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콩: 스컬 아일랜드 (2017) 메타포에 희생된 것들의 집합

몰루이지 2021. 5. 8. 06:00

 오랜만에 몬스터 유니버스에 불이 붙어서 콩: 스컬 아일랜드를 봤다. 정확히 말하자면 고질라 VS. 콩을 보고 전작들이 기억이 안 나서 재탕한 거다. 재탕 안 하면 쓸 거리가 기시감 말곤 떠오르지 않는 작품이었던지라. 


 엄밀하게 말해서 콩: 스컬 아일랜드는 성공적이라 하기 어렵다. 아마 괴수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인간들의 역할을 약하게 한 것을 굉장히 반갑게 여길 수 있겠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인간이 아예 안 나온다면 모를까, 나온 이상 어느 정도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고질라 2014가 이 부분은 잘했다. 주인공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냈고, 마지막엔 고질라와의 교감에도 성공했다. 콩: 스컬 아일랜드는 인간들의 비중이 막대함에도 극에 결정적 영향을 주지 않고, 그저 메타포를 위해서만 작용한다. 


 콩: 스컬 아일랜드의 진정한 주인공이자 빌런은 콩도 스컬 크롤러도 아닌 패커드 중령이다. 이 영화에서 인간들의 행보는 그저 피터 잭슨 감독도 리메이크한 바가 있는 '킹콩'의 영화 제작진을 군인으로 대체해서 카피한 것에 불과하며, 이들을 군인으로 대체한 건 패커드 중령을 미국이란 나라로 비유해서 비판 의식을 취하려는 의도다. 인간들은 그저 메타포로서만 가치를 지니며, 주인공으로 알려진 톰 히들스턴이나 브리 라슨은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한다'라고 볼 수 있는 캐릭터는 인간 모두를 통틀어서 미국을 상징하는 패커드 중령 하나. 베트남 전쟁을 치르고도 다시 중동에 지옥을 만들어놓은 미국의 어이없는 행보를 비판하고자 무리수를 둔 셈.

 

촬영 감독인 래리 퐁은 디지털 기기를 잡아도 변함없는 영상을 만들어낸다


 몬스터 유니버스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고, MCU로 친다면 퍼스트 어벤져에 해당할 영화를 시대 비판에 통째로 이용한 것을 보며 감독과 각본가(왠지 각본가 중 하나로 참여한 댄 길로이가 의심스럽다. 속이 편한 블록버스터 각본을 쓰는 양반이 아닌데 뜬금 없이 각본가에 이름을 올렸더라. )의 강단이 놀랍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결과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겨야 할 콩과 스컬 크롤러의 전투가 메시지에 비해 많이 부족해서 이걸 정말 괴수 영화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지 의문이 생긴다. 괴수의 액션만 따지면다면 오히려 피터 잭슨의 킹콩 쪽이 압도적으로 우위다. 


 어떻게 된 건지 어린 킹콩은 자신의 가족도 전부 죽였다는 스컬 크롤러를 손쉽게 제압하고 괴성을 내지른다. 너무 작고 쉬웠던 콩의 전투 덕분에 콩 VS. 고질라가 제작된다는 소식을 듣고 '콩 100마리가 와도 고질라한테 질 것 같은데?'란 얘길 하는 사람도 있었다. 작금의 미국을 비판하는 강단은 매우 마음에 들었지만, 패커드 중령을 제외하곤 아무짝에 쓸모가 없었던 인간들과 빈약한 액션 때문에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한 결과물이라는 게 2017년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는 내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