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져스: 엔드게임>을 보고 나면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을 재평가하게 될 거라는 얘기를 듣고 다시 봤다(이젠 몇번째 감상인지 세는 걸 포기한다). 딱히 재평가를 하진 않았다. 난 원래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을 좋아했으니까.
조스 웨던은 구세주다. <아이언맨2>가 혹평 세례에 시달렸고, <퍼스트 어벤져>와 <토르: 천둥의 신>이 미묘한 결과를 남긴 상태에서 다급하게 제작된 <어벤져스>를 히어로 팀업 무비의 '바이블'로 탄생시킨 게 조스 웨던이다. <어벤져스>가 개봉하기 전에 공개된 스틸 사진을 비롯한 각종 정보는 '망작'이란 과녁에 정확하게 꽂힐 듯했기에 더욱 놀라운 결과물이다. 토르,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가 싸우는 스틸 사진은 '유치하다', '신기하다'는 반응으로 갈라져 싸움을 거듭했을 지경이고, 재촬영 소식이 들렸을 땐 '역시 망하는구나'란 반응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그래서 <어벤져스>는 기적, 조스 웨던은 구세주라 봐야 옳다. MCU의 아버지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존 파브로라면 어벤져스의 아버지는 명백히 조스 웨던이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엔 그런 '아버지'의 애정이 듬뿍 담겨 있다.
먼저 루소 형제가 끝내 범접할 수 없었던 히어로들의 협동 액션이 눈에 들어온다. 이건 루소 형제가 못 한 게 아니라 조스 웨던이 잘 한 거다. 히어로 개인의 능력과 특징을 멋지게 그려내는 건 루소 형제가 더 뛰어나지만, 그 히어로들의 다채로운 협동 공격 연출은 조스 웨던이 더 뛰어나다.
'은퇴'를 꿈꾸던 토니 스타크의 캐릭터를 확고하게 고정시킨 것도 조스 웨던이다. 이를 밝히는 대사부터가 일품인데, 헬렌 조가 "인공 피부와 나노 테크가 발전하면 당신의 수트는 고철이 될 거에요."라고 하자, "그거 정말 내가 바라던 바인데?"라고 받아친다. 개그씬에 진심을 녹여내는 조스 웨던 특유의 연출이 빛을 발한 순간이다. 또한, 소코비아에서 염산병에 맞아 녹아 내린 아이언맨 군단의 마스크를 첫 번째 울트론으로 탄생시킨 것부터, '추락'에서 비롯되는 멸망의 이미지까지, 알면 알수록 토니 스타크에 대한 흥미로운 메타보가 한가득하다.
평화를 지키는 팀의 이름이 '어벤져'라는 아이러니를 꼬집은 울트론의 대사도 뼈를 때린다. "평화와 침묵을 헛갈리는 등신들아." 더욱 발전한 캡틴 아메리카의 올곧은 정치, 정세 감각도 고스란히 담겼다. "시작하지도 않은 전쟁을 이기려하면 언제나 죄 없는 사람이 다쳐." 하나 같이 명대사들이다.
이렇게 히어로 팀업 무비의 방향을 제시한 조스 웨던은 DC로 가서 <저스티스 리그>를 대차게 맡아 말아먹었다. 처음 봤을 땐 조스 웨던이 나름대로 가볍게 잘 다듬지 않았나 싶기도 했는데, 조스 웨던이 각본을 다시 쓰고 재촬영하기 전, 그러니까 잭 스나이더 버전의 <저스티스 리그> 정보를 듣고 나니까 영화를 완전히 뒤바꾼 꼴이라 많이 놀랐다. 잭 스나이더가 3시간을 예정하고 만든 영화를 2시간으로 줄여놓고 그마저도 2500만 달러를 투자해 재촬영한 결과물이니 조스 웨던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순 없다. <저스티스 리그>를 볼 때마다 생각한다. 이럴 거면 그냥 마블에 남아 있지 그랬느냐고.
난 여전히 조스 웨던의 마블 컴백을 바란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 대한 혹평과 <저스티스 리그>로 인한 이미지 추락, <배트걸> 하차 등 이래저래 마블 측에서 꺼릴 수밖에 없겠지만, 아이작 펄머터라는 메인빌런 아래에서 고군분투하며 MCU를 끌어올린 1등 공신이지 않던가. 페도필리아 인증을 해버린 제임스 건도 컴백했으니 조스 웨던이 못 할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