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블루레이 본편 정보

실패한 대규모 실험, 영화 제미니 맨

즈라더 2020. 5. 29. 12:00

 역시 흥미진진하게 실패하는 영화다. 거장 감독의 옹고집이 느껴진다. <제미니 맨>은 120fps가 얼마나 멋진지 세상에 알리고 싶은 이안 감독의 자학적 노력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세상은 그의 제안을 거부했다.


 이안 감독이 <제미니 맨>으로 얼마나 120fps 촬영을 알리고 싶어했는지는 이야기만 봐도 확인할 수 있다.  <빌리 린의 롱 하프타임 위크>가 모호한 감정에 집중되어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영화였다면, <제미니 맨>은 아주 쉬운 전개, 아주 쉬운 액션, 아주 익숙한 설정을 취해 작정하고 120fps에 헌신한다. 이번엔 아주 쉽게 만들었으니까 120fps를 속편하게 느껴보라는 것이다.


 <제미니 맨>은 쉬운 이야기를 깔아놓고 120fps에 딱 알맞은 액션으로 수놓았다. 120fps에 맞춰진 롱테이크 촬영 탓에 둔중한 몸놀림을 고스란히 드러내야 했던 배우들은 꽤나 억울하지 않을까한다. 이안 감독처럼 액션 연출을 잘하는 감독이 또 없을 텐데, 그런 자신의 장기조차 모조리 포기하고서 120fps를 위한 액션으로 도배해놓은 것이다. 장대한 필모그래피의 절반이 액션영화인 윌 스미스조차 같은 액션을 두 번씩 촬영하고 합성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어색한 몸놀림 만큼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디지털 더블을 시도한 선배 영화들에서 볼 수 없었던 이 어색함은 분명히 120fps의 탓이다.


 결국, 이안 감독이 작품성을 상당부분 포기해가면서 시도한 120fps는 완전히 실패했다. 관객은 120fps이 되면 사소한 VFX조차 어색하다는 걸 깨달았고, 격투 액션에선 박력감을 잃는다는 것도 깨달았다. 120fps가 유일하게 제 역할을 한 것은 오토바이 체이싱 장면을 비롯한 '와이드샷'이 빈번하게 잡힌 시퀀스뿐이었다. 즉, 높은 프레임의 영상은 근접해서 찍은 시퀀스에서 심각한 문제를 드러낸다는 의미다. 이로써 많은 사람이 24fps의 매력을 깨닫게 되었으니 <제미니 맨>의 120fps는 역설적 성공이다. 이안 감독에겐 끔찍한 현실처럼 느껴지겠지만.


 <제미니 맨>은 즐길 만한 영화다. 영화의 사이즈나 캐스팅에 대한 기대를 접어두자. 가볍게 즐길 킬링타임 액션영화 찾는다고 생각하면 <제미니 맨> 만한 영화가 별로 없다. 이안 감독이란 거물이 1억 4천만 달러를 들여서 만들어낸 블록버스터라는 정보를 깨끗하게 지우는 사전작업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어쨌든 그런 결과물인 것을 어쩌겠나.





 이렇게 영상에 엄청 공을 들인 <제미니 맨>이다 보니 블루레이 화질도 아주 좋다. 잔뜩 공을 들여 촬영하고 4K로 피니쉬한 영상을 블루레이에 담았는데 화질이 안 좋을 수가 있나.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의 헤어스타일을 유지하기 위해 덕지덕지 발라놓은 왁스가 눈에 들어올 정도로 좋다. 단, 블루레이는 120fps를 그대로 담지 못 하고 24fps로 다운해서 담았다. 오리지널인 120fps 느낌을 조금이라도 맛보고자 한다면 4K 블루레이로 가야 하는데, 4K 블루레이 역시 120fps가 아닌 60fps다. 여기서 또 하나 120fps의 문제가 나타난다. 120fps을 볼 방법이 많지 않다는 것. 이안 감독이 아무리 뛰어나도 기술에 접근할 제반까지 마련해낼 순 없다. 결국, 어떤 식으로든 한계에 봉착하고야 마는 기술인 셈이다.


 본래 블루레이 스크린샷 포스팅이 될 예정이었지만, DVDfab이 자꾸 오류를 뿜어내서 캡쳐할 수 없었다. 슬슬 이짓도 그만둬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