능이 존재하는 좀비 등은 딱히 새로운 것도 아니고 무리한 것도 아니다. 외계인, 지능 부분은 이미 조지 로메로가 한참 전에 가져다 사용했던 설정이며, 심지어 지능을 가진 리더 좀비 부분은 만든지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냥 순항 미사일 여러대를 쏘면 그만임에도 굳이 핵폭탄까지 날려서 라스베가스 일대를 수십 년 동안 못 쓰는 땅으로 만든 것은 외계인 문제가 밖으로 유출되는 걸 최대한 막기 위함으로 보인다. 이런 것들로 인해 '잭 스나이더가 드디어 조지 로메로를 계승했다'며 호평을 날리는 평론가가 굉장히 많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그저 좀비 영화에 깊히 빠져있는 사람이나 조지 로메로의 좀비 영화에 익숙한 세대에게나 어필할 수 있을 뿐이겠지만.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잭 스나이더가 지금까지 항상 해왔던 영상 내러티브 방식의 스토리텔링이 아미 오브 더 데드에 적용된 세 가지 순간을 확인해보자.

 

 먼저 주인공의 딸이 굳이 저 안에 들어가려고 하는 이유. 일단 그녀에겐 목적이 분명하게 있다. 지인들을 살려서 '아이들에게 돌려보내는 것'. 그러나 그녀는 지인들을 살리겠다고 대사는 하되 '아이들을 위해서'라는 가장 중요한 전제를 팀원들에게 모호하게 보고한다. 정말 그게 직접적인 이유인지 의문이 들 만큼 널리 밝히지 않고, 그저 '사실'만 코요테에게 전달함으로써 죄책감에 대한 장치로 써먹을 뿐이다. 심지어 남겨진 아이들을 본 사람도 오로지 그녀 혼자다. 그리고 굳이 그 안에 직접 들어가는 것도 분명히 이유가 있다. 아버지가 가는 김에 구해서 돌아올 거라는 말을 믿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이는 들어가자마자 태도를 달리하는 팀원들 덕분에 사실임이 밝혀진다. 목적, 당위성 다 갖춰진 상황이란 얘기다. 그저 모든 측면을 대사로 직접 스토리텔링하지 않았을 뿐이다. 

 

 두 번째는 코요테의 희생. 그녀는 마지막에 꽤 멋진 반전을 선사한 뒤 기꺼이 희생하는데, 이건 이미 그녀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부터 순도 높은 내러티브를 담고 있다. 뭔가 고통에 질린 듯한 표정, 그리고 잠을 잘 때도 라이플을 쥐고 잘 만큼 무언가에 시달리는 모습. 이 두 장면으로 영상 내러티브를 쌓아두고 라스베가스에 진입한 뒤 그녀는 짤막하게 '죄책감'을 말한다. 자신이 해온 일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모든 건 수용소 사람들을 위해서였다는 자기합리화가 더는 먹히지 않는 상황과 마주했음을 은유적인 대사로 끝없이 반복한다. 사실, 노라 아르네제더가 맡은 이 코요테라는 캐릭터는 후반부엔 거의 주인공에 가까운 인물이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대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데다 그녀가 지닌 배경 지식을 바탕으로 전개되므로. 

 

 세 번째는 마리아와 스캇의 러브 라인. 이건 애초부터 그냥 드러난다. 그 위험한 미션을 권유 하나만으로 따라오는 것만 봐도 두 사람의 관계가 심상치 않음을 예상할 수 있으며, 아미 오브 더 데드의 영상을 디테일하게 보면, 스캇을 바라볼 때와 아닐 때의 표정을 아예 다르게 연기했다. 

 

 이 세 가지 부분에 더해서 딸의 민폐에 대해 말해보자면, 난 그게 왜 민폐인지 알 수가 없다. 영화에서 그녀가 사고를 친 적은 한 번도 없다. 심지어 솔로 플레이를 시작했을 때조차 바보 같은 짓으로 좀비를 더 불러오는 등의 사고를 치지 않았다. 되려 딸이 어디로 도망쳤는지 되새김으로써 엘레베이터를 대신한 탈출구로 이동하게 되므로 도움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문제가 된다면 결과적으로 딸이 구하고자 했던 이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점과 아버지의 희생 쪽일 텐데, 돈을 가지고 도망쳐 나온다는 미션 자체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은 마당에 그걸 민폐라고까지 할 수 있을까? 스캇이 딸을 구하러 이동하는 시점에서 이미 돈을 탈취해온다는 미션은 실패했고, 팀원들은 전멸했다. 

 

솔직히 찐주인공 수준 아닌가?

 

 즉, 이번 영화도 잭 스나이더가 잭 스나이더했다. 그는 영상을 중심으로 스토리텔링을 했고, 내러티브 측면에서 보자면 흠을 잡기 어려운 수준이다. 그러나 영화란 내러티브만으로 구성되는 게 아니다. 스토리를 구축해나가는 구성 요소들도 매우 중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아미 오브 더 데드는 잭 스나이더의 팬들도 싫어할 법한 요소를 꽤 가지고 있다.

 

 일단 액션의 분량이 심각할 정도로 적다. 액션의 스케일은 크지만 그 디테일의 농도가 옅어서 시원한 총기 사운드를 제외하면 쾌감을 느낄 요소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서스펜스를 느끼게 하는 잠입 장면, 탈출 과정의 헬리콥터 액션씬, 핵폭발 장면 등 괜찮은 장면이 여럿 존재하긴하지만, 그걸로 덮기에는 잭 스나이더 답지 않게 액션의 분량 자체가 매우 적은 편이다. 

 

 또한, 애써 구축해놓은 러브 라인을 터트리는 타이밍과 몰입 수준이 뜬금 없다. '둘이 그런 관계인 건 눈치를 챘지만, 이런 타이밍에 이런 식으로요?'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사실 이 부분은 배우자를 잃은 리더 좀비와 주인공의 공통점을 마련함과 동시에 이후 딸과의 감정선에 영향을 끼치지 않게 하려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보이지만, 그럴 바에는 그냥 죽은 마리아의 시체 앞에서 오열하는 스캇의 모습으로 추측만 하도록 하는 게 나았다는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촬영. 잭 스나이더는 이 영화로 장편 영화의 촬영을 처음으로 맡았는데, 사실 촬영 감독으로 활동한 게 처음은 아니다. 영화 감독으로 데뷔하기 전, 잭 스나이더가 만든 CF의 메이킹을 보면 그가 직접 카메라를 들고 촬영했다는 걸 확인할 수 있고, 아이폰으로 찍은 단편 영화를 직접 촬영한 적도 있다. 그리고 맨 오브 스틸의 메이킹을 보면, 어린 클락의 모습을 얕은 심도로 묘사하는 장면을 그가 직접 카메라를 들고 핸드헬드로 찍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아마 이런 관계로 이번엔 아예 장편 전체를 촬영해보자고 다짐한 모양이다. 그러나 문제는 잭 스나이더는 영화를 주로 필름으로 촬영해왔다는 사실이다. 아미 오브 더 데드는 잭 스나이더가 처음으로 디지털로 영화 전체를 촬영했는데, 심지어 그 카메라가 아직 사용 사례가 많지도 않은 레드 몬스트로다. 

 

 영상미가 부족한 영화는 아니다. 그저 잭 스나이더의 촬영이 베테랑 촬영 감독들에 비해 능숙하지 않다는 점이 걸림돌이 되었을 뿐이다. 그는 언제나 촬영 감독에게 자신의 비전을 설명하고 재능을 끌어내는데 굉장히 뛰어났다. 래리 퐁만 하더라도 잭 스나이더와 함께한 영화들이 아니었더라면 지금의 위치에 있진 않았을 것이다. 역시 다음 영화에선 촬영 감독을 고용하는 게 어떨까.

 

한 폭의 예술이 아닌가

 

 비록 잭 스나이더의 촬영 기술은 톱 클라스에 미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그의 영상 감각은 생생하게 살아 숨쉰다. 그는 클라이막스의 마무리에 어마어마한 광경을 담아놓았다.

 

 핵폭발이 일어난 이후 버섯 구름이 흩어져가는 순간을 배경으로 석양의 황혼이 흐른다. 이 살육적인 아름다움의 끝자락, 사막으로 떨어져 작아진 헬리콥터 잔해 앞엔 딸을 목숨보다 사랑했던 아버지의 시신이 있고, 그 사랑을 받은 딸은 아버지를 죽인 뒤 무릎을 꿇고 오열한다. 이 모순적인 비주얼은 차라리 한 폭의 시에 가까우며, 잭 스나이더가 왜 뛰어난 감독인지 알려준다.

 

 본래 영화에 평점을 주지 않고, 그게 옳다고 믿는다. 영화는 가전 제품이 아니므로. 그래서 적당하게 정리하자면, 잭 스나이더의 심정이 담긴, 어쩌면 다음 스텝을 위해 마련된 평작이라고 하겠다. 왜 로튼 토마토 탑 크리틱들이 아미 오브 더 데드에 잭 스나이더의 필모그래피 사상 최고의 점수를 주고 있는지 대충은 알 것 같다. 물론, 그 평가에 개인적으론 동의하기 어렵지만.

 

뱀다리) 총기 사운드가 참 좋다. 넷플릭스의 저음질이 아쉬울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