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숨이 안 쉬어져

즈라더 2019. 7. 13. 12:00

 <거미줄에 걸린 소녀>를 보기 전에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블루레이를 꺼내들었다. 딱히 연관된 작품도 아니고, 배우들이 깡그리 하차하는 바람에 김이 팍 새지만, 어쨌든 전편이니 봐줘야겠단 생각에.


클레이 포이도 대단히 뛰어난 배우지만, 이 영화의 루니 마라와 비교하면 한참 모자라다. 물론, 여기엔 감독의 연기 지도 실력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은 특이한 영화다. 종종 까칠하게 귀를 후벼파는 테마곡을 제외하면 건실한(?) 추리극에 가까운 전반부과 달리 리스베트가 수사에 참여하는 중반부터 장르가 탈색된다. 리스베트가 의뢰(?)를 수락하고 오토바이 시동을 거는 순간, 마치 크게 벌린 악마의 아가리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감각을 주기 시작한다. 우아하던 연출은 거칠어지고, 테마곡은 시종일관 귀를 때리며, 수사를 가속화할 수록 밝혀져가는 험악한 진실들에 질식사할 것 같은 서스펜스가 극을 장악한다.

 

 그렇게 험악하게 극을 매만지던 데이빗 핀처는 클라이막스 체이싱 장면에 이르러서야 꽉 쥐고 안 놔주던 감상자의 숨통에 여유를 준다. 을씨년스럽게 과거에 사로잡힌 듯하던 섬의 정경이 체이싱 와중에 차츰 '현재의 문명'으로 넘어가면서 비로소 '악마의 아가리에서 탈출했구나'란 생각이 들도록. 약을 한웅큼 집어잡순 거 아닌가 싶은 무시무시한 연출력이다.


 개인적으로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은 박찬욱 감독의 <박쥐> 같은 영화라 생각한다. 이미 쏜살처럼 달려가 과녁에 꽂히는 유형의 걸작을 만들어냈지만, 정작 본인이 추구하는 바가 그쪽에 없다는 걸 밝히는 느낌이랄까. 이런 영화는 대체로 짜릿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