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가 크리스 헴스워스를 데려다 야심차게 만든 영화 <익스트랙션>. 마이클 베이 감독, 라이언 레이놀즈의 <6언더그라운드>와 함께 상반기 넷플릭스의 주력 상품이었다고 한다.
영화 자체는 대단히 심플한 편이다. 무언가를 잃고 상실삼에 사로잡혀 자살미션을 거듭하던 용병이 '마약왕의 아들'이란 모호한 포지션에 있는 인물을 구출한다는 익숙한 이야기를 그렸다. 분위기는 이 익숙한 설정에 걸맞도록 묵직하게 꾸며놨으나 정작 그 우여곡절과 아이러닉함에 깊게 파고 들지 않아서 가벼운 오락영화 이상이 되긴 어려울 듯하다.
결국, <익스트랙션>에 기대할 수 있는 건 얼마나 멋진 액션을 담고 있느냐가 될 터.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락적 요소는 합격이다. 미어터지는 방글라데시의 시가지에서 좁고 좁은 공간을 헤집고 다니며 벌이는 격투, 총격씬은 상당히 놀랍다. 특히 중반부 체이싱은 페이크 롱테이크로 연출한 덕에 현장감과 무게감이 상당하다. 사소한 아쉬움이라면 카체이싱의 속도감이 부족하다는 점과 한심한 방글라데시 군대의 사격 솜씨 정도려나.
개인적으로 <익스트랙션>이 인상 깊었던 것은 방글라데시 다카에 대한 묘사법이다. 프로듀서, 감독, 각본가 셋 중의 한 사람은 분명히 마약을 다루는 조직에게 엄청난 분노를 느끼고 있는 게 분명한데, 영화 내내 마약 조직원과 그들을 따르는 정부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존재하질 않는다. <익스트랙션>은 <시카리오>나 <나르코스> 등에 나오는 갈등은 사치라고 말한다. 마약 조직과 타락한 정부군은 모조리 죽여야 하는 대상이며 그들을 죽이는 것에 갈등이 있을 수 없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클라이막스의 마무리는 특히 상징적이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마약 조직에 자비는 필요없다'를 대놓고 말한다.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이토록 심각한 분노를 체험해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에 깜짝 놀랐다.
방글라데시는 마약으로 고생하긴 했지만, <익스트랙션>처럼 주정부군을 마음껏 거느리고 외국인까지 납치해서 협박하는 압도적 권력의 마약왕은 없다. 오히려 방글라데시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뒤 마약 딜러들을 무차별하게 사살하는 바람에 UN이 "당신들 미쳤어?"라고 말할 정도로, 군대와 특수부대를 거느린 대조직이 탄생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즉, <익스트랙션>의 인도와 방글라데시는 실제 지역이 아니라 북중미와 남미의 카르텔을 동남아시아로 옮겨온 것으로 봐야 한다. 정부 대신 코로나19 방역까지 하고 있는 멕시코와 콜롬비아의 카르텔이라면 딱 알맞은 묘사다. 멕시코의 카르텔이 자신들을 다루는 영화의 로케이션 매니저를 사살하는 등 반발이 거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시아로 배경을 옮겨온 게 아닐까.
즉, 이 영화에 가득 담긴 분노는 북중미와 남미의 카르텔을 향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거의 가상의 공간처럼 그려지는 '다카'는 확실하게 멕시코의 '후아레스'다. <익스트랙션>을 더욱 재미있게 보는 방법은 방글라데시를 멕시코, 다카를 후에레스라고 치환해서 보는 것. 한 번 시도해보시길 바란다.
한편, <익스트랙션>은 HDR10의 퀄리티에도 주목할 만하다. 옐로우 톤이 상당히 강조되긴 하지만, 몇몇 장면에선 '이거 돌비비전 아니야?'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퍼포먼스로 눈을 호강하게 한다. 또한, 이 영화엔 골쉬프테 파라하니도 나온다. <바디 오브 라이즈>에서 처음 봤던 이란 배우인데, 이란의 이슬람 여성차별 전통이 틀렸다고 당당히 말했다가 '이란 입국 금지' 처분을 받은 그 배우다. 그녀는 이에 대해 '놀고 앉아 있네'를 외친 뒤, 프랑스에 거주하며 각종 시상식에서 주목하는 세계적 명배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