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연예인

NGT48 사건과 HKT48의 아이즈원 디스

즈라더 2019. 4. 12. 00:00

 한참 <프로듀스48>이 방영되던 시절에 누군가가 말했다. 디씨나 더쿠 같은 익명 사이트도 아닌 디스크 매체를 다루는 어느 사이트에서 나온 말이었다.


 "케이팝은 북한 무용단이나 소련 시절 볼쇼이 발레단 같다. 인권과 자유가 존재하지 않으며, 칼군무를 위한 지나친 연습은 멤버들의 개성을 죽임으로써 케이팝을 곧 망하게 할 것이다. AKB48처럼 자유롭고 즐겁게 방치하는 식을 추구해야 한다."


 칼군무를 위한 지나친 연습, 북한과 소련 언급 등을 보아 글의 작성자는 케이팝에서 몰개성과 획일화를 느낀 것으로 보인다. 마냥 틀린 말이 아닐 수도 있고, 단순히 저 이야기만 했다면 (황당하긴 해도) 그러려니하며 넘어갔겠지만, 그 이후에 AKB48을 언급하는 바람에 그럴 수가 없었다. <프로듀스48>에 출연한 일본인 연습생을 지지하는 마음은 알겠는데, 그래도 AKB48의 프로듀싱 방식을 찬양하는 건 안 된다는 생각에. NGT48 사건과 HKT48의 미야와키 사쿠라, 야부키 나코 디스를 보며 당시 썼던 내용을 다시 끄적여본다.




 AKB48을 시작으로 한 48그룹의 특징은 멤버 개인의 인기를 모아 그룹의 인기로 만든다는 데에 있다. 프로듀싱의 모든 촛점이 개인팬 양성과 그들의 경쟁으로 오시(최애)를 띄워주는 것에 맞춰져있고, 이는 팬뿐 아니라 멤버 사이의 견제까지 유도한다. '내가 아무리 잘해도 다른 누군가가 더 잘해버리면 위로 올라갈 수 없다'를 내포한 투쟁 사회란 의미다. 이런 그룹에 야망은 넘치지만, 능력에 한계가 있는 멤버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당연히 '나보다 더 잘 하는 사람을 끌어내려야 한다.', '내 한계를 깨기 위해 더러운 짓이라도 해야겠다'가 된다. 안 그러면 행운이 따르지 않는 한 더 높은 곳에 갈 수 없으니까. 멤버의 개성을 완전히 무시하는 아키모토 야스시 탓에 각기 다른 분야에서 톱이 된다는 상식적 진로조차 꿈꿀 수 없다.


 보통 능력의 한계치에 도달하면 그 수준에 머물거나 어쩔 수 없이 졸업하게 마련이지만, 48그룹에 소속된 수백 명이 모두 정상적일 순 없다. 심리 상담을 통한 전문적인 진단까지 거쳐도 인격이 밑바닥인 멤버를 전부 걸러내지 못 한다. 게다가 그런 살벌한 경쟁에 노출되면 정상인도 정신에 타격을 입고 흑화할 수 있다. 48그룹이 탄생한 뒤 일어났던 크고 작은 사건의 절반 이상이 그런 이유로 튀어나온 부작용이고, NGT48 사건은 진작이 터졌어야 하는 일들이 한꺼번에 터진 것에 불과하다. 48그룹은 이런 더러운 경쟁에 초등학생까지 투입시킨다. 


 미성년자를 악개팬과 멤버들 사이의 도를 넘어선 경쟁 앞에 노출시키는 그룹에 무슨 인권이 있을까. 설마 졸업하고 싶을 때 졸업할 수 있으니까 자유라는 건 아니겠지. 엄청난 경쟁률의 오디션을 뚫고 꿈에도 그리던 연예인이 되었는데, 졸업하고 싶을 때 졸업할 수 있다는 게 자유일 리가.





 자유, 개성 등으로 48그룹의 무대를 포장하는 것도 엉뚱해서 헛웃음이 다 나온다. 무대에서 발랄하고 무질서하게 춤추는 걸 자유나 개성이라고 본다면, 48그룹을 수박 겉핥기 식으로 파악한 것이다. 48그룹은 전성기 시절에 이미 100명에 육박하는 규모를 지녔었다. 그들 전부를 심도 있게 트레이닝시키는 건 소요되는 금액 만큼의 메리트가 없다. 일본에서 아이돌의 남성팬들은 춤의 디테일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데다 아예 파악조차 못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즉, 멋진 댄스를 시켜봤자 팬들이 못 알아보고, 20명 안팎이 무대에 서는 바람에 안무를 멋지게 짜기도 쉽지 않다. 차라리 어렵지 않아서 대중이 쉽게 따라할 만한 안무와 합창에 가까운 노래로 무장하는 게 인기를 누리기 적합하다.


 아키모토 야스시가 아이즈원의 일본 활동을 프로듀싱하는 걸 보며 한일 양국의 케이팝 팬들은 충격에 빠졌다. 겨우 12명 밖에 안 되는 아이즈원의 보컬을 파악할 생각도 없이 합창하게 한 것에 경악했고, 멤버 개인의 개성적 비주얼을 생각조차 안 한 듯한 의상에 해탈했다. 그야말로 몰개성의 극치. 이게 바로 아키모토 야스시가 십수년 동안 48그룹과 사카미치 그룹에 적용했던 프로듀싱 방식이다. 48그룹의 한국팬들이 아이즈원의 한국 활동 와중에 왜 미야와키 사쿠라에게만 모자를 씌우냐며 욕을 잔뜩했었는데, 그 이유가 바로 개성을 죽이고 획일화된 48그룹의 의상 컨셉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48그룹에서 모자를 쓰는 것과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건 대체로 센터뿐이라서 '아이즈원은 장원영이 아니라 사쿠라가 센터다'라는 식의 여론 몰이로 아이즈원과 미야와키 사쿠라의 이미지를 추락시키려 했던 것. 물론, 48그룹을 잘 모르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게 왜 문제냐며 황당해했다.


 즉, 48그룹이 무대에서 자유로워보이는 건 일반인도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난이도의 안무와 묻어가기 쉬운 노래 덕분이지 진짜로 자유로워서가 아니다. 가수의 '본업'을 무시한 수익 중심의 프로듀싱 탓에 멤버들은 어떻게 해야 자신이 더 잘할 수 있는지 모르고, 무대 위에서 자유롭게 무언가를 해볼 생각조차도 못 한다. 개인의 실력이나 스타일에 따라서 안무를 짜는 게 아니기 때문에 개성도 없다. <프로듀스48>에 참여한 48그룹 멤버들 중 일부가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라고 말한 이유기도 하다. 





 HKT48 멤버들이 아이즈원의 미야와키 사쿠라와 야부키 나코를 디스한 것은 평범한 질투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는 미야와키 사쿠라보다 야부키 나코를 더 언급한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미야와키 사쿠라는 아이즈원이 끝나는 대로 졸업할 가능성이 농후한 멤버지만, 야부키 나코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주된 타겟이 된 것이다. 해당 방송에서 MC를 맡은 TM 레볼루션은 바로 그 부분을 찔러서 디스 배틀을 유도해냈다. 


 48그룹에 인권? 자유? 개성? 그런 거 하나도 없다. 이 사실에 확신을 얻는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고, 확신하는 순간 내가 그 동안 뭘 했던 거지 싶어서 탈덕했다. 일본 연예계나 아키모토 야스시에 대해 어떤 환상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난 한국 걸그룹이 48그룹처럼 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건 다 같이 죽자는 것과 다를 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