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영화 바람의 검심을 지금 와서 보자면

즈라더 2020. 7. 17. 18:00

 <바람의 검심> 추억편과 인벌편이 영화화되었고 코로나19 탓에 개봉만 못 하고 있다는 소식에 괜히 필받아서 또(!) <바람의 검심> 블루레이를 감상했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은 영화다. 속편인 <바람의 검심: 교토 대화재 편>이 대단히 뛰어난 작품인 걸 생각하면 여러모로 아쉽다. 


 <바람의 검심>은 유치한 대사나 배우들의 과장된 연기 등 코믹스 원작의 일본영화에서 볼 수 있는 실수는 죄다 저지르고 있다. 등장인물의 몹시 코믹스스러운 헤어나 의상 상태까지 포함해서, 엄밀히 말해 <바람의 검심>은 대체로 다른 코믹스 원작의 일본영화보다 나은 게 없다. 무엇보다 '잘생김' 말곤 연기하지 않은 사토 타케루가 문제다. 당시 그에겐 잘생긴 얼굴로 찌릿하게 째려봐주는 것 말고는 잘하는 연기가 없었다. 심지어 액션을 소화할 때 몸의 움직임도 이상해서 동작이 대단히 난잡해보인다.


 이렇게 <바람의 검심>은 기존 일본만화 원작의 영화와 다를 바 없는 게 대부분인 영화지만, 단 두 가지 괄목할 만한 부분이 있었다. 그게 제대로 먹혀서 거대 자본이 투자된 속편이 연달아 제작될 수 있었던 것이다. 

 

토모에 역할에 아리무라 카스미가 캐스팅되었다. 벌써 슬프다.


 이 영화는 개연성을 포기해가면서 원작 만화의 에피소드를 우겨넣었는데, 그게 영화의 흐름과 잘 어울려서 꽤 볼만한 구조가 되었다.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는 장면에선 뜻밖의 세련됨도 엿보인다. 일종의 언어도단, 자승자박에 가까운 '활인검'의 역설도 원작 만큼은 살려냈다. (애초에 원작부터가 그 역설에 집중하지 않는 기이한 작품이었으므로) 

 


 또한, 기존 일본영화에선 보기 어려운 유형의 액션이 <바람의 검심>을 '썩 괜찮은 영화'로 만드는데 한 몫을 했다. 이는 일본영화들이 얼마나 심각하게 고여있었는지 알 수 있는 측면이기도 하다. <바람의 검심>의 무술 감독을 맡은 건 타니가키 켄지. 그는 90년대부터 유명했던 일본의 스턴트맨으로, 90년대말 견자단 사단에 참여해서 견자단과 함께 무술안무를 짜던 인물이다. 견자단의 영화를 많이 본 사람들은 얼굴도 익숙할 것이다. <도화선>에서 베트남 삼형제의 최측근 부하로 나오기도 했고(아예 역할 이름부터가 '켄지'다), <살파랑>엔 경찰들로부터 도망치다가 추락하는 역할로 나오기도 했다. <무협>에서 주인공에게 처음으로 살해당하는 두 사람의 무림인 중 머리가 긴 사람이 바로 타니가키 켄지다. 견자단의 팬들에겐 얼굴까지 익숙할 정도로 견자단과 함께 장기간 깊숙하게 일해온 인물이라서인지 <바람의 검심> 속 무술안무는 견자단 영화에서 볼 수 있던 그것과 몹시 흡사하다. 특히 단검을 든 빌런과 켄신의 대결 장면은 <살파랑> 골목 결투 장면의 전개와 동작을 카피하다시피했다.


 어쨌든 폭삭 고여있던 일본의 영화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킨 액션임엔 틀림이 없었으므로 <바람의 검심>은 일종의 선구자 역할을 한 모양이다. 이후 일본은 코믹스 원작의 영화를 만들더라도 액션 만큼은 그럴싸하게 뽑아내는데, <바람의 검심>에 자극받은 영화계가 중국 혹은 한국의 무술 감독들을 대거 데려다가 쓰기 때문이다. 영화의 퀄리티를 올릴 생각은 안 하고 일부 요소를 화려하게 치장해서 홍보하는 편법처럼 느껴지긴 하지만, 어쨌든 타니가키 켄지가 견자단 사단에서 배워간 것들은 일본 영화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는 <바람의 검심: 교토 대화재 편>에서 훨씬 업그레이드되어 폭발하게 된다.

 

사토 타케루 역시 전작보다 훨씬 그럴싸한 이미지가 된 듯하다.


 <바람의 검심>엔 몹시 개인적이고 어쩌면 변태스런 내 취향에 어울려주는 요소도 있다. 이 영화는 여름에 찍었다. 지독하게 더운 여름의 일본에서 선풍기 바람조차 허용되지 않는 '야외 세트' 배경. 덕분에 배우들은 물뿌리개로 만든 땀이 아닌 진짜 땀에 흠뻑 젖은 채 촬영해야 했고 많은 사람이 좁은 공간에 한꺼번에 모이는 장면에선 혼절 직전까지 몰렸었다고 한다. 즉, 진짜로 자신의 땀에 흠뻑 젖어 지쳐있는 타케이 에미를 볼 수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