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탈을 그로기 상태로 만들어버리는 논쟁을 야기했던 <매트릭스: 레볼루션>이지만, 이 영화는 디테일하게 파고 들어서 치고 받을(?) 생각이 없는 사람에겐 꽤나 근사한 영화일 수 있다. 스팀펑크 스타일의 SF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체이싱, 전투씬이 담겨 있으며, 양갈래 이야기의 흐름도 멋지게 매듭지었다. 천재가 아니고서야 생각할 수 없을 시온 전투씬의 우아한 이미지는 지금도 쫓아가기 어려운 클라스에 우뚝 서 있다.
난 <매트릭스> 트릴로지를 아직 보지 않은 어린 아이들이 참 부럽다. 그 신선함을 고스란히 맛볼 수 있을 테니까. 네오와 스미스의 대결 장면이야 <맨 오브 스틸>과 같은 후배들이 충실하게 재현했으니 신선할 것 없겠지만, 시온 전투씬은 아직도 저 멀고도 먼 안드로메다에서 후배들에게 '얼른 좀 쫓아와라'라고 손짓한다.
<매트릭스: 리로디드>의 4K 블루레이에 대해선 딱히 할 말이 없었는데, <매트릭스: 레볼루션>은 할 말이 조금 있다. 단언컨데 이 시리즈의 팬이라면, <매트릭스: 레볼루션>의 체이싱 장면과 시온 전투씬을 4K 블루레이의 HDR로 봐야 한다. 경이에 가까운 눈호강일 뿐 아니라 (아마도) 워쇼스키 자매가 의도했을 스팀펑크 디스토피아의 끔찍한 전장을 더욱 극적으로 재현해내고 있다. 네오와 트리니티가 구름 위의 하늘을 보는 장면에선 긴시간 수없이 이 영화를 봤음에도 공감할 수 없었던 '아름다워'란 대사에 처음으로 공감했다. 어둠에 묻혀서 보이지 않던, 혹은 보여도 볼 생각조차 안 하던 폐허의 디테일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오는 건 덤이다.
단, 아쉬운 점이 없진 않다. 네오와 스미스의 격투 장면은 시종일관 뿌려대는 빗물, 번개가 시야를 방해하는데, 여기에 밤이란 배경까지 더해져서 블루레이의 SDR보다 액션의 디테일을 확인하기 어렵다. 빛은 빛대로 수백 니트를 뿌려대고 어두운 부분은 있는 그대로 어두운 마당에 빗물이 시야를 가려버리니 제대로 보일 리가. <매트릭스> 트릴로지의 4K 블루레이가 담은 HDR에 대체로 불만이 없었지만, 이 장면 만큼은 못내 아쉽다. HDR로 볼 때 어떨지 많이 궁금했던 시퀀스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