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안시성, 전투씬의 규모 말고는 남은 게 없다

즈라더 2019. 5. 23. 18:00

 <안시성> 블루레이를 기다리다가 아무래도 안 나올 기세길래 넷플릭스로 봤다. 새삼 말할 것도 없지만, 참 오지게 못 만들었다.


 이 영화에 완벽한 고증을 바라진 않았다. 일종의 합리화를 거쳤다. 예를 들어 주요 인물들 갑옷은 엽기적인 수준이었어도 보통 개마기병이라 부르는 중갑기병들의 갑옷이나 병사들 갑옷은 그럭저럭 갖췄으니까 봐준다는 식이다. 그렇게 하나씩 양보해줄 테니 그럴싸한 극을 만들어달라는 바람이었다. 그런데 큰일 났다.


 이 영화, <디 워>와 아주 많이 닮았다.



 쉽게 말해 <디 워>가 그랬던 것처럼 전투씬을 위해 극을 내팽개쳤다는 의미다. 고증의 문제가 아니다. 어차피 이 시기 안시성 전투에 대해선 학자들 간에 소소하게 갑론을박이 있었을 만큼 명확하지 않으니 극에 맞춰서 적당하게 잘 꾸며주면 그만이고, <킹덤 오브 헤븐>처럼 아예 뒤엎어 창작을 해도 상관없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전투씬에 짜맞춘 억지 전개를 거듭하는 꼴에 주제 의식마저 텅 비어있다.


 <안시성>은 연기지도도 실패했다. 베테랑 연기자, 신인 연기자 가리지 않고 모두가 발연기의 극치를 보여준다. 주인공인 조인성부터 외국어 연기를 해야 했던 박성웅에 베테랑인 성동일, 늦깍이 스타 엄태구, 원래 그랬던(????) 배성우, 이제 배우로 시작하는 처지의 설현, 개성파 연기자로 그럭저럭 할 일 해오던 정은채까지. 모두가 한결 같이 연기를 못 했다. '배우들이 연기를 하며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예질해보시오'란 주관식 문제의 답안을 적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나는 이 캐릭터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고, 왜 이렇게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는데, 누군가가 하라니까 하긴 한다. 그러나 나 진짜 하나도 모르겠다. 누가 좀 설명해줬으면 좋겠다. 나 좀 살려주라."


 물론, 대중은 발연기의 극치를 달리는 주조연 다 냅두고 멀쩡한(?) 설현과 정은채를 주요 타겟으로 삼아 두들겨 팼다. 웃기는 일이다. 설현과 정은채보다 연기를 훨씬 못 해서 헛웃음 나왔던 베테랑 배우들이 '아.. 다행이다.. 우린 살았다..'를 중얼거리는 거 나한테만 들렸나 모르겠다.


 이렇게 칭찬할 구석 하나도 없는 영화인데 <안시성> 블루레이를 기대한 이유?


 우리 떠려니 때문이지 ♥ 아무리 좋아하는 연예인이어도 연기를 못 하면 봐주기 어려운데, <안시성>은 단체로 못 해버리니까 괜찮더라. 여러모로 기적 같은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