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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92

넷플릭스 도시괴담, 게으른 고어물

넷플릭스에 옴니버스 형식의 공포 드라마가 있다길래 봤다. 이다. 제목을 보아 도시 괴담을 모아놨다는 설정인 모양인데, 정말 심하게 게으르다. 의 에피소드는 전세계 각국의 공포 영화에서 인상적인 장면을 어설프게 복제한 것들 뿐이다. 즉, 오리지널은 거의 없고, 가장 공을 들인 듯한 마지막 에피소드마저도 설명이 심하게 부족해서 어떤 감정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걸 내가 왜 보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에피소드를 엮는 방식은 아마 일본의 드라마 를 카피한 것 같은데, 그저 따라했을 뿐 연결고리를 찾을 수 없었기에 헛웃음만 나온다. 가 주축이 되는 에피소드를 한 번에 엮어내면서 하나의 세계관을 구축하는 방식으로 공포를 안겨줬다면, 은 그냥 '이것들 다 같은 세계관이야'라는 서술에 불과하다. '그래서 ..

드라마 2020.10.12

기생수 파트2, 영화화가 아닌 그저 실사화

아주 깔끔한 영화 . 좋은 의미의 깔끔함이 아니다. 에서 담지 못 했던 것들을 억지로 우겨넣느라고 평행편집을 이용해 단순히 나열했다. 원작의 에피소드들을 축약한 거라 다행히 산발적이진 않으나, 굳이 좋게 봐줄 이유도 없다. 는 그저 나열하다가 중요한 부분을 건너뛴다. 예를 들어 시청이 기생수들에게 잠식당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이나 신이치가 숨어있는 장소에 사토미가 나타나야 하는 이유 등에서 치명적인 공백이 있다. 시청의 기생수들이야 원작을 읽은 사람들은 적당히 디테일을 채워넣을 수 있다고 치지만, 히토미가 굳이 그 위험한 곳까지 가서 신이치와 정사를 나누는 건 황당한 억지다. 비주얼에선 절반은 긍정, 절반은 부정이다. 일단 전편부터 그렇지만, 원작에 비해서 액션의 비중이 끔찍할 정도로 적다. 기생 생..

영화/리뷰 2020.10.07

기생수 파트1, 원작에게 잔혹한 압축 파라노마

을 보고 처음 리뷰를 남긴 게 일본판 블루레이를 본 뒤였고, 일본판 블루레이를 구매했던 게 2015년이었나 2016년이었나. 그로부터 겨우 5년. 그럼에도 내 머리에 남아 있는 것이라곤 후카츠 에리의 나이를 거스르는 미모 하나뿐이었으니 사실상, 작품 내적으론 인상에 남는 게 하나도 없었던 셈이다. 영화 자체는 꽤 재미있게 봤다는 느낌이 드는 데도 남은 게 없다는 건 역시 전형적인 일본의 망가 실사화였을 가능성을 의미한다. 한국판 블루레이를 구매한 김에 다시 보니 이 가능성이 현실로 돌변해 한 발 다가왔다. '변화'와 '살아간다'는 주제를 가지고 격렬하게 풀어헤친 원작 망가 는 마스터피스다. 아니메가 그런 것처럼 망가 역시 70~90년대의 작품이 가장 격렬했는데, 이후 이나 , 등으로 대변되는 소년 만화의..

영화/리뷰 2020.10.01

넷플릭스 올드 가드, 액받이 무녀가 되는 게 두려운 불멸자들

시대착오적인 불멸자들과 문명인들의 적절한 조화가 돋보이는 영화 . 샤를리즈 테론이 그녀 영화 중에서 가장 멋진 비주얼로 나오는 영화기도 하다. 사방팔방에 카메라가 있는 정보화 시대인 데다 과거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규모의 대학살이 일상다반사처럼 일어나는 현대에 기껏 몇명 되지도 않는 불멸자들이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심지어 신체적 불멸이 아니라 '재생'하는 자들이다. 는 이 불멸자들을 대하는 문명인들의 올바른(!) 자세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문명인. 공동체를 이용해 편리를 추구하고 발전을 도모한다. 그러나 문명이 유지되기 위해선 반드시 누군가는 희생되어야 한다. 과거에는 그 희생양이 왕이었다. 가뭄이 들고, 전쟁에서 패하고, 문명을 효율적으로 이끄는데 실패하면 왕은 희생양이 되어 반란을 맞이하거나..

영화/리뷰 2020.09.25

영화 할로윈 2018, 이 형은 그냥 죽입니다

잠이 엄청 오는데 영화를 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억지로라도 보지 않으면, 집에 쌓여있는 블루레이와 넷플릭스, 웨이브의 영화, 드라마를 다 소화할 수가 없다. 예전처럼 작품을 보고 글을 쓰는 것만으로 돈을 벌 수 없다 보니 점점 영화 보는 빈도가 줄어들어서 블루레이들을 감당할 수가 없더라. 어차피 반쯤 의무감으로 봐도 결국 보면 재미있으니까 그냥 억지로 보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이번에 고른 작품은 . 깜짝 놀라게 하는 장면도 있으니까 잠도 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다. 효과는 없었다. 은 잠을 확 깰 정도로 놀라게 하는 장면은 없다. 어쩌면 1편인 의 분위기를 계승했다고 할 법도 한데, 어마어마한 괴력으로 말 한마디 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순수악' 유키카..가 아니라 마이클 마이어스의, 고..

영화 데스 위시, 놓쳐버린 모순의 힘

일라이 로스가 감독하고 조 카나한이 각본을 썼으며 브루스 윌리스가 주연을 맡은 는 분명히 크레딧에 흐르는 묵직한 이름들 만큼의 결과물은 아니다. 일라이 로스와 조 카나한의 공통된 특징이라고 한다면 치열한 스릴감일 텐데, 의 사건들은 치열함이 거의 보이지 않고, 주인공의 직업인 '의사'가 지닐 수 있는 현실적인 한계도 뛰어넘지 않는다. 무엇보다 아쉬운 점은 영화의 주제인 '모순'이 후반에 흐지부지 된다는 사실이다. 서로 총구를 겨눠 부상을 입은 경찰과 범죄자를 모두 치료할 수밖에 없는 모순된 태도의 의사는 이윽고 자신의 손을 사람을 살리는 것뿐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것에도 사용하게 된다. 이는 미국이 총을 사용하는 이유와 같다. 경찰력이 구석구석 닿을 수 없는 넓은 땅의 미국은 범죄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

영화 곡성 블루레이, 이봐 당신 왜 방관하고 있지?

길고 긴 기다림 끝에 나온 블루레이를 봤다. 나온 지 조금 됐는데도 이제야 감상한 건 나홍진 감독의 컨펌 과정에 의문이 워낙 많아서 뿔이 난 탓이다. 아시다시피 블루레이는 완성도를 위해서 출시일이 늦춰졌음에도(제작사가 판권을 잃기 직전에 출시되었다.) 다소 평범한 결과물이 되었다. 심지어 그 중요한 코멘터리에선 '너무 오래돼서 기억 안 난다'는 이야기가 빈번하게 나온다. 실망스러울 수밖에. 자, 이제 그런 외적인 실망스러움은 접어두고 영화 이야기를 해보자. 아래로 의 스포일러가 담겨 있다. 은 내용을 따라가기 그렇게 어렵지 않은 영화다. 그저 해석해볼 필요가 있는 부분, 그러니까 감독이 명확하게 답을 그려놓지 않은 부분이 있을 뿐이다. 누가 선이고 악인지 비교적 명확하게 정리한 뒤, '뭣이 중헌디?'를 ..

영화 레디 오어 낫, 사마라 위빙 고유의 폭발력

최근 '투쟁'에 최적화된 여배우가 대세의 급물살을 타고 떠올랐다. 사마라 위빙이다. 거대한 눈과 억세 보이는 하관으로 상대를 쏘아보며 얼어붙게 만드는 그녀는 선역이든 악역이든 간에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한다. 도 그런 그녀의 특징이 잘 살아있는 영화다. 영화는 '사냥' 컨셉을 오컬트와 부합해 사마라 위빙을 투쟁으로 몰고 간다. 핏빛에 얼룩진 그녀의 투쟁은 '결혼'이란 지옥(!)에 맞물려 그럴싸하게 흘러가는데, 결혼 생활을 하며 마주할 온갖 난관을 살인의 형태로 엮어놓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영화는 꽤나 격렬하게 비혼주의를 권장하는 꼴이 된다. 다만, 의 장르에 오컬트가 섞여 있다는 점이 마이너스 요소다. 사마라 위빙의 투쟁은 후반부로 갈수록 리얼리즘을 뒤집어쓰면서 고작 '버티기' 이상이 되지..

나쁜 녀석들 포에버, 끝 혹은 새로운 시작

끝일까, 새로운 시작일까. 는 흥미진진한 요소가 포진해있는 영화다. 혹시나 오해할까 봐 미리 말해두는데, 흥미진진하다고 했지 긍정적이라고 안 했다. 이래저래 할 이야기가 참 많이 떠오르는 영화란 얘기다. 는 꽤나 엉성하고 밋밋한 액션 영화다. 엉성하기론 전작들도 마찬가지라 말할 수 있겠지만, 는 과정을 듬성듬성 건너뛰는 마이클 베이의 연출 방식이 문제였을 뿐, 에피소드들의 얽힘에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는 에피소드들이 모조리 분리되어 따로 놀고, 치열해야 마땅한 수사 과정은 맥이 빠진다. 수사에 힘을 들여야 하는 타이밍에 AMMO라는 새로운 팀을 서술하느라 정신이 없다. 마이애미 한복판에 멕시코 카르텔이 헬리콥터를 타고 나타났음에도 아무도 그걸 쫓지 않는다는 괴상한 생략 방식엔 한탄을 했다. 두 편의..

나쁜 녀석들2, 아직 마이클 베이에게 질리지 않던 시절

를 보려다가 내용이 온전하게 기억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본지 그리 오래된 것 같지 않은데 대체 왜일까 싶어서 꺼내 들었다. 디비디 시절부터 수도 없이 했던 재탕을 또 한 것이다. 는 마이클 베이 특유의 나쁜 버릇이 나오기 시작한 영화다. 화장실 유머를 곁들여서 넣을 수 있는 모든 에피소드를 쑤셔 넣는 버릇. 이 버릇 덕분에 마이클 베이의 이후 작품들은 상당한 널뛰기가 진행되었다. 쑤셔 넣은 것들이 잘 맞아떨어지면 수작, 그렇지 않으면 졸작. 상당히 극단적이다. 는 잘 맞아떨어진 수작에 해당한다. 성공했으니까 버릇이 된 거라고 보면 적절할 것 같다. 그런 덕에 영화의 액션은 버디무비가 보여줄 수 있는 규모를 훌쩍 뛰어넘는다. 네 차례의 총격씬은 다른 영화였으면 하이라이트로 치부했을 수준인 데다 클라이..

영화/리뷰 2020.08.27

영화 안나, 모두가 안나를 사랑한다

약 1년 만에 를 감상. 이번 감상은 블루레이라서 조금 더 몰입해서 볼 수 있었다. 지난번에 쓴 단평에서도 언급한 바지만, 의 특징은 역시 낭만이다. 이는 , 에서도 느낀 건데, 크리에이터들에겐 그 살벌한 냉전마저도 이제 낭만의 일종이 된 모양이다. 당연하다. 당시 대중문화는 'Cold War'가 지닌 중의적 의미 그대로 차가운 시대였음에도 놀랍도록 강렬하고 우아했으며 낭만적이었다. 싸이코패스와 정신병자들의 살육전, 착취가 난무하고 '정상적인 사람'이 거의 없었다던 서부 개척 시대를 미국과 이탈리아가 어떻게 다뤘는지 되새겨보시라. 그런 시기를 겪고, 배운 크리에이터들이 냉전마저도 낭만적으로 새겨내는 것은 그리 이상하지 않다. 그래도 뤽 베송 감독은 그 시기를 직접 겪어낸 세대 답게 냉전의 한복판에 안나를..

혼돈의 도시, 영화 베를린

꽤 꼼꼼하게 기억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오랜만에 본 은 내 기억과 달랐다. 사람의 기억력이라는 게 그런 모양이다. 영화의 편린만을 기억하고, 그 편린조차 시간이 흐르면서 잊히는. 그런 주제에 영화를 다 기억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분명히 을 재미있게 봤고, 극장과 블루레이에 걸쳐 반복 감상을 거듭했음에도 오늘 보면서 '이런 내용이었나..'라고 중얼거렸다. 은 북한의 정권 교체 과정에 벌어진 정쟁이 (전 세계의 첩보 집단이 모조리 존재한다는) 베를린에서 카오스를 일으킨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류승완 감독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치열하게 대립한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는 베를린에 직접 가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베를린에서 류승완 감독이 느낀 혼란이 영화 전반에 걸쳐서 담겨있는 셈이다. 그런데 그는 영화의 ..

영화/리뷰 2020.08.19

영화 헌트, 다 잊어버리고 스트레스나 풉시다

근래 B영화와 공포영화 쪽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블룸하우스의 패기 넘치는 영화 . 특정 이유로 사람들을 모아놓고 사냥한다는 점에서 도 살짝 떠오를 것이고, 따라서 살벌하고 처절한 사투가 벌어질 거로 기대할 수 있지만, 는 그런 유형의 영화와 거리가 꽤 멀다. 영화의 설정은 일종의 맥거핀 비슷한 거로 생각하는 게 목적에 부합해보인다. 네임밸류가 있는 배우를 데려다가 페이크 주연을 맡긴 것부터 시작해서 초짜티가 팍팍 나는 관리자(!)들까지 무엇 하나 그런 처절함과 거리가 한참 멀다. 그렇다고 인터넷 악플이 일으킨 나비효과라거나 믿었던 진실에 배반당한 사람의 좌절 같은 부분을 끄집어내 비판하는 영화도 아니다. 영화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그저 엉성하게 PC에 함몰된 엘리트들과 프로파간다와 음모론에 낚여서 허둥..

늑대의 후예들, 프랑스판 19금 무협 호러

20년 전에 봤던 은 잔인하고 야한 고딕 호러였는데, 지금에 와서 보니까 그렇게 수위가 높지 않다. 20년 전의 난 생각보다 순진(?)했던 모양이다. 게다가 쓸데없이(?) 액션의 비중이 크다. 은 프랑스가 꽤 작정하고 만들어낸 영화다. 근세를 배경으로 하는 고딕 호러는 유럽풍과 헐리우드풍으로 갈리곤 했는데, 프랑스에서 만들어낸 영화임에도 헐리우드의 그것을 따라했다. 헐리우드 쫓기에 급급한 영국의 영화를 비아냥거렸던 시기가 있었을 만큼 자존심이 강했던 프랑스 영화계가 무릎을 굽히고 상업성을 추구한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나왔던 헐리우드의 고딕 호러와 비교해보면 꽤 흥미진진한 요소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딱 잘라 말해 이 잘만든 영화는 아니다. 이 영화에는 추리, 탐색과 같은 소재에 걸맞은 행동이 결여되..

정말 형편없는 바람의 검심: 전설의 최후편

말인데, 정말 형편없는 영화다. 훌륭했던 전편과 비교하는 탓이기도 하지만, 애초에 이 영화는 전편과 분리해서 볼 수 없는 영화이므로 잘라 말해 시리즈의 2, 3편이 통째로 몰락한 것과 같다. 의 결말은 각 인물들을 흩어놓는 거였다. 그럼 속편인 은 그 인물들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어떻게 움직여서 결론에 치닫느냐가 관건일 텐데, 이 영화의 등장인물 중 제대로 된 과정을 거쳐서 움직이는 인물은 히무라 켄신 단 한 사람이고, 나머지는 얼기설기 짜맞추기에 희생당해 허무하게 목적의 의미를 잃어버린다. 그나마 주인공 답게 자리를 굳건히 지키던 히무라 켄신도 우스꽝스러운 억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시시오 마코토는 양동 작전을 써가면서 출정을 감추고 도쿄만에 기습을 가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여기서 끝이..

영화/리뷰 2020.07.25

바람의 검심: 교토 대화재편 기대 이상의 준수함

은 준수한 결과물이다. 원작에서 필요한 것만 정확하게 넣었고, 악조건 속에서 내러티브도 꽤 집중해서 실었다. 중간에 끊기는 영화라곤해도 클라이막스는 존재해야 했기에 억지로 이어붙인 면이 없진 않지만, 이 영화 자체로만 보면 극적인 허용으로 이해해줄 수 있다. (물론, 3편인 을 보고 나면 '대체 뭘 위한 클라이막스였나'란 생각이 들게 될 것이다.) 감정과잉으로 일관된 코믹스 원작 일본영화의 연기 스타일이나,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 할까' 싶은 코스프레 등 여러 단점을 잊게 해줄 의 또다른 장점은 VFX 퀄리티다. 일단 세트장부터 상당한 공을 들였고, CG 캐릭터보다 엑스트라를 더 고용함으로써 어색함을 줄였다. 여타 코믹스 원작의 일본영화는 스케일이 커질 수록 실사영화의 VFX라기보다 3D 애니메이션으로 ..

영화/리뷰 2020.07.20

영화 루시, 차원의 끝을 보고자 한 뤽 베송

영화 는 차원에 대한 이야기다. '새로운 차원을 만들어냈다'와 같은 기괴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학자들이 연구하고 또 연구하는 '시간'과 '공간'에 대해 뤽 베송 나름대로의 이미지를 펼쳐내는 영화란 의미다. 우리의 존재가 시간에서 비롯되었고, 시간은 연속적이지 않다는 개념. 즉, 가 펼쳐내는 이야기는 철학, 물리학, 수학 측면에서 수도 없이 연구된 만큼, 닳고 닳은 소재다. 과거와 미래는 이미 정해져있다. 시공간을 초월한 상위 차원에선 모든 게 고정된 것처럼 보이게 되며,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당연히 이에 대해 부정과 긍정을 반복하는 연구가 이어졌고, '수학적으로 완벽한 사이비 종교' 소리마저 듣는 초끈이론은 시공간 개념에 대해 궁금해하는 감독들의 뒤통수를 강하게 후려갈겼다. 그래서 뤽 베송이 를 만든..

영화/리뷰 2020.07.15

영화 아키라, 여전히 차원이 다른 클라스의 재패니메이션

시큰둥할 거라 믿었다. 의 파격적인 스토리와 황당할 정도로 매혹적이고 장대한 이미지는 분명히 경이로운 것이었으나, 찬란한 후배들이 경이를 평범으로 만드는데 일조했으리라 여겼다. 이는 '카피약'과 마찬가지로 오리지널을 익숙한 것으로 바꿔놓게 마련이다. 그러나 내 생각이 틀렸던 모양이다. 아니면 그 정도로 의 차원이 달랐거나. 는 진화론의 극단적인 사례다. 많은 사람이 '진화'를 '변화'로 여기곤 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진화란 생존과 번식이며, 환경에 적응한 게 아니라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DNA가 살아남은 결과물이다. 는 '우주'의 팽창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시점, 지구인이 가질 수 있는 진화의 끝자락을 이야기하고,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그 끝자락에서야 지닐 수 있는 능력을 일찍 가지게 된 사람을 다..

역시 경이로운 폭력의 미학, 영화 도화선

매번 을 볼 때마다 언급했던 거지만, 참 야만적으로 잘 만든 영화다. 필요한 것들만 딱 갖춰놓고 무자비한 폭력을 쏟아놓는다. 생각해보면 맨 처음 을 리뷰했던 글의 제목을 참 잘 지었던 것 같다. '경이로운 폭력의 예술' 꼭 필요한 것들을 제외하면 전부 가지치기. 예를 들어 베트남 삼인방이 삼합회 보스들을 처리할 때 응당 있어야 하는 과정이 모조리 생략되고 삼합회 보스들은 얼빵하게도 혼자서 느긋하게 다니다가 하나씩 제거된다. 마형사가 현장에 복귀하는 과정 역시 깔끔하게 생략되었고, 용의자를 죽인 마형사를 방치할 수밖에 없는 무언가 역시 생략되었다. 아예 배제한 게 아니라 '아마도'라는 첨언이 필요할 단서 정도는 남겨두어서 극이 지나치게 앙상하게 되는 걸 막긴 했지만, 의 이러한 전개 방식은 분명히 과감한 ..

영화/리뷰 2020.06.27

18년 동안 무기를 전부 뺏긴 이퀼리브리엄

대체 얼마 만에 을 본 건지 모르겠다. 디비디 시절에 보고 안 봤나? 그럼 블루레이는 그저 내 블루레이랙에서 먼지를 쌓아두고 있었다는 얘긴데, 그건 꽤나 끔찍한 이야기라서 믿고 싶지 않다. 보긴 봤겠지. 기억이 안 나는 것일 뿐. 그러니까 아득한 기억의 너머에서 을 끄집어내보면 '스타일리쉬하다'는 감상이 제일 먼저 끌려나온다. 그런데 오늘 감상한 은 분명히 스타일리쉬함과는 거리가 아주 멀었다. 저예산의 한계를 어떻게든 깨려고 조명과 편집의 트릭을 잘 이용한 게 저화질의 그 시기엔 먹혔던 모양이다. 지금의 기준에서 보자면 의 스타일은 '쌈마이'에 가깝다. 특히 의 테마곡 활용 방식은 이제 일본의 3D OVA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다. (반대로 말하면 일본 OVA 업계가 의 2002년부터 지금까지 17..

영화를 뛰어넘은 무술 안무, 영화 살파랑

어차피 이 그리 만듦새가 좋지 않다는 건 주지의 사실. 역설의 힘을 끌어가는 능력이 부족한 영화다. 어쩌면 로 잠깐 불어닥쳤던 중국 느와르 열풍에 편승하려다가 기획이 늦춰지는 바람에 견자단을 투입해서 액션 중심으로 재편한 영화란 주장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은 얼렁뚱땅 넘어가는 부분이 많고, 견자단의 액션에 촛점이 맞춰져있다. 은 영화 자체가 아닌, 견자단과 오경의 골목 대결씬이 '마스터피스'로 인정받은 덕에 기형적인 호평을 얻는 영화다. 그러한 이유로 을 굳이 블루레이로 볼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디비디로 수십 번을 본 영화인 데다 견자단과 오경의 대결 장면은 유튜브를 이용해 HD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내 판단이 틀렸다. 블루레이의 화질은 매우 안 좋은 편이지만, 디비디 정도야 아득하게 뛰어넘..

요원해보이는 중동의 평화, 영화 킹덤 리뷰

백만년 만에 블루레이를 감상했다. 매혹적인 영화다. 사우디 아라비아로 건너가는 과정이 억지스럽지만, 본격적으로 사우디 경찰과 함께 수사를 시작하면 그 억지를 잊게 될 것이다. 영화의 촬영도 흥미로운데, 마이클 만 영화 특유의 질감에 마이클 베이 영화 특유의 워킹을 더한 방식으로 제작 당시만 해도 굉장히 신선했었다. 본래 과 은 마이클 만의 프로젝트였다가 애제자(?)인 피터 버그에게 넘어간 경우다. 마이클 만 감독은 두 영화의 제작자로 나서서 피터 버그를 지원해줬는데, 덕분에 두 영화의 총격씬은 초보 감독에게 어울리지 않다 싶을 만큼 훌륭하다. 특히 의 총격씬은 중동을 배경으로 하는 밀리터리 영화를 통틀어도 손에 꼽힐 만큼 뛰어나므로 시가전을 좋아함에도 아직 을 보지 않았다면, 일단 만세를 먼저 외치고 영..

영화/리뷰 2020.06.02

실패한 대규모 실험, 영화 제미니 맨

역시 흥미진진하게 실패하는 영화다. 거장 감독의 옹고집이 느껴진다. 은 120fps가 얼마나 멋진지 세상에 알리고 싶은 이안 감독의 자학적 노력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세상은 그의 제안을 거부했다. 이안 감독이 으로 얼마나 120fps 촬영을 알리고 싶어했는지는 이야기만 봐도 확인할 수 있다. 가 모호한 감정에 집중되어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영화였다면, 은 아주 쉬운 전개, 아주 쉬운 액션, 아주 익숙한 설정을 취해 작정하고 120fps에 헌신한다. 이번엔 아주 쉽게 만들었으니까 120fps를 속편하게 느껴보라는 것이다. 은 쉬운 이야기를 깔아놓고 120fps에 딱 알맞은 액션으로 수놓았다. 120fps에 맞춰진 롱테이크 촬영 탓에 둔중한 몸놀림을 고스란히 드러내야 했던 배우들은 꽤나 억울하지 않을까한다...

누가 뭐라고 해도 멕시코 배경, 넷플릭스 익스트랙션

넷플릭스가 크리스 헴스워스를 데려다 야심차게 만든 영화 . 마이클 베이 감독, 라이언 레이놀즈의 와 함께 상반기 넷플릭스의 주력 상품이었다고 한다. 영화 자체는 대단히 심플한 편이다. 무언가를 잃고 상실삼에 사로잡혀 자살미션을 거듭하던 용병이 '마약왕의 아들'이란 모호한 포지션에 있는 인물을 구출한다는 익숙한 이야기를 그렸다. 분위기는 이 익숙한 설정에 걸맞도록 묵직하게 꾸며놨으나 정작 그 우여곡절과 아이러닉함에 깊게 파고 들지 않아서 가벼운 오락영화 이상이 되긴 어려울 듯하다. 결국, 에 기대할 수 있는 건 얼마나 멋진 액션을 담고 있느냐가 될 터.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락적 요소는 합격이다. 미어터지는 방글라데시의 시가지에서 좁고 좁은 공간을 헤집고 다니며 벌이는 격투, 총격씬은 상당히 놀랍다. 특히..

영화/리뷰 2020.05.25

미국의 상징들이 산장에 모여 티키타카, 헤이트풀8

쿠엔틴 타란티노의 장기라면 화려한 편집조차 없이 대사 하나로만 극에 긴장감을 불러온다는 점이다. 은 그런 쿠엔틴 타란티노의 장기가 극대화된 경우로, 어쩌면 자신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테스트해본 영화일 수도 있단 생각이 든다. 그간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에는 오로지 대사만으로 극을 살벌하게 만드는 장면이 등장하곤 했는데, 의 펍씬이나 의 연회씬이 대표적이다. 마이클 패스벤더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카리스마를 뽐냈던 두 장면은 따로 떼어놓고 단편영화로 만들어도 될 만큼 기승전결이 완벽하기도 하다. 은 2시간 50분에 육박하는 플레잉타임 전체를 언급한 두 장면과 같은 방식으로 꾸며놓았다. 은 오하이오의 거친 눈폭풍 탓으로 산장(정확히는 산중턱의 잡화점)에 갇힌 이들이 오로지 대화만으로 긴장감을 유지하며 ..

드라큘라: 전설의 시작, 이거로 충분치 않았던 걸까?

은 참 급하다. 더 차분하게 감정을 이끌고 갈 수 있었던 것들, 더 디테일하게 구성할 수 있었던 에피소드 등을 무작정 축약해서 날려버렸다. 감정선은 이를 쫓아가지 못하고 기어이 튕겨져 나간다. 오락적 쾌감만 따진다면 은 합격점이다. 영화는 실제 역사 속 드라큘라의 행적을 반영해서 몇 차례의 전투를 그려냈는데, 그 중 드라큘라 혼자서 1000명을 상대하는 장면이나 박쥐 군대로 적군을 내려치는 장면 등 기가 막히게 멋진 순간에 여럿 보인다. 만약, 영화가 차분하게 감정을 쫓아갈 수 있도록 도왔다면 이 멋진 장면은 더욱 강렬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이는 개봉 당시 여러 평론가가 일제히 지목한 것으로, '급하지만 않았더라면 대단히 훌륭한 작품이 될 수 있었다'라며 안타까움을 내포한 if 놀음이 이어졌다. 은 본래..

격투 액션을 원한다면, 영화 히트맨: 에이전트47

동명의 유명 게임을 원작 삼은 은 티모시 올리펀트 버전의 보다 오락적인 완성도, 플롯이 뛰어나다. 전작이 쓸데없는 장면에 시간을 낭비하는 바람에 정작 히트맨 본연의 임무에 소홀했다면, 은 적어도 쓸데없는 장면은 없다. 특히 격투씬의 디자인이 상당히 좋은데, 스턴트 코디네이터는 예산 안에서 자신이 해낼 수 있는 최대치를 해냈다고 생각한다. 다소 산만한 구도와 편집 속에서도 묵묵하게 빛을 확실하게 발하고 있다. 티모시 올리펀트의 이 눅눅하고 핏물 가득한 100% R등급 영화였다면, 은 다소 가벼운 대신 화려한 액션을 추구한다. 그래서 가볍게 즐길 영화를 찾는 사람에게 은 합격점일 가능성이 크다. 다만, 이 영화의 플롯을 칭찬할 수는 없다. 티모시 올리펀트의 보단 낫다는 거지, 잘 만들어졌다는 얘기가 아니다...

영화/리뷰 2020.05.04

영상에 수록된 색색한 모호함, 영화 달콤한 인생

지금은 걸작 느와르로 평가받는 이지만, 개봉 당시 혹은 직후엔 그렇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 했다.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주인공을 나락으로 떨어트리는 '그 순간'이 영상 내러티브로 담겼기 때문이다. 묘하게도 대중은 '영상 내러티브'를 후대에 가서야 고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들이 특히 그랬고, 현역 중에는 마이클 만 감독의 영화들이 그렇다. 마이클 만의 는 도입부부터 통째로 영상 내러티브를 활용하면서 끔찍할 정도로 안 좋은 평가를 얻은 바 있다. 토니 길로이 감독이나 잭 스나이더 감독과 같은 이들도 영상 내러티브로 매번 욕을 얻어먹는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라는 2010년대의 마스터피스를 완성시키고도 그가 지루한 영화를 만들어냈다는 비판을 받았다. 에서 '왜 그랬나?'라는 질..

영화/리뷰 2020.05.01

성공적인 짜깁기, 넷플릭스 익스팅션: 종의 구원자

를 두고 '여러 SF 영화들을 괜찮게 짜깁기한 결과물' 정도로 언급하려고 했는데, 조금 생각해보니 자아 반전을 핵심으로 삼은 SF에서 새로운 컨셉을 파생해내기 어려운 시대다. 외계인, AI 등 인간을 상회하는 지능의 존재에 대한 사회적 반응이 생겨난 시점부터 헐리우드는 장대한 시간 동안 창의력을 한계를 드러내게 할 만큼 많은 작품을 쏟아냈다. 그러므로 를 '짜깁기'라고 평가한다면 억울할 듯하다. 게다가 꼭 짜깁기라고 욕하더라도 이 영화는 꽤 괜찮은 모조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으며, 넷플릭스에서 괜찮은 SF 스릴러물을 찾는 이의 대부분을 만족하게 할 작품이다. 저예산으로 인한 규모나 반전으로 세계관을 확장하는 실수(?)를 저지르긴 했지만, 후속작으로 잘 연결만 된다면 열심히 기다려볼 생각이 있다. 한정된 공..

영화/리뷰 2020.04.29

영화 <저지 드레드> 리미트 없는 R등급 액션

의 원작 만화를 안 본 입장에선 영화를 볼 때마다 을 떠올리게 된다. 세계관과 도입부를 제외하면 와 은 플롯뿐 아니라 공간까지도 닮아 있고, 그래서 비교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개인적으론 이 훨씬 나은 영화라 생각한다. 를 처음 보고 단평을 남겼을 때부터 지금까지, 이 더 낫다는 이야기를 하면 어김없이 의 팬이 들어와서 '그다지 닮지 않았다' 혹은 '촬영은 2012년에 했어도 프리프로덕션 기간이 훨씬 길었기 때문에 이 표절한 것이다'와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곤 한다. 그러나 디테일한 우여곡절을 알 도리가 없는 일반인들끼리 뇌피셜로 어느 게 더 먼저인지 따지는 건 우스운 일. 결과론일 지라도 어쨌든 어느 영화가 더 낫나야 비중을 둬야 하는 일 아니겠는가. 또한, 내가 을 더 재미있게 봤다고 해서 를 재..

영화/리뷰 2020.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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