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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제임스 카메론도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

몰루이지 2020. 6. 16. 06:00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알리타: 배틀 엔젤>에 이어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의 각본과 제작을 담당했는데,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의 경우엔 단순히 각본과 제작만 담당한 게 아니라 편집에 엄청난 간섭을 했다고 스스로가 고백했다. 심지어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은 자신의 의견에 순순히 따라준 반면 팀 밀러 감독은 그렇지 않았다며 극과 극의 감독 스타일을 체험한 사실에 유쾌해하더라. 연출권과 편집권을 두고 제작자와 이를 악물고 싸웠던 자신의 과거를 까마득히 잊은 것일까? 


 그나마 다행인 건 팀 밀러 감독이 프리 프로덕션 단계와 각본 작업 과정에서 나온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이디어들을 칼 같이 잘라내어 연출권을 사수한 점이다. "내 터미네이터는 그렇지 하지 않습니다." 였던가. 이마저도 아니었다면 팀 밀러 감독은 이리저리 이용만 당하다 자기 영화를 세상에 내놓지도 못 하는 불운의 사내가 되었을 거라 본다. 즉, 편집권을 건드린 이상 제임스 카메론 역시 영화가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둔 것에 대한 책임이 있다.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는 전형적인 제임스 카메론의 시나리오다. 이야기의 발단이나 미지수로 남아있는 배경을 조금씩 풀어나가는 방식까지 전부 제임스 카메론 스타일. 인물에 더 몰입하도록 도울 드라마 요소가 상당히 잘려나간 듯하지만, 어쨌든 이 영화의 시나리오에서 제임스 카메론을 떠올리지 않는다면 그의 영화를 많이 보지 않은 사람일 것이다. 


 한편, 연출 특히 액션을 다루는 세련된 감각은 팀 밀러의 그것이다. 주로 제작자, VFX 디렉터로 일하다가 라이언 레이놀즈와 합심해서 영화판 데드풀을 창조해낸 그의 VFX 활용 방식은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에서도 빛을 발한다. 특히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수송기 시퀀스와 격투 장면의 묵직한 파괴력은 VFX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 하는 감독이었다면 아날로그로 찍지 않고서야 만들어낼 수 없는 클라스에 도달해있다. 


 따라서, 이 영화는 제임스 카메론의 이야기에 팀 밀러의 감각이 섞였다고 볼 수 있을 텐데, 그래서인지 꽤 재미있다. <알리타: 배틀 엔젤>과 흡사한 결과물. 다소 올드한 대사들이 유치하지만, 어쨌든 전반적인 스토리를 짜내는데 있어서 제임스 카메론의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럼 이 괜찮게 뽑힌 영화가 대체 왜 실패했을까. 제임스 카메론과 팀 밀러의 편집 다툼이 이도저도 아닌 결과물을 내놓았다면 모를까, 뭐가 어쨌든 두 사람은 인터뷰로 서로를 에둘러 디스할 만큼 의견이 갈라진 와중에도 '영화'로서 성립하는 결과물을 내놓았다. 이 나름 괜찮은 결과물은 그 만큼의 성적을 거둬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는 손익분기 근처에도 가지 못 하는 실패를 거뒀다.




 개인적으론 <터미네이터> 프랜차이즈에 대한 피로감을 이야기하고 싶다. 그간 나왔던 시리즈를 멀티버스로 취급하고 이어갔다면 차라리 나을 텐데, 타임 패러독스를 무시한 시간여행 컨셉을 반복해대니 어떻게 대중의 흥미를 돋울 수 있겠는가. 놀랄 준비를 하자. <터미네이터2>의 영광이 내년에 무려 30년을 맞이한다고 한다. 지금 젊은 세대에게 <터미네이터2>는 그저 고전 영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 낡은 프랜차이즈를 시간여행에 함몰시켜 자가복제를 거듭해놓고 이제와서 <터미네이터2> 이후에 나온 시리즈 전체를 없는 것 취급한다고? 


 대중을 얕잡아보는 제임스 카메론의 아집이다. 제임스 카메론이 위대한 감독이 될 수 있었던 건 신선함 때문이었다. 그는 언제나 새로운 걸 보여주기 위해 영화를 만들었던 사람이다. 그러나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는 <터미네이터>와 <터미네이터2>를 믹스한 결과물이라 신선함관 거리가 아주 멀다. 그러니까 새롭게 펼쳐낼 '미래'가 아니라 과거의 '반복'이 되어버린 셈이다. 이미 계속되는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자가복제에 지쳐버린 팬들, 어쩌면 대중은 "자! 지금까지 나온 건 다 잊어버리고 <터미네이터2>부터 다시 시작해봅시다!"라고 말하는 순간 절망했을 것이다. 팀 밀러 감독의 놀라운 액션 연출 감각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가 받을 평가는 '제작자와 감독의 반목이 만들어낸 불협화음'과 '신선함이 없는 설정'이었을 터. 아, 후자는 이미 듣고 있던가?



 이쯤되니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감각에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알리타: 배틀 엔젤> 때도 영화를 더 길게 끌어가고 싶어한 흔적이 역력해서 '이게 정말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영화가 맞나?' 싶었는데,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는 대놓고 후배들을 자신의 고용 감독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걸 언급했다. 즉, 두 영화의 어떠한 부분에 있어선 제임스 카메론의 영향이 그대로 적용되었을 것이다. 이럴 바엔 그냥 본인이 직접 감독을 하실 것이지. 데이비드 핀처의 <마인드 헌터>처럼[각주:1] 엄청난 퀄리티로 결과물을 냈다면 또 모를까, 그것도 아니니 의심이 안 갈 수가 있나.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는 캐스팅 면에서도 한숨을 지을 수밖에 없다. 오리지널 2인방과 맥켄지 데이비스를 제외한 캐스팅은 배우의 능력과 별개로 역할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이건 또 누구의 실수였으려나.


 이하 스크린샷은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한국판 블루레이 원본 사이즈 캡쳐. 누르면 커진다. 화질이야 말할 것도 없이 좋다.



  1. 사실상 고용 감독을 내세우고 본인이 전부 연출한 작품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