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인기가 많으므로 성적이 좋을 것이라던 수많은 사람의 예측과 달리 <정이>는 2주 차 주간 순위에서 오히려 더 안 좋은 성적을 거두며 처참하게 무너졌다. 플릭스패트롤 1위를 계속해서 이어갔던 건 예상대로 '빈집'이었기 때문으로 보이며, '호불호가 갈려도 인기가 좋으므로 성공이다'와 '호불호가 갈리는데 어떻게 성공이냐'라는 대결은 고스란히 '역대 순위에는 못 들었지만 이 정도면 그럭저럭 성공한 것'과 '200억이나 들어간 작품의 성적이 저거밖에 안 되는데 어떻게 성공이냐'의 대결로 넘어가게 되었다. 굉장히 안습한 처지다.
이쯤 되면 걱정이 될 수밖에 없다. <정이>의 실패를 계기로 넷플릭스가 한국 영화에 대한 투자를 줄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 '200억이라고 해봤자 한국에서나 거금이지 미국에선 거저다'라는 주장은 틀렸다. 일단 <정이>의 성적은 영어권 영화까지 포함해서 보면 폭망한 정도가 아니라 처참한 수준이므로 200억 값을 못 했다고 할 수 있으며, 넷플릭스가 투자하는 나라엔 미국과 한국만 있지 않다. 당장에 넷플릭스 비영어권 영화 역대 순위에 들어가 있는 수많은 영화들 대부분이 200억보다 적은 금액을 들였거나 그보다 조금 높은 수준의 금액을 들인 작품들이다. 넷플릭스의 입장에선 한국 영화에 투자하기보단 유럽이나 남미 등의 지역에 투자하는 게 수지타산이 맞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의미다.
막대한 금액을 투자해 주고, 빈집까지 만들어줬는데 <정이>는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었다. 그런 와중에 넷플릭스가 작품 제작에 지출하는 금액을 22조로 동결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고, 얼마 전에는 <소년심판> 시즌 2의 캔슬 소식이 들렸다. 넷플릭스 측에서는 <소년심판> 시즌 2의 캔슬을 두고서 '스케줄 문제'라고 말했지만, 이는 핑계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드라마 제작진은 바보가 아니다. 스케줄을 조절할 능력도 없는데 오디션을 열었을 리가 없다는 얘기다. 오디션을 열고 한참 진행하는 와중에 드라마가 캔슬되어 캐스팅이 취소되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이는 그냥 넷플릭스 측에서 작품을 취소한 것으로 봐야 옳다. 차라리 각본에 문제가 있어서 취소했다는 쪽이 설득력이 있다. 왠지 <정이>의 성적은 생각보다 많은 걸 잃게 할 것 같단 생각이 든다.
넷플릭스 주간 순위 영어권 영화 부문 1위는 <유 피플>이 차지했다. 조나 힐과 에디 머피 주연의 19금 코미디 영화로 평가는 그다지 좋지 않다.
개인적으로 주목하고 싶은 건 <정이>와 함께 공개된 <디보션>이다. 사람에 따라서 넷플릭스가 빈집을 만들어둔 이유는 <정이> 때문이 아니라 <디보션> 때문이라는 주장을 할 수도 있는데, <디보션> 쪽의 제작비(약 1000억)가 <정이>보다 압도적으로 더 많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시다시피 <디보션>은 <정이>보다도 실패했고, 어쩌면 넷플릭스 측에서 빠르게 빈집을 채워버린 진짜 이유일 수도 있다. 한국 전쟁을 배경으로 한 할리우드 영화는 필패라고 하던가. <디보션> 역시 그 사례에 들어가고 말았다.
넷플릭스 주간 순위 비영어권 영화 부문의 1위는 <나르비크>. 많은 사람이 1위일 거라 예상했던 <정이>를 압도적인 수치 차이로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나르비크>는 여전히 <유 피플>를 이어 2위를 유지하고 있으므로 넷플릭스 비영어권 영화 역대 순위에 이름을 올릴 가능성이 크다. 만약 <나르비크>가 순위에 들게 되면 노르웨이 영화는 <트롤의 습격>에 이어서 연속 홈런을 날린 셈이 된다. 게다가 <나르비크>는 제작비가 100억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정이>의 절반, <디보션>의 10%에 불과한 제작비로 홈런이다.
한편, 주간 순위 2위를 기록하며 수치마저도 상당히 낮은 <정이>는 어제자 플릭스패트롤 순위에서도 13위까지 추락하며 역대 순위에 들어갈 가능성이 완전하게 소멸했다. 안타까울 따름이다.
넷플릭스 주간 순위 영어권 TV 부문의 1위는 여전히 <지니 앤 조지아> 시즌 2다. 새롭게 공개된 <록우드 심령회사>는 6위라는 성적표를 들고서 실패했다. 영국 드라마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성공과 거리가 한참 먼 수치. 영화 주간 순위에서 실패한 <디보션>과 TV 주간 순위에서 실패했음을 고백한 <록우드 심령회사>. 넷플릭스는 K 컨텐츠만 부진한 게 아니라 영어권 컨텐츠도 부진하고 있다. 이렇게 부진하는 가운데 계정 공유 금지 공지를 띄웠으니 사람들이 어이없어할 수밖에.
넷플릭스 주간 순위 비영어권 TV 부문을 살펴보면 1위에 <La Reina del Sur> 시즌 3가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운데 K 컨텐츠의 변함없는 부진이 눈에 들어온다. 비영어권뿐 아니라 영어권 컨텐츠를 포함해서도 상위권에 5~6 작품을 랭크시키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 K 컨텐츠는 분명히 부진한 편이며, <더 글로리>마저도 <La Reina del Sur> 시즌 3에 비하면 그다지 좋은 성적이 아니다. 그나마 <피지컬 100>이 제 역할을 해주고 있지만, 이 역시 4화의 평가가 좋지 않아서 미래가 어둡다.
한편, <아리스 인 보더랜드> 시즌 2와 <더 글로리>의 대결로 이래저래 말이 나오고 있던 시절을 지나고 나니 주간 순위를 기준으로 진정한 승자는 <La Reina del Sur> 시즌 3였다. 역시 K 컨텐츠나 J 드라마의 성적을 뛰어넘는 건 라틴계 드라마들. 포르투갈어와 스페인어에 다소 차이가 있다고는 하지만, 신기하게도 남미의 국가들은 더빙도 없이 라틴계 컨텐츠를 다 같이 보고 있다. 여기에 미국에 있는 히스패닉, 언어적 본토라 할 수 있는 포르투갈과 스페인까지 생각하면 정말 엄청난 숫자의 사람이 컨텐츠의 주된 소비층인 셈이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자국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라틴계와 영미권을 이길 수가 없다.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K 컨텐츠 다음 타자는 <연애대전>과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다. 두 작품 모두 넷플릭스 측이나 넷플릭스 유저 측이나 기대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특징이 있다. 작품의 퀄리티와 별개로 K 컨텐츠의 부진을 씻어낼 만큼의 화제를 일으키긴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연애대전>은 예고편만 보면 2000년대 로맨틱 코미디와 흡사하단 생각마저 들지 뭔가. 두 작품을 제외하면 2월에 공개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K 컨텐츠가 존재하지 않으며 텐트폴이라 할 수 있을 인기작이 넷플릭스와 계약을 했다는 소식도 아직까진 들려오지 않고 있다. 넷플릭스 코리아에서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러다간 넷플릭스 계정 공유 금지와 함께 한국 가입자가 폭락할 가능성도 생각해봐야 한다. 넷플릭스에 위기가 찾아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