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따라서 배드 엔딩이라 여길 수 있을 것 같다. 이쪽도 저쪽도 아닌 모호함 때문에 적어도 내게 있어선 배드 엔딩이다. 실컷 '존재'에 대한 철학적 의미를 훑어 내리다가 엔딩은 그걸 부정하는 모양새라는 점도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존재란 기억에서 비롯되는 법인데, 그걸 통째로 무시한다고? 물론, 작품은 '모호하기 짝이 없는 기억'보다는 본능에 충실해야 한다는 교훈도 들어가 있다. 그러나 교훈은 잔뜩 늘어놓았지만, 그걸 다루는 법은 그야말로 수박 겉핥기라서 쉽게 와닿지 않고, 덕분에 결말은 이율배반적 태도처럼 보인다.
<아리스 인 보더랜드>의 일본 제목은 <임종의 나라의 아리스>다. 여기서 '임종'은 우리가 아는 '임종하셨습니다'의 임종이 맞다. 그리고 영어 제목인 <아리스 인 보더랜드>에서 '보더랜드'란 Border에 land를 붙인 것으로 '경계에 있는 나라'로 이해하면 적합하다. <아리스 인 보더랜드> 시즌 2에는 이 '임종'과 '경계'를 고려해서 잘 생각하면 손쉽게 떠오를 수 있는 결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쉽게 예측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시즌 1 당시에 대충 예측했던 결말과 맞아떨어지는 바람에 기쁜 게 아니라 김이 새 버렸다.
한편, 며칠 전 <아리스 인 보더랜드> 시즌 2는 일본이 한국 드라마를 잡기 위해서 만들어낸 작품 중 하나라는 일본 측 기사를 봤다. 한국 드라마를 반드시 잡기 위해 넷플릭스로부터 막대한 예산을 투자받아 '더 세븐'이라는 드라마 제작사를 넷플릭스 전용으로 변신시켰다고 한다. 그 제작사에서 <아리스 인 보더랜드> 시즌 2(아마도 VFX 관련해서 로봇과 공동 개발)를 비롯한 여러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는 모양이다. 뒷배에는 무려 TBS가 있다. 이 사실에서 왠지 재팬 디스플레이가 떠오르는 건 나뿐일까?
우리나라의 무언가를 잡겠답시고 '정예'를 모아서 도전한다는 일본의 방식에 다소 소름이 끼친다. 재팬 디스플레이, 쿨재팬, 더 세븐 등등,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잡기 위해서 단체를 만든다는 점이 무섭다. 다른 건 몰라도 대중문화는 그런 식으로 강요해서 될 일이 아니잖아.
일단, 일본 쪽 넷우익들 반응을 살펴보니 <아리스 인 보더랜드> 시즌 2가 <더 패뷸러스>를 잡았다면서 만족해하는 것 같다. 지금 추이를 보면 <아리스 인 보더랜드> 시즌 2는 비영어권 TV 부문의 역대 10위 안에 들어갈 가능성이 어느 정도 있는 편이다. 이에 넷우익들은 기고만장 해서 더 열심히 홍보한답시고 홍보를 위한 틱톡 영상을 만들고 있었다. 여기에 일뽕들도 가세를 해서 열심히 영상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음습하다. 이해가 안 간다. 난 한국 드라마 제작사나 한국 드라마 팬들이 일본 드라마를 잡는다는 식의 경쟁 심리를 끌어올리고 있단 얘길 들어본 적이 없다. 한국 드라마가 세계적 인기를 끌기 전부터 그랬다. 반면, 일본은 한국 드라마를 잡겠답시고 드라마 제작사 하나를 통째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제작 회사로 만들어버렸다. 산케이 쪽에선 <오징어 게임>으로 한국이 먼저 일본을 자극했다는 식으로 보도를 하던데, 그 말도 안 되는 억지에 기가 막힐 따름이다.
넷플릭스로선 이런 일본의 태도가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퍼스트 러브 하츠코이>부터 대대적인 홍보에 들어갔다. 비록 <퍼스트 러브 하츠코이>는 성적이 썩 시원치 않았지만, <아리스 인 보더랜드> 시즌 2는 성적이 꽤 폭발적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쪽 투자를 줄이고 드라마 쪽에 힘을 기울이기 시작하자마자 흥행작이 나오니 얼마나 기쁘겠나. 그러나 넷플릭스는 모를 거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그렇게 단순한 시장 논리로 대할 수 없다는 걸. 넷플릭스가 원하는 건 한국 드라마와 일본 드라마가 모두 성공하는 거겠지만, 일본은 절대 그걸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넷플릭스는 <아리스 인 보더랜드> 시즌 2에 들어간 막대한 제작비(시즌 1도 30억 엔이니 뭐니 했었는데, 시즌 2는 시즌 1보다도 더 많이 들어갔다는 게 일반적 의견이다.)를 회수하기 위해서인지 넷플릭스 영미권 유튜브 채널에도 필사적으로 홍보하는 중이다. 이렇게 푸쉬를 많이 받는 아시아 드라마는 처음 봤다. <오징어 게임>이나 <지옥>만 하더라도 예고편 정도만 업로드했을 뿐, 이토록 끈질기게 홍보하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넷플릭스는 <아리스 인 보더랜드>를 반드시 비영어권 역대 10위 안에 넣겠노라고 다짐한 모양이다. 이에 발맞춰서 신 나서 어쩔 줄 모르는 넷우익들을 보고 있노라니 피곤하다. 당분간 쟤네들의 날조를 감시하는 것도 접어둬야 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