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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은 걸 공란으로 남겨둔 어벤져스 엔드게임

즈라더 2019. 7. 10. 06:00

 본문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와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스포일러가 다소 담겨 있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를 또 봤는데,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얼마나 많은 걸 공란으로 남겨뒀는지 다시 깨달았다. 마치 <매트릭스: 리로디드>에서 뿌려둔 것들을 <매트릭스: 레볼루션>으로 회수하지 않았던 워쇼스키 자매처럼 루소 형제는 그저 이야기만 나열했을 뿐이다.


 게다가 사이버펑크 전쟁씬의 '레퍼런스'를 제시했고 지금까지도 후계자를 찾지 못 한 <매트릭스: 레볼루션>과 달리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인피니티 사가의 마무리라는 가치를 제외하면 신선한 구간이 별로 없었다. 지구에서 벌어지는 클라이막스야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과 <레디 플레이어 원>이란 선배의 예시를 따른 안전로에 불과했고, 어마어마하게 짧았으니까.



 루소 형제는 결국, 본인들이 영화의 중요한 순간들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 했음을 간접적으로 고백하고 다니는 중이다. 그들은 토르와 타노스의 두 번째 맞대결에서 토르가 우위를 점한 걸 두고 '타노스가 방심했을 뿐이다'라고 말했지만,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를 보고 또 봐도 영화만으론 그렇게 해석하기 어렵다. 토르가 하늘에서 공격해오긴 했어도 상당한 거리였고, '나 지금 간다!'라고 신호까지 보냈으며, 직접 부딪혀온 게 아니라 스톰브레이커를 던지는 가벼운 견제였다. 그렇게 연출해놓고 '방심'으로 해석하라는 건 연출력 부족을 시인하는 거나 다름없다.


 이런 문제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그치지 않고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도 똑같이 일어난다. 루소 형제는 영화에서 분명히 타노스를 짓누르고 있던 모 캐릭터에 대해 '타노스를 잠깐 저지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연출 상으론 아무리봐도 잠깐 저지당한 게 아니라 죽기 직전까지 몰리다가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함선 공격을 지시한 것처럼 묘사해놨다. 적어도 함선 공격을 지시하는 장면을 다른 곳에 배치하는 연출이 있었어야 그런 코멘트에 고개라도 끄덕이지 않겠나.


 역시 3시간은 부족했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를 3시간으로 만들고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3시간 20분 정도로 만들어야 했다. 설명이 부족한 수많은 요소들이 짧은(?) 상영시간 탓에 잘려나간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갈수록 짧은 영화를 선호하는 대중의 경향이 이 영화를 망쳐버린 걸지도 모른다. 두 작품이 만들어낸 수많은 공란은 이후 이어질 페이즈4의 영화들에 부담으로 작용하거나 '무시'당할 가능성이 농후하다.