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걸그룹/아이즈원

그렇게, 서글프게 아이즈원 해체와 리런칭 실패를 지켜보다가

즈라더 2021. 9. 16. 09:30

안녕, 아이즈원

 

 가을이 찾아왔다. 우울해진다. 그런데 아이즈원도 없다. 없어졌다.

 

 아이즈원은 덕질은 나름 아이돌 덕질 경력이 좀 되는 35살 아재인 내게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스펙터클한 덕질이었다. 지금 되새겨보면 콧웃음이 나온다.

 

아이즈원의 마지막 앨범 파노라마, 정말 걸작이었다

 

 아이즈원 덕질의 시련은 '시작'부터였다. 일단 아키모토 야스시라는 돼지(위즈원 중엔 아키모토 야스시를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아서 말해두는데, 이 사람은 정말 인간쓰레기다. 사람이 해선 안 되는 짓을 해놓고 '내겐 권한이 없다', '내가 주도한 게 아니라 담당자의 실수다'라는 식으로 도망친다. 일본 사회의 병폐가 아키모토 야스시에 집합해있다.)가 과거에 프로듀싱한 무대 하나가 걸림돌이 되어 미야와키 사쿠라는 우익으로 내몰렸다.

 

 물론, 미야와키 사쿠라는 우익이 아니다. 그녀가 어린 시절 인터뷰에서 요시다 쇼인을 언급한 것도 그의 사상보다는, 일본 산업화의 기반이 되는 거물이었기 때문으로 봐야 한다. 어떤 위인이든 명과 암은 있는 법이고, 어느 위인을 언급한다고 해서 그 위인의 명암을 전부 다 존경하게 되는 건 아니다. 요시다 쇼인은 사상가로서 일본의 관습을 없애고 적극적인 산업화에 들어서도록 가르쳐 일본 변혁의 시작점이 된 인물이란 걸 잊으면 안 된다. 그가 한 왈왈 소리까지 포함해 존경한다는 의미라면서 억지를 부리진 말자. 다시 말하지만 그 어떤 인물이든 간에 과오는 존재한다.

 

 그런 반면, 미야와키 사쿠라는 거의 명백하게 자신이 좌익임을 밝힌 바가 있다. '그렇다면 평화 헌법 조항을 개정하는 걸 막아야겠군요.'라는 코멘트는 미야와키 사쿠라가 넷우익에게 찍혀서 공격받는 이유가 되었다. 일본 우익의 최종 목표는 하나. 우리의 소원이 통일인 것마냥 저들은 헌법 개정으로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가 되길 간절하게 바라고 있고, 이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 미야와키 사쿠라를 매국노 취급을 한다. '한국계라던데..', '스파이 아닙니까? 진지하게 한국으로 돌아가 주시면 좋겠습니다만' 등등 거리낌 없는 공격을 받았다. 따라서 그녀를 우익으로 본다면 사전 관계와 이해관계, 일본 역사를 모조리 무시한 미련한 태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손쉽게 선동당하고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아도 반성의 태도를 보이지 않은 일부 사이트에선 '미야와키 사쿠라는 우익'이라는 도장을 찍었다. 지금도 그 도장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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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듀스 조작 사건의 파장은 상상 이상으로 거셌다. 설마가 설마에, 최악으로. <프로듀스 X>로 시작된 사건은 <프로듀스 48>, <프로듀스 101 시즌2>, <프로듀스 101>으로 이어졌고, 모든 시즌에 조작이 있었다는 충격적 귀결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재결합해서 머리 염색까지 마친 아이오아이는 다시 흩어졌다(이에 한국 연예계에 염증을 느낀 주결경이 플레디스와 연락을 끊고 중국으로 떠났다.). 엑스원과 아이즈원은 활동 중단, 작년엔 케이콘으로 일부 멤버가 뭉쳐서 무대를 가지려던 워너원의 플랜도 무산되었다. 대중은 당연하다는 듯이 제작진보다 멤버들에게 더 칼날을 들이댔다. 

 

 칼날이라는 말이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얘기를 할 수도 있지만, 절대 심한 게 아니다. 당시부터 계속해서 악플 PDF를 따왔는데, 더쿠, 여성시대, 여자 아이돌 갤러리, 국내야구 갤러리, 여자 연예인 갤러리, 엠엘비 파크 등등 이곳에서 내가 딴 PDF만 만 개를 넘었었으니까. 심한 악플만 땄음에도 그랬다. 거의 누군가 하나를 죽이고야 말겠다는 태도로 일관했으며 (이미 저 커뮤니티 중 두 곳은 사람을 죽여놓고 반성이라곤 일말조차 안 하는 곳이다.), 사람이라면 절대 해선 안 되는 말을 내뱉었다. 전 세계에 시련이 닥쳐오면서 생긴 스트레스를 아이즈원에 풀고 싶었던 걸까? 그렇다면 그 악플러들은 사람이 아니다. 아이즈원엔 미성년자가 있었으니까.

 

 비이성과 몰상식.

 

 프로듀스 조작 사건의 최종 재판에서 2명이 부정 합격했다고 밝혀졌는데, 그들은 이미 그 멤버를 단정짓고 있다. 어떻게 단정을 지을까? 안준영은 실제 순위를 고려해서 2명만 합격시킨 게 아니라 합격자 같은 거 상관없이 자기 임의대로 데뷔조를 결정했다. 방송에서 발표된 순위는 전부 실제와 다르다는 얘기다. 대체 무슨 수로 불합격 멤버를 특정한단 말인가.

 

 사실, 그 정도로 세상 사람들이 우매하진 않다고 생각한다. 그저 명확한 '타겟'이 필요했던 것이다. 짓밟을 타깃을 만드려고 하는데 이성 같은 게 필요할 리가 없다. 누군가가 '선동'했고, 그 선동이 말도 안 된다는 걸 빤히 알면서 일부러 낚여서 함께 공격했다. 이 과정에서 위즈원은 끝없이 죽었다 살아나길 반복했다. 아마 아이즈원 멤버들도.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전 당분간 영화판에 집중하겠습니다~

 

 삶에는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고, 그 고통을 잊는 방법엔 여러가지가 있다. '이 시국'에는 더더욱. 어쩌면 악플러들에게 아이즈원은 그 성공적 결과만큼이나 고통을 잊게 해 줄 공격 대상으로 적절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이성을 마비시켰으며, 상식을 잊어버렸다. 그리고 그 의도성 짙은 행위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아이즈원이 해체하면 악플러도 사라질 거란 주장이 얼마나 어이없는지 알 수 있는 순간이다.

 

 위즈원이 직접 자비로 악플 대응팀까지 만들어 CJ에게 한 방에 해결해버릴 기회를 줬지만, CJ는 '왜 그렇게 해야 하냐'는 듯 그 기회를 잡지 않았고, 아이즈원의 활동 과정에 나왔다면 완벽했을 '기획사들에 보상을 끝냈다'는 기사는 아이즈원이 해체한 뒤에 나와서 사람들을 황당하게 했다. 그리고 기획사들이 아닌 연습생들에게 보상했어야 하지 않느냐는 당연한 비판은 잠깐 반짝한 뒤 힘을 잃고 사라져 갔다. 그저 아이즈원을 샌드백으로 활용하고 싶었던 이들에게 CJ가 정당한 방식으로 보상했느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이즈원이 해체한 뒤 있었던 32억 원의 평행우주 프로젝트와 매운맛 프로젝트는 너무 글을 많이 썼으니 넘어간다. 아이즈원 카테고리만 봐도 얼마나 비이성적이고 비상식적인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다. 관심이 있다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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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서서히 아이즈원 멤버들의 개인 활동 소식이 들려온다. 10월 즈음엔 장원영과 안유진이 포함된 스타쉽의 걸그룹이 나올 예정이다. 하이브 산하의 쏘스뮤직에서 내놓을 걸그룹엔 미야와키 사쿠라와 김채원이 들어갈 예정인데, 아직 명확한 소식이 나오지 않았다. 프로젝트 팀원 중엔 아직도 포기하지 않고 내년에 유닛을 재추진할 생각이 있는 모양이니 혹여 아직 미련을 가지고 있는 분들은 내년을 기약하시길.

 

 그렇게 아이즈원이 완전하게 떠나갔다. 미안하다. 미안함의 대상이 어디인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말해둬야 할 것 같아서. 이젠 아이즈원이 없다. 이 말이 괴랄맞게 묵직한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